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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내게 집착한다-14화 (14/96)

〈 14화 〉 수현. (E) ­ Remake

* * *

「유희야 혹시 놀이공원에…」

아니야. 이게 아니다. 너무 직설적이잖아.

「유희야 오늘 어디 갔었…」

이것도 아니다. 무난하긴 하지만 딸의 생활을 너무 속박하는 것 같다.

「사랑하는 유희공주님~ 오늘 오디가써쏘요~」

미친놈인가?

“하아…….”

유희가 검은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곤 하지만,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이 여름에 그런 두꺼운 옷을 입을 사람이라고는 아마 없을 것이다. 만약 유희라면 왜 놀이공원에 따라 온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설마 나와 수현씨를 보려고…?’

그거라면,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30퍼센트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다. 혹 내가 이상한 사람과 만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으니까. 물론 수현씨는 이상하기 보다는 오히려 상처가 많아 보살펴 줘야 하는 사람이다.

“흐음…….”

역시 왜 따라온 지를 모르겠다. 그렇다고 추궁해서 물어본다면, 자기를 못믿냐면서 버림 받을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유희가 그런 짓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믿고 싶지 않았다.

이 잡념을 날려버리라는 듯, 유희에게서 톡이 왔다.

「주말에 시간 돼?」

「♥」

「삭제된 메시지 입니다.」

하트…? 아, 지워졌다.

하트는 왜 보냈고 지운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주말에 시간이라, 딸을 위한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응 있어.」

「알았어.」

나랑 어디 놀러 가고 싶기라고 한 건가? 아빠로서는 대 환영이다만.

“…….”

이후로 오는 답장은 없었다. 그래도 만족한다.

요즘은 유희와 이런식으로 대화하는 게 하나의 작은 유희가 되었다.

‘그래. 날 따라올 리가 없지.’

다리를 쭉펴고, 오랜만에 깊은 꿀잠을 잤다.

~~~

“부장님. 요즘 담배 안 피시네요.”

“아, 끊었어.”

“금연보다 어려운 건 없다 했는데.”

“피운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뭐.”

“하긴. 그것도 피울 때마다 켁켁대셨죠.”

“시꺼.”

애초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것도 수현씨와의 답답한 관계 때문에 피운 거였다. 지금은 해결 됐으니 피울 이유가 없다.

“그건 그렇고 수현씨도 정말 내성적이네요. 회식 한 번 참여 안 하다니.”

“뭐… 그럴 수도 있지.”

나름 사무실에서 몇번 말을 걸어 봤지만, 일할 때 말고는 나에게 눈길하나 주지 않는다. 저번 주에 있었던 회식도 혼자 불참했다. 애초에 그런 틈을 허용한 나의 잘못이니, 어쩔 수 없다.

「어제 제 방송 보셨어요?」

「네… 뭐…」

그래도 사적으로는 친해졌다. 아예 찍힌 건가 생각했는데, 사무실에서만 그러고 가끔씩 퇴근을 하면 커피 한 잔을 먹는 정도의 사이는 됐다.

방송도 여전히 잘하고 있는 것보면, 내가 거절한 것이 그렇게 큰 상처가 되지는 않은 것 같다. 바로 어제 최근에 유행하는 댄스를 추는 것을 봤을 땐 입이 떡 벌어졌을 정도로 잘췄다.

“부장님 표정도 좋아 보여요.”

“딸이랑 자주 톡하게 됐거든.”

“그건 장족의 발전이네요!”

그날 이후로 유희와의 소통이 늘어났다. 비록 문자로 하는 소통이지만, 그래도 그 시간 만큼은 정말 대화하는 것 같아서 기분 좋다.

언젠가는 서로 웃으면서 면대면으로 대화했으면 좋겠다.

……그때가 오긴 오겠지?

“아 맞다. 부장님, 그거 아세요? 신 팀장 돌아온 거.”

“진짜? 그 사람이 돌아왔어?”

영업부의 신예진 팀장. 나보다는 세 살 아래고, 아직 결혼 못한 처녀다. 하도 성격이 지랄맞아서 평가회 때 좌천됐다가. 이번에 다시 올라온 것 같다.

“네 그렇대요. 히스테릭 부리는 건 여전 한가 봐요.”

“또 킬베로스 시작이겠구만.”

“그러게요. 고생이겠어요.”

킬베로스. 사람을 죽일 듯 물어뜯는다는 뜻인 그녀의 별명이다. 실제로 신 팀장에게 잡히면 거의 퇴사하고 싶을 정도로 사람 멘탈을 갈군다. 악덕 상사의 대표적인 표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떻게 돌아왔는지, 본부장이랑 스캔들 있다는 소문도 있어요.”

“호오….”

역시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 괜히 그런 소설들이나 만화들이 나오는 게 아니라니까.

“내 눈엔 그렇게 보이진 않는데. 뭔가 잘한 게 있었겠지.”

“동기였다고 편드시는 거예요?”

“편이고 자시고 그 사람도 일 하나는 잘했으니까.”

생각해 보니 입사 동기였구나 참. 그때도 엄청 그랬었는데. 특히 나한테.

“어쨌든 우리 부서에만 안 왔으면 좋겠네요.”

“그러게 말이다…….”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린적이 없는걸까. 최 과장과 얘기가 끝난 후, 복귀했더니 위로 포니테일을 묶고, 무릎까지 오는 긴 치마, 스타킹도 꽉 막힌 100데니아에, 동그란 안경까지 써서 전체적으로 수수한 느낌을 주는 여성, 신 팀장이 있었다.

“김 부장님.”

“아, 예. 신 팀장… 님.”

그 외모와는 다르게 까칠한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분명 나보다 낮은 직급인데도 동기라 그런가 경어를 쓸 수밖에 없었다.

“뭐예요? 그 말투. 모르던 사이도 아니잖아요?”

“그건 그런데…….”

그렇게 째려보면서 어떻게 말하라는 거야.

일단 이러고 있을 수만도 없으니, 헛기침을 해서 주도권을 가져 왔다.

“크흠. 그래서? 저희 부서엔 무슨 일로 오신 거죠?”

“저희 영업부 바쁘신 건 아시죠? 인원 보충 좀 하려고요.”

“벌써요…?”

벌써부터 오자마자 우릴 부려 먹겠다는 태도가 참 맘에 안 든다. 좀 유해진 줄 알았더니, 역시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수현씨에게 살짝 눈치를 주자,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첫날부터 굴려도 될 정도로 실력 있는 수현씨는, 나와 헤어진 이후부터 다른 곳에 굴려지고 있다.

억지로 시킨건 아니지만, 수현씨가 계속 가고 싶다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몸은 괜찮으려나….

“이분은….”

“강수현씨라고 해요. 일도 싹싹하게 잘해서 문제는 없을 거예요.”

“아뇨. 남성분이 필요해서요.”

“남성이요…?”

옆에 있던 최 과장은 어느새 자기 자리에 앉아서 키보드를 마구 두들기고 있었다. 어지간히 신 팀장과 엮이긴 싫나 보다.

그래 뭐, 나에게 해준 것도 많으니, 이번 만큼은 내가 나서도록 할까.

“제가 가도 문제는 없는 거죠?”

“네 뭐… 오히려 부장님을 원했달까….”

“저를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네… 지금 바로 가면 되나요?”

“서두르실 필요 없어요. 오후부터 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신 팀장이 휙 뒤돌면서 묶었던 머리카락이 내 얼굴을 찔렀다. 본인은 눈치못 챘는지,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서로 싸우지 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신 팀장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굳어 있던 공기가 조금 느슨해진 느낌이 들었다.

“후아….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고생했어.”

“부장님이야말로요. 앞으로 고생하세요.”

좌천 된 건 1년 전이기 때문에 지희씨도 면식이 있다. 직접적으로 당한 건 아니지만, 눈을 마주칠 때마다 자신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저 사람이 지희씨의 반이라도 닮았으면 좋겠는데.”

“저요?”

“예쁘고 스타일 좋고 일도 잘하고 싹싹하고. 일 잘하는 것 말고는 지희씨랑 닮은 게 하나도 없거든.”

“에헤헤… 너무 사탕발렸어요 부장님.”

“사실인데 뭘. 아, 나 영업부 채팅방에 초대좀 해 줘.”

“네~”

어우. 잡담을 너무 많이 했다. 일하자 일.

~~~

“이번 학기 고생 많았고. 여름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고. 다음 학기에 봅시다.”

교수님의 말을 끝으로,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종강. 어찌저찌 학점은 다 채웠고, 방학때는 놀 일만 남았다. 아빠의 톡 상태도 보니 그 사람과는 정리한 것 같다.

신발에 커피가 쏟아졌다는 것을 들켰을 때는 엄청 놀랐지만, 다행히 아빠는 눈치채지 못 한 것 같다.

“유희야. 이번 주에 시간 돼?”

“이번 주는 안 돼.”

“에이~ 미팅 있는데.”

“나 그런 거 관심 없는 거 알잖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

“있나 보네~ 누구? 국문과 선배?”

“그런 거… 아니야…….”

말할 수 없다.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좋아하는 사람이 우리 아빠라는 것을, 나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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