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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내게 집착한다-21화 (21/96)

〈 21화 〉 예진. (7)

* * *

“쳇.”

한 명이 노골적으로 기분 나빠하는 기색을 보였다. 마음 같아선 두들겨 패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다. 여기선 어른답게 현명하게 행동해야 한다.

다른 한 명이 웃는 얼굴로, 그리고 친절하게 나한테 말했다.

“보호자 되세요?”

“네 그런데요.”

“둘이 관계가 어떻게 돼요?”

“그건….”

뭐라고 해야 하지…?

나는 아빠다. 유희의 아빠다. 하지만 여기서 아빠라곤 했다가는, 분명 유희가 놀림을 받을 것이 뻔하다. 다 큰 아빠와 딸이 놀러 왔다는 것은 가족 단체 여행이 아니고서야 납득할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남자친구라고 말할 수도 없다. 유희에게 실례다.

“….”

유희가 내 뒤에 숨어 달라붙었다. 무서운지 몸이 약간 떨고 있다. 상황을 보아 저 사람들이 유희를 어떻게 하려 했었던 것 같다.

“남자친구분이에요?”

“네. 네? 아…… 예.”

“…!”

…어떨결에 남자친구라고 대답해버렸다. 차라리 가족을 욕되게 할 바에야 이게 낫나… 왜 반사적으로 ‘네.’라고 대답한 거야 나는….

"아~ 여자친구분이 길을 잃으신 거 같아서요~ 저희가 찾아드리려 했죠.”

“……그럴리가 없을 텐데요? 애도 아니고. 그리고 잠깐 화장실 갔다 온 거 뿐인데 혼자 움직일 리가 없잖아요.”

“….”

“유희한테, 뭔가 손 데려고 했죠?”

“…….”

친절해 보였던 남성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마치 자기 계획이 들통난 것처럼, 이대로 가면 결코 좋게 넘어가지 않으리라 예감했는지, 푹푹 한숨을 쉬었다.

여전히 자칫하면 한 대 때리려는 표정을 지은 남성이 고갯짓을 하자, 친절남도 그 남성을 따라 시야에서 사라졌다.

‘저 새끼들… 직장에서 만나면 갈궈줄 테다.’

따라가서 끝장을 보고 싶었지만, 싸워봤자 내가 졌을게 뻔하고, 또 유희를 두고 가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날 잡고 있는 유희를 돌아보자, 눈가에는 눈물이 약간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전화했었──”

“유희야 괜찮니? 저 사람들이 뭔 짓 안했어?”

“…응.”

“다행이다….”

모든 상황이 끝난 때에, 퍼레이드도 끝났는지 사람들의 박수와 함께 엔딩으로 추정되는 BGM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만남의 광장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됩니다.」

이 곳, 최심부에 있는 광장서 약간 떨어진 곳, 낮에 유희와 쉬었던 카페와 식당들이 늘어져 있는 곳에서 약간 떨어진 넓은 곳이 만남의 광장이다.

뭐, 거기에서 불꽃이 나오는 건 아니고, 아마 가장 잘 보이는 위치를 말해준 것일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은 거기 밖에 없으니까.

“……갈까?”

“응.”

다행히 유희도 괜찮아 진 거 같고, 지금 또 사정을 물어본다면 본인도 귀찮고, 분위기도 더 안좋아진다. 이럴때는 자연스레 넘기는 게 최고다.

유희와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불꽃 놀이를 보러 향했다.

~~~

해가 지고,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떠나갔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사람은 많았다. 이미 여러 직원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혹시라도 있을 안전 사고를 대비해 라이트를 켜서 길안내 및 안전선 관리를 해주고 있었다.

물론 이러면 맨 앞이 아닌 이상 관람이 어렵다는 큰 단점이 생긴다. 새치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잠깐 따라와 볼래?”

30년전 동네 불꽃놀이를 볼 때도, 25년전 여의도에서 한강 불꽃 놀이를 볼 때도, 언제나 건물 옥상은 옳았다.

만남의 광장에서 계단형태로 되어있는 의자들을 올라가면 휴게 공간으로 쓰는 건물이 있는데, 평소에는 닫아뒀다가 밤에 불꽃 놀이를 하면 항상 2층 발코니는 열어뒀었다.

“휴….”

다행히 열어둔 모양이다. 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이게 전통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열리면 됐지 뭐.

이곳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지, 100명은 있을 수 있는 공간에 20명도 안되는 사람들이 하늘을 보고 있었다.

“여기는 왜 온거야…?”

“가장 잘 보이거든.”

“뭐가──”

유희의 말을 끊는듯 멀리서 솟아 오른 불꽃은, 퍼버벙 소리를 내며 여러 갈래로 퍼져 나갔다. 초록색, 파란색, 빨간색 불꽃이 저마다의 모양으로 퍼지며 장관을 만들어냈다.

“…!”

유희가 입을 벌리며 불꽃을 바라본다. 감탄한 모습을 보고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이렇게 잘 보이는 불꽃은 처음이겠지. 적어도 내 기억엔 유희를 불꽃놀이에 데려간 기억은 없으니까. 나도 이렇게 밝고 멋진 불꽃 놀이를 본 지는 좀 오랜 된 것 같다.

─퍼버버벙, 퍼퍼퍼벙 퍼버버버버버벙.

아래서는 로켓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계속해서 불꽃이 올라오고, 위에서는 불꽃이 연쇄반응을 일으켜 정말 말 그대로 쉬지않고 불꽃이 터지며 황금비가 쏟아져 내린다. 사람들이 감탄하면서 내는 환호성은 덤이었다.

“나도 아빠를 사랑해…….”

이 폭발음과 흘러내리는 광경을, 나는 잊을 수 없을 거 같다.

유희도, 이 광경을 잊지 않기를.

오늘 본 불꽃놀이를 회상할 때마다 추억이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되기를.

~~~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주말에 죄송해요.」

“시간 된다고 한 건 저니까요… 제가 도와드릴 거라도 있나요?”

「그게….」

“네…?”

유희와의 관계를 발전시킨 다음 날, 어김 없이 신 팀장에게 전화가 왔다.

용건은 다름 아닌 쇼핑. 자기 옷이 수수하다는 지적을 받았다는 이유로, 나보고 쇼핑에 동행해 달라는 것이었다. 같은 팀원은 둬서 뭘 하는 지 모르겠다.

─신 팀장이 부장님 좋아하는 거요.

최 과장이 했던 말이 내 뇌리를 스친다.

그런 소문이 돌았다면 내가 모를리가 없다. 아니면 내가 진짜 둔탱이었거나. 내가 둔탱이었던 건가…?

물론 신 팀장은 내 취향이 아니다. 외모부터도 못생긴 건 아니지만 수수한 외모다. 나는 좀 도발적이게 생긴 여성이 취향이다. 나영이라거나, 수현씨라거나…. 외모로만 따지면 말이다. 외모로만.

상부에서도 복장을 지적했을 정도면 정말 옷을 못 입는다는 소리다. 내가 봤을 때도 그랬는데, 역시 사람 보는 건 다 똑같나보다.

그리고 나를 집요하게 괴롭혀서, 정이랑 정은 다 떨어졌을 정도다. 그게 날 좋아해서 한 행동이었다면, 조금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일단 알겠어요.”

그래도 일단 도와달라니 도와줘야지. 정말 그 소문이 맞나 확인도 좀 하고. 미팅나온 사람들의 복장을 참고하면 아마 사람은 될 것이다. 옷이 분위기를 바꾸는 것은 많이 봐 왔으니까. 신 팀장도 어떻게든 되겠지.

“그럼 언제 만날까요?”

「오늘 시간 되세요?」

“…….”

뭐… 연차쓴 것도 없으니 오늘이 딱 적기긴 하지. 지금 아침이기도 하고.

“그럼 점심 먹고 만날까요?”

「좋아요.」

“….”

분명 만나기 좋은 시간 일텐데, 소문 때문에 괜히 이상한 느낌이 든다. 전화를 끊고 유희가 있는 거실로 갔다.

“유희야. 아빠 일 좀 다녀올게.”

“……응.”

신팀장과 전화해도, 그게 주말이어도 화나지 않는다. 유희가 나에게 마음을 열었으니까. 아직 대화수는 적지만 적어도 톡으로 말하는 것 보다는 많아진 것 같다. 점점 유희를 공략해 가는 기분이 들어 조금 성취감도 든다.

“아빠.”

“응?”

“밥… 안 먹어?”

“아… 먹고 갈게.”

그리고 유희 본인도, 점점 나에게 부드러워지고 있는 느낌이들었다.

~~~

“여기서 만나기로 했었나….”

차를 몰고 신 팀장을 픽업하러 왔다. 부자인지 역삼역 근처에 산다. 덕분에 걸어서 출근할 수 있다고 한다. 참 부럽다니까.

「도착했어요?」

신 팀장에게서 먼저 문자가 왔다. 이런 건 톡으로 하는 게 좋은데.

「네. 6번 출구 앞이에요.」

「글로 갈게요.」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고, 멀리서 누군가 이쪽으로 상큼한 분위기를 풍기며 뛰어오는 것이 보인다. 아이보리 색깔인 나풀나풀대는 원피스에 안경을 쓴 여성이었다.

사이즈를 좀 작게 샀는지 솟아오른 가슴이 튀어 보이고, 스커트 부분이 허벅지의 반을 덮어서 섹시미를 자극한다. 신발도 갈색 샌들 힐을 신어서 젊은 느낌이 들었다.

신 팀장이 저 사람의 반만 입어도 이제 하산 해도 좋다라고 말할 거 같다.

‘어라….’

헐레벌떡하는 뜀박질이 이리로 향한다. 곧이어 조수석 문이 열리고, 자연스레 내 옆에 타 안전벨트를 채웠다.

“기다리셨죠~”

“……누구세요?”

“네!? 부장님. 저에요. 신예진.”

“…네?”

신팀장이 이렇게 옷을 잘 입는다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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