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딸이 내게 집착한다-1화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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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유희.

* * *

오늘은 반차를 냈다.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들어가세요~”

“아, 부장님! 이거 한 번만 봐주세요!”

“……여기 오타났어. 그리고 여기도. 최 과장한테 양식 좀 달라고 해서 다시 써. 최 과장. 혜진 씨한테 양식 좀 보내줘.”

“네에. 혜진씨. 몇 번이나 말해요! 좀 제대로 확인하라고!”

“죄송합니다….”

후우. 요즘 애들은 다 좋은데 너무 덜렁인다니까.

왜 사람들이 경력 있는 신입을 원하는지 알 것 같다. 이래서야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야 하잖아. 사수는 제대로 안 가르치는 거냐고.

…내가 할 일 이었지 참.

“그럼 가보겠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부장님~”

교육부.

경력 있는 신입이라는 회사 슬로건에 따라, 신입사원 또는 인턴으로 들어온 사람들을 3개월간 교육시킨다.

무리한 업무는 시키지 않고, 신입과 인턴에 딱 맞는, 단순 문서작업이나 접대하는 걸 교육한다.

내가 남에게 뭐라고 못하는 성격이라, 화내는 일은 다 최 과장이 맡고 있다. 늘 미안하게 생각한다.

나한테는 또 성격이 180도 바뀌는 거 보면, 저 화내는 것은 컨셉인 것 같다.

“김 부장님, 퇴근 하세요? 카드 찍어드릴까요?”

“아, 응. 고마워.”

“넵~”

경리인 지희 씨는 일도 척척 잘하고, 성격도 싹싹해서 좋은 사람이다. 혜진씨가 저렇게 될려면 몇 개월이나 걸릴까. 곧 정식 입사 추천 날인데, 지금 상태로 봐선 영 아니란 말이지…

“혜진 씨!!! 확인 좀 하고 제출해요 확인 좀! 이런 사소한 거 하나하나가 기업의 얼굴이라고! 혜진 씨 얼굴도 이렇게 엉성해요? 아니잖아요! 본인 화장하는 것처럼 해봐요!”

“네에….”

역시 안 될 거 같다.

~~~

낮에 퇴근하는 지하철은 정말 한산하다. 이대로 누워도 될 정도로 좌석 한 줄이 전부 비어있다.

물론 그런 짓을하면 바로 박제되겠지만.

집에 도착하고,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렀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집에 와도 맞아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고 2때 사고를 치는 바람에 유희가 태어났고, 보육원에 보냈다가 그 사이에 이혼했다.

이 젊은 나이에 이혼이라니, 부서 사람들이 알면 크게 놀랄 것이다.

유희가 집에 있는지, 신발장에 신발이 있었다.

‘오늘 공강이더랬지.’

최대한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유희가 초등학생이 될 무렵, 차마 아이에게 부모가 없다는 상처를 줄 수는 없어서, 홀몸이지만 다시 유희를 데려왔다.

하지만 유희는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내게 말한마디 하지 않는다. 내가 오면 자기 방으로 샤샥 들어가서 문을 잠가버린다.

오늘은 그것도 아니고, 오기 전부터 방문이 잠겨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문너머로 들릴까 해서 늘 혼잣말을 한다.

그래도 아빠 대접은 받는다. 지금처럼 밥을 차려주거나, 빨래를 해주는 등, 효심이 지극한 효녀이다.

─내 옷.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슬슬 브래지어 찰 나이가 됐을 때,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은 유희의 목소리였다.

어찌저찌 내 빨래도 유희가 대신 해주는 꼴이 되었지만, 딱히 불만을 표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얼굴도 안 마주치려 하니 불만이고 뭐고 없겠지만.

「필요한 거.

램 16G, SSD 256G, 그래픽카드: MTX 2060, 공냉 쿨러, 키보드, 마우스, 모니터……」

처음으로 내게 뭔가 요구를 해온 날. 꽤 구체적으로 사양이 적혀 있었다. 물론 쪽지로 말이다.

스마트폰을 사준 이후에는 톡으로만 대화한다. 그것도 자기가 부탁할 게 있을 때만.

이렇게 된 건 자제력 없었던 내 탓이니까 그러려니 한다. 매일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

유희가 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독립시켜주기 위해, 이미 자금을 모아둔 상태다. 이런 아버지랑 같이 살아봤자 뭣도 안되니 말이다.

“윽.”

내 빨래를 거두려고 가자, 빨랫대에 널린 유희의 속옷이 보인다. 분홍색의 작은 레이스가 달린 세트. 컵 크기를 보니 꽤나 크게 자란 거 같다.

‘……뭔 생각을 하는 거야 미친놈이.’

아무튼, 괜히 유희의 옷을 건드렸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르니 내 옷만 잽싸게 빼와서 누웠다.

거실에 TV가 있긴 하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도 아니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반차를 쓴 이유는 내 전 부인을 만나기 위해서다. 오랜만에 유희의 모습을 보고 싶다나. 양심도 없지. 나도 자세히 본 적 없는 유희를 보려하다니.

쿵.

유희 방은 내 방 바로 옆이라 가끔씩 귀를 대면 락 음악을 듣는지, 일렉 기타 소리가 방안을 채운다.

하지만 오늘은 락 같은 것은 들리지 않고, 벽에 머리를 부딪혔는지 쿵 소리가 났다.

아플텐데, 무슨 일 있나 해서 귀를 대 보았다.

“하아…. 하아….”

벽에서 바로 귀를 뗐다.

물론 그런 것에 흥미를 가진 나이가 됐긴 했지만… 설마 내가 온 것을 눈치 못 챘나?

‘이러면 안되는데….’

내 안의 본능은 벽 너머 들리는 소리를 더 듣고 싶다고 울부짖고 있었고, 내 몸은 저절로 벽에 기대어졌다. 그리고 내 귀는 자연스럽게, 벽에 밀착했다.

“하아… 아빠…. 아빠앗…!”

……내가 잘못 들은 건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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