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세븐스팟 9집 미니 앨범 타이틀 곡, ‘갓(GOD)’의 컨셉은 동양풍의 판타지로 정해졌다.
단신 라인인 유호, 여민, 테일러는 구미호의 이미지를, 장신 라인인 인한, 주언, 라울리는 저승사자의 이미지를 모티브로 해 안무부터 의상, 뮤직비디오까지 통일감 있게 만들어졌다.
키가 같은 테일러와 라울리의 경우, 테일러가 몸무게가 더 적게 나간다는 이유로 단신 라인으로 밀려나게 됐다. 메인 댄서가 각각 나뉘어야 한다는 이유도 한몫을 했다.
앨범의 수록곡은 총 6곡으로 정해졌으며 그중 유호가 작사·작곡한 보컬 라인의 곡도 포함됐다.
회사에서도 제대로 작정한 모양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돈 들인 티를 팍팍 내며 지원해 준 덕분에 티저 영상부터 댓글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그만큼 정산받을 때 무참히 까이기는 하겠지만 멤버들은 모두 개의치 않아 했다.
[7 SPOT_OFFICIAL ⓥ @7SPOT · 3시간
[방송] 잠시 후 NBS <뮤직카운트>에서 세븐스팟의 ‘갓 (GOD)’ 무대가 최초 공개됩니다.
우리 원스팟 여러분! 꼭 본방 사수해 주세요!
#세븐스팟 #7SPOT#갓 #GOD]
드디어 그토록 고대하던 세븐스팟의 컴백 날이었다.
“다들 정말 밥 안 먹을 거야?”
수형은 전날 밤부터 겨우 에너지 바 몇 개로 끼니를 때운 멤버들이 걱정돼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이 거절의 답이었다.
“이따 본 무대 끝나고 먹을게요.”
“지금 뭐 먹으면 진짜 체할 거 같은데.”
“저는 과일 몇 개 집어 먹었어요.”
오랜만의 컴백 무대라 그런지 다들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앞으로 고된 스케줄이 연이어 진행될 텐데, 수형은 누구 하나 쓰러질까 봐 걱정이었다. 하지만 멤버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정작 자신도 속이 더부룩해 소화제를 챙겨 먹은 참이었다.
“그럼 눈이라도 붙여. 본 무대까지 아직 시간 좀 남았는데.”
“저희 진짜 괜찮아요. 형이야말로 빨리 앉아서 쉬세요.”
오히려 자신을 걱정해 오는 여민의 성화에 수형은 마지못해 의자에 앉았다. 그러면서도 눈으로는 계속 멤버들의 상태를 살피기 바빴다. 회사에서 도훈 이외에도 매니저를 한 명 더 붙여 줬음에도 남의 손에 애들을 맡기는 게 편치 않았다.
“나 여기서 동작 좀 더 크게 해야겠다.”
“왜? 괜찮은데?”
구석 소파 자리에 붙어 앉은 인한과 유호는 핸드폰 하나를 나눠 보며 카메라 리허설을 모니터링하는 중이었다. 사소한 동작까지 다 맞춰 놓은 탓에 따로 체크할 것도 없었지만 유호의 눈에는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인한과의 트윈 안무였다.
“너랑 나랑 덩치 차이 너무 심하게 나.”
“그러게, 살 안 빼도 된다니까.”
그게 과연 살의 문제일까. 다이어트는 같이 했는데 혼자만 더 쪼그라든 거 같은 느낌에 유호는 씁쓸해졌다. 역시 운동으로 뺐어야 했나. 도무지 근육이 붙는 체질이 아니라 식이만 죽어라 조절했더니 얼굴에 생기까지 잃어 가고 있었다. 피폐해 보이는 게 요괴 컨셉에는 찰떡이었지만.
“과일이라도 먹을래? 가져다줄까?”
“아냐, 괜찮아. 춤출 때 몸 무거워지는 거 싫어.”
“진짜 뼈밖에 안 느껴져서 그래.”
인한은 커다란 손으로 유호의 판판한 배를 이리저리 쓸며 말했다. 이제는 익숙한지 숨 쉬듯 이어지는 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근육도 있는데.”
“어디가?”
“잘 찾아봐.”
“그냥 살가죽 같은데.”
“아닌데.”
“안 되겠다. 앞으로는 시간 날 때마다 운동시켜야겠어.”
사악한 얼굴로 이어진 인한의 말에 유호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진짜 운동을 말하는 거겠지. 뭐가 됐든 한동안은 고달파질 게 분명했다.
“저희 이제 슬슬 이동해야 할 거 같은데요?”
무대 순서가 임박해 던져진 도훈의 말에 세븐스팟 멤버들은 일제히 심호흡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이리 모여 봐.”
그리고 테일러가 멤버들을 불러모았다. 세븐스팟 멤버들은 곧바로 동그랗게 한데 모여서 한쪽 손을 내밀어 서로 겹치기 시작했다.
“무리하지 말고 리허설 때만큼만 하자.”
테일러는 멤버들을 둘러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일부러 과격한 말보다는 긴장을 풀만 한 멘트를 골라 말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팀 구호를 선창했다.
“Don't get lost!”
“We are sevenspot!”
세븐스팟 멤버들은 동시에 구호를 외치며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다음 매니저들의 안내에 따라 대기실을 나서 무대로 향했다.
“그럼 1년 만에 우리의 곁으로 돌아온 여섯 명의 멋진 남자들, 세븐스팟의 컴백 무대부터 만나 볼까요? 나와 주세요.”
음악방송 MC의 멘트와 함께 세븐스팟의 컴백 무대가 시작했다. 리허설 때와 달리 꽉 채워진 방청석에는 함성이 가득했다. 한곳에 모여 있는 원스팟들은 오늘따라 유달리 머릿수가 많아 보였다. 세븐스팟 멤버들은 벅차오르는 마음을 겨우 억누르며 노래를 이어 나갔다.
컴백 무대는 뮤직비디오 못지않게 화려하게 이루어졌다. 전과 다르게 댄스팀이 12명이나 동원됐고 안무가 여럿을 기용해 만든 비싼 안무가 웅장한 사운드를 빛내 줬다. 이 정도면 중소 티를 벗은 수준이 아니라 대형 소속 아이돌과 비견해도 될 정도였다.
데뷔 후 처음으로 아쉬움이 남지 않은 무대였다.
“야, 신태윤아. 너네 이번 앨범 돈 좀 들였나 보다?”
그걸 티오스의 한정현도 굳이 굳이 알아차리고 아는 체를 해 왔다.
무대를 완벽하게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가는 도중 하필 엘리베이터 앞에서 딱 마주친 선배 그룹 티오스에 세븐스팟 멤버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테일러만이 고개를 빳빳이 든 채 정현에게 대응했다.
“상관 말고 너네 팀 무대나 잘해.”
“우리 오늘도 우승 후보거든? 1위 하면 소감에 말해 주리?”
“꺼져.”
테일러의 험한 말에도 정현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소리까지 내면서 웃었다. 뒤이어 석원도 테일러에게 말을 걸었다.
“이번 타이틀 곡, 태윤이 네가 쓴 거지?”
“네.”
“노래 진짜 좋더라.”
“……감사해요.”
테일러는 한껏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석원은 웃으면서 응원의 말도 전했다.
“그래. 내일 무대 준비도 잘하고.”
석원은 한결같이 다정하게 굴며 테일러를 지나쳐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테일러는 그 말에도 응답해 줬다.
“네, 형도요.”
“와. 저거 대하는 태도 다른 거 봐.”
“적당히 해, 정현아. 태윤이 그만 괴롭히고.”
“형은 맨날 나한테만 뭐라 그러지. 누가 같은 팀인지 모르겠네.”
엘리베이터가 닫히면서까지 들려오는 정현의 말은 못 들은 척 무시하기로 했다.
음악 방송 1위는 너무나 당연하게 티오스가 차지했다. 1군 아이돌이 아닌 이상 컴백 주부터 1위를 꿈꾸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테일러는 부디 남은 두 주 동안 기적적인 일이 일어나길 바라며 무대 뒤로 퇴장하려고 했다.
“우리 티파니 여러분들 너무 감사드리고요. 앞으로도 함께해요.”
“네. 그리고 오늘 제 오랜 친구인 테일러가 속해 있는 세븐스팟이 컴백했는데요. 더불어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저 새끼가. 명백히 약 올리는 게 분명한 정현의 멘트에 테일러는 치를 떨었다. 누가 지 오랜 친구야. 웃기고 있어. 언젠가 꼭 복수해 주리라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도 했다.
“네. 세븐스팟도, 테일러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 물론 저희도 꾸준히 사랑해 주시고요.”
한술 더 뜨는 석원의 멘트에는 괜히 민망해 빨리 자리를 떴다. 아무튼 피곤한 인간들이었다.
“형. 인기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시끄러워.”
옆에서 깐족대는 라울리까지 더해서 말이다.
도명 - [친구?]
테일러 - [아뇨]
언제 방송을 챙겨 본 건지 도착해 있는 도명의 메시지에 테일러는 딱 잘라 부정의 답장을 보냈다.
도명 - [그럼 동료?]
테일러 - [적이에요]
곧 티오스를 깨부숴 주리라는 각오도 함께였다.
컴백 1주 차의 스케줄은 정신없이 진행됐다. 한 주에 6개나 되는 음악방송을 하나씩 다 돌았고 라디오에 자체 콘텐츠에 단체 예능까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이 이어졌다.
그리고 일주일간 이루어진 음반 초동 판매량 집계는 26만 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마무리됐다. 무려 역대 음반 초동 기록의 100순위 안에 포함되는 성적이었다.
“미쳤나 봐.”
테일러는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손으로 두 눈을 꾹 누르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다른 멤버들은 울 타이밍을 놓치고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구경을 하느라 바빴다.
“나, 태윤이 우는 거 처음 봐.”
“저도요.”
제일 먼저 입을 연 주언의 말에 유호가 곧바로 동조했다. 뒤이어 여민도 농담조로 테일러에게 질문을 던졌다.
“형. 벌써부터 울면 어떻게 해요?”
“이 형 지금 저작권료 때문에 신나서 우는 거야.”
라울리는 어김없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테일러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 덕분에 눈물이 쏙 들어갔으니 고마워해야 하는지는 의문이었다.
바로 다음 음악 방송부터 세븐스팟은 1위 후보에 오르게 됐다. 경쟁 그룹은 예상했듯이 티오스였다. 두 팀이 맞붙은 첫 번째 음악방송에서는 아까운 점수 차로 티오스가 1위를 차지했다. 테일러는 절로 나오는 탄식과 함께 데뷔 후 처음으로 정현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너네 팀 설마 다음 주 쇼 랭크도 나가냐?”
“어. 왜? 내가 스케줄 못하겠다고 깽판 좀 놔줄까?”
모처럼 던져 본 질문에 돌아온 정현의 대답이 형편없어서 테일러는 가운뎃손가락을 올려 간단하게 대화를 종료했다. 쇼 랭크는 케이블인 데다가 방송 출연자만 1위 트로피를 주는 프로그램이라 그나마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티오스에 의해 저지당할 예정이라니, 테일러는 티오스와의 악연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중이었다.
“그럼 6월 첫째 주 KCN 음악 여행, 영광의 1위를 차지할 주인공이 누군지 알아볼까요?”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세븐스팟이 그토록 바랐던 환희의 순간이 드디어 찾아왔다.
“오늘의 1위는, 축하드립니다. 세븐스팟입니다.”
직접 보고 듣고도 믿어지지 않는 꿈같은 일이, 일어나고 만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