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지희. (8)
* * *
이건 부장님과 만나기 며칠 전에 이야기.
“지희씨. 이것 좀 처리해줘.”
“네.”
“아 그리고….”
나에게 일을 시키는 건 부장님 뿐만이 아니다. 과장님도 나한테 일을 시키신다. 그렇다고 빡센 건 아니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다.
“왜 계속 부장님쪽 쳐다 봐?”
“네!?”
순간 놀랐지만, 다행히 우리 부서엔 나와 과장님 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계속 이쪽으로 고개 돌리는 거 신경 쓰여서. 지희씨가 날 볼리는 없고…. 어쨌든 신경 쓰이니까 자중해줘.”
“네… 죄송합니다….”
뭔가 여자들은 남의 시선에 대해 민감하다고 하던데, 민감한 건 여자도 아니라 남자도 그런 것 같다. 설마 과장님한테 꼬투리 잡힐 줄이야….
과장님이 자리로 돌아가자, 타이밍 좋게 부장님과 수현씨가 돌아왔다.
‘설마 수현씨인가…?’
아니지 아냐. 같이 찍힌 사진은 수현씨와 느낌이 비슷하지만 닮지는 않았다. 게다가 부장님이라면 수현씨라고 제대로 설명해주셨을 것이다. 수현씨는 또 부장님에게 차였고 말이지.
이런 사소한 걸로 꼬투리를 잡게 되다니, 사람을 한 번 좋아하게 되면 이상해지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구나….
「지희씨.」
과장님에게서 온 메신저. 과장님 쪽을 쳐다보자 손가락을 위로 가리켰다.
“후우….”
“냄새나요.”
“그래도 올라온 거 보면 뭔가 할 말이 있나 보지?”
“과장님이 부르셨잖아요.”
“싫으면 안 와도 되는데.”
“정말 과장님이 부르셨으면서……아.”
생각해 보니 과장님도 부장님과 유독 친하다. 부장과 과장 말고도 둘 사이에는 뭔가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친구들끼리 비밀을 공유하면서 더 친해지는 것처럼.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몰라.’
아마 서로 친하다면, 과장님은 부장님이 여자 친구분이 있으신 것도 알고 계실 거고, 부장님의 애인 분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 수 있을 거고, 어쩌면…….
‘내가 미쳤어!’
그렇게 예쁜 사람을 내가 어떻게 이겨! 그냥 미련을 없앨려고 확인하는 거 뿐이니까!
“과장님.”
“응?”
“부장님… 여자친구분 계신거 알고 계셨어요?”
“부장님이!?”
“에…?”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당연히 과장님한테는 말했을 줄 알았는데… 설마 나만 알고 있었던 건가?
“진짜? 누구? 신 팀장?”
“아뇨… 신 팀장님은 또 왜….”
“아, 아냐 아무것도.”
“어쨌든 모르셨구나.”
“응…. 설마 지희씨한테만 말하고 나한테는 말 안 할 줄이야….”
“아뇨! 저도 우연히 마주친 거라서….”
“그 사람이랑?”
“아뇨… 그 도시락을….”
이거 말해도 되려나… 하면서도 부장님이 딱히 말하지 말라는 발언은 없었기에, 어차피 나중에 결혼하면 알게 될 거, 지금 말해도 딱히 문제 될 건 없어 보였다.
“아하... 그래서 그랬던 거구만. 부장님도 남자셨네…. 드디어 여자에 눈이 뜬 건가.”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음… 이건 둘만 아는 비밀이었는데… 지희씨도 일한 지 오래 됐으니까 특별히 말해 줄게.”
“아, 네….”
드디어 부장님의 비밀을….
“부장님 사실 이혼했어.”
“이혼이요…?”
“그래. 고등학생 때 사고 쳤다나 뭐라나. 그래서 지금은 혼자 딸 키우고 계셔.”
“따님도 계셨어요…?”
“응. 아마 올해 대학 들어 갔을 걸?”
뭐든지 올바르고 요령있게 살아온 사람이 그런 일이 있었다니, 상상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다 큰 딸도 있는데 여자친구가──
“……!”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만약 부장님이 딸을 데리고 살고 있고, 그 딸이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 주고, 찍은 사진도 서로와 너무 닮았다. 게다가 부장님은 분명 ‘여자친구'가 있다고 했다.
‘딸이 여자친구…?’
상상도 하기 싫다. 부장님이 그런 사람이었다니, 믿고 싶지 않았다. 새엄마랍시고 사람을 데려왔으면 차라리 그게 나았다.
‘근데 부장님은 서른 살이라고 했는데….’
분명 부장님은 애인이 서른 살이라고 했다. 가능성은 두 개, 정말 서른 살 애인을 만나서 집에 들여놨거나, 아니면….
‘거짓말….’
부장님도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살면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부장님이라고 거짓말을 쳤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과장님. 부탁이 있는데요….”
“부탁?”
직접 확인해야 한다. 부장님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주말에 시간 되세요?”
내가 좋아하는 부장님은 그런 금기된 일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굳게 믿고 싶었다.
~~~
“부장님! 여기예요!!”
“어~”
산뜻하게 머리를 정돈하고, 흰 블라우스에 가벼워 보이는 베이지색 치마를 입은 지희씨가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걱정마. 아무 일 없을 거야.”
겁을 먹은 유희가 걸음 속도를 조금씩 늦추더니 내 뒤로 숨을 정도로 뒤처져서, 제대로 어깨동무를 하고 안심시켜줬다.
“오셨어요?”
“지희씨랑 그리고… 최 과장…?”
“예, 안녕하세요.”
조금 놀랐다. 그렇게 티 내지 않았으면서 설마 둘이 교제하고 있었을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지희씨는 연하취향이라고 들었는데… 딱히 상관없다고 하기도 했으니 서로 정든 건가. 3년이면 정들만 하니까.
“옆에가 여자친구분이에요?”
“아, 응.”
“섭섭해요. 저한테 말도 안해주시고.”
“아하하… 미안.”
“더워 보이시는데… 마스크 안답답하세요?”
지희씨가 물어 보자, 유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내가 뭐라도 말해주길 바라는 건지 내 옷자락을 살짝 당겼다.
“피부가 예민해서… 평소엔 마스크 쓰고 다녀.”
“아하….”
지희씨가 뭔가 아쉬운 듯 표정을 지었다.
“그럼 가요! 날씨도 엄청 쨍쨍하네요~”
“그러게.”
지희씨를 따라 모두 공원 안쪽으로 들어 왔다. 과천역에 있는 국립과천과학관. 어렸을 때 갔었는데, 이곳은 몇십 년 째 유지되고 있는 중이다. 리모델링도 하고, 여러 곳이 바뀌었다.
“최 과장도 여기 온 적 있어?”
“네. 현장 체험학습 단골이잖아요.”
“하긴.”
“저도 와본 적 있어요!”
“오….”
넷 중에서 유일하게 유희만 와 보지 않았다니, 뭔가 세월의 차를 느끼게 된다. 지희씨가 어리다지만 그래도 6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니까.
반구 형태로 되어있는 본관으로 들어오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둘러싸였다. 리모델링을 해도 전체적인 디자인은 고수하려는 건지, 외건물 디자인은 바꾸지 않았다.
하긴 바꾸려면 그건 그것대로 골치긴 하다.
“어, 여기서 티켓사면 되나 봐요!”
“옛날엔 밖에서 샀었는데.”
“그러게요… 늦게 오는 놈들 때문에 땀도 뻘뻘 흘렸는데.”
리모델링을 하면서 티켓 발매기가 안쪽에도 생겼다. 어른 4명의 티켓을 들고게이트를 넘어와 들어 왔다.
“엄청 바뀌었네….”
“우와….”
우주 전시관에 들어가니 전체적으로 낡은 부분을 싹 다 바뀌었다. 지금 상용되고 있는 기술이 미래 기술로 표기하거나 잘못된 사실들을 전부 고쳤다. 자기 부상 열차도 몇 대는 운영되고 있어서 그런지 전시관에서 모습을 감췄다.
대신 뇌파 기술이라거나, 가상화폐같은 새로운 전시관을 넣는다. 한가운데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구체형 전광판이 실시간으로 가상화폐들의 가격을 알려 주고 있었다. 이게 과학이랑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다만.
“우와 이거 보세요!”
꼬마애가 무언가 모자같은걸 쓰자, 안에서 로봇이 살짝살짝 움직인다. 꼬마애는 손하나 꼼짝하지 않았다.
“이게 뇌파 기술인가…?”
곧 정말로 뇌로만 모든 것을 조종할 수 있는 시대가 얼마 남지 않은 것같이 느껴진다. 일부 학자들의 걱정처럼 정말로 몸은 퇴화되고 머리만 커진 사람들이 태어날지, 아니면 지금과 별 다를 게 없을지, 조금 걱정됐다.
“지희씨. 해볼래?”
“머리 커서 안 들어갈 거 같은데….”
“에이. 여기서 지희씨가 제일 작은── 아, 유희씨랬나? 유희씨가 더 작은 거 같기도….”
“너무해요 과장님….”
“장난이야 장난.”
“…….”
최 과장이 권유하는 제스쳐를 취하자 유희가 고개를 도리도리 돌리며 거절했다. 최 과장도 “낯 많이 가리네~”라며 넘겼다.
“어, 저건….”
최과장이 가리킨 곳에는 천구의 같은 장치 두 대가 옆에 나란히 있었다.
속에는 이리저리 돌아가는 뼈대만 있는 구체가 있고, 그 구체를 겉의 4개의 막대가 곡선형태로 감싸고 있었다.
“부장님 저거 타 보실래요?”
“나…?”
“왜요. 예전에도 저런 거 있었잖아요. 중력체험이었나?”
“아… 그랬었지.”
그때는 돈 내야돼서 타지 않았던걸로 기억한다. 쓸데없이 재미없는 과학관에서 돈을 들이고 싶진 않았으니까. 물론 그 돈은 전부 되지도 않는 과학장치를 구매하는 데 사용했다.
기억나는 건 안쪽에 있는 추의 무게중심에 따라움직이는 공 위에 뭔가 꾸민 장치였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런 장치를 샀는지 모르겠다. 그냥 지혼자 움직인 게 신기했던 건가.
“아무튼 타 봐요.”
“다 큰 어른이 무슨….”
“에이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타요.”
“와~! 이거 개재밌어!”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학생이 구체 속에서 소리를 질렀다. 뭔가 쓰고 있는 것을 보니 VR도 있나 보다.
“부장님 안 타실 거예요?”
“음….”
“타도 돼.”
“그래…?”
웬일로 유희가 타라고 권유를 했다. 괜히 부끄러운데 유희도 타라고 하니 안 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솔직히 엄청 재미있어 보인다.
“두 분이신가요?”
“네.”
“괜찮으시겠어요? 조금 어지러운데….”
“네~ 괜찮아요.”
“괜찮은 거 맞아…?”
“죽기야 하겠어요?”
“하긴.”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착석했다, 약간 앞뒤로 흔들리면서 약간 붕 떠 있는 느낌이 들었고, 곧이어 VR 장치를 머리에 썼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기구가 시작하고 3분. 나와 최 과장 모두 화장실로 직행해서 토했다.
~~~
“정말 재미있게 노시네요~”
“…….”
두 명의 남자가 들어가는 바람에 유희씨와 단둘이 남았다. 이 여름에 모자랑 마스크는 왜 썼는지. 게다가 가디건까지 하고 있다.
‘저 마스크만 벗으면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작고 가늘게 늘어진 눈이 사진속 시크한 이미지와 닮았다. 물론 본인이니까 당연한 거지만…. 저기서 머리스타일만 남자처럼 바꾸면 딱 어린 부장님이──
‘못 물어 보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닮아서 뭐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이 아니면 어쩌지라는 생각과 사실이어도 본인들에게는 실례라서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당신.”
“네?”
대신 유희씨가 먼저 말을 걸었다.
“저 사람이랑사귀는 거 아니죠?”
“네……?”
그 말을 하면서 곁눈질로 나를 보는 눈은, 나를 향해 정색하시는 부장님과 너무 닮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