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일본여행. (8)
* * *
“쿠울….”
“커어억…. 커어어억…. 컥, 켁!”
나도 모르게 코를 골았나 보다. 비강이 내려와 코가 막히는 바람에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어서 눈이 떠졌다.
“으으윽….”
시계를 보니 오후 2시가 다 넘어간다. 세계시각이 실질적으로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30분 느리다고 하지만, 그렇게 체감이 되지 않을 정도의 시간이라 굳이 바꾸지 않은 것 같다.
청소를 하지 않아 방에는 농후한 냄새가 가득하고, 옆에는 뜯기만 해 놓고 쓰지 않은 콘돔 상자가 있다. 창밖으로는 한낮의 태양 빛이 엄청큰 그림자와 함께 우리를 비추며 여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시켜준다.
게다가 3시간 정도 틀어놓은 에어컨도 꺼져 있어서 좀 더웠다.
‘유희는 아직 자는 건가….’
몸을 이쪽으로 향하고 새근새근 자는 모습이 너무나 귀엽다. 옆으로 자면서 눌리는 가슴이 또 야하지만, 지금은 아무 생각 없었다.
기억나는 것만 다섯 번. 유희에게 일주일치를 모두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는 격렬한 섹스를 했다. 메이드 유희는 나에게 봉사를 했고, 나는 그에 어울리는 주인 역을 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욕망을 비우고 나니, 현실이라는 벽이 다시 한번 엄습한다.
‘피임약 잘 먹었으려나….’
유희의 그 애절함이 섞인 요염한 표정을 보고 나는 콘돔을 쓰지 않았다. 유희의 주기도 몰라, 안전한 날인지도 모른다. 유희가 그런 것을 신경 쓰고 있긴 하지만.
“읏차.”
하반신에 감각이 없다. 물론 근육을 이용해서 보행하는 것 자체는 가능하지만, 사정을 계속한 특유의 감각이 하반신을 지배했다. 오랜만에 현자타임이 온 것이다.
“…!”
「いい?します!」
테이블 위에 놓여진 작은 종이. 스마트폰으로 스캔을 하고 나니, 좋은 사랑 응원합니다 라는 결과가 나왔다. 아무래도 클리닝서비스가 우리 숙소를 왔다 갔나보다.
그리고 한 켠에 호텔에도 있는 「DO NOT DISTURB」이란 팻말이 보인다. 앞으로는 이걸 걸어놔야지.
오늘 일정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래서는 전부 취소다. 밤을 그렇게 격렬하게 보냈는데, 다음 날 움직일 힘이 남아 있지 않다.
꼬르르륵.
아침도 숙소에 오자마자 그대로 자니 배가 고프다. 뭐라도 먹을까 싶었지만 컵라면도 가져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고 있는 유희를 깨우기도 그렇다. 아마 나보다 훨씬 더 체력을 소비했을 테니까.
‘잘할 수 있으려나….’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갑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물론 에어컨도 틀었다.
~~~
‘생각보다 더 덥네….’
아침에 돌아올 때도 느낀 생각이었지만, 역시 덥다. 한낮이 되니 훨씬 더 더워졌다. 다 일하는 시간대라그런지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아키하바라에 가면 또 달라지겠지만, 컵라면 사러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으니….
“오, 저거 오랜만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있는 편의점도 있고, 또 우리나라에 있었다가 철수한 편의점이 건널목을 기준으로 마주 보고 있었다.
“いらっしゃいませ。(어서오세요)”
우리나라와 똑같이 점원이 인사해준다. 굳이 대답안 해도 되니 고개를 까딱거려 점원에게 인사했다.
아무리 모든 품목이 일본어라곤 하더라도, 대충 생긴 것만 보고 무슨 과자나 음식인 줄은 알기 때문에, 곧바로 컵라면 코너로 갔다.
“오….”
일본어로 되어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 브랜드의 컵라면도 보이고, 일본 브랜드의 컵라면도 있어서, 다섯 종류 정도 고르고 물도 따로 없어서 1.5L로 보이는 물통도 3병 정도 샀다. 그리고 삼각김밥도 몇 개 보이길래 반가워서 참치마요로 보이는 김밥도 샀다.
“1492になります。(1492엔입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계산대에 가자, 직원이 말하는 말을 알아듣진 못했지만, 대충 옆에 떠 있는 숫자들을 보고 2천엔을 파란색 바구니에 올렸다. 어제도 그렇고, 손대손 대신 바구니에 건네는 것이 문화인가 보다.
우리나라는 그나마 은행이나 우체국 같은 곳에서 이런 경우가 있었지 아마.
“2000?け?りました。508お返します。(2000엔 받았습니다. 508엔 거슬러드리겠습니다)”
“아리가또…고자이마스….”
“はい。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네,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우리나라 마트처럼 비닐을 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었는데, 다행히 알아서 비닐에 넣어주고 테이핑까지 해 줬다. 듣기로는 편의점 시급이 우리나라보다 높은 걸로 아는데, 이래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휴우….”
편의점을 나서자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든다. 혼자서 일본 편의점을 가다니, 어제 계속 유희에게만 의지했던 것을 생각하면 장족에 발전이다. 그래 봤자 고맙다는 말 한마디 밖에 안 했지만. 우리 쪽이나 이쪽이나 편의점 문화는 다 똑같은 것 같다.
이제 남은 일은 돌아가서 유희에게 컵라면을 끓여주는 일만 남았다. 전기 포트가 있는 걸 확인했으니 조리하는 건 쉽다.
“そうそう。(그래 그거.)”
“응…?”
“??のにめっちゃハンサムな人いる!あ、??った。(지금 내 옆에 존나 잘생긴 사람 있다? 아, 눈 마주쳤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니 웬 여고생 한 명이 나를 보며 통화하고 있었다. 포니테일을 한 긴 머리에, 얼굴은 왠지 유희를 닮아 고양이상이라 좀 귀엽게 생겼다.
교복은 흰 바탕의 세일러 하복을 입고 있다. 치마가 무릎까지 오는 게 좀 답답해 보이긴 하지만 내가 참견할 영역은 아니다.
‘교복이라….’
그러고 보니 유희의 교복 입은 모습이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늦게 끝나도 6시 전에는 오는데다가, 나는 최소 8시가 넘어서 오기 때문에 거의 교복을 볼 기회가 없긴 했다.
‘보고 싶다….’
유희는 이제 20살이고, 성장도 거의 끝났을 테니 교복이 몸에 맞긴 할 것이다. 다음에 부탁해볼까…. 부끄러워하진 않으려나.
“어디 갔다 왔어?”
“컵라면 좀 사 왔어.”
“아~ 고마워.”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유희의 모습이 무방비해서 왠지 모르게 야하다. 탱크탑의 한쪽 어깨 줄이 흘러내려가고 있고, 애교뱃살도 보여서 뭔가 또 불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유희도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자기 배를 가렸다.
“보지마아….”
“미안….”
뭔가 일본에 오면서 나도 몰랐던 여러 페티쉬를 알아가는 느낌이 든다. 교복에, 설마 뱃살 페티쉬까지 있을 줄이야. 유희가 이 사실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지 대강 상상이 간다.
“일본꺼 산 거야?”
“응.”
라면 컵에 물을 붓고 기다린다. 유희는 우리나라 브랜드, 나는 일본 브랜드 컵라면에 물을 붇고 기다린다. 우리나라랑은 다르게 하얀 스프에, 옥수수가 들어가 있었다. 옥수수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별로 반갑지 않은 재료였다.
“이타다키마스.”
“그게 뭐야?”
“잘 먹겠습니다라는 뜻.”
“아하.”
뭔가 어디서 많이 들어 봤다 했더니 그 뜻이었구나. 또 하나 알아간다.
면이 다 익어 뚜껑을 열자 작은 새우와 옥수수 건더기가 익어 둘이 섞여 약간 느끼한 냄새가 났다. 약간 새우라면 먹는 느낌으로 먹으면 되려나.
후루루룩.
“음….”
“어때?”
“내 입맛엔 안 맞네….”
뭔가 라면을 끓이면 나오는 그 육수로 먹는 기분이다. 거기에 약간 소금 친정도. 아예 맛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맛있지도 않았다. 솔직히 별로였다.
그래도 남길순 없어서 억지로라도 다 먹었다.
“…….”
“…….”
일정이 다 캔슬되고 나니 뭔가 되게 할 게 없었다. 차라리 TV라도 재미있는 게 있으면 모를까, 전부다 일본어라 알아듣지도 못한다.
그 상황에서 할 것은 스킨십 밖에 없었다.
“츄읍….”
에어컨을 키고 이불을 덮어쓰는 기만질과 함께 입을 맞췄다. 탐하는 키스가 아니라 사랑이 담긴 키스라 유희가 더 사랑스러워 보인다.
“읏….”
절대 그럴생각은 없었지만, 내 아랫쪽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이미 유희의 엉덩이를 쿡쿡 찌르고 있었다. 근데 기분 좋은 게 아니라 오히려 욱신거려서 고통스러웠다.
“유희야 오늘은….”
“나도 알아.”
“미안….”
“대신에…. 해줘.”
“뭘?”
“저녁에… 데이트해줘….”
“…….”
그렇게 부끄러워 하며 부탁할 일인가 생각하면서, 유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