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예진.
* * *
점심시간.
웬일로 수현씨도 같이 밥을 먹어서, 오랜만에 우리 부서 전체가 모였다.
“수현씨 그때 밥 먹고 오랜만이지? 이렇게 먹는 거.”
“그렇네요….”
지희씨가 자연스럽게 수현씨 옆에 앉아 말을 걸어준다.
최 과장이 내 일에 관한 것에 눈치가 빠르다면, 지희씨는 같은 여자라 그런지 그런 쪽에 눈치가 빠르다. 아마 우리 부서의 여성의 멘탈 케어는 지희씨가 담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 과장이 채찍이라면, 지희씨는 당근이라 할 수 있겠다.
“이왕 모인 김에 밥은 내가 살게요.”
“정말요!? 야호~”
우리 부서는 나, 최 과장, 지희씨, 수현씨, 그 외 2명 수현씨의 선임. 먼저 들어왔긴 했지만 이 사람들도 신입이라 아직 직급은 없다.
수현씨까지 이렇게 모인 건 다름이 아니라, 그 2명 중 한 명, 다혜씨가 다른 부서로 이전 하는 것이 확정 됐기 때문이다. 3개월 수습을 잘 버텨서 정식사원이 됐다는 소리다.
“축하해요 다혜씨.”
“감사합니다….”
“어디로가요?”
“아, 마케팅부요!”
최 과장이 다혜씨에게 물었다. 화를 많이 내긴 했지만, 다 일적으로 화낸 거라 다혜씨도 크게 감정상하는 일은 없어서 그런지, 최 과장에게 굉장히 호의적이다. 생각건대, 아마 최 과장을 좋아하는 건가 싶다.
“아~ 좋은데 가시네요.”
“다혜씨 아쉽다~ 그래도 저희 잊으면 안 돼요?”
“어떻게 잊어요~ 사실 여기 계속 있고 싶은 걸요….”
“여기 계속 있으면 승진 못해요.”
“아하하… 그렇죠. 네…….”
내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톤이라도 재미있게 바꿀 걸 그랬나….
내가 민망해 하는 것을 눈치챈 지희씨가 분위기를 바꿨다.
“맞다. 메뉴 뭐 하실래요?”
“나는 된장.”
“그럼 나도.”
“저는 제육 먹을게요.”
“네~ 그럼 된장 셋, 제육 둘, 꽁김 하나. 맞죠?”
지희씨가 착착 정리해서 주문을 넣었고, 기다리는 동안 다혜씨의 위로하는 말들을 했다. 가능하면 따로 시간을 내주고 싶었는데, 시즌이 시즌이라 저녁 회식을 하기엔 시간이 없다.
한참 여사원들이 재잘재잘 대는 걸 듣자니, 주문한 게 나왔다.
“맛있게 드세요.”
“맛있게 드세용~”
곧 있을 전쟁(아마도)에 맞서 배를 채우는 것은 중요하다. 밥을 말고 적당히 김치를 올려서 우걱우걱 씹었다.
“….”
힐끔 위를 보니 딱 수현씨와 시선이 마주쳤다. 며칠 간 정말 일 얘기 말고는 하나도 안했으니, 쳐다만 봐도 어색하다.
황급히 고개를 꾸벅 숙이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내 먹는 모습이 그렇게 개걸스러웠나….
─우우웅.
아직 한창 점심시간인데, 신 팀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어디에요?」
“점심 먹고 있는데요.”
「언제쯤 다 드셔요?」
“급한 건가요?”
「네. 바로 일하시려면 설명 들으셔야죠.」
“예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뚝.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던데, 에티켓도 없어 이 사람은.
일단 밥을 다 먹어가던 참이었으니 남은 밥을 싹싹 긁어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부장님. 일어나세요?”
“어. 빨리 오래.”
“뭐에요 그 사람. 싸가지 없게.”
“다른 부서 사람한테 그러는 거 아니야.”
“죄송합니다....”
“여기 카드 줄 테니까. 결제 이걸로 해요.”
“네….”
지희씨한테 화내려는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말투가 좀 예민해졌다. 이게 다 그 팀장 때문이야….
정말 가려고 하니, 수현씨가 나를 불렀다.
“부장님.”
“…네.”
단지 불렸을 뿐인데 숨이 턱 막힌다. 이게 원나잇의 죄책감이라는 건가, 항상 수현씨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도 멀쩡하게 잘 다니는 거 보면 그렇게 싫지 많은 않은 것 같다.
“잘… 다녀오세요.”
“네.”
다행히 수현씨는 화난 것 같지 않았다.
~~~
영업부는 우리 부서 위 층, 한 층 전체를 차지한다. 그 안에서도 세부적으로 꽤 나눠져 있고, 그 중 신 팀장이 담당하는 곳은 가장 안쪽에 있었다.
자리로 찾아가니 창밖을 보고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었다. 다리를 꼬아서 나름대로 고혹적인 분위기를 잡으려 한 것 같지만 복장 때문에 그런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오셨어요.”
“점심 안 드세요?”
“설명해드려야 하니까요.”
“…….”
보아하니 다른 팀원들은 다 점심을 먹으러 간 모양이다. 스스로 안 먹겠다고 한 건지, 팀원들이 따돌린 건지, 정황상 둘 다 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만.
“일단 자리는 저쪽에 앉으시면 되고, 프로그램 설명은 굳이 설명 안드릴게요. 부장님이 해 주실건 엑셀 처리하는 거랑….”
굳이 내가 와야하나? 싶을 정도로 쉬운 업무다. 이런 건 수현씨가 더 잘할 텐데, 굳이 남성이 필요하다고 한 이유가 뭘까.
“저랑 미팅 좀 가주셨으면 해요.”
“미팅이라면 혼자 가도 되지 않아요?”
“그게….”
말하기 껄끄러운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린다. 그냥 오랜만에 영업하는 게 무섭다고 말하지.
“여전히 솔직하지 못하시네요.”
“솔직하지 못하긴 누가─”
“아무튼, 알았어요. 같이 가 드리면 되는 거죠?”
신 팀장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요? 굳이 남자를 필요하시는 이유가 뭐죠?”
“그 현장에 전부 남자 밖에 없어서요. 뭔가 분위기에 압도될 거 같아서….”
“아하….”
영업이 무슨 면접도 아니고, 압도될 게 있을까라고 생각하지만, 신 팀장 같은 경우는 좌천 당했다가 복귀했다. 오랜만에 바로 실전에 투입되니 어려울 수도 있다 생각한다.
“일정은 어떻게 돼요?”
“다음 주 목요일이에요. 광고사는 부산에 있구요.”
“출장이겠네요….”
출장 가기 싫은데. 라고 말하고 싶지만 다 큰 어른이 떼를 쓸 순 없다.
……가만.
“부탁은 이게 끝인가요?”
“네… 그런데요.”
“그럼 저 이쪽에서 일할 필요 없는 거 아니에요?”
“읏….”
여름이라 그런가,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는 게 보인다. 분명 에어컨도 빵빵한데, 갑자기 왜지?
“어디 아프세요?”
“아뇨 안 아파요.”
“그럼 저는….”
“그것 말고 부탁드린 거 있었잖아요! 그거나 하고 가세요!”
“네에…….”
이럴 거면 정말 수현씨가 왔어도 됐었잖아…. 정말 이상하다니까.
~~~
“아빠 왔어~”
─부장님. 여기 틀렸어요.
─부장님. 잠깐 기다려보세요.
─부장님. 자리 제대로 정리해놓고……
신 팀장의 잔소리에 내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 있었다. 그래도 유희에게 풀 수는 없었기에 최 과장과 술을 한 잔 걸치고 왔다. 물론 유희에게는 미리 말해뒀다.
“…….”
오늘도 여전히 나를 째려보고 있다. 웬일로 바로 방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ㅅ, ㅅ……”
“응? 뭐 말할 거있니?”
“술 냄새나.”
그리고는 평소처럼,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몇 잔 안 마셨는데 나는구나……. 술도 끊어야 하나 이거….
옷을 벗고 샤워를 하러 들어왔다. 평소와는 다르게 거울이 이미 뿌얘져 있다.
‘설마 유희가 방금 썼나…?’
좋은 냄새가 답답하지만 내 코를 덥쳤다. 샤워기 앞에서 서 있을 거란 모습에 갑자기 반응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여전히 매일 밤 벽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 때문에 버티기 힘든데, 차라리 여기서 한 발 빼면 오늘은 괜찮을지도…….
‘아니야….’
참아야 한다. 요 며칠도 이 악물고 참아왔지 않는가. 성욕에 지배되는 생물이 돼서는 안 된다.
참으면 안 좋다는 걸 알지만, 적어도 유희가 있는 공간에서 해소하고 싶지는 않다. 언제 한 번 유희 없는 날에 연차를… 아, 방학이었지 참. 진짜 어떡하지.
“하아….”
샤워를 하면 할수록 성욕이 없어지기는커녕, 유희와 같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미 한계를 넘어 섰다. 건들면 당장 찍 싸버릴 정도로, 엄청 민감해져 있었다.
─아빠….
만약 유희가 여기 있었다면, 벽을 잡고 엉덩이를 내밀고 있지 않을까?
흔들고 싶다.
유희의 허리를 잡고, 벌렁거리는 구멍에 넣어서 철퍽철퍽 소리가 날 정도로 허리를 흔들고 싶다.
바디워시를 젤 삼아 기둥을 문지른다. 며칠간 외면했던 쾌락이 한 번에 몰려오면서 움직임이 멈추지 않았다.
“윽…!”
정신을 차리니 정액이 벽 면까지 쭈욱 날아가 닿았다. 어찌나 끈적한지 흘러내리지도 않을 정도였다.
이왕 싼 거, 이참에 전부 내뱉기로 했다.
‘유희야…!’
속으로 유희의 이름을 부르며, 여러 체위로 하는 상상을 한다. 정말 몹쓸 사람이다. 나는.
그래도 그 덕분에 며칠간 쌓여 있었던 정액을 내보낼 수 있었다.
“하아….”
벽에 붙은 정액을 씻어내고, 축 늘어진 몸으로 욕실을 나왔다. 이 모든 게 술 때문이다. 술 때문에 괜히 또 이성이 마비 되어 이런 짓을 한 것이다.
한 세 번은 싼 거 같은데, 내 주인님은 겸손해질 줄을 몰랐다. 오히려 해볼 테면 해 보라는 식으로 천장을 향해 빳빳하게 서 있었다.
하필 술에 취해서 깜빡하고 갈아입을 옷도 안 가져 왔는데, 설상가상으로 이런 꼴이니, 이런 모습을 유희가 보면 저질이라고 생각하겠지.
일단 어차피 유희는 이미 방으로 들어가 있을 테니, 빨리 내 방으로 가면 들키진 않겠──
“…….”
“유희야…….”
오늘은 정말 내 인생 최악의 날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