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정한 아이돌 멤버가 유죄인 이유 (80)화 (80/120)

#080

“도한성 역이 누구라고요?”

유호는 오디션 이후 처음으로 보게 된 드라마 조감독의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주선찬 씨요. 왜요? 아는 사이예요?”

“아…… 네. 최근에 웹드라마 같이 찍었어요.”

“그래요? 잘됐네요. 그럼 두 분 친분이 좀 있겠네요.”

“그렇긴 한데…… 혹시 선찬이도 알아요? 저 캐스팅된 거?”

“아마 모를 거 같은데요? 아역 캐스팅까지는 별도로 전달 드리지 않거든요.”

유호는 다시 한번 연예계 바닥이 좁다는 걸 느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드라마에서 자신의 출연 분량이 많지 않다는 데 있었다. 1화의 주인공들 어린 시절과 이후 3회차 정도의 회상 장면에만 출연하는 거로 알고 있었다.

“그럼 제가 선찬이 형 역할인 거네요.”

“그렇죠.”

“어차피 저는 아역이니까 따로 붙는 씬은 없겠죠?”

“아마 그럴 거 같긴 한데. 회상 씬으로 한 두 씬 정도 붙을 수도 있고요.”

“아.”

“아쉬우시면 제가 한번 감독님께 말씀드려 볼까요?”

“아뇨.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유호는 손사래를 치며 조감독의 제안을 거절했다. 선찬과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서야 마주할 수 있게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같은 작품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선찬이 캐스팅 교체를 요구하면 어쩌나 하는 괜한 걱정도 들었다. 계약서에 이미 사인을 했음에도 고작 조단역 하나 교체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울까 싶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요.”

“네.”

“아역 배우들도 전체 대본 리딩 현장에 가야 하는 거죠?”

“그럼요. 당연하죠.”

“아. 그렇군요.”

“무슨 문제라도…….”

“아뇨. 제가 잘 몰라서 여쭤봤어요.”

“그럼 전체 미팅 때 뵐게요. 보도 자료 나가기 전까지는 전부 대외비니까 조심해 주시고요. 정확한 일정 관련해서는 따로 매니저님께 안내해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유호는 조감독이 건네준 1, 2부 대본을 받아 들고 제작사 건물을 나섰다. 분량이 적기는 해도 공중파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 건 기쁜 일이었다.

유호가 맡은 역은 서브 남자 주인공의 형 역할로 1화 만에 범인에게 살해를 당하는 역이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드라마 초반의 비중 있는 역이라 유호는 벌써부터 긴장과 부담을 함께 느꼈다. 선찬과의 문제는 나중에 생각할 일이었다.

유호가 드라마 미팅을 끝내고 숙소로 이동하는 순간이었다.

운성 - [자니?]

운성이 오랜만에 유호에게 연락을 해 왔다. 유호는 바로 메시지에 답장을 보냈다.

유호 - [지금 오후 4시인데요]

운성 - [나는 지금 일어났거든]

유호 - [한국에 계신 거 맞죠...?]

운성 - [아닌 듯]

유호 - [그럼 어디에...]

운성 - [네 마음속에]

밑도 끝도 없이 던져진 운성의 드립에 유호는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이제 운성의 성격을 아는지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유호 - [글쎄요 저는 들인 적이 없는데]

운성 - [잘 찾아봐ㅋㅋㅋ 있을 거야]

유호 - [허가는 받고 들어와 계신가요]

운성 - [일종의 불법 점유지]

유호 - [아앗] [신고해야겠네요ㅋㅋㅋ]

운성 - [우리 좀 볼까 할 말이 좀 있는데]

무슨 일인지 먼저 말해 주면 좋을 테지만 운성이 그래 줄 리 없다는 걸 유호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궁금해 이유를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유호 - [저희 또 라이브 방송하나요]

운성 - [그건 아니고]

끝내 대답해 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 운성의 반응에 유호는 호기심은 이쯤에서 접어 두고 약속 날짜부터 잡기로 했다.

유호 - [언제요?]

운성 - [언제든 괜찮은 시간 있으면 알려줘]

유호 - [그럼 제가 알아보고 다시 말씀드릴게요]

운성 - [ㅇㅇ 연락 줘]

유호 - [넵 그럴게욥]

유호는 아무래도 인한에게 물어보고 시간을 정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유호는 바로 인한에게 연락을 취했다.

유호 - [운성이 형이 한번 보자는데]

인하 - [...갑자기 왜요?] [합주 라방 때문에?]

유호 - [이유는 모르겠어]

인한 - [형 혼자?]

유호 - [그런 듯]

인한 - [무시해요]

유호 - [응?]

인한 - [안 봐도 돼] [무시 ㄱㄱ]

예상치 못한 인한의 반응에 유호는 당황했다. 설마 운성과 그새 사이가 소원해진 건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유호는 곤란해하며 인한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유호 - [그건 좀...]

인한 - [그럼 같이 가요]

유호 - [아 그럴까?]

인한 - [응 나랑 시간 맞춰서 가요 그 위험한 사람한테 형을 혼자 보낼 수 없어]

위험한 사람이라니. 유호의 눈에 운성은 그저 잘생기고 능력 있는 데다가 친절하기까지 한 우상님으로만 보였다.

바로 그런 점에서 인한이 불만을 가진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유호 - [그래 날짜 맞춰보자]

인한 - [미팅은? 잘했어요?]

유호 - [응 대본 받아왔어]

인한 - [시간 날 때 대사 연습 도와줄게요]

유호 - [그래 주면 나는 고맙지]

인한 - [그럼 나는 촬영하러...ㅜㅜ]

유호 - [응응 시간 나면 또 연락해]

인한 - [넹]

인한과 대화를 마친 유호는 생각이 많아졌다. 선찬과 같은 작품에 들어가게 됐다는 말을 전해야 할 텐데, 인한의 반응이 벌써부터 걱정됐다. 아무래도 얼굴을 보고 말로 잘 설득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금세 숙소에 도착한 유호는 밤늦게까지 대본을 훑어보다가 인한하고 약속한 정각이 가까워지자 잘 준비를 시작했다.

인한 - [1시 넘어서 들어갈 듯요] [먼저 자요]

유호 - [응 촬영 잘하고]

인한 - [우리 내일은 볼 수 있으려나 ㅜㅜ]

유호 - [일 때문인데 어쩔 수 없지ㅜㅜ]

인한 - [ㅜㅜ]

인한은 새벽에 숙소로 귀가했다가 다시 이른 아침에 스케줄을 나갈 예정이었다. 그 사이에 유호와 얼굴을 마주하기란 힘들어 보였다.

유호는 아쉬웠지만, 순순히 잠자리에 들었다.

유호가 잠결에 뒤척이다 눈을 뜬 건 새벽 세 시쯤이었다.

유호는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인한의 얼굴에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지난 5년간 수없이 경험한 일이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켜 둔 기억이 없는 수면 등에는 전원이 들어와 있었고 비어 있던 침대 한쪽에는 떡하니 인한이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 있었다.

상황 파악을 끝낸 유호는 괜히 긴장했다. 숙소에 테일러가 없으니 마땅한 핑곗거리도 없을 텐데 보란 듯이 자신의 방에 쳐들어온 인한의 행동이 대담하다 싶었다.

유호는 가만히 인한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연말이라 바쁜 스케줄을 정신없이 소화하고 있음에도 세상 편안해 보이는 그의 표정에 기분이 묘해졌다.

유호는 인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기왕 용기를 낸 김에 손을 뻗어 인한의 허리도 끌어안았다.

이제는 숨길 필요 없는 마음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유호는 인한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금세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몇 시간 후, 유호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한 번 더 잠에서 깨 뒤척였다.

“형. 깼어요? 미안.”

여민은 놀라 사과를 건넸고 유호는 다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인한과 한 침대에 있던 게 꿈이라도 되는 듯 옆자리가 말끔히 비워져 있었다. 유호는 눈을 비비며 여민에게 물었다.

“여민아. 나가?”

“응. 더 자요.”

“아냐. 나 깼어.”

“지금 6시인데?”

유호가 생각해도 깨어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유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배웅해 줄까?”

“그래.”

유호의 제안에 여민이 흔쾌히 대답했다. 유호는 졸린 상태 그대로 여민을 따라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여민과 포옹을 나누며 다정한 작별 인사를 이어 나갔다.

“우리 여민이 잘 다녀와. 촬영 잘하고.”

“응. 나 오늘 못 들어오니까 너무 보고 싶어도 참아요.”

“그래. 나는 잘 참을 수 있어.”

“유호 형. 왜 벌써 깼어요?”

그때 구석방 문을 열고 인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외출 준비를 하느라 방으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유호는 돌아서서 웃는 얼굴로 인한을 반겼다.

“너네 배웅해 주려고.”

유호는 인한을 향해서도 양팔을 벌렸다. 인한은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서 유호를 품에 안았다. 그대로 유호를 들고 튀고 싶은 심정이었다.

억지로 떼어놓아야만 떨어질 거 같은 두 사람의 모습에 여민이 곧 불만을 드러냈다.

“둘이 요새 수상해.”

여민은 눈을 흘기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인한은 딱 잘라 여민의 말을 부인했다.

“뭐가 수상해? 우리 원래 그랬는데?”

“그러니까.”

유호는 괜히 뜨끔해 여민의 눈을 피했다.

“자꾸 나 빼고 놀기만 해 봐. 원스팟들한테 다 이를 거야.”

“우리가 형 거야?”

“그럼 내 거지. 우리가 남이야?”

서운해 보이는 여민의 얼굴에 유호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래도 여민에게만은 인한과의 관계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인한 역시 태도를 바꿔 여민을 달래기 시작했다.

“그건 절대 아니지. 우리가 어떻게 남이야.”

“너는 됐거든. 효 형. 다녀올게요. 빠빠이.”

여민은 인한을 본 체도 않고 유호에게 한 번 더 작별 인사를 건넸다. 유호는 바로 화답해 줬다.

“응. 여민이 빠빠이.”

여민은 유호의 인사에 웃어 보이며 인한을 두고 먼저 문밖으로 나가 버렸다.

유호는 곤란해하며 인한에게 물었다.

“어쩌지?”

“제가 잘 달래볼게요.”

“그래.”

“그럼 저, 가요.”

“응. 잘 다녀와. 오늘 촬영 잘하고. 틈나면 연락해.”

“형은 얼른 더 자요. 대본 연습 잘하고.”

“응. 그럴게.”

유호는 손을 흔들며 인한이 현관을 나설 때까지 배웅을 이어 나갔다. 인한은 잠시 주변을 살피더니 유호의 손을 깍지를 껴 맞잡고 손등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그나마 숙소라고 자제력을 발휘한 모양이었다.

“얼른 가. 여민이 먼저 내려가겠다.”

“알겠어요. 이제 진짜 갈게요.”

“응. 안녕.”

인한은 아쉬움에 발이 떨어지지 않는 걸 겨우 참아내며 유호를 끝까지 바라보다가 현관을 나섰다.

유호는 문밖의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지키다가, 정적이 찾아오고 나서야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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