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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내게 집착한다-13화 (13/96)

〈 13화 〉 수현. (9) ­ Remake

* * *

“흐흥~”

오늘따라 유난히 기분이 들뜬다.

몇십번이나 다른 남자와 이 놀이공원을 왔지만, 이렇게 설레는 기분은 처음이다. 놀이기구 타는 것도 재미있고, 밥 먹는 것도 재미있고, 그냥 부장님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즐겁다.

“헤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려는 걸 쓰읍하고 삼켰다.

부장님 몰래 산 커플링. 부장님이 받아주실까. 솔직히 두근거린다. 이런 마음이 든 건 진짜로 부장님이 처음이다.

부장님이 받아줘서 이대로 결혼까지 가면 좋을──

“걸레 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딱히 눈에 띄는 사람은 없었다. 왜… 갑자기 그런 말을 나한테 하는 거야. 누군데 나보고 그런 말을….

그 단어를 듣고 나니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부장님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겠지….’

나는 즐겁다. 부장님과 있는 것이 좋다. 하지만 부장님의 얼굴에는 전혀 그러지 않은 것이 대놓고 보인다. 그건 부장님도 나를 걸레라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 열네 명이라고 말했으니까. 그럴 만도 하다.

“…….”

생각해 보니 오늘도 즐겼던 건 나뿐이다. 부장님은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 나 때문에 강제로 끌려왔으니, 그런 기분이 든 것은 당연하다.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부장님이 기뻐해 줄지 모르겠다. 이 커플링을 사가도 부장님이 전혀 기뻐해주지 않을 느낌이 든다. 애초부터 내가 사귀자고 해서 반강제적으로 아니, 거의 강제적으로 사귀게 된 사이니까.

하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부장님을 같이 다니는 인형 취급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서로가 행복해야 되는데, 지금은 나만 행복하고 있다.

“역시 나는….”

역시 그때 확실히 덮쳐버리고 끝냈어야 했다. 하룻밤의 추억으로, 하룻밤의 원나잇으로 끝냈어야 했다. 나 같은 걸레가 누굴 사귄다고. 남자들 돈이나 뜯으면서 살아왔으면서, 이제 와서 무슨 정상적인 교제를 하겠다고.

하지만 부장님은 너무 착하다. 열네 명이라고 말한 나에게 아무런 감정도 가지지 않고, 평범하게 대해주었다. 그래도 돈을 뜯으며 살아왔다는 말을 하면 아무래도 경멸하시겠지.

‘끝내자.’

역시 나 같은 여자랑 사귀다니, 부장님이 아깝다.

“수현씨 괜찮아요?”

다시 부장님에게 가자, 부장님이 내 손을 잡아준다. 역시 이럴 때는 상냥한 사람이다. 나랑 있는 게 즐겁지는 않지만, 나를 도와주는 것에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말해 봐요.”

“집에 가면 말씀 드릴게요.”

“우선 점심부터 먹어요. 불안해 하시는 거 같으니까. 먹으면 속도 괜찮아진대요.”

“아뇨 괜찮은데──”

─꼬르르륵.

“점심 먹죠.”

“네…….”

아이 쪽팔려.

~~~

수현씨의 집으로 돌아오자, 늦은 오후가 되었다. 요리를 하기는 좀 뭐 해서, 나는 떡갈비 도시락을, 수현씨는 우동을 시켰다.

“…….”

수현시의 집에 오기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치 본인이 말을 걸지 말라는 것처럼 철벽을 치고 있었다.

겨우 밥이 도착하고, 우동을 한젓가락 먹은 후에야 수현씨가 입을 열었다.

“갑자기 돌아오자고 해서 죄송해요 부장님.”

“아뇨 뭐… 그럴 수도 있죠.”

아마 분명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다. 수현씨의 태도가 급변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우선 수현씨가 괜찮은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몸은 괜찮아요?”

“네…?”

“계속 불안해 하셨잖아요.”

“아… 그래 보였구나…. 몸은 괜찮아요.”

“다행이네요.”

“역시 부장님은 상냥하시네요….”

“친한 사람한테 잘해주는 건 당연하잖아요.”

“친한 사람…인가요.”

“아, 그게….”

아, 협박이라곤 해도 우리 둘은 사귀고 있었지 참…. 수현씨에게 말실수를 해 버렸다.

“그럼… 마지막까지 상냥해주실 수 있으세요?”

“…….”

수현씨의 말이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이것이 마지막이 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 음식을 먹으며, 수현씨가 입을 열었다.

“부장님과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무언가 결심한 듯 수현씨가 입을 열었고, 그 목소리가 약간 떨린다.

“사실은….”

수현씨의 아픈 과거를 들었다. 뭔가 가슴속에서 깊은 분노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싫죠. 저….”

“확실히 싫네요.”

“역시….”

“그 사람들이.”

“네…?”

“그 사람들이 그런 짓을 안했으면, 지금의 수현씨는 없었을 거잖아요?”

분위기를 타서 어쩔 수 없이 시작했다곤 하지만, 상대방은 엄연히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렇다고 수현씨에게도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먼저 시작한 것은 엄연히 상대니까.

나에게 접근 한 것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떠 보려고 접근한 것이라 한다.

네 명이 아니라 열네 명이라는 사실을 듣고는 조금 놀랐지만, 아마 수현씨에게 좋게 기억되는 것 같으니 굳이 말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건 그렇지만….”

“물론 수현씨가 한 행동도 자랑스럽다곤 할 순 없어요. 그것도 엄연히 협박죄니까요.”

“네…….”

“아마 수현씨가 한 행동들이 언젠가는 발목을 잡을 거예요. 그 전에 바로잡을 수 있으면 바로 잡아야 해요.”

“……그렇게 하면.”

수현씨가 점점 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오늘 입은 프릴이 날리는 검정 원피스가 나를 덮는다.

“부장님께서는… 저를 진심으로 봐주실 건가요…?”

“…….”

“제가 걸레라고 생각해서 안 사귀려고 하신거 잖아요. 그럼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사귄 거라고 한다면, 제가 전부 그 사람들과 끝내고 오면….”

수현씨의 얼굴이 눈앞에 가까이 있다. 화장을 약하게 했지만 선천적으로 예쁜사람이라 그런지 이목구비가 분명하게 들어온다.

“부장님께서는 저를 진심으로 받아들여주실 건가요…?”

“아니요.”

“…….”

수현씨가 걸레든 말든 상관없었다. 애초에 그 사실을 모르기도 했고, 수현씨가 처녀라도 나는 거절했을 것이다. 나에게는 유희가 독립할 때까지 보살펴준다는 의무가 있으니까.

“수현씨가 처녀였어도 거절했을 거예요.”

“…….”

내 위에 올라탄 수현씨가 다시 내려와서 자리에 앉았다. 고개를 숙여 그 표정을 알 순 없었지만, 여기서 무슨 말이라도 했다가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거 같은 상태로 보여 가만히 지켜 보았다.

“다음에….”

“네.”

“다음에 제대로 고백할게요.”

“…….”

“그러니까 끝내요. 영상은 삭제한 지 오래 됐어요.”

“그래요.”

“……역시 저──”

“내일 봬요.”

“……네.”

수현씨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수현씨의 집에서 나왔다.

~~~

“아빠 왔어. 응?”

수현씨를 데려다주고 집에 오자, 웬일로 유희가 없었다. 주말에는 스케줄이 없는걸로 아는데. 알바라도 하러간 건가?

옷을 갈아입고 나니, 곧이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유희 왔니? 아빠도 방금 왔는데.”

“……….”

그때 이후로 유희와 자주 톡하는 사이가 됐다곤 하지만, 여전히 면대면으로는 차갑게 대해 준다. 유희는 그대로 조용히 방문에 들어갔다.

우우웅.

그리고 진동이 울리더니, 유희에게서 톡이 왔다.

「나 왔어.」

……!

이런 인사는 처음 받아봤다. 수현씨와 관계를 정리한 것도 그렇고, 유희와 관계도 좋아졌고, 오늘은 뭔가 되는 날인가 보다.

「그 여자랑 어땠어?」

「그냥 그랬어.」

「그래?」

「혹시 사귀고 있는 거 아니야?」

딸의 직감이라는 걸까, 거짓말 할 수는 없어서 제대로 답했다.

「헤어졌어.」

이 이상 유희의 톡이 오지 않았다. 대화가 끊어질 거 같아 뭐라도 보내야 했다.

「처음으로 자이로드롭을 탔는데 엄청 무서웠어.」

「무섭겠네.」

「그리고 검은 후드티 입은 사람이랑 부딪혔었는데,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가더라고.」

「싸가지없네.」

약간 거친 말이긴 하지만, 유희의 말이 사실이니 뭐라 할 순 없었다.

─검은 후드티 입은 사람….

그러고 보니… 유희도 검은 후드 티를 입고 있었지 않았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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