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수현. (4) Remake
* * *
“뭔가 미안하네요.”
“네? 뭐가요?”
“아니, 혼자 살고 있는 다 큰 처자 집에 남자가 들어오니까요.”
“괜찮아요. 이런 적 많은 걸요.”
“네…?”
퇴근 후, 수현씨의 집에 도착해서 약간 죄책감을 가지고 들어왔다.
혼자사는 자취집 치고는 꽤 큰 집. 방도 두 개나 있어서 나도 모르게 정말 혼자사는집 맞냐고 생각하게 된다.
청소도 매일 하는지 벽지도 심플한 문양이면서 때가 타지 않았고, 바닥도 광이라도 낸 것처럼 LED 조명이 반사되는 것이 보였다.
부엌도 요리하기 좋게 적당히 싱크대와 인덕션, 도마 부분이 나뉘어져 있었다.
“여기가 제 방이에요.”
“오….”
집 전체의 느낌과 다른 이질적인 문. 방음부스이다 보니 내부의 온도가 약간 높았고, 바닥 제질도 달랐다. 한쪽 구석에는 퀸 사이즈 정도 되는 침대가 있고, 마주 보고 있는 벽에 컴퓨터와 마이크, 방송용 장비로 보이는 것들이 잔뜩 있었다.
“이건….”
“아, 크로마키라고, 뒷배경을 가려주는 장막같은 거예요.”
“아하.”
녹색으로 둘둘 말려 있는 게 기둥에 매달려 있었다. 두루마리 한가운데에는 끈이 있어서, 잡아당기면 당길 수 있었다. 내심 잡아당기고 싶었지만 관뒀다.
“아, 배고프시죠. 저녁 뭐 드실래요? 배달 시키려구요.”
“음…… 뭐가 맛있나요?”
“여기 도시락도 맛있고 또… 아 여기! 초밥도 맛있어요.”
“그럼 초밥으로…….”
옛날부터 버릇 들어서 그런지, 남에 집에 와선 밥을 잘 먹지 못한다. 음식점에선 잘만 들어가는데, 희한한 일이다.
그나마 초밥은 조각조각 뭉텅이로 되어 있어서 먹을 수 있다.
“한 시간 정도 걸린다네요.”
“아… 네.”
한 시간이면 꽤 늦겠는데….
“계산은 제가 할게요. 이렇게 오신 것도 감사하니까….”
“고마워요. 그래서, 전 뭘 하면되죠?”
“혹시 PC게임 잘하세요?”
“글쎄요……. 옛날에 많이 하긴 했는데….”
결혼하기 전까지는 학교 갔다오면 주구장창 게임만 한 것 같다. 주말도 포함해서, 나영이랑 만나지 않은 날은 전부 게임에 쏟았을 정도다.
유희가 나오고부터는, 계속 일>집>일>집을 반복하며, 내 일상의 반 이상이 잘려 나갔다. 물론 다 유희를 위해서라 후회는 하지 않는다만….
“괜찮아요. 알려드릴게요. 일단 여기 앉아 보시겠어요?”
딱 봐도 좋아 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푹신해서 그런지 몸이 저절로 뒤로 넘어간다.
“어이쿠.”
“아하하. 처음 앉아본 사람들 다들 그러더라구요.”
“하하…….”
나이 처먹고 이런 추태를 보이다니, 부끄럽다.
“크흠. 이 게임인가요?”
헛기침을 해서 화제를 바꿔, 바탕 화면에 게임 아이콘처럼 보이는 것을 가리키며 자연스럽게 말했다.
“아, 네. 혹시 아세요?”
“알긴 아는데… 보기만 했지 해 보지는 않았어요.”
X튜브로 자주봐서 알긴 안다. 뭔가 캐릭터들이 스킬을 쓰고, 포탑을 무너뜨리는 게임. 옛날에도 이런 게임을 했었다. 지금은 서비스 종료를해서 참 아쉽긴 하지만….
그 게임과 이 게임이 다른 점은, 시점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고, 모두 사람 캐릭터라는 것이다. 때문에 현실적인 스킬들이 주를 이룬다.
“부장님이 하실 캐릭터는 이거예요.”
“아, 이거.”
히트맨.
아마 최근에 나온 캐릭터로 안다. 정장을 입고, 안에는 나이프를 숨기고 있으며, 나이프를 던지거나 독극물을 먹여서 독살시키는 캐릭터다.
“아시나 보네요?”
“자주 보는 영상에 나와서요.”
“아~ 그럼 먼저 한 판 해 보실래요?”
“네 뭐….”
조작법은 그때 게임할 때와 똑같아서 나름 적응하기 편했다. 시점도 그대로고, 맵도 거의 비슷했다.
다만….
‘쓸데없이 조잡해졌어….’
다들 사람이란 설정이 붙어서 그런지, 스태미나가 내려가면 저절로 넉다운에 걸린다. 그래서 틈틈이 물도 마셔줘야 하고, 스킬을 제대로 맞추면 한 번에 죽는 쓸데없는 현실 고증을 했다.
“우와~ 의외로 잘하시네요!”
“뭐… 그래 봤자지만요.”
조작감이 익숙해서 그런 거지, 버벅거리는 건 여전했다. 게다가 상대는 AI봇이다.
그건 그렇고, 왜 갑자기 게임을 시키는 거지?
“수현씨. 그런데 게임은 왜 시키는 거죠?”
“아 그게……. 이번 방송 컨셉이 ‘일반인 아저씨들은 게임을 잘할까?’ 이거든요.”
“아하….”
한마디로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은 게임을 잘하는가 인가…. 띠동갑이 아저씨로 보인다니 좀 아쉽구만. 아저씨가 맞지만.
그래도 내 나이 대에도 게임을 하는 스트리머는 많고, 개중에는 랭커도 있다. 뭐, 이번 컨셉이 일반인 아저씨니 나와 조건이 딱 부합하긴 한다만…….
그래도 사람들 앞에 서기는 싫단 말이지….
“ㅎ, 혹시 껄끄러우신가요…?”
“아, 아뇨! 솔직히 사람들 앞에 서는 게 껄끄럽긴 하네요…. 그래도 이왕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일단 노력은 해볼게요.”
“감사합니다!”
“…….”
또 한 번 내 손을 잡는다. 살결이 부드러워서 무심코 만지작거릴 뻔했다. 이러면 안 되지. 희롱을 넘어서 추행이 되어버리잖아.
“그럼 방송시작할게요~”
“ㅂ, 벌써요?”
“네. 30분이나 지났는 걸요.”
“아…. 네.”
“저, 옷 좀 갈아입고 올게요~”
“아, 네….”
화면 한쪽에 떠 있는 제어판 같은 프로그램에 방송시작 버튼이 눌리고,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화면 한쪽에 채팅들이 우수수수 올라가는 게 보인다.
내가 뭐 건들 수도 없으니 일단은 가만히 있기로 했다.
잠시 후 부스가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수현씨가 들어왔다.
“…!”
화장은 얇았지만 립스틱은 새빨간 것을 발랐고, 검은색과 붉은색이 적절히 섞인 코르셋 비슷한 레오타드가 상반신과 하반신, 그것도 중요한 부분만 가렸다.
머리와 꼬리뼈에는 길쭉하게 뻗어 한쪽은 힘없이 고꾸라진 토끼귀 장식과 몽실몽실 동그랗게 생긴 토끼꼬리 장식이, 하반신은 회사에서 본 것과 같은 검은색 팬티 스타킹을 입고 있다.
목에도 초커 비슷한 걸 하고 있고, 팔에는 커프링크스 대신 가벼운 손목보호대를 하고 있었다.
‘이거…….’
완전한 바니걸이잖아…….
하반신 쪽에 피가 쏠리는 것을 손으로 최대한 눌러 단단해지는 것을 방지했다.
이런 복장을 하면서 방송하는 건가? 하고 망설이는 사이, 화면이 우리를 비추는 캠 화면으로 바뀌어 있었다.
“부장님. 가면 저쪽에서 마음에 드시는 거 쓰시면 돼요.”
“아, 네.”
대충 가장 눈에 띈 삐에로 가면을 쓰고 대기하고 있었다.
“돼하~ OL돼지들 하이라는 뜻~”
설마… 이대로 방송 진행하는 거야…?
~~~
「아빠 오늘 늦어. 저번에 말한 그 사람이랑 있어.」
아빠에게서 톡이 왔다.
“오늘도…?”
최근에 계속 조금씩 늦게 오더니, 역시 그 여자와 뭔 짓을 한 게 틀림 없다. 최근에 집에 오는 표정도 어딘가 계속 들뜬 기분이었으니까.
‘설마…….’
분명 강수현 그 여자와 같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대로 말해준 것이 고마우면서도 뭔가 화가 났다. 그런 이상한 옷 입고 수금하는 여자가 뭐가 좋다고.
“하아….”
그 여자랑 제발 아무 일 없기를….
「Pranco.님께서 방송을 시작하셨습니다」
갑자기 울리는 알림. 혹시몰라서 팔로우 해놨더니, 알림이 왔다. 분명 아빠는 이 사람이랑 같이 있다고 했는데, 휴방하지 않는 건가?
방송에 들어가자, 오른쪽 한쪽으로 채팅창이 우수수수 올라가는 모습들이 보였다.
「오 열렸다」
「ㄷ하 ㄷ하」
「ㄷㅎㄷㅎ」
「ㄷㅎ」
「안녕하세요」
곧이어 페이드인이 되면서, 강수현이 화면에 비췄다.
“……!”
완전한 바니걸 복장. 보정도해서 그런가, 안 그래도 하얗던 피부가 더 하얗게 보였다. 게다가 저 가슴골, 뭔가를 끼워 넣으면 터질 정도로 부푼 가슴이 눈에 띄었다.
이런 꼴로 방송을 해서 유명해졌다니. 정말 상스럽기 짝이 없다. 뭐, 저마다의 마케팅 포인트가 있으니 내가 상관할 건 아니지만.
“돼하~ 돼지들 하이라는 뜻~”
「돼하」
「ㄷㅎ」
「ㄷㅎ」
「돼하」
그 인사에 채팅창이 수두룩하게 올라간다. 시청자는 1000명이 넘었고, 분마다 도네이션이 마구 터졌다. 상당수의 인지도를 가진 듯했다.
“오늘은 저번에 예고한 대로 게스트가 있어요. 현역 아재 특집. 다들 기대되나요?”
「이걸 진짜로 데려오네」
「오 기대기대」
「아저씨 배 나옴?」
「ㅋㅋㅋㅋ 배 나왔으면 나랑 똑같아서 몰입감 ㅆㅅㅌㅊ일 듯」
「찐따 돼지들 과몰입 ㄴ」
게스트까지 부르는 건가? 분명 방송 정보를 보니 종합게임 스트리머라고 적혀 있다.
그러고 보니 방제가…….
「낼모래 마흔 아저씨한테 최신 게임 시키기」
늙으면 게임 못한다는 편견을 깨기 위함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다니, 과연 인지도가 높을 만 하다. 뒤에는 크로마키인지 녹색 장막이 쳐 있었다.
시청자들의 도네이션과 같이 나오는 음성에 대답을 해주다가, 캠화면이 작아지고, 게임화면이 보였다.
“그럼 시작해 볼게요~ 쨘~ 오늘의 게스트. K씨~”
「와 떡대 봐」
「몇 살임? 20대?」
「이젠 신입까지 꼬시누 ㅋㅋ」
「40대로 전혀 안 보이는데」
「ㄹㅇ 주작아님?」
…….
삐에로 가면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남성이 캠 안으로 들어와 몸을 쭈뼛쭈뼛대며 강수현의 옆에 앉는다.
와이셔츠로 안쪽으로 보이는 말랐으면서도 약간 붙어 있는 근육이 꼭 아빠와 닮았다.
‘잠깐, 설마…….’
─늦게 들어올 거 같으니까 저녁 안 차려도 돼.
설마 늦게 들어온다는 게…….
강수현의 상메에 있던 Pranco, 아빠가 늦게 온다는 메시지. 분명 강수현도 직장인이니 모든 조건이 부합하는 OL에 관한 방송까지….
톡 사진대로라면 강수현은 저 여자가 맞을 것이고, 그렇다면 저 가면쓴 사람은….
“아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