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정한 아이돌 멤버가 유죄인 이유 (82)화 (82/120)

#082

선찬에 관한 얘기가 마무리되자 유호는 수한의 일도 인한에게 털어놓았다.

“나 오늘 낮에 회사에서 수한이 형 봤어.”

“우리 형을요?”

“응.”

유호의 말에 인한은 이마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질린다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룹 활동시키지 말라고 온 거겠죠. 정산할 때 투자금 까이는 거 아까울 테니까.”

유호도 예상했던 바였다. 인한은 혹시나 싶어 유호에게 물었다.

“우리 형이 형한테는 별말 안 했어요?”

“응. 그냥 인사만 나눴어.”

“다른 말은 안 하고?”

“그리고 너 잘 부탁한대.”

“우리 형이요?”

“응.”

“그래서?”

“알았다고 했지.”

유호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인한은 유호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감지했다.

인한은 조심스럽게 유호의 한쪽 손을 잡았다.

“형.”

“응?”

“우리 형 하는 말 신경 쓰지 말아요.”

“진짜 별말 안 했는데…….”

“나는 이제 형만 내 옆에 있으면 돼요.”

“…….”

“그러니까 형은 나만 보고 나만 믿어요.”

인한의 그 말은 다짐과도 같았고 약속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유호는 그 말이 진심임을 알았다.

인한은 계속해서 다정한 말투로 유호에게 얘기했다.

“알잖아요. 저 마음먹은 건 뭐든지 잘 해내는 거.”

유호는 어쩐지 쓸쓸해 보이는 인한의 얼굴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인한에게 물었다.

“뽀뽀해 줄까?”

“……네?”

예상치 못한 유호의 발언에 인한은 말문이 막혔다. 다른 말을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제 귀를 의심도 해 봤다.

유호는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한 번 더 인한에게 말했다.

“뽀뽀해 줄게.”

“나 위로해 주려고요?”

인한은 당장에 입 맞추고 싶은 충동을 겨우 가라앉히며 유호를 향해 은근하게 물었다.

“그건 아닌데.”

“그럼 미안해서?”

“그것도 아니고.”

“그럼?”

“좋아해서.”

유호의 대답에 인한의 입꼬리가 저절로 말려 올라갔다. 사실 유호가 먼저 나서서 뽀뽀를 해 준다는데 그 이유가 뭐 중요할까 싶었다. 그게 동정 때문이래도 상관없다 여겨졌다.

인한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유호에게 물었다.

“어디다 해 줄 건데요?”

“이마에.”

“아. 이마가 1단계인 거예요?”

“그런 셈이지.”

“그럼 입술은 몇 단계인데?”

“한 5단계?”

“이런. 아직 멀었네.”

말로만 아쉬워할 뿐 인한은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유호 쪽으로 순순히 이마를 대 줬다.

“자요.”

유호는 인한의 이마로 천천히 얼굴을 움직였다. 그러다 방향을 틀어 인한의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추고 뒤로 물러났다. 그 행동에 인한이 크게 숨을 들이켰다. 온몸이 저릿한 게 정말 사고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인한은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하며 턱을 괸 채 유호에게 물었다.

“이렇게 막 단계를 뛰어넘어도 돼요?”

“내 마음이지.”

유호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 모습에 인한은 모든 근심 걱정이 모두 사라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제 다시는 유호가 없는 하루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큰일 날 텐데.”

“기다려 준다고 한 지 하루밖에 안 지났어.”

“아. 내가 왜 그런 말을 해 가지고.”

인한은 장난스럽게 말하며 양팔을 뻗어 유호를 끌어안았다. 요란하게 뛰는 그의 심장 소리가 유호에게까지 전해졌다. 한 치의 의심할 필요도 없는 사랑이었다.

“그래요. 형은, 형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돼요.”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응. 내가 형이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줄게.”

인한은 그게 뭐든 이별만 아니라면 전부 유호에게 해 줄 생각이었다. 유호의 곁에 있을 수 있다면 뭐든 버릴 준비도 되어 있었다.

과연 유호도 그 선택에 동의할지는 의문이었지만.

“그럼 이제 자러 갈까요?”

“나 오늘은 소파에서 잘게.”

“그게 무슨 헛소리예요?”

인한은 어림없다는 듯 유호의 양 볼을 한 손으로 잡아 꾹 눌렀다. 그리고 이마를 콩 맞댔다가 뒤로 물러났다.

“먼저 가서 씻어요. 잠옷 가져다줄게.”

“아냐. 너 먼저 씻어. 피곤하잖아.”

“나는 괜찮은데.”

“빨리. 응?”

“알겠어요. 그럼 금방 씻고 나올게요.”

인한은 마지못해 먼저 화장실로 향했다.

잘 준비를 모두 끝낸 인한은 큰방 침대에 누워 드라마 대본을 훑어보고 있었다. 뒤늦게 유호가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왔다. 목에 수건을 두르고 있었고 머리가 젖은 채였다. 유호는 머리를 말리기 위해 화장대로 향했다.

방 한쪽에 위치한 커다란 화장대 위에는 인한이 2년째 광고 모델을 하고 있는 화장품 브랜드의 제품들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유호는 그 사실을 가볍게 무시하고 드라이기로 손을 뻗었다.

“머리 말려 줄까요?”

“아냐. 괜찮…….”

유호는 인한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놀라 거절의 답을 전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바꿔 인한에게 말했다.

“응. 말려 줘.”

유호의 대답에 인한은 대본을 침대 위에 내려놓고 유호에게 향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화장대 위의 크림을 집어 들었다.

“겨울인데 자꾸 로션을 안 바르면 어떻게 해요?”

인한의 잔소리에 유호는 할 말이 없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인한은 유호의 턱을 잡고 손가락에 덜어 낸 크림을 유호의 이마, 콧등, 턱, 양 볼에 찍어 놓았다. 그리고 유호의 턱을 놓아주며 질문을 던졌다.

“형이 바를래요? 아니면 내가 발라 줄까요?”

“내가 바를게.”

유호는 다급히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다 됐다고 인한에게 말하려는 순간 인한이 다시 유호의 턱을 잡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유호의 얼굴에 남아 있는 크림을 손가락으로 꼼꼼하게 펴 발랐다. 유호는 움찔대며 눈을 감았다.

곧 인한이 손을 거두었고 유호는 감고 있던 눈을 슬며시 떴다. 동시에 인한과 눈이 마주쳤다.

유난히 깊어 보이는 인한의 눈동자가 유호의 입술을 향했다가 다시 유호의 두 눈을 향했다. 유호는 긴장감에 양손을 꾹 쥐었다. 인한은 천천히 유호의 입술로 얼굴을 옮겼다. 유호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뜨거우면 말해요.”

“어?”

“드라이기. 너무 뜨거우면 말하라고요.”

인한은 유호의 귀에 대고 그렇게 속삭였다. 손에는 어느새 드라이기가 들려 있었다. 유호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 상태 그대로 굳어 있었다.

곧 인한의 손가락이 유호의 젖은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방 안은 드라이기 소리로 채워졌고 유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두 손을 꼼지락댔다.

지금이야말로 굳이, 굳이의 순간이었다.

혼자서 충분히 할 수도 있고 오히려 남이 해 줘서 더 불편할 것 같은 일을 굳이 서로에게 해 주는 그런 간지러운 상황이었다.

인한이 무방비하게 드러난 자신의 목덜미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유호는 그런 속 편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 됐어요.”

할 일을 마친 인한은 손에 든 드라이기를 화장대에 내려놓았다. 유호는 민망해하며 인한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고마워.”

“그럼 이제 잘까요?”

“응.”

인한은 자연스럽게 유호의 눈가에 입을 한 번 맞추고 뒤로 물러났다.

유호는 인한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를세라 재빨리 침대로 가 몸을 뉘었다. 본능적으로 벽 쪽에 가 붙는 걸 인한은 웃으며 바라보았다.

인한은 화장대 정리를 마친 후에야 불을 끄고 유호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누웠다. 그리고 기상 알람을 맞추기 위해 잠시 핸드폰 화면을 바라봤다.

그 모습을 힐끗힐끗 쳐다보던 유호가 몸을 꿈틀꿈틀 움직여 인한의 옆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인한아.”

“응?”

“잘 자.”

유호는 인한의 뺨에 재빠르게 입을 맞추고 다시 뒤로 물러났다. 그 행동에 인한이 하던 일을 멈추고 유호를 빤히 내려다봤다. 유호는 다급히 시선을 피했다.

“왜 그래요?”

“뭐가?”

“자꾸 안 하던 걸 하니까.”

“안 하던 걸 하면 안 되는 거야?”

인한의 지적에 유호가 당당하게 되물었다.

그와 동시에 인한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침대를 짚어 유호가 있는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어느새 유호는 인한의 양팔과 무릎 사이에 갇히게 됐다.

“뭐, 뭐 하는 거야?”

“알려 주려고요.”

“뭐를?”

“자꾸 그러면 진짜 큰일 난다는 거.”

“아냐. 그런 건 굳이 안 알려 줘도 돼.”

인한은 대답 대신 얼굴을 천천히 밑으로 내렸다. 점점 가까워지는 인한의 얼굴에 유호가 눈을 질끈 감았다. 긴장한 듯 손은 이불을 꼭 쥔 채였다. 인한은 그런 유호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 이마에 입을 맞췄다.

“10초 줄게요.”

인한은 유호의 바로 코앞에서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유호는 다시 눈을 뜬 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뭐, 뭐를?”

“마음 준비할 시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인한의 입술이 유호의 왼쪽 눈에 내려앉았다. 그다음 콧등을 찍고 내려와 뺨에 몇 번 더 입을 맞추고, 정확히 10초가 지난 후 인한의 입술이 유호의 입술과 맞닿았다. 유호는 눈을 감지도 못하고 그대로 멈춰 있었다.

“좋아해요.”

짧은 입맞춤을 끝낸 인한은 유호의 눈을 보며 그렇게 속삭였다.

“내가 정말 많이 좋아해요.”

그리고 한 번 더 인한의 입술이 유호의 입술로 향했다. 이번에는 꽤 길게 맞닿았다가 떨어졌다. 그 후에도 인한은 아쉬운지 몇 번을 더 쪽쪽댄 후 혀로 유호의 아랫입술을 핥고 살짝 깨물기까지 했다. 유호는 그대로 정신을 놓을 뻔했다.

“형.”

“……어?”

“지금 키스해도 돼요?”

“아니.”

“아. 너무 야박하네.”

그렇게 말하며 인한은 몸을 물리고 본래 자리로 돌아갔다. 사실 이대로 키스까지 했다가는 정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것 같았다.

유호는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같은 자세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형. 이리 와요.”

인한이 말을 걸어 주고 나서야 유호는 얼음에서 땡이 된 사람처럼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아. 응.”

유호는 몸을 틀어 인한에게 다가갔다. 인한은 유호의 허리를 팔로 감은 후 한 번에 끌어당겨 안았다. 유호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형. 잘 자요.”

그렇게 말하며 인한은 유호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응. 너도.”

유호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몸을 더 움직여 인한에게 밀착했다.

인한은 속으로 세븐스팟 역대 타이틀곡 가사를 전부 읊은 후에야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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