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정한 아이돌 멤버가 유죄인 이유 (92)화 (92/120)

#092

인한은 입을 맞춘 채로 유호를 안아 올려 침대로 향했다. 점점 가빠지는 숨에 유호의 가슴이 크게 들썩였다.

침대에서도 한참 이어지던 키스는 유호가 몸을 뒤틀며 인한의 어깨를 밀어내고서야 끝이 났다.

인한은 잠시 유호의 상태를 살피더니 망설임 없이 윗옷을 끌어 올렸다.

“야. 뭐 하는 거야?”

“키스를 꼭 입에만 하라는 법은 없잖아.”

인한은 그렇게 말하며 유호의 가슴으로 입을 가져갔다. 유호가 놀라 버둥대자 인한은 유호의 배를 꾹 누르며 제멋대로 굴었다.

“누가, 오면 어떻게 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구나, 생각하겠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거절해야 하는데. 유호가 어쩌지도 못하고 끙 앓는 소리만 내고 있자 인한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유호의 배에 쪽 하고 입을 맞추고 다시 옷을 정리해 줬다.

“장난이야. 얼른 씻고 와요.”

그렇게 말하며 인한은 유호를 일으키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유호는 울상을 지은 채 인한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왜?”

인한은 의아해하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손을 밑으로 가져갔다. 아. 그리고 깨달았다는 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큰일 낼 사람이네. 신성한 숙소에서.”

“아니, 네가 자꾸…….”

“형도 이제 키스로는 만족 못 하는 몸이 되어 버린 거지.”

인한은 짓궂게 웃음을 흘리며 다시 유호의 다리 사이로 자리를 잡았다. 곧 바지 지퍼가 내려갔고 인한이 계속해서 입맞춤 아닌 스킨십을 이어 가는 동안 유호는 입을 틀어막고 소리를 삼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누군가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일은 없었다.

“선찬이 형은? 봤어요?”

유호가 잘 준비를 모두 마치고 침대에 눕자마자 인한은 방의 불을 끄고 은근슬쩍 유호의 옆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내내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유호는 별 고민 없이 대답했다.

“응. 인사 나눴어.”

“인사만?”

“잠깐 대화도 했어.”

유호의 대답에 인한은 속상한지 유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계속 질문을 던졌다.

“나랑 만나는 건 알아요?”

“응. 알아.”

“다시 친하게 지낼 거예요?”

점점 생기를 잃어 가는 인한의 목소리에 유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인한에게 되물었다.

“그러지 마?”

인한은 잠시 고민한 후 유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아니. 형이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진짜?”

“응. 형이 친하게 지내고 싶으면…….”

관대한 애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과는 달리 인한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결국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그래도 웬만하면 그냥 아는 사이로만 지내는 게…….”

“알겠어. 네 말대로 할게.”

“응? 어떻게 할 건데?”

“너만 볼게. 너랑만 친하게 지내고.”

인한은 유호의 대답에 헤실거리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뭐 꼭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인한은 말만 그렇게 할 뿐 만족해하며 유호에게 다가가 쪽 하고 입을 맞췄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짧은 키스를 한 번 더 나눴고 아쉬움에 유호의 작은 품속을 파고들었다. 결국 유호가 나무라며 인한을 쫓아냈다.

“얼른 네 침대로 가. 이러다 들켜.”

“아무도 안 온다니까.”

“그래도 가야지. 약속했잖아.”

유호의 단호한 태도에 인한은 어쩔 수 없이 옆에 있는 자신의 침대로 향했다.

마지못해 떨어져 나간 것과는 달리 인한은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졌다.

유호만 괜히 옆자리가 허전한 느낌에 밤새워 뒤척이다가 새벽에야 잠이 들었다.

* * *

다음 날이었다.

숙소 거실에 세븐스팟 여섯 명의 멤버가 한데 둘러앉아 있었다. 이렇게 완전체로 모인 건 인한이 숙소를 떠난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껏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인한이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세븐스팟 계속해요.”

인한의 말에 주언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나머지 멤버들은 표정 변화 없이 인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저는 우리 팀이 실패한 그룹으로 남겨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제까지 세븐스팟은 뭉치면 죽는다의 대표적인 케이스이자 중소기업의 한계, 배척 심한 개인 팬 기조 팬덤의 문제점으로 거듭 언급되는 그룹이었다. 이대로 해체하게 되면 계속해서 아이돌 그룹의 잘못된 예시로 두고두고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

“기왕이면 중소의 기적, 역주행의 아이콘, 결국은 빛을 본 실력파 아이돌, 그런 그룹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인한의 간절한 호소에 모두가 숙연해졌다. 그리고 여민이 동조하며 말을 덧붙였다.

“형들도 이미 들어 알겠지만, 저랑 인한이는 지금 회사에서 세븐스팟 계속하고 싶어요. 그게 가장 최선이라고 판단했고, 배우 일이 뒷전이 돼도 상관없어요. 저희한테는 세븐스팟이 제일 중요해요. 형들도 그랬으면 좋겠고.”

“지금 회사를 믿어?”

라울리는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두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회사에서 멤버별로 대하는 취급이 다르니 입장 역시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인한은 바로 대답했다.

“회사는 안 믿는데 나는 형들을 믿어요. 우리 앞으로도 잘 해낼 거잖아.”

“여태는 우리가 잘 못 해내서 앨범이 안 됐어? 난해한 곡에, 말도 안 되는 콘셉트에, 구린 의상까지. 회사에서 뭐 하나 제대로 해 준 게 있었어야지. 그 와중에 비싼 굿즈만 죽어라 팔아 대니 있던 팬들도 다 떠났지.”

“다음 앨범부터 안 그럴 거야. 그 얘기까지 다 끝냈어.”

“그 말을 어떻게 믿어? 조기 해체 들먹이면서 재계약 유도나 하는 사람들이 퍽이나 그 말을 지켜 주겠다.”

라울리는 그동안 쌓인 게 많았는지 계속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인한은 어쩌다 보니 회사를 대변해 주는 입장이 되어 버렸다.

“러브샷 재계약 불발되고 신인 그룹은 주력 멤버가 학폭으로 활동 중단되는 바람에 회사가 많이 초조한가 보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재계약 어떻게든 성사시키려는 눈치고.”

“진작에 버려 놓고 결국 지들 필요하니까 다시 찾는다는 소리잖아. 재활용 좀 해 보려고.”

라울리의 강경한 입장에 인한은 곤란해졌다. 결국 보다 못한 테일러가 옆에서 지원 사격을 나섰다.

“나는 차라리 그렇게 대놓고 계산적인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뒤에서 구린 짓 하는 인간들보다는.”

“대놓고 착한 게 제일 낫지. 무슨 소리야?”

“지금 대표가 그릇이 작아서 그렇지, 인간적인 부분은 또 있잖아. 그동안 라울이 네가 대놓고 성질부리는 것도 다 받아 줬고.”

테일러의 계속되는 설득에도 라울리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주언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나는 꼭 회사 탓만은 아니라고 봐.”

의중을 알 수 없는 주언의 발언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주언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5년 동안 활동했는데 빛을 못 본 거면 그만큼 내가 끼가 없는 거 같기도 하고. 정말 무매력인가 싶고.”

“그게 무슨 소리예요? 형만 한 아이돌 보컬이 어디 있다고.”

여민이 놀라 부정해 봤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주언 역시 라울리와 같은 비관적인 태도를 보였다.

“요새는 노래보다 퍼포먼스가 더 중요하잖아. 어쩌면 처음부터 춤 멤버로만 팀을 짰어야 됐는지도 몰라.”

주언은 말을 뱉으면서도 참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와 팀 구성의 문제점을 따지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이제라도 퍼포먼스 위주로 가면 되죠. 뭐가 문제예요?”

“그냥, 내가 문제인 거 같아서.”

인한의 물음에 주언은 스스로를 탓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한은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왜 형이 형을 포기해요? 아무도 형을 포기 안 했는데.”

“…….”

“우리가 누구 덕분에 라이브 장인 소리를 듣는 건데. 세븐스팟이 이대로 해체하더라도 형이 대단한 사람인 건 변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형도 자꾸 자책하지 말아요.”

주언은 인한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 자신을 지지해 주는 동생들의 바람을 외면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인한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계약 기간은 군대 기간 제외하고 5년으로 합의 봤고 솔로 곡은 각자 한 번씩 내주겠다고 했어요. 그룹 앨범은 싱글 최소 세 장이랑 정규 한 장은 내주기로 했고. 이건 계약서에 명시할 거라 걱정 안 해도 돼요.”

생각보다 구체적인 계약 사항에 유호는 내심 놀랐다. 회사에게서 유리한 조건을 얻어 내기 위해 인한이 얼마나 치열하게 설전을 펼쳤을지 불 보듯 뻔했다.

“숙소는 그대로 지내는데 멤버 한 명 정도는 저희 집에서 같이 지내도 되고요. 그럼 방 하나씩 쓸 수 있을 테니까.”

그 와중에 인한은 유호를 숙소에서 빼낼 방법까지 구안해 착실히 이행했다. 유호만이 알아채고 흠칫댔다.

“제가 강요할 수는 없는 거니까 잘 고민해 보고 말씀해 주세요. 어차피 완전체 아니면 의미 없는 계약이니까.”

“너네 형은? 합의된 거고?”

이번에는 라울리가 인한에게 질문을 던졌다. 인한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이제부터 설득해야지.”

“설득이 안 되면?”

“받아들이게 될 거야. 그 문제는 걱정 안 해도 돼.”

인한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수한과 상의는 해 볼 생각이었지만 반대 의견을 수용할 생각은 없었다. 연을 끊자고 다시 한번 으름장을 놓더라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부디 이번만은 수한이 먼저 의견을 굽혀 주길 바랄 뿐이었다.

* * *

멤버들하고 대화를 마친 유호는 택시를 타고 서둘러 운성의 작업실로 향했다.

예정되어 있던 프로듀서 비조와의 신곡 녹음 날이었다. 인한은 곧 스케줄에 가야 하는데도 굳이 유호를 따라나섰다. 유호도 딱히 말리지는 않았다.

“안녕하세요. 운성이 형.”

합정의 작업실에 도착하자마자 유호는 해맑은 얼굴로 운성에게 인사를 건넸다. 몇 번 봐서 그런지 확실히 친밀도가 올라간 상태였다.

“안녕, 유호. 오늘도 쓸데없는 걸 달고 왔네.”

운성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유호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인한을 쳐다보며 말했다.

인한은 유호의 손을 꼭 잡은 채 등 뒤에 숨겨 놓고 있었다. 운성은 어이가 없어 인한을 나무랐다.

“경계 그만해라. 정인한아, 나쁜 마음 들려고 하니까.”

“오늘이야말로 형이랑 제가 절교해야 하는 날인가 봐요.”

“초대한 적 없는 불청객은 저기 구석에 짜져 있어.”

운성이 가리킨 곳은 정수기 옆 쓰레기통이었다. 인한은 들은 척도 않고 작업실 소파로 직행했다. 그다음 유호를 먼저 앉혀 놓고 냉큼 바로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운성은 못마땅한 듯 혀를 차며 두 사람의 건너편 자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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