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지희.
* * *
신 팀장과 헤어지고 난 후에 탑승한 지하철.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두긴 했지만 사람이 많아 바람이 스쳐지나갈 뿐, 시원하지는 않다. 때문에 땀이 식지않고 줄줄 흐르고 있었다.
‘후우…….’
사실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도저히 성욕이 가라앉지 않는다. 겨우 뿌리쳤다곤 하지만, 유희가 아니었다면 바로 신 팀장을 덥쳐버렸을 것이다.
자위 행위를 하다가, 정확히는 사정직전에 갔다가 멈춰버리면, 정액이 고여 염증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꼭 신 팀장의 대딸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의 성욕을 어딘가에는 배출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과감한 차림을 입은 사람들을 보면 저절로 눈길이 간다. 혹시라도 오해받지 않기 위해 시선을 최대한 아래로 향했다.
‘유희만 생각해 유희만…….’
사실 이미 반쯤 서버린 나에게 자기 암시를 건다. 가족과의 추억을 생각하면, 대부분은 가라 앉을 것이다. 설마 가족으로 욕정을──
‘그랬었지 참.’
유희 생각을 하니 오히려 거기가 이미 팬티를 뚫고 나와 벨트가 있는 부분 때문에 끼어서 아팠다. 가방으로 어떻게든 가리고 있긴 하지만, 자세부터 부자연스러우니 빨리 집에 도착했으면 좋겠다.
“윽….”
사람들이 물밀 듯 들어와서 그런지 사방에서 나를 죄여온다. 하필 퇴근 시간이라 지하철이 지옥철로 변모해버리는 시간이다.
하는 수 없이 공간이 불편해서 가방을 새로로 안아 들었다. 누군가와 부딪힐수도 있고, 가방도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아래쪽에 누군가의 엉덩이가 닿았다. 누구의 엉덩이어도 확실히 민망한 사람이었다. 본인도 놀랐는지 화들짝 엉덩이를 내뺐다.
어서 빨리 여기서 내리고 싶었다.
“어… 부장님?”
“…?”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
싹싹하고, 일을 잘하며 우리 부서의 경리이면서 분위기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 지희씨였다. 나를 돌아본 지희씨의 얼굴이 어딘가 붉어져 있었다.
“벌써 다녀오셨어요?”
“아, 응. 지희씨는 웬일로 여기를?”
사무실은 역삼. 그리고 여기는 4호선 하행선 방향의 삼각지역. 어떻게든 만날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그래서 지희씨의 얼굴을 보니 뭔가 신기하면서도 반가웠다.
“저도 오늘 외근이었거든요~”
“아~ 그래서 지금 퇴근 중?”
“아뇨. 사무실에 일이 있어서… 다시 가 봐야 돼요.”
“뭐? 무슨 일.”
“그냥 서류 정리만 조금….”
“내일 해. 괜찮잖아. 누가 제출하랬어?”
“그런 건 아닌데요…. 그냥 미리 해두고 싶어서요.”
“에이 내일 해. 지희씨 한번 잡은 일 잘 안 놓잖아. 막차놓치면 어쩌려고.”
지희씨와의 거리가 가까워 내 배와 지희씨의 가슴이 닿을락 말락해서 곤란했다. 수현씨나 신 팀장보다 빈약하긴 하지만, 확실히 가슴이라고 부를만한 볼륨이었다.
“그럼 그럴게요….”
이렇게 보면 지희씨도 약간 고지식한 면이 있는 거 같다. 요령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맡겨둔 일은 끝날때까지 놓지 않으니 원. 그래서 신입시절 야근 하는 걸 많이 보긴 했다.
“꺄!”
“윽.”
내리는 사람과 타려는 사람들의 파도에 휩쓸려 벽 한쪽에 쏠렸다. 내 뒤에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사고날 뻔했다.
“괜찮아?”
“아, 괜찮아요…. 흑!”
“지희씨?”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생각해보니 지희씨도 시집갈 나이가 되긴 했지. 어디 이런 여자 안 잡아가려나. 아니면 지희씨 수준에 맞는 남자가 없는 건가.
지희씨가 다시 뒤를 돌자 예쁜 두상의 뒤통수가 보인다. 그리고 앞뒤로 스치며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있는 뭔가가 내 고간을 양옆으로 포겠다.
‘설마….’
내 앞에 있는 건 지희씨 밖에 없다. 그렇다면 상상할 수 있는 것은 하나 밖에 없다.
혹시라도 오해하면 안되기에 들고있던 가방을 다시 내려 나와 지희씨의 경계를 만들었다. 같은 부서 사람한테 이런 추태를 보이다니,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면 백 퍼센트 신고당했을 것이다. 지희씨가 착해서 다행이지.
덕분에 내 성욕은 더 끓어올랐다.
“그럼 내일 봬요 부장님!”
“내일 봐요.”
지희씨도 자각하고 있었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뛰쳐나갔다.
아, 나도 갈아타야되네.
~~~
“나 왔어~”
“…왔어?”
집에 오니 유희가 기다리고 있었다. 놀이동산에 갔다온 이후, 퇴근할 때마다 유희가 기다리고 있다. 저녁도 같이 먹고, 안하던 얘기도 하게 됐다.
“먼저 씻을게.”
“응.”
땀에 젖은 셔츠를 세탁기에 넣고, 재킷과 바지는 냄새 제거제를 뿌린 후 스타일러에 넣었다.
이번엔 잊지 않고 속옷을 챙기고 욕실에 들어와 옷을 벗었다.
쩌억하고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며 천장을 향해 뻗는다. 지희씨와 떨어져서 발기가 풀릴거라 생각했지만, 뭘 잘못먹었는지 집에오는 순간에도 발기가 풀리지 않았다.
─쏴아아아.
찬물을 좀 쐬고나니 그제서야 씻기는 땀과 함께 발기가 가라 앉는다. 이전에는 샤워하면서 한발 뺀적이 있긴 했지만 유희와 마주쳐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집에서 성욕처리를 할 수 없게 없었다.
날씨는 더워지고, 성욕도 점점 더 끓어오른다. 이대로 가면 안 그래도 약간씩 이성으로 보이는 유희를 덥쳐버릴지도 모른다.
“…….”
유희 생각을 하니 또 점점 커져간다. 직각이 되더니 점점 솟아 다시 한 번 100도가 넘어가는 각이 나왔다.
결국 아무것도 안한 채 10분 더 욕실에 있어야 했다.
“잘 먹을게.”
여름이라고 삼계탕을 끓여줬다. 고기를 뜯어먹을 때마다 위장에 고기가 쌓이는 느낌이 들면서 스태미나가 차고 있다는 착각까지 하게 만드는 맛이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유희는 정말 요리를 잘하는 거 같다.
“잘 먹었어.”
하지만 그 스태미너 회복이 오히려 부작용이 됐다. 유희의 마음은 정말 고마웠지만, 아랫쪽이 불끈 거리는게 느껴졌다.
“아빠.”
유희가 나를 불렀다. 유희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뭔가 두근 거린다. 일단 침착하고 유희를 쳐다보았다.
“왜 그러니?”
“나… 월요일부터 알바해.”
“아~ 어디서?”
“역 앞에 카페서. 저녁 5시부터 11시까지.”
“가도 돼?”
“……딱히 와도 상관 없는데.”
“꼭 갈게.”
딸이 알바하는 현장은 꼭 가보고 싶다. 뭐… 존재 자체로도 민폐긴 하지만, 커피만 후루룩하고 나오면 그렇게 폐를 끼치진 않겠지.
“잠깐만 유희야. 11시?”
“응? 응. 11시.”
“그래….”
“왜?”
“아, 아니야 아무것도.”
월요일. 월요일이다. 나는 평소에 8시면 집에 오고, 유희는 11시에 퇴근한다. 최대 3시간의 나와 유희의 공백이 생기는 셈이다.
내 성욕을 해방하는 날을, 그렇게 정했다.
~~~
금요일은 주말이다. 사실상 주말이라고 보고 있다. 게임 이벤트에서도, 공식 일정에서도, 여느 음식점에서도, 금요일을 주말이라 써 넣고 있다. 그런데 금요일 주말이라고 가격 올려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쯤 되면 사실상 금요일도 휴일이라 치고, 주 4일제를 도입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까지 직장생활 10년한 부장의 개소리였습니다.
“부장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미리 앉아서 일을 하고 있던 수현씨가 나를 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손가락은 멈추지 않는 게 기계를 보는 거 같다.
“오셨어요.”
“어, 응.”
최 과장도 화면을 보면서 나를 맞아줬다. 오늘도 여전히 바쁜가 보다.
나도 일을 하고 있자니 헐레벌떡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하아… 하아… 죄송합니다아!”
지희씨가 늦다니 별일이다. 뭔가 허전하다 했더니 언제나 밝았던 지희씨의 인사가 없어서 그랬구만.
늦었긴 했지만 처음이니 부담을 느끼지 않게 말했다.
“별일이네? 지희씨가 다 늦고.”
“그게에… 일이 있어서… 늦잠 자서…….”
“늦잠…?”
설마 어제… 집에 안가고 사무실에 들른거야…?
“지희씨 잠깐.”
“네….”
지희씨가 대충 짐을 풀어 놓는 것을 보고, 따로 불렀다. 직원들이 휴계용으로 쓰는 공간. 다들 일하는 시간이라 지금은 아직 사람이 없다.
뭔가 안절부절 못하는 지희씨가 내 뒤를 따라왔다.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
“지희씨. 무슨 일 있어?”
“아뇨… 그냥 늦잠을 자서…. 제 잘못이죠 뭐….”
“어제 사무실 왔었어?”
“…!”
내 예상이 맞은 듯, 어떻게든 웃어 넘기려는 지희씨의 표정이 굳었다.
“어제 말했잖아. 바로 들어가라고.”
“죄송해요….”
“죄송할 건 아니지만… 지각하면서까지 무리할 필요 없어. 아니면 연차를 냈어야지. 지희씨 며칠 남았지?”
“13일 정도….”
“거의 안 썼네?”
우리 회사 연차는 달마다 1번, 그리고 보너스 3일로 계산해서 1년에 총 15일이 나온다. 그 외 출산, 육아, 생리 등등등. 여러가지 휴가도 보장해 줘서 휴가에 대한 복지는 널럴한 편이다.
여느 회사가 그렇듯 모두 눈치보고 휴가쓰곤 하지만, 적어도 우리 부서는 아니다. 애초에 신입교육시키는 부선데 그렇게 빡빡하지도 않고 말이다.
그리고 올해도 반년이 지났는데 이틀밖에 쓰지 않았다는 것은 좀 걱정이었다.
“안색도 안 보이는데 오늘 좀 쉬어.”
“아뇨! 정말 괜찮아요.”
“…….”
무슨 목적인지, 무리해서라도 일을 하려 하고 있다. 그렇다고 연봉이 오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러다가 몸살이라도 나면 어쩔려고.
“그럼 언제 한 번 여름휴가라도 써. 무조건. 명령이야.”
“……네.”
신입때면 달마다 월차가 하나씩 나오기 때문에 묵혔다가 3일 연속휴가라던가 그런 사람들이 보이지만, 정직원은 연차개념으로 받기 때문에 언제든지 쉴 수 있다. 그렇다고 막 남발하진 않지만.
하지만 지희씨는 13일이나 남았다. 당장 일주일동안 휴가를 가도 아무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많이 남았다.
그리고 우리 회사는 연차 남긴다고 돈으로 환급해주지 않는다. 안 써봤자 자기 손해라는 것이다.
지희씨가 손해보는 꼴을 보고 싶진 않았다.
“그럼 부장님.”
“응?”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어. 말해봐. 해줄 수 있는 거면 해줄게.”
지희씨가 품에서 뭔가 꺼냈다. 어디 티켓인 모양이었다.
“다, 다음주 월요일에… 영화 보러 가지 않으실래요?”
“…월요일?”
월요일이라면 유희가 알바를 하는 날, 그리고 내 성욕을 해방하는 날일 터다.
하지만 지금 지희씨의 상태를 보면 영화는 핑계고 아마도 나에게 뭔가 고민이라도 말할 것이 있어보인다. 그 요청을 거절 할 수 없었다.
“뭐… 안될 거 없지.”
“감사합니다!”
바이바이… 내 DDday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