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딸이 내게 집착한다-41화 (41/96)

〈 41화 〉 지희. (9)

* * *

“그게 무슨 소리예요 유희씨….”

“아님 말구요. 보통 상대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나 싶어서.”

“그건 그냥 습관이 돼서….”

소름이 돋았다. 유희씨의 말이 맞으니까.

─주말에… 저랑 연기 좀 해주실래요?

내가 과장님에게 했던 부탁. 일일 동안 연인이 되어달라 했다. 과장님도 부장님의 연애에는 흥미 있어서 그런지 흔쾌히 수락해 줬다.

그래서 부장님이 둔해 빠진 것에 대해 이번만큼은 감사했었다. 그야 나와 과장님이 사귄다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었으니까.

하지만 정작 문제는 따로 있었다.

“보니까 그이의 부하직원 같은데. 맞아요?”

“아, 네….”

“그럼 저 사람이 남친이면 우리 자기한테 찝적대지 마세요. 다 티나니까.”

“…….”

유희씨가 말하는 말에는 모순이나 비논리적인 말이 없었다. 전부 맞는 말만했다. 남친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잘해 줘야 하는데, 정작 부장님만 보고 있으니… 유희씨에게 오해를 살 만 했다. 오해가 아니지만.

“죄송합니다….”

“아녜요. 저도 딱딱하게 굴어서 죄송해요. ‘사실’이 아닌 거 가지고 제가 예민하게 굴었나 봐요.”

“아하하….”

“…….”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유희씨는 여전히 나를 믿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

“허억… 크어억….”

“하아….”

““다시는…!””

서로의 목소리가 겹쳐서 웃음이 나왔다.

생각보다 어지러운 감각, 그리고 VR의 3D 모션이 너무 원금감이 안 맞아서 어지러울 수밖에 없었다.

“오셨어요.”

둘이서 서로 부축하며 걸어가자 두 명의 여자들이 미어캣 마냥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 큰 어른 두 명이 기구 하나 타고 토를 하다니…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게 자중 좀 하시지….”

“최 과장한테 물어. 난 잘못 없어.”

“이번만큼은 드릴 말씀이 없네요….”

유희의 어깨에 손을 얹자, 유희가 얼려온 물을 꺼내서 나한테 줬다. 드러워진 식도를 물로 씻어 내니 조금 살 것 같았다.

“고마워.”

“…응.”

유희의 뺨이 붉게 물든다. 내 칭찬 한마디가 그렇게 좋은 걸까, 나도 덩달아 뿌듯해졌다.

“나도 물….”

“……자요.”

“오~ 쌩유~”

지희씨는 최 과장에게 물 대신 콜라를 건네줬다. 저 둘을 보니 새삼스래 사내 커플이 정말 가능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그동안 봐온 사내 커플들은 항상 헤어져서 하필 같은 부서라 둘 중 한 명이 다른 부서로 이적하거나 퇴사했는데. 이 둘 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최 과장의 몸이 괜찮아지자 다시 일어나 움직였다.

「잠시 후, 테슬라 코일 가동을 시작하오니, 관람객 여러분깨서는 1층 창의나래관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안내드립니다…」

테슬라 코일.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가 만들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고주파 고전압 발생장치다.

가동하게 되면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기둥을 중심으로 전기가 흐르는 것을 눈으로 관찰할 수 있다. 물론 위험해서 다가가면 안 된다.

근데 아직도 하다니, 정말 놀랐다.

“저거 보러 가요!”

“저게 뭔데?”

“아. 번개 나오는 거야.”

“번개…?”

항상 여기 올 때마다 보던 거였는데. 봐도봐도 질리지가 않는다니까 이런 건. 그러고 보니 유희는 본적 없구나. 뭔가 미안해졌다.

“어디였죠? 창의나래관이었나?”

“응. 아마 거기일 거야.”

넷이서 가는 길, 나와 유희는 뒤에서서 지희씨와 최 과장이 티격태격 하는 모습을 같이 지켜보았다. 저 둘을 몰랐으면 정말 학생 갔다고 느껴질 정도로 젊은 냄새가 났다.

“…!”

“왜? 싫어?”

“아니….”

그렇다고 우리도 꿀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서로의 손을 꼭 잡았으니까.

~~~

“사람 엄청 많네요….”

아무리 시원한 공간이라도 사람들이 북적대면 더운 법이다. 게다가 이 전시관에는 에어컨 바람이 약해서 땀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유희도 더운지 순간 마스크를 벗으려 했다가 관두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5초 후에 가동 시작합니다. 5, 4, 3, 2, 1」

보통 카운트 다운을 하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같이 세는 게 일종의 문화 같은 거지만, 다들 집중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런 건 없었다.

─지이이이잉.

만화나 영화 같은 곳에나 나올법한 효과음이 실제로 들린다. 가운데에 있는 코일 기둥에서 두꺼운 번개가 방출되는 모습이 보였다. 오랜만에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상으로 테슬라 코일 시연을 마치겠습니다.」

워낙 시끄러운데다가 고전압이기 때문에 지속시간은 20초도 안 된다. 집중하려고 하니 번개가 뚝 끊겼다. 약간 거슬릴 정도로 지이잉하고 울리는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았다.

“뭔가 뭉클해졌어요.”

“그래…?”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두 분들은 감수성이 별로 없어서 그래요. 유희씨는 그래도──”

“…….”

유희가 이런 거에 이렇게 관심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직도 코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데려올 걸.

“유희야?”

“아!”

“그렇게 신기했어?”

“아, 아니… 그게….”

유희가 고개를 푹 숙이고, 지희씨와 최 과장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귀여워서 마음 같아선 꽉 껴안고 싶었지만, 일단은 그만두었다. 이따가 집 가서 해야지.

“이제 어디갈까요?”

“글쎄? 2층 갈래?”

“좋아요!”

두 사람의 주도하에 생태체험관으로 들어 왔다. 생태체험관은 안 바뀌었는지 내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 있었다. 아직도 자라만 보면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반으로 찢어서 먹은 모습이 생각나서 약간 소름이 돋는다.

“과장님 저거 괜찮은 거예요…?”

“…!”

길을 따라 1층까지 내려가면 한가운데에 큰 어항이 있다. 지희씨가 가리킨 곳에는 꽤 커 보이는 상어가 작은 물고기들을 마구 쫓고 있었다.

이런데는 먹이를 많이줘서 굳이 상어가 안 먹고 다니는 걸로 아는데, 어지간히 배고팠던 건가…?

사람들도 그 장면이 신기했는지, 하나둘 몰려 카메라로 찍기 시작했다.

“저게 뭐람…?”

“와 존나 신기하네.”

“야 이거 봐봐!”

사람들 때문에 소란스러워지자 결국은 직원까지 와서 사람들의 질서를 말렸다. 하지만 직원이 오거나 말거나, 상어는 여전히 작은 물고기들을 쫓아다니며 공격하고 있었다.

“와! 먹었다!”

“한입에 들어가네!”

피가 나올 틈도 없이 물고가 한 마리가 상어 입속으로 들어 갔다. 상어는 그제서야 만족했는지 쫓아가는걸 멈췄다. 여전히 동물들은 무슨 생각 하는 지를 모르겠다.

“와 이것도 아직도 있네?”

“오….”

상어의 먹방이 끝나고, 다른 쪽에 있는 닥터피쉬 체험관. 손가락을 넣으면 물고기들이 몰려와서 각질을 먹어 준다. 이점을 이용해서 비슷한 종의 중국산 친친어를 데려와 닥터피시라고 사기를 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유희도 해 봐.”

“응….”

유희가 흥미를 보이길래 권유했다. 좀 간지러운지, 넣은 손가락이 조금 움찔 거렸다.

“읏.”

“어때?”

“간지러워….”

“아 간지러!”

“지희씨 물 튀잖아.”

“에헤헤….”

자리가 나서 드디어 손가락을 넣었다. 넣자마자 대여섯마리가 몰려와 내 손가락에 키스하듯 붙었다 떼었다를 반복했다. 간지러우면서도 묘한 느낌이 들었다.

‘유희가 빨아주면….’

고개를 저어 정신을 차렸다. 오늘은 더블 데이트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희씨와 최 과장도 있는데 그런 생각은 해버리면 변태로 의심받을지도 모른다.

“이제 어디….”

“글쎄.”

“자기야.”

“응?”

유희가 나를 부르더니 귓속말로 작게 말했다.

“나 화장실 가고 싶어.”

“아….”

유희를 보니 마스크너머로 부끄러워하는 것이 보였다. 계속 관광만 했으니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유희가 민망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그럼 정해진 것도 없으니까 좀 따로 돌다 올까? 한 30분 뒤에 만나는 걸로.”

“좋아요.”

“네~ 저 일단 화장실 좀 갈게요. 지희씨 좀만 기다려 줘.”

“참 나… 알았어요.”

유희는 어지간히 급했는지 말도 하지 않고 사라졌다. 뭐… 여기서 기다리다 보면 오겠지.

생태체험관을 나오니 1층. 적당히 좋은 벤치를 찾아 지희씨와 앉았다.

“맞다. 둘이 언제부터 만난 거야?”

“아, 저희요! 하, 한 달 정도 됐어요….”

“저번엔 없다며.”

“그게… 비밀연애라….”

“아하….”

계속 돌아보느라 물어 보지 못했던 것을 물어 봤다. 한 달이라니, 그 정도면 꽤 티났을 거 같았는데, 어지간히 비밀스럽게 연애했나보다. 아니면 진짜 내가 둔감한 건가…?

“그래서? 계획은 어떻게 하고 있어?”

“계획이요?”

“식말이야. 아, 아직 그렇게 고민할 그건 아닌가?”

젊으면 몰라도, 30이 넘어가면 결혼에 대해 꽤 강박적인 생각이 든다. 빨리해야 한다던가, 지금 아니면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이가 든 사람들은 짧게 연애하고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네… 아직은요.”

“흐음….”

그런 지희씨에게 내 거기를 들이댄다거나 파렴치한 짓을 했다니, 왠지 안 그래도 미안했던 게 더 미안해진다.

‘아니 가만.’

분명 둘이 사귄 것은 한 달 전, 그리고 나와 지희씨가 영화를 본 건 5일 전. 남자친구가 저렇게 떡하니 있는데 나랑 같이 놀아도 됐던 건가…? 뭔가 이상하다.

“부장님.”

“응?”

“그, 그게… 실례지만 말씀을 드려도 될까요? 계속 궁금했거든요.”

“어 말해도 돼.”

“그게… 으음….”

지희씨가 계속 뜸을 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부장님 혹시… 유희씨와 관계가 어떻게 되시나요?”

“무슨 소리야 그게. 여자친구──”

“그런 게 아니라요.”

지희씨가 내 말을 끊었다.

“정말 안 여쭤 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생각이 떠나지 않아서 안 되겠어요.”

“……뭐가?”

순간 몸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갑자기 나와 유희의 관계를 묻다니, 무언가 이상한 점이라도 발견 한 걸까?

나도 모르게 저절로 침이 삼켜졌다.

“혹시 두 분…. ‘가족’ 아니신가요?”

“…….”

그리고 1분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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