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준 상대이기 때문인지 제정신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자세를 취하고 있음에도 부끄럽거나 껄끄러운 기분은 들지 않았다. 눈을 반쯤 뜬 채로 수인은 재차 올라오는 자극에 긴 한숨을 쉬었다.
수인의 벌려진 다리 사이에 영도의 얼굴이 있었다. 입으로는 수인의 걸 담고 손으로는 계속해서 엉덩이 사이를 지분거렸다. 그 때마다 질척거리고 젖은 소리가 나면서 두 사람의 흥분을 높여갔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 싶었다. 헐떡거리던 수인은 영도의 머리카락을 그러쥐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잡을 따름이지만 점점 손으로 힘이 들어간다. 아픔을 느끼며 영도는 고개를 들었다.
성기를 물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입술은 번들거렸다. 성기를 뱉어내고 여전히 손으로 수인의 성기를 자극하던 영도가 위로 올라왔다. 수인의 얼굴 쪽으로 고개를 숙이고 그의 목과 귀 사이의 부분에 입술을 눌렀다. 입을 열자 하아. 하고 뜨거움 숨결이 토해내 진다. 간지러운 느낌이었다. 뭐라 해야 하나. 심장이 벅차오르는 걸 느끼며 수인은 양 팔로 영도의 목을 끌어안았다.
"수인아."
속삭이면서 수인의 목과 뺨과 턱 부근에 끊임없이 키스를 떨어뜨린다.
쪽쪽. 거리는 젖은 소리에 수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파르르. 닫힌 눈꺼풀이 떨린다. 영도의 손이 수인의 몸을 쓰다듬었다. 가슴과 배로 내려와 재차 위로 올라간 손이 가슴을 그러쥐었다. 그런다고 잡힐 살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손바닥을 오므리며 몇 번이나 가슴을 쥐더니 손가락으로 유두를 잡는다. 작은 살이지만 건드리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영도의 목을 끌어안고 있었던 수인은 그쪽으로 눈을 내리떴다. 영도의 손가락에 잡혀 눌린 유두가 보였다. 보는 것 뿐인데도 흥분하게 된다.
"읏-."
짤막한 소리를 토해낸 수인의 허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 순간 영도는 본인의 배로 퍼지는 뜨뜻한 액체를 느꼈다. 잽싸게 아래로 손을 내려 수인의 성기를 쥐고 위, 아래로 흔들어 사정을 도왔다. 몇 번 몸을 떠는 순간 수인은 곧 진정을 했다. 하지만 힘든지 눈을 감은 채로 헐떡거린다.
"빠르네."
중얼거림을 들은 수인은 바로 눈을 떠 영도를 바라봤다. 눈빛이 굳어있는 걸 본 영도는 한쪽 입술 꼬리를 위로 올렸다.
"왜? 이런 말은 듣기에 별로야?"
"......부끄럽단 말이에요."
"뭐가 부끄러워. 우리는 이런 사이잖아."
영도는 수인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영도의 다리가 아래로 내려가 다리를 벌린다. 이제는 영도 게 들어오려는 거로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자 몸으로 더 힘이 들어간다. 경직된 수인의 얼굴을 본 영도가 웃었다. 이를 드러내며 웃는 순간 턱 끝으로 땀이 맺혀 뚝 떨어진다.
"무서워?"
떨어지는 땀을 보고 있었던 수인은 그가 묻는 말에 바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멍하다 싶은 얼굴로 있던 수인은 느리게 눈을 깜박이다 영도를 바라봤다. 그는 다정하기만 한 눈길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용히 있던 수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걸 대답으로 들은 영도는 수인의 허리 아래쪽에 베개를 밀어 넣었다. 베개를 넣자 엉덩이가 조금 위로 올라가게 된다. 그 사이에 자리를 잡은 영도가 허리를 내렸다.
아래로 손을 내려가 들어갈 장소를 제대로 확인했다. 엉덩이 안 쪽으로 감추어진 부분을 손가락으로 더듬고는 그대로 천천히 밀어 넣었다. 주름을 벌리고 성기가 삽입이 된다. 두꺼운 부분이 밀려 들어오고 그 뒤를 이어서 연결된 부분이 점차 수인의 안으로 사라져갔다. 계속해서 밀고 들어오는 느낌에 수인은 겁이 났다. 잠시 기다려 보라는 의미로 영도의 팔을 붙잡았다. 그와 동시에 영도가 끝까지 밀어 넣었다.
"......윽!"
짧은 소리가 나오고, 그 후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소름이 돋았다. 뒤로 고개를 젖힌 수인은 눈을 감은 채로 숨을 헐떡거렸다. 마찬가지로 눈을 감고 있던 영도는 긴 한숨을 토해내며 긴장한 채로 있는 수인의 뺨에 손을 댔다.
"미안. 끝까지 넣어버렸어."
다 넣어놓고서 이제와 미안하다고 하면 어쩌자는 건가.
순간적으로 그리 생각을 하면서 주먹으로 영도의 팔을 퍽-하고 때렸다. 그래봤자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영도는 웃으면서 성기를 빼내고 재차 넣었다. 느리게 반복해서 삽입을 하는 동안 수인은 눈을 천천히 떴다.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영도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들어갈 때마다 젖은 소리가 난다."
"......."
눈이 마주치는 순간에 하필이면 저런 말을 하다니.
이번에는 턱을 날려버릴 뻔 했다. 때마침 영도가 깊이 밀고 들어오지만 않았다면 정말 그리 했을 터였다. 처음에는 장난을 치려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굵직한 성기가 지속적으로 내벽을 비비며 들어왔다. 쑤셔 넣는 동안 안쪽 살이 자극을 받아 달구어졌다.
성기의 형태와 모양을 아직 기억하지 못하는 내벽은 안으로 파고 들 때마다 처녀처럼 놀라며 급히 영도의 걸 감쌌다. 그 서투른 느낌이 참을 수 없었다. 끝까지 밀어 넣자 꽉 찬 살이 성기를 잘라낼 듯이 물어왔다. 어금니를 악물고 가까스로 사정감을 참은 영도가 중얼거렸다.
"윽. 최고야."
고작 이런 말로 밖에 표현을 할 수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수인이 재차 영도의 팔을 때렸다. 피부를 때리는 찰진 음향에 영도가 엄살을 부리듯 '아야얏.'하고 소리를 냈다. 수인을 똑바로 바라보며 헤죽거리고 웃었다.
"왜? 창피해?"
얼굴이 벌겋게 익은 채로 수인은 헐떡거렸다.
"이상한 말은, 하지 말아요."
"왜? 원래 이런 건 말로 바로바로 표현을 해줘야 하는 거야. 숨기거나 감출 일이 아니라고. 어디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솔직하게 말해야지만 성적인 쾌감은 더 커지는 거야."
"그, 그런 게 어디에 있다고-."
"어디에 있긴. 여기에 있지."
으차-하는 소리를 내며 영도가 허리를 움직였다. 엉덩이 사이로 굵직한 물건이 푹푹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했다. 영도가 한 말 때문에 괜히 소리를 의식하게 된다. 그 외에도 예민한 안쪽 살을 슬슬 비벼주는 덕분에 흥분하게 된다. 수인의 목과 가슴이 벌겋게 익어갔다. 이마로 식은땀이 맺혔다.
흐트러진 수인의 눈동자가 흐릿하게 번진다. 손가락을 깨문 채로 헐떡거리는 그 모습이 왜 이렇게 섹시한지 모르겠다. 영도는 수인의 허리를 붙잡고 안쪽으로 깊이 찔러 넣었다. 짤막한 탄성이 토해져 나온다.
멈추지 않고 굵직한 것으로 계속해서 수인의 배 안을 찔러댔다. 몸이 바들거리고 떨렸다. 수인의 성기가 발기가 되어서 애액을 뚝뚝 떨어뜨리는 걸 본 영도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여기가 좋지? 그렇지?"
"그, 그만-."
"그만이 어디에 있어. 지금부터 시작이지."
앞으로 한참을 더 할 생각이었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좋기만 했다. 여기가 바로 천국이지.
수인이 버둥거리는 걸 억누르며 영도는 더 깊고 농밀하게 수인의 안으로 성기를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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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부터는 기억이 나지 않고 있었다. 나중에 정신이 들었을 때 지금 엎드려 있구나 싶을 따름이었다. 침대 위를 누르는 손이 떨리고 있었다. 몸은 그보다 훨씬 더 심하게 흔들렸다. 뒤에서부터 커다란 게 계속 밀고 들어왔다. 강한 힘으로 인해 몸이 쓰러질 뻔한 것을 가까스로 견디고 있었다.
헐떡거리는 동안 입 안으로 침이 고인다. 간신히 그걸 삼키려는데 재차 찔러왔다. 내장까지 닿는 듯한 시큰한 느낌에 수인의 얼굴이 괴롭게 일그러진다. 목에 걸린 침 때문에 기침이 나왔다. 입을 벌리자 한 줄기 침이 흘러나왔다. 그걸 닦아낼 수도 없었다.
더는 못할 것 같아 아래로 떨어지는 엉덩이를 받쳐 들면서 영도는 더 깊이 넣었다. 배가 그득 차는 것 같은 압박감에 수인의 얼굴이 괴롭게 일그러졌다.
수인의 목으로 고개를 숙여 살을 깨물었다. 저릿한 느낌에 수인이 재차 짤막한 소리를 냈다. 그걸 들으며 영도는 눈빛을 가라앉혔다.
"기분, 좋지?"
묻는 목소리가 나직하게 쉬어있다. 그 음성에 소름이 돋는다.
수인은 정신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수인의 반응에 벌을 내린다는 듯 영도는 유두를 잡아 비틀었다.
"아읏!"
저릿거리는 감각에 수인은 몸을 비틀었다. 몸으로 힘이 들어가자 반쯤 박혀있던 성기가 끝까지 들어왔다. 재차 소리를 내자 몸 안의 것이 기운차게 날뛰었다. 내벽으로 힘이 들어가서 자극을 준 것에 기뻐하듯이 말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영도의 손은 수인의 유두를 지분거렸다. 손가락을 살살 돌리다가 손톱으로 툭 튀어나온 살을 찌른다. 시큰한 감각에 수인은 재차 헛숨을 삼켰다. 집요하게 괴롭혀대는 손길에 수인은 결국 말을 토해냈다.
"왜, 거기만-!"
"그러면 지금 제일 기분 좋은 곳을 말해봐."
헐떡거리는 숨을 죽이면서 애써 침착한 척을 해대고 있었다.
혀를 내밀어 수인의 목을 사악 핥아 올렸다. 어린 피부가 부들거린다. 영도는 눈을 내리떴다. 눈동자 안쪽이 혼탁해져 있었다.
"어서."
유두를 잡아 비틀듯이 돌리자 수인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헛숨을 삼키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허공에서 덜렁거리는 본인의 성기가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성기는 착실하게 발기가 되어 있었다. 그걸 눈으로 보는 순간 숨이 턱하니 막혔다.
아닌 척 해도 결국에는 느끼고 있었다. 영도가 해대는 말과 집요한 행동에 흥분을 하면서도 아닌 척을 해대고 있는 꼴이라니. 수치스럽진 않지만 창피했다. 너무너무 부끄러웠다. 아직은 영도의 페이스를 당해낼 수 없었다.
눈 아래가 발갛게 익어버린 수인은 바들거리고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그, 그런데는 없....."
그 순간 영도가 성기를 쿠욱 밀어 넣었다. 수인이 헛숨을 들이키는 걸 느끼며 영도는 여유롭게 한쪽 입술 꼬리를 올렸다.
"없다고 말하면 내 분신은 더 미처 날뛸걸? 이건 사내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거든."
그걸 증명하겠다는 듯 안의 움직임이 거칠어졌다. 다시 몸이 흔들렸다. 시트를 붙잡고 있던 수인의 손등으로 점점 힘이 들어간다. 맞닿은 두 개의 몸에서 떨어지는 땀과 애액으로 인해 침대 시트는 진작 지저분해져 있었다.
반쯤 벌린 입에서 타액이 흘러나왔다. 이제는 그걸 닦아낼 여유도 없었다. 영도에게 잡혀서 몸이 흔들렸다.
"여기, 이렇게 비벼주면 기분 좋지?"
수인은 아래 입술을 깨물었다.
듣지 않으려 하는 상태를 간파한 듯 움직임이 조금 더 농밀해진다.
안으로 깊이 들어와서는 얇게 내벽의 예민한 구석을 찔러댔다.
"이렇게 찌르면 좋지? 그렇지? 말해봐."
"그런 걸......."
"말 할 수 없다고 하지 말고. 어서. 우리들 사이에선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그 순간 커다란 게 빠져나갔다. 아주 오랫동안 몸 안에서 제멋대로 굴던 것이었다. 그런 게 갑자기 빠져나가자 안이 횡 해졌다. 벌려져 있던 부분으로 찬 기운이 들어오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그 순간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스스로도 의외라서 굳은 채로 있으려니 팔이 잡혀 그대로 침대 위로 눕혀졌다.
똑바로 눕혀진 채로 수인은 다리를 벌리고 위에 올라탄 영도를 바라봤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지금껏 수인이 본 적 없는 거친 사내가 예리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사로잡힌 듯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멍청하다 할 수 있는 눈길로 그를 바라보려니 영도의 한쪽 입술 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자. 나를 보고 말해봐. 이걸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말이야."
영도의 귀두가 수인의 주름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들어오지 않고 끝으로 주름을 쿡쿡 찌른다. 자극을 충분할 정도로 받은 주름은 그 때마다 움찔거렸다. 마치 어서 들어오라는 듯 그 부분이 열리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 느낌을 부정이라도 하는 듯 수인은 손을 주먹 쥐었다.
영도가 손을 내려 수인의 손목을 붙잡았다. 천천히 내려간 손가락이 수인의 손을 붙잡는다. 고개를 숙이긴 하지만 입을 맞추진 않았다. 아주 가까운 곳까지 고개를 숙인 채로 영도는 수인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봤다. 마치 탐색을 하듯이 말이다. 문득 수인은 마음 한쪽이 스산해지는 걸 느꼈다. 영도가 저런 식으로 이쪽의 눈동자를 빤히 보는 게 싫었다. 수인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지 말아요."
"싫어. 볼 거야."
수인의 턱을 붙잡아 앞으로 돌렸다. 더는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 그 턱을 단단히 붙잡은 채로 수인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이상했다. 왜 이러는 건가 싶었다. 영도가 이미 이 눈동자에 대해 알고 있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쳐다보는 건 원치 않았다. 수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렇게 날 보지 말아요."
"왜 보지 말라는 건데?"
"그냥 보지 말아요. 싫으니까."
"그럼 나도 싫어. 난 네 눈을 볼 거야."
영도의 고집부리는 말투는 수인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가 단순히 말투를 따라하면서 장난을 치고 있는 거라는 걸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수인은 당황해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얼굴을 가리려고만 드는 것에 영도는 수인의 손목을 잡아 아래로 내렸다.
그쯤 되자 수인도 정말 화가 났다. 이런 식으로 굴 거면 당장 위에서 내려오라 말할 셈이었다.
"왜 감추려 들어? 굉장히 예쁜데."
영도는 더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코앞으로 얼굴을 댄 채로 바라보는 것에 수인은 숨을 죽였다. 그런 수인을, 영도는 몽롱한 눈길로 바라봤다.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더 이상 수인의 손목을 잡고 있지 않는다. 영도는 수인의 얼굴과 눈 주변을 조심스레 더듬었다. 잘못 만졌다가 무슨 일이 생길 것을 염려한다는 듯,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손길이었다. 그러는 동안 수인은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눈을 가리기 위해 들었던 손은 천천히 시트 위로 놓여졌다. 한결 차분한 안색이 된 수인을 바라보며 영도는 속삭였다.
"정말 좋아한다니까."
가만히 있는 수인의 뺨으로 미미하게 붉은 기운이 감돈다. 느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의 얼굴이었다. 그게 사랑스러웠다.
시선을 마주하는 두 사람 사이로 따스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훈훈하기 그지없었다. 영도의 눈이 가늘게 휘어졌고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디가 좋아?"
조금 전과는 영판 다른 얼굴로 헤죽거리고 웃으며 묻는 말에 수인은 숨을 삼켰다. 경직되어 있던 것도 잠시, 곧 분통을 터트렸다.
"무슨-!"
이 분위기에서 그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거야! 이 무드도 없는 남자가!
남한테 촌닭이라 할 게 못 돼! 당신이 더 촌스러워-!
한 소리 해주려던 찰나 다리가 확하고 벌려졌다.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영도가 자리를 잡고는 한 번에 수인의 안으로 파고 들어왔다.
"아윽!"
방심한 상태로 있던 터라 갑자기 밀고 들어오는 것에 미처 대비를 하지 못했다.
다리를 위로 들어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던 수인의 배가 빠르게 오르내렸다. 그러는 동안 조금 더 움직이기 편한 쪽으로 자세를 잡은 영도는 수인의 허벅지 안쪽으로 손을 넣었다. 젖어서 끈적거렸다. 그 감촉을 즐기듯 나직이 중얼거린다.
"크윽. 죽인다."
듣기에 거슬리는 말이었지만 조금 전의 충격이 너무도 커서 수인은 뭐라할 수 없었다. 흐릿해진 눈으로 천장을 올려다 보려니 갑자기 주변이 흔들린다. 이제는 익숙하게 몸 안에서 움직이는 영도를 느끼며 수인은 손가락을 꼬물거렸다.
몇 번을 더 흔들자 수인의 손이 힘겹게 영도의 등 뒤로 둘러진다. 영도를 꼬옥 끌어안은 채로 수인은 안으로 파고드는 뜨거운 걸 힘겹게 받아들였다.
영도의 물건이 내부를 끊임없이 쑤셔댔다. 거센 움직임에 소름이 돋았다. 입을 벌리자 헐떡거리는 호흡 밖에 나오는 게 없었다.
아. 기분 좋아.
문득 드는 생각에 수인은 고개를 들었다.
영도와 재차 눈이 마주쳤다. 그는 웃었다. 장난스럽게 웃는 그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던 수인도 살짝 웃어버렸다.
정말 어쩔 수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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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아래가 욱신거렸다. 하는 도중에 기분이 좋아 열에 들떠 이런저런 말을 해댔는데 그 소리를 듣고 흥분한 영도가 너무 거칠게 움직인 탓이었다. 그래도 하는 중에는 아픔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하고 난 후가 문제가 될 따름이었다.
엎드린 채로 간신히 잠이 들어있었던 수인은 얼굴을 쓰다듬는 손길에 천천히 눈꺼풀을 열었다. 느낌 상으로는 그냥 눈을 감았다 뜬 것이지만 머리는 맑았다. 어쩌면 꽤 긴 시간이 지난 걸지도 몰랐다.
멍하니 있다가 위로 눈을 들자 영도가 보였다. 너무 가깝게 얼굴을 밀착한 채로 영도는 수인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웃었다.
"미안해. 깼어?"
웃는 얼굴이 하나도 미안해하는 기색이 아니다.
너무 만족스럽고 좋아하는 그 얼굴을 본 수인은 가만히 있다가 옆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다가 재차 영도를 보고는 그쪽으로 몸을 붙였다. 조금 움직이기만 해도 허리 아래가 얼얼했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좀 나아진 것 같았다. 어쩐지 허리 부근이 따뜻한 것 같아 그쪽으로 눈을 내리뜨자 영도가 수인의 등을 토닥였다.
"황토팩 올려놨어."
뜨끈한 것의 정체는 바로 황토팩이었구나.
전에 영도가 황토팩을 들고 왔을 때 '젊은 사람이 그런 거에 의존하면 안되는 거예요.'라고 구박 아닌 구박을 하던 수인이었다. 알고 보니 이건 영도가 사용할 게 아니라 이쪽에게 건넬 것이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사용 용도를 물었을 때 시원하게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어물거리더라.
"많이 힘들어?"
수인은 등을 쓰다듬는 커다란 손길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조금. 처음보다는 더 나른한 것 같아요."
차라리 처음이 나았다. 처음 하고 났을 때에도 몸을 움직이기가 불편하긴 했어도 이렇게 아프진 않았다. 학원에 다닌 지 얼마나 되었다고 결석을 하는가 싶지만, 이런 몸 상태로는 밖으로 다닐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영도는 금방 미안한 얼굴이 되었다.
"미안해. 자제가 안 됐어."
"괜찮아요. 내가 조른 것도 있으니까."
하품을 참으며 그 말만 했을 뿐인데 커다란 손이 조금 더 내려가 엉덩이 쪽에 닿는다. 그 순간 수인은 당장 눈을 떠 영도를 바라봤다.
"여기서 더 안할 거예요."
날카롭게 쏘아보며 하는 말에 영도는 오해하지 말라는 듯 대꾸했다.
"내가 달라붙으면 하려고 그러는 줄 알아?"
"아니라고는 할 수 없잖아요. 거기 딱딱하단 말이에요."
지금 영도는 수인의 다리에 본인의 다리를 감고 있었다. 때문에 지금 수인의 허벅지 안쪽으로 딱딱하게 기립이 된 무언가가 아까부터 강하게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다. 수인의 지적을 받은 영도는 모른다는 듯 옆으로 눈동자를 움직였다. 그 뚱한 척 하는 얼굴에 수인은 한숨을 쉬며 눈을 내리떴다.
엄청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에 반해 집에 들어올 때에는 축축 늘어지기만 하던 영도는 되레 생생해졌다. 얼굴로 광택마저 나는 것 같았던 그는 수인의 목 뒤로 손을 올리곤 간지럼을 피듯이 살살 쓰다듬었다.
".......간지러워요."
"아. 미안해."
그리 말하고 영도는 손을 뗐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재차 손이 닿는다. 그 손은 수인의 등을 만지작거렸다. 점점 내려가던 손이 황토팩을 넘어가 엉덩이 쪽에 닿는다. 엉덩이 라인을 쓰다듬다가 그 사이로 들어간다. 소름이 돋았다.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닌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있다간 영도가 가만히 있어도 수인 쪽에서 먼저 몸이 달 것 같았다.
"나 그냥 잘래요."
"자지 말고 이야기나 하자."
"내일 일 나간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제 내일이 아니고 오늘이 되어 버렸지."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었다. 어쩐지 점점 졸려지는 것 같다.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느끼며 웅얼거렸다.
"지금 몇 시에요?"
"6시 정도는 된 것 같은데."
"그러면 몇 시에 나가요?"
"있다 8시 정도에 나갈 거야."
눈을 감은 채로 멍하니 있던 수인은 지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 눈을 위로 들었다. 놀란 듯 벙 찐 얼굴이 된 수인을 본 영도가 헤실거리고 웃었다. 그걸 본 수인은 속았구나 싶었다.
"오늘은 좀 늦게 나가도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
"솔직하게 말하면 보나마다 못하게 했을 거 아니야. 피곤해서 안 된다고."
"당연하지요."
"뭐가 당연해. 난 정말 하고 싶었다고."
영도는 수인의 허리가 아프지 않을 범위에서 그의 몸을 꼬옥 끌어안았다.
"정말은 일주일에 3번 정도는 꼬박꼬박하고 싶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은 한 달에 1번 뿐이잖아.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아니. 왜 그런 걸 일일이 정하고 있는 거야.
입을 앙 다문 수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영도는 수인이 이런 류의 대화에 익숙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해서 영도가 익숙한 것도 아니었다. 수인이 얼굴을 붉히거나 무안해하고 창피해 하니까 그게 더 재미있어서 자꾸만 골려주게 되는 거다.
켈켈 거리듯 웃은 영도가 수인의 몸을 더 끌어안고 그의 이마에 입술을 누른다. 거기만 하면 다행일 거다. 이마 말고도 눈이나 코, 뺨과 입술 등 닿는대로 쪽쪽거렸다. 입을 벌려 입술을 덮더니 세게 빨아들인다. 너무 집요하고 능글맞게 구니까 수인도 더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왜 이러냐는 듯 주먹으로 퍽퍽 때려도 영도는 떨어지지 않았다.
한 10시에만 나간다 했으면 당장 발로 걷어차 줬을 거다. 하지만 9시에 나간다고 하지 않은가. 1시간 정도 누워 있다가 곧 일어날 사람이니 세게 밀쳐내지도 못하겠다.
"우와. 좋다."
수인이 아프지 않을 범위 내에서 그의 몸을 꼬옥 안은 영도는 눈을 감은 채로 웅얼거렸다.
"딱 지금이 천국이다."
영도가 하는 말을 듣기만 하던 수인은 영도에게 완전히 감싸인 상태였다. 그의 팔에 머리를 베고 가슴팍에 얼굴을 댄 채로 있던 수인은 이미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아직은 영도처럼 솔직하게 지금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말을 할 수 없었다. 하면 되겠지만 목구멍에서 딱 걸리는 느낌이었다. 말이 밖으로 튀어나가는 게 아니고 입 안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왜 그럴까. 다른 때에는 그냥 잘 말하는데.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런 간질거리는 상황에 익숙치 않다는 걸 말이다.
"딱 1시간만 이러고 있자. 답답해지면 말해."
".....답답하지 않아요."
"그럼 다행이고."
수인을 안고 그의 등을 지속적으로 토닥인다. 커다란 아기를 품고 재우려고 하는 것 같았다. 때문에 점점 수마가 몰려든다. 의식이 깜박깜박하는 동안 영도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다음 주 쉬는 날에는 어디로 놀러갈까? 평소에 가고 싶었던데 있으면 말만 해."
"가고 싶은 데는 없어요. 그리고 조금씩 다니면서 길눈 넓히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조금씩 길눈을 넓힌다는 말에 영도는 당장 '집이랑 학원만 다니라니까.'라는 말을 할 뻔 했다. 그러다가 구속을 하면 서로에게 좋지 않고, 결국 서로에게 물리게 될 거라는 시경의 말을 떠올렸다. 침착하게 굴자. 차분하고 어른스럽게 굴자. 애가 탄 모습을 보이면 이쪽만 손해인 셈이었다.
"겨울산 같은데 올라가 볼까? 그게 아니면 놀이공원 같은 데는 어때? 백화점가서 쇼핑이나 할까. 근사한 야외로 나가서 맛있는 거 먹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런 것도 다 괜찮지만 그냥 집에 있어요."
"응? 왜? 나 하루 다 쉬는 거야."
중간에 일하러 나가는 일도 없을 터였다. 걱정을 하지 말라며 허풍을 좀 떨어볼까 싶었던 영도이나 수인이 중얼거리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그냥 집에서 형이랑 같이 있는 편이 어디 좋은데 가서 맛있는 거 먹는 것보다 훨씬 더 좋아요."
".....수인아."
대단한 감동이었다. 일부러 꾸미려 하는 말이 아니고 진심이라는 게 느껴졌기 때문에 더더욱 감동이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벅차오름이 가슴 속을 가득 채우는 걸 느끼며 영도는 말없이 수인의 머리를 한 팔로 꼬옥 끌어안았다.
머리가 눌려서 조금 욱신거렸다. 겨울이라 해도 난방이 잘 되는 방인지라 이렇게 달라붙어 있으면 땀도 나고 그랬다. 그래도 떨어지고 싶거나 달라붙은 피부의 끈적거림이 기분 나쁘게 여겨지지 않았다.
영도가 일 같은 거 나가지 말고 계속 이렇게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
공부 욕심이 많은 수인이나 오늘 만큼은 공부에 공자도 생각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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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옷들로 가득 채워진 큰 방이 하나 있는 만큼 영도가 소유한 옷들의 가지 수는 엄청났다. 마음에 드는 자켓 같은 경우는 색상 별로 가지고 있는 것도 허다했다. 그런 만큼 영도는 무척이나 옷을 잘 입었다.
학원을 다니면서 바깥에 다니는 일이 늘어남에 따라 싫어도 사람들이 입는 옷 같은 게 눈에 들어왔다. 저 옷에는 이렇게 입어야 겠구나. 머플러나 모자는 저렇게 쓰면 멋있는 거로구나. 같은 걸로 말이다. 구두를 신던 영도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두어번 발목을 움직인다. 그러더니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신발장에서 워커를 꺼내 갈아 신었다. 끈을 바로 매면서 영도는 서있는 수인을 올려다봤다.
"오늘 학원 갈 거야?"
묻는 폼이 '오늘은 가지 말아라.'라고 말하고 싶은 뉘앙스였다.
가지 말았으면 싶을 정도로 몸 상태가 안 좋게 만든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영도였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표현을 하지 못하는 것일 터였다.
어떤 식으로 대답을 하면 영도가 안심을 하고 조금 더 편안하게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던 수인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쉴게요."
"그래. 잘 생각했다."
손을 털면서 일어선 영도는 만면에 미소였다. 그게 참 속 보였다. 저렇게나 좋을까 싶어 물끄러미 바라보려니 영도도 본인의 실수를 깨달은 건지 어색하니 헛기침을 했다. 그러다 재차 손을 비비곤 수인의 팔을 툭툭 쳤다.
"그러면 다녀올게. 오늘도 늦을 거야."
"바빠서 당분간 늦을 거라는 건 알고 있으니까 나 신경 쓰지 말아요."
"그래. 다녀올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발을 멈춘 영도는 뒤로 고개를 획 돌렸다.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며 말했다.
"학원 정말로 안 가는 거다? 오늘은 그냥 푹 쉬어. 들어올 때 맛있는 거 사올 테니까."
혹여라도 수인이 이상한 말을 할까 싶었던 영도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문을 닫고 그냥 나가버렸다. 쌩하니 가버리는 것에 수인은 피식. 하고 웃으면서 현관 쪽으로 나갔다.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닫히게 되어 있지만 안전 체인은 직접 걸어줘야 하는 거였다. 문을 꼼꼼하게 다 닫은 후 수인은 거실로 이동했다.
절뚝거리는 걸음걸이가 좀 이상했다. 허리에 한 손을 올린 채로 거실에 서서 주변을 살피던 수인은 베란다 쪽으로 이동해 고개를 들었다.
오늘 참 볕이 좋았다.
"이불이나 널까."
몸이 이러니 오랫동안 앉아만 있어야 하는 학원은 무리였다. 집에 있으면서 빈둥거리면서 있는 것도 뭐하고 공부를 하려 해도 자리를 잡고 앉아야 할 일이었다. 움직이기 거북해도 가만히 있는다 해서 풀리는 게 아니었다. 힘들지 않게 천천히 움직이면 되는 거겠지. 거기까지 생각을 한 수인은 오늘 하루 날 잡고 이불빨래나 하자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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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에게서 라디오를 켜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혼자 집에 있을 때에는 곧잘 CD를 감상하곤 했다. 영도는 다양한 CD를 가지고 있어서 그것들 중 아무거나 골라서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영도가 가수로 활동할 당시의 CD를 발견했던 지라 최근에는 그것만 듣고 있었다. 영도가 그걸 안다면 분명 난리를 치겠지만 곡이 엉망이니 좋니를 떠나 수인이 듣고 싶었기 때문에 10곡의 노래를 무한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이제는 어느새 그 노래를 제법 흥얼거리게 되었다.
넓은 베란다에 이불을 널고 아래를 보다가 길을 쓸고 있는 최씨 영감님을 발견했다. 아래에서 이쪽이 보일까 싶어 수인은 이불 위에 양 손을 올린 채로 아래를 살펴봤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최씨 영감이 고개를 들었고 수인과 눈이 마주쳤다. 활짝 웃은 최씨 영감이 크게 손을 흔들었다.
"수인아~"
큰 목소리는 아니더라도 잘 들렸다.
어제 군고구마를 드릴 때 얼굴을 보긴 했지만, 최근 공부를 한다고 최씨 영감과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수 없었던 수인은 손을 흔들다가 아래로 고개를 숙였다.
"있다가 점심시간 때 놀러갈게요."
혹 아랫집이나 윗집에서 시끄럽다 할 것 같아서 작은 목소리로 말한 건데 다 들린 모양이었다. 최씨 영감에 '된장 주먹밥 만들어 와라~'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수인은 알았다는 느낌으로 크게 동그라미를 그려보였다. 최고라는 듯 양 쪽 손의 엄지를 세우는 걸 보며 수인은 양 입술 꼬리를 위로 올렸다.
솔직히 학원보다는 맨션에 있는 게 편했다. 최씨 영감도 있고 듬직한 형같은 지용도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형이라 한다면 영도가 있었지만 지금은 뭐라고 해야 하나.
"이쪽보다 훨씬 더 애 같아."
중얼거린 수인의 뺨이 조금 붉어졌다.
왠지 영도를 애처럼 만드는 게 본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괜히 혼자서 생각을 하고 혼자 부끄러워한다. 얼굴로 열이 확확 오르는 걸 느끼며 헛기침을 하려니 경쾌한 노래가 울려 퍼졌다. 수인은 거실 바닥에 두었던 핸드폰을 찾기 위해서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소파 위에서 발견을 했다.
영도인가 싶었으나 액정 위에 뜬 것은 모르는 번호였다. 이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었지만 왠지 학원에서 온 전화 같기도 했다. 원래라며 8시 반 정도에 가야 하는데 지금 벌써 1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연락을 취하는 걸지도 모르지 . 아니더라도 상관없었다. 영도에게 배운 대로 '이상한 전화면 길게 말하지 말고 그냥 끊어버려.'를 하면 되니 말이다. 수인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지금 어디야?]
낯선 목소리였다. 그런데 너무도 친근하게 바로 물어온다.
예전 준식과의 일이 떠오른 수인은 자연스럽게 경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누구신지요?"
[나야. 마재도.]
"......아."
워낙 이름이 독특해서 기억하고 있긴 했지만 설마하니 그가 핸드폰으로 연락을 취할 줄은 몰랐기에 반응이 좀 느렸다. 전화를 받으면서도 수인은 이 사람이 어떻게 이쪽 번호를 안 건지 궁금했다. 그걸 내색하지 않은 채로 조용히 있으려니 마재도가 재차 말을 시작했다.
[오늘 왜 학원에 안 왔어? 나도 방금 와서 지금 알았네?]
"몸이 안 좋아서 쉬기로 했어."
[감기야? 어제는 괜찮았잖아.]
"아침에 일어났더니 목이 좀 아파서......."
솔직하게 모든 걸 말할 순 없기에 대충 둘러대고 있었다. 거기까지 말을 하던 수인은 지금 상황이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마재도에게 이런 식으로까지 변명의 말을 할 필요가 어디에 있나 싶었던 거다. 그냥 입 다물고 말까. 끊어버릴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럼 오늘 점심은 어떻게 되나?'라고 물었다.
[오늘 같이 점심 먹기로 했는데. 아프면 못 나오겠네? 그러면 난 두 번 연속 차이는 건가?]
"저녁 약속 같은 경우엔 난 아무런 말도 한 적이 없어."
[그래. 내가 일방적으로 정한 거였지. 너랑 친해지고 싶었으니까.]
마재도는 웃었다. 본인이 한 말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우습다는 투였다. 하지만 수인은 웃지 않았다. 무표정이라 할 수 있는 얼굴로 뚱하니 서있었다.
[있다 오후에라도 나올 수 없는 거야? 내일은 어떻게 될 것 같아?]
"내일은 학원에 가야지."
[그래? 그러면 내일 같이 점심 먹는 거다? 내가 맛있는데 알고 있으니까 그리로 가자.]
자꾸만 귀찮게 구는구나. 처음에는 그럭저럭 넘긴다 쳐도 지금은 아니었다.
당장 전화를 끊고 싶은 걸 애써 참으며 수인은 물었다.
"왜 이렇게 나랑 밥 먹는 거에 집착을 해?"
[네가 자꾸 튕기니까 그러지.]
"......튕긴다고?"
[그래. 지금까지 나한테 이렇게까지 퇴짜를 놓던 사람은 없었단 말이야.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그런데도 너랑 같이 밥 먹고 싶으니까 포기는 할 수 없고. 그래서 자꾸만 집요하게 굴게 되는 거지. 나도 알아. 지금 내가 이상한 행동을 취하고 있다는 걸 말이야.]
주절주절 이상한 말을 길게도 하는구나 싶었다. 수인이 귀 담아 듣기엔 어려움이 많은 그런 말들이었다. 이 이상한 말을 마냥 듣고 있을 필요가 있는걸까. 문득 드는 생각에 수인은 잠자코 있다가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핸드폰을 진동으로 해둔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진동소리가 들렸다. 무시했다.
일단 이불은 다 널었고 나머지는 세탁기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부지런히 움직이면 오늘 하루에 다 끝낼 수 있겠지만 몸이 안 좋아서 살살 움직이려니 절반 밖에 못했다. 나머지는 주말 즈음에 날 잡고 해야 할 듯 싶었다.
그 전에 점심 준비나 할까. 최씨 영감님한테 들은 말이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새 밥을 해서 된장 주먹밥이나 몇 개 만들어야 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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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석이라 해서 자리가 딱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셋이 모이면 앉을 곳은 대부분 한 곳 밖에 나오지 않았다. 산책로로 조금 들어가면 언덕 비스무리한 곳이 있는데, 두툼한 돗자리를 깔고 앉으면 거기가 바로 식탁이 되었다. 준비한 음식은 소박했지만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참 좋았다.
"음. 바로 이 맛이야."
오랜만에 먹는 것 같은 된장 주먹밥을 손에 든 채로 최씨 영감은 감동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옆에서 같이 맛을 본 지용 또한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맛있군요."
최씨 영감에 비해 담담한 중얼거림이지만 그 속으로 알게 모르게 감탄이 스며들어 있었다. 급한 대로 준비하느라 된장 주먹밥과 김치. 그리고 무말랭이 밖에 챙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굉장히 맛있게 먹어줬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개를 다 먹고 두 개째를 집어 드는 동안 수인은 얌전히 앉아만 있을 따름이었다. 그걸 먼저 발견한 지용은 의아한 듯 물었다.
"왜 수인씨는 아무것도 안 먹는 겁니까."
"만들면서 집어먹었더니 생각이 없네요."
"그렇습니까."
그렇다는 의미로 수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약간의 거짓말이 첨부된 말이었다. 이상하게 뭘 먹으면 속이 부글거리는 것 같아 탈이 날까봐 일부러 안 집어먹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느낌으로 수인은 가지런히 앉아만 있었다.
그런 수인을 빤히 바라보며 최씨 영감이 한마디 했다.
"수인이 자네 요새 연애하나?"
"네?"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수인은 최씨 영감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듯 바라보는 수인을 위, 아래로 살피던 최씨 영감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래도 좀 이상하단 말이야. 옷이 변한 것 말고도 분위기가 전하고 많이 달라. 뭐라 해야 하나. 색기가 흐른다고 해야 하나. 자네 요새 좀 많이 섹시해. 그렇지않나?"
갑작스럽게 물음이 던져지자 지용은 당황한 듯 굳은 얼굴이 되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가 좀 달라지긴 했지요. 아마 자신감이 생겨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지용은 입 안에 남아있던 밥을 모두 목구멍 안쪽으로 넘겼다.
"머리카락 자르고 얼굴을 다 들고 다니면서 조금씩 강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게 자신감으로 이어지니 전하고 달라 보이는 건 당연하지요. 전보다 훨씬 더 보기 좋습니다."
지용의 말에 수인은 말없이 본인의 뺨에 손을 댔다.
실은 지금도 고개를 다 들고 눈동자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게 무섭긴 했다. 혹여 이쪽을 본 사람들이 싫은 표정을 짓거나 이상한 말을 한다면 그건 모두 수인에게 상처로 남게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고개를 들고 다님으로 인해 하나 깨닫게 된 게 있었다. 사람들이 남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걸 말이다.
유심히 보면 나와 다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될 터였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해야 할 일이나 갈 길에 바빠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사람 눈을 빤히 보다가 괜한 시비에 휘말리면 어쩌나 싶었는지 그들은 최대한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뜨거나 먼 곳을 바라보며 걸음만 재촉할 따름이었다.
사람이 많이 탄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수인은 바로 코 앞에 서있는 사람이 얼굴을 똑바로 보려하지 않고 다른 곳을 응시하는 것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덕분에 마음은 편해도 알게 모르게 이상하다는 생각만 자꾸 하게 되었다. 그게 정확하게 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여자 친구는 없는 거야?"
"여자 친구는......."
수인은 말 끝을 흐렸다. 영도와 만나는 것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하면 좋을 지를 모르겠다. 영도를 여자친구인 양 말을 바꾸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나, 아니라 치면 아닌 거였다. 머뭇거리는 동안 최씨 영감은 그거 보라는 듯 손가락을 부딪쳤다.
"분명 여자친구가 있는 거야. 학원 다닌다고 부지런을 떨 때부터 알아봤어. 이래서 옛날 속담 하나 틀린 거 없다 하는 거야.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는 거거든."
"아니에요. 그런 건 아니라-."
"괜찮아. 젊을 때 여자를 안 만나면 언제 만나. 마음껏 만나. 그래서 사랑이 싹트고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 싶으면 결혼하면 그만이야."
"결혼이라니."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때문에 제대로 된 대꾸를 하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으려니 지용이 도움을 주었다.
"수인씨는 아직 학생입니다. 그런 말은 시기상조죠."
"지용이 너야말로 남 말 할 때가 아니라 지금부터 여자 좀 알아봐. 언제까지 여기서 일할래. 기둥서방으로 못 들어갈 것 같으면 그냥 참한 여자 하나 찾아서 결혼이나 해버려."
"결혼자금도 못 모았습니다. 이런 상태로 결혼했다가 누굴 고생시키라고요."
"어쭈, 꽤나 바른 생각을 하는 척 구는데?"
"누구처럼 여자 가슴만 파면서 침 흘리는 변태 영감이 아니긴 하지요."
"뭐?! 내가 언제 여자 가슴만 팠다는 거야!"
"제가 언제 영감님 보고 뭐라 했습니까."
"이 녀석이 지금 밥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뱃속에서 밥알이 다 서게 만드네."
흥분한 최씨 영감과 뚱한 경비 지용.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투닥거리던 걸 보던 수인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영도하고 자신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일단 하고는 있고 영도가 몇 번이나 사랑한다 말을 했는데.
전에도 말했지만 수인은 영도와 이리 된 것에 대해서 후회를 하지 않았다. 되레 이렇게 될 수 있도록 그가 먼저 유혹을 한 것도 없잖아 있었다. 정말은 넘볼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이었던 영도와 포옹하고 키스를 하고 아침에 함께 일어나 밥까지 먹는 지금 상황이 꿈만 같았다. 언제고 깨어질 수 있는 그런 꿈 말이다.
가능하다면 오랫동안 둘이 함께 하고 싶었다. 하지만 바깥사람들 눈으로 볼 때, 여자친구 없이 사내 둘이서 살기만 하는 게 제대로 된 것으로 여겨질까. 영도는 대한민국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만한 유명인이고, 그에게 있어 주위 사람들의 평판이라는 건 무척이나 중요한 거였다. 그런데.......
"수인씨. 이거 안 먹으면 제가 다 먹겠습니다."
지용은 된장 주먹밥을 집어 들었다. 수인은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 드세요. 전 정말 괜찮아요."
"최근에 다니는 학원은 좀 어떠십니까? 공부는 할 만 합니까."
"재미있어요. 확실히 강사님들의 실력이 좋아서 설명을 들으면 바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수인씨는 나중에 정말 좋은 대학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니까요."
지용의 말에 수인은 난색을 표하며 '그건 그렇지 않아요.'라고 중얼거렸다.
그런 수인을 바라보는 지용은 훈훈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열심히 하십시오. 다른 건 몰라도 공부는 하는 만큼 돌아온다고 하더군요."
지용의 말에 최씨 영감은 깊은 공감을 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지금도 내가 후회를 하는 게 바로 그거야. 왜 정신 차리고 공부를 하지 않았나 싶은 거지. 우리 때만 하더라도 어느 대학만 나오면 다들 우러르는 분위기였는데 말이야. 그런데 오늘은 왜 학원에 안 갔어?"
"몸이 안 좋아서요."
"그래? 감기에 걸렸나? 기침은 안 하던데."
"지금은 열이 내려서 괜찮지만 아침에는 안 좋더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학원에 가는 건데 그랬나 봐요."
"또 모릅니다. 찬바람 안 맞아서 괜찮아진 걸지도요. 그런 상태일 때 방심하면 호되게 감기 걸리는 법입니다. 집에서 하루 정도는 푹 쉬세요."
지용의 걱정이 담긴 말에 수인은 대답을 하는 대신에 고개를 끄덕였다.
꽤나 다정한 분위기를 풍기는 두 사람이었다. 옆에서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최씨 영감은 뭔가 좀 이상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너 묘하게 수인이한테는 다정하다. 나한테도 좀 상냥하게 굴면 안 되는거냐."
"역겨운 소리 하지 마십시오. 잘 먹은 음식들이 다 넘어오려고 합니다."
"뭐?! 이 놈이 이제는 막말도 서슴치 않게 하네!"
재차 시작되는 투덕거림에 옆에 앉아있던 수인은 아하하. 하고 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