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수현. (7) Rem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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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 정확히는 우리 부서에 아무도 없는 건 인턴 이후로는 처음이다. 너무 일찍와버린 건가 싶다.
자고로 직이 높을수록 적당적당히 늦게 출근해야 부하 직원들한테 부담을 안 준다. 부장의 출근 시간이 곧 부하 직원들의 출근 시간을 정해주는 것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일찍 왔으니, 환기를 하고 에어컨을 켰다. 수현씨 자리를 볼 때마다 어젯밤 그 일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다른 곳을 쳐다보게 된다.
정리를 다 하고 사무실 서재에 꽂혀 있는 가벼운 책을 읽고 있으니, 하나둘 출근하기 시작했다.
“어? 부장님 오늘 엄청 일찍 오셨네요?”
“뭐… 눈이 일찍 떠져서 말이야.”
“그거 늙어가는 징조던데…. 늙을수록 잠이 없어진다잖아요….”
“시끄러 임마.”
지희씨의 말이 맞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뭔가 무섭단 말이지. 내 몸이 늙어간다는 것을 자각 하는 것이란….
“부장님 일찍 오셨네요?”
“뭐… 눈이 일찍 떠져서….”
“그거 늙어가는 징조──”
“이미 지희씨가 했어. 오늘은 다른 부서 안 가는 거야?”
“글쎄요. 오후에는 갈 거 같은데요.”
“고생이 많아.”
최 과장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모습을 보면 참 안쓰러워진다. 언젠가 저 보상을 받아야 할 텐데.
“부장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서들 와.”
그 외 기존 교육을 받던 인턴들도 오고, 마지막으로 수현씨까지 왔다.
“부장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수현씨를 볼 때마다 저 정상속이 투시되어 보여서 뭔가 부끄럽다. 게다가 토끼 귀 머리띠를 착용한 헛것까지 보일 정도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수현씨에게 할 말이 있었다.
“수현씨. 잠깐 좀.”
사람들의 귀가 없는 비상계단에 수현씨를 데려왔다. 수현씨도 대충 내가 뭘 말하려는 지 눈치챈 듯했다.
“수현씨 우리 이런 거─ 윽,”
“부장님.”
수현씨가 내 말을 막으려는 듯, 나를 껴안았다. 그 포용력과 닿는 가슴에 아무 저항을 할 수 없었다.
“설마 이런 거 그만두자 같은 같잖은 말씀 하실 건 아니시죠…?”
“…!”
“저 결심했어요. 부장님과 사귀기로.”
“수현씨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오해요…?”
수현씨가 조용히 USB를 건네줬다. 아마 집에서 가져온 개인용 USB 같았다.
“오해일리 없어요.”
그 말을 남기고 수현씨는 자리로 돌아갔다. 마치 자신의 뜻대로 될 거란 것을 확신한 듯, 약간의 미소를 머금으며.
어쩔 수 없이 나도 자리에 돌아오고, USB를 꽂으니 의문의 영상이 하나 나왔다.
‘이건….’
그리고 그 영상에는 바니걸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수현씨와, 반쯤 벗고 있는 내가 서로 몸을 겹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
중학교 때 첫 경험, 고등학교 때는 걸레, 대학생 때는 여우… 그게 내 인생이었다.
첫 경험은 내가 원해서 한 게 아니다. 그 오빠와 분위기에 휩쓸려서, 어쪄다 하게 된 것뿐이다. 알고 보니 그 놈은 쓰레기였고, 학교 전역에 내가 다 대준다는 소문마져 퍼졌다.
이럴 거면 고등학교를 다른 곳에 갈 걸. 고등학교까지도 그 소문은 계속 퍼졌고, 나는 그대로 행동했다. 그놈들을 혼내줄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았으니까.
─100.
안 그럼 소년원 가시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실질적으로 소년원을 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전부 나에게 돈을 상납하기만 했다.
교사에게 일러 바칠 때도 마찬가지로, 이쪽이 먼저 눈물을 흘리면 내가 무조건 이겼다. 이건 내 몸을 이용해먹은 벌이다. 난 전혀 유혹하지 않았는데, 그놈들이 멋대로 단정하고 날 범했을 뿐이니까.
그나마 마음을 연 사람들마저, 결국은 내 몸이 목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연애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돼하~
대학 졸업 이후 시작한 방송은 내게 안식을 주었다. 서로 얼굴 볼일도 없고, 돈도 많이 주었으니까. 굳이 그만둘 이유는 없었다. 가끔씩 나에게 DM으로 협박성 메일이 오곤 하지만, 전부 고소해버려 나에게 타격은 없었다.
‘하아….’
처음에는 스트레스를 풀려 순수하게 시작한 방송도, 점점 도네이션을 위해 수위를 올리는 나 자신을 보고 질려버렸다. 대충 한두달만 더 하다가 은퇴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회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났다.
“오늘부터 일하게 된 강수현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김찬희 부장님. 처음에는 전형적인 외모빨 부장이라고만 생각했다. 낙하산이라는 안 좋은 생각마저 했다. 내 심보가 뒤틀려서 그런 거라곤 쳐도, 부장이라기에는 너무 젊었으니까. 낼모래 40이란 것을 듣고는 조금 놀랐다.
─괜찮아요. 수현씨.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전형적인 틀딱부장이 아니었다. 꼰대 사상이 없고, 컴퓨터에 대해 잘 알았다. 내가 실수로 컴퓨터에 레드 스크린을 띄웠을 때도, 화내기는 커녕 상냥하게 잘 알려주셨다.
그래서 그런지 점점 친해지고 싶었다. 내 취향에 억지로 공감하면서 다가오는 것이 아닌, 진짜로 취향이 잘 맞았던 사람은 처음이니까.
─요즘 그래픽카드가요~
대부분은 이런 얘기가 나오면 갑자기 다른 얘기를 하거나, 일부러 못 들은 척 무시했지만, 부장님은 내 얘기를 제대로 들어주셨다. 취미도 맞아 정말 잘 통했다.
이런 좋은 사람을 나만 알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방송에 출연 시켰다. 틀딱 라인에서도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수현씨 부탁이니까요.
그 말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아내도 없고, 깨끗한 심성이다. ‘결혼을 하려면 이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내 마음속 한구석에 강력하게 자리잡았다.
‘치사하긴 하지만….’
가드 불가. 일명 가불기. 지금까지의 남자들에게 해왔던 것처럼, 나는 어쩔 수 없이 부장님에게 협박을 했다.
“영상… 보셨군요….”
“내가 뭘 하면 되죠?”
“저랑… 사귀어 주세요.”
“……일단은 알았어요. 영상만 지워주세요.”
이런 완벽한 부장님과 사귈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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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다행히 일하는 동안 수현씨가 질척거린다거나 그런 건 없었다. 오히려 더 말을 안하게 되었달까, 진짜 사내 커플처럼 대했다.
식사 후, 최 과장과 함께 식후땡을 하러 올라왔다. 평소에는 그냥 최 과장이 담배를 피는 모습을 보며 듣기만 하지만, 내가 품에서 담배를 꺼내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란 눈치였다.
“켁켁.”
“그러게 왜 피지도 않던 담배를 피세요….”
“담배 피는 것도 요령이 있구나….”
“무슨 일 있으세요?”
“그냥 조금.”
“수현씨 때문에 그래요?”
“….”
여전히 눈치는 빠르다니까.
“무, 무슨 소리야 그게.”
“계속 수현씨 쳐다보고 계셨잖아요.”
“그렇게 티났어?”
“혹시 반하셨어요?”
반사적으로 놀라 기침을 하며 들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렸다. 하는 수 없이 태우고만 있던 담뱃불을 끄고 재떨이에 넣었다. 난 담배 체질은 아닌 거 같다.
“그런 거 아냐. 알잖아 딸 있는 거.”
“그거랑 그거랑은 별개죠. 따님나이도 벌써 다 컸는데, 새엄마랑 상관없이 아빠한테 애인이라도 생기면 좋지 않겠어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이것도 단순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말이죠….”
“…그래 말 잘했다. 최 과장 너는 여자친구 안 만들어?”
이혼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지희씨보다 한 살 많은 서른 넷이다. 아직 신체 능력도 좋을 테고, 돈도 잘 번다. 얼마든지 골라잡아 결혼할 수 있는 나이인 것이다.
“글쎄요. 좋은 사람 잡아야 하는데 아직까진 없단말이죠….”
“그래…? 의외네.”
“그리고 이젠 무서워요. 만나는 사람들마다 의심하게 된다니까요.”
“아… 그랬었지.”
최 과장은 입사하기 전에, 결혼하고 얼마 안돼서 이혼했다. 그 이유가 아내를 뺏긴 건데, 애초부터 문어발을 걸치고 있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철저하게 이용당해온 것이다.
지금은 애낳고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데,(물론 최 과장의 아들은 아니다) 정확히는 모른다고 한다. 애가 불쌍해질 따름이다.
“부장님도 조심하세요.”
“응? 뭐를.”
“수현씨 수상한 냄새가 나거든요.”
이미 갈 때까지 간 이상한 관계지만, 최 과장 말대로 여전히 수상한 냄새는 난다. 왜 굳이 사귀는 관계에 집착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속을 모르니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다.
“그래. 조심할게.”
제발 이 관계로 인해 유희에게 피해가 가지 않기를, 속으로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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