소설리스트

딸이 내게 집착한다-57화 (57/96)

〈 57화 〉 신나영.

* * *

내 이름은 김찬희. 고2다.

“화났냐?”

그리고 자꾸 내 옆구리를 치면서 화났냐고 묻는 노란색으로 염색한 여자.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 가장 짜증나는 애. 신나영이다. 반응해주면 또 신나하면서 계속할게 뻔하니, 무관심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퍽퍽.

생각보다 세게 때려서 아프다. 그래도 참는다.

“화났냐?”

지금 수업 시간이라고 썅년아….

~~~

드디어 찾아온 수학여행의 자유시간. 처음 오는 제주도라 볼 것도 많고, 공원 자체도 넓어서 시간 보내기에는 딱이었다.

여러 특이한 식물도 많고, 물고기나 거북이도 살아 볼 거리가 많다. 야자수도 많이 배치 되어 있어서 관광지라는 느낌이 물씬 난다.

중간에 샛길로 새면 짧은 동굴이 나오는데, 안에는 종유석과 석순이 위아래로 형성 되어 있어 책에서 본 비주얼 그대로 나와 있다.

“와 존나 크다.”

“…….”

야외라 딱히 조용히 해야 할 곳은 아니었지만 동굴이라 목소리가 너무 크다. 그리고 왜 자꾸 따라오는 건지 모르겠다.

“이거 뭐라고 하더라? 자──”

“석순 등신아.”

“아 맞다.”

쟤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 밖에 없는 건가? 섹드립 잘치는 여자애라니 뭔가 꼴리는 상황이긴 하지만, 신나영 한정으로 그렇게 꼴리진 않는다. 그렇게 생긴 석순이 있긴 하다만….

“야 나 사진 좀 찍어 주라.”

“폰 줘.”

“니껄로해. 니가 더 화질 좋잖아.”

“하아….”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어 스마트폰을 들고 뒤로 물러 났다.

“치즈~”

동굴에서 나오는 은은한 조명과 어두운 곳을 밝혀주는 스마트폰의 조명 덕분인지 신나영이 브이 표시를 하며 포즈를 잡는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생긴 건 쓸데없이 귀엽다니까….

“하나 둘 셋.”

혹시 몰라 버튼을 두세 번 더 누르고 사진을 보여줬다.

“톡으로 보내줘~”

“예예.”

“같이 안찍어?”

“나 사진 찍히는 거 싫어하는 거 알잖아.”

“나랑 찍히는 건 좋잖아.”

“뭐래.”

뭘 어떻게 하면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냥 사진빨이 잘 받아서 찍어 주고 있을 뿐인데. 가끔씩 신세지는 정도인데.

또 팔도 짧은 게 다른 손으로 내 어깨를 걸치면서 나를 누르면서 찍는다. 이럴 거면 그냥 내가 들고 찍었지.

“이것도 보내줘~”

찰칵하며 사진이 찍힌다. 흔들려서 그런지 내 턱이 잘려 나갔다. 딱히 상관없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기분 나빴다.

“보냈다.”

톡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동굴을 나왔다.

“으, 눈부셔.”

“…….”

친구가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친구는 많다. 단지 쓸데없는 배려를 당해서 우리 둘이 썸탄다고 오해하는 모양이다.

“하아….”

이건 썸이 아니다. 신나영뿐 아니라 흔히 인기 많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특유의 어장력이다. 나는 그중에서도 좀 좋게 관리받고 있을 뿐이다.

어차피 이런 애한테는 고백해봤자 정색하며 ‘진심이야…?’라며 경멸하는 표정을 지을 게 뻔하기 때문에, 아예 기대 안 하는 편이 좋다.

“웬 한숨?”

“그냥 갑자기 숨 차서.”

“나영아~ 우리 간다~”

“아, 나도 갈게~ 간다.”

“그래라.”

그러면서도 이런 취급에 익숙해진 내 자신이 싫어졌다.

~~~

“혹시라도 여자 숙소에 가지마라.”

인터넷에 찾아 보면 『수학여행 때 여자애 방 들어간 썰.txt』 이나 『수학여행 때 남녀 합방한 썰.txt』 같은 내용을 보긴 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은 법이다.

“우리 어쩔 거야?”

“쌤들 잘 때 옮기면 되지”

“아니면 쌤들 담배필 때 가던가.”

이미 몇몇 그룹들은 벌써부터 어떻게 합방할지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나도 속해 있었지만 딱히 기발한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아서, 아무 의견도 내놓지 않았다.

“너도 올꺼야?”

“애들 가면.”

신나영도 예외는 아니어서, 합방을 하게 되면 같이 있게 된다. 물론 엮이기는 싫다.

“내가 애들한테 잘 말해 놓을 테니까. 준비되면 고.”

“오케이.”

“근데 방 좁지 않아?”

“어차피 놀다가 뺄건데 뭐.”

“하긴.”

계획 실행은 한참 새벽인 1시. 그 때까지 악으로 깡으로 졸음을 버텨야 한다. 우리 방은 시간이 될때까지 게임에서 지면 등짝을 맞았기 때문에 졸려서 잘 일은 없었다.

“인디어어어언 밥!”

“크아아아악!”

그것봐. 아프다니까.

“야, 1시 다 됐다.”

“진 새끼가 선발대 하자.”

“그래.”

다행히 수학여행이라 핸드폰은 걷지 않아서, 한 명이 성공하면 톡으로 신호를 보내면 된다.

“가위 바위 보!”

“찬희 당첨!”

“걸리면 우리 쌩깐다.”

“에라이….”

총대를 매는 기분이다. 실제로 총대를 맨 건 맞지만. 방문을 살짝 열어 복도 중앙에 선생님이 있는 것을 확인한다. 쌤도 피곤하신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암.”

저렇게 계속 앉아 있으면 갈 수가 없다. 가운데를 기준으로 오른쪽이 우리 남자 숙소, 왼쪽이 여자 숙소다.

“야, 왜 안 가!”

“쌤 아직 있어.”

“리얼?”

“누군데?”

“째식이.”

“아이씨. 하필.”

자꾸 재촉 당하지만 한 시간은 더 있어야 교사 숙소로 내려갈 거 같다. 하필 이번 담당이 FM으로 유명한 김재식 선생님이라 좀 애를 먹을 거 같다.

째식쌤은 수업도 칼 같이 끝내고, 조례나 종례도 칼 같이 끝낸다. 칼 같이 끝내는 건 좋지만. 수업 내용이 진짜 시간을 꽉꽉 채워서 별로 인기있는 쌤은 아니다.

“어, 간다.”

웬일로 째식쌤이 일어나더니 계단아래로 내려간다. 서둘러 빠져나와서 여자 숙소로 슬라이딩 하듯 뛰어가 도착했다. 이쪽도 미리 문을 살짝 열어놔서 안 들켰다.

“오~ 찬희. 따른 애들은?”

“이제 오라 할려고.”

오라는 문자를 보내려는 찰나에 째식쌤이 다시 올라왔다.

「야 기다려봐 째식이 올라옴」

「ㄹㅇ? ㅈ됐네」

「얼굴 물 묻은 거 보니까 세수하고 왔네」

「ㅁㅊ」

교사의 관리시간이 언제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두 시까진 어떻게 할 수 있지만, 3시가 넘어가면 내가 다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빨리 자러 가라고만 기다리던 그때, 계단에서 또 다른 쌤이 내려왔다.

“째식이 한대 할래?”

“아 예.”

근무된 지 오래된 쌤이 아직 젊은 째식쌤한테 담배를 권유하자 바로 일어나 내려간다. 나이스 타이밍.

또 언제 올라올 줄 모르기 때문에 도배수준으로 톡을 보냈다.

「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

한 명씩 미끄러지면서 오다가, 마지막 4명째까지 전부 왔다. 방에 남은 세 명한테는 대충 포대기로 씌우라고 미리 말해놨다.

“씨바 드디어 모였네.”

“야 조용히 해! 우리 애들도 잔단말이야.”

아무리해도 친한 애들과 안친한 애들은 나눠지는 법, 별로 놀이에 관심 없는 애들은 미리 잠을 청해서 시끄럽게 할 수도 없다. 그리고 시끄럽게 하면 쌤들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뭐할래?”

“이럴 땐 진실게임이지.”

“콜.”

“…콜.”

딱히 숨기고 싶은 거나 그런 사실은 없지만, 그냥 내가 재미없을 거 같아서 약간 걱정됐다.

“누구냐 욱이네 욱이.”

“뭐 질문할래?”

우리 쪽에서 한 명 걸리자 여자애들이 신난 듯 작당모의를 한다. 쪽팔려처럼 벌칙을 줄 수도 있고, 아니면 질문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욱이가 불안한 표정을 낌새를 보였다.

“나는 섹스 몇 명이랑 해봤다.”

“와 초반부터 너무 쎈데.”

“근데 아다 같이 안 보이긴 했어.”

귓속말 수준의 볼륨의 음담 패설들이 왔다 갔다거린다. 욱이가 별거 아닌 것처럼 당당하게 ‘2명’이라고 답하자, 여자애들이 끄윽끄윽 소리를 질렀다.

“누구랑? 우리 학교 애?”

“에이 그건 말 못 하지.”

“왜~ 진실게임이잖아!”

“꼬우면 한 번 더 맞추던가.”

첫판부터 수위가 이렇게 쎄다니, 아무리 친하다곤 하지만 이러다가 진짜로 그런 전개로 넘어갈 거 같아 무섭다.

“어, 예나다.”

“나는 처녀다.”

룰렛이 뜨기 무섭게, 욱이가 뇌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예나에게 질문했다. 예나가 잠깐 멈추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고등학교 올라와서다.”

“안 돼 질문은 하나씩만.”

“에이.”

“니네도 그랬잖아!”

“욱이 등신 그냥 대답하지.”

넌씨눈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나포함 전원이 욱이에게 냉담한 시선을 보낸다. 그냥 말해줬어도 같은 반 여자애로 수많은 상상이 가능한데.

어쩔 수 없이 넘어가서, 다음으로는 신나영이 걸렸다. 애들이 나한테 눈치를 줬지만, 내가 가만히 있자 지네들끼리 키득키득거렸다.

“한 질문 또 하기 없기!”

“오케이.”

분위기가 너무 그쪽으로 갔는지, 다희가 중재를 나섰다.

“나는 여기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있다.”

““OHHHHHHHHHHHHHHH!””

암전된 방에서 내 양옆으로 단단한 주먹과 물렁한 주먹이 나를 때린다. 아니 나는 확실히 아니라니까 진짜로. 그리고 양쪽다 아파.

지옥의 룰렛은 또 신나영을 가리켰다.

“꺄!! 또 나영이다.”

“그 좋아하는 사람이 앞에 앉아 있다!”

“어떡해 어떡해!”

“에라이. 아니라니까.”

“…….”

신나영의 앞에는 내가 앉아 있다. 얘네들은 대놓고 쟤가 나 좋아하냐고 물어보는 셈이다. 물론 아니라면서 부정하겠지.

왜냐면 쟤는 따로 남친이──

“오오오오옹오옥!”

“…….”

신나영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나도 덩달아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키스해! 키스해! 키스해!”

작은 소리로 앵콜 같은 키스하라는 함성이 들린다. 이 상황이 뭔 상황인지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나영이 날 좋아할 리가 없다. 나랑 있다가도 다른 남자랑 통화하는 것을 그렇게 봤는데, 전혀 믿기지 않는다.

‘왜 아무 말도 안하고 있는 건데.’

평소라면 ‘병신들아 구라지~’이러면서 넘겼을 텐데, 꿀이라도 먹은 것처럼 가만히 있다. 불도 꺼져있어서 그런지 표정도 잘 안 보여 무슨 생각인지 전혀 모르겠다.

“키스해! 키스해!”

뭐라고 말이라도 좀──

“이 새끼들이!”

“흐윽!”

갑자기 문이 확 열리더니, 째식쌤이 들어왔다.

“안 자고 뭐 해 어!”

“…….”

“빨리 나와!”

선생님 목소리에 한번, 그리고 불을꺼서 안 보였던 탱크탑을 입은 여자애들의 과감한 복장에 또한번 놀라 서둘러 그 현장을 나왔다.

“너넨 손들고 서 있어!”

“…….”

언제적 체벌을 주는 건지. 우리 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있는 호텔에서 이런 취급을 받는 건 좀 너무했다.

‘그건 그렇고… 왜 아무 말도 안한 건데….’

진짜 모르겠다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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