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9
3부 내가 바라는 너의 미래
유호가 한창 단잠에 빠져 있을 때였다.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유호는 놀라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오고 있었다. 유호는 사생팬인가 싶어 받지 않으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어. 유호니?”
“아…… 네.”
유호는 익숙한 듯 확실하지 않은 목소리에 당황했다. 다행히 상대방이 먼저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나 수한이 형이야.”
“아.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
“인한이 지금 숙소에 있지?”
유호는 잠시 대답을 고민했다. 인한이 독립한 사실을 친형에게 밝히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호는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
“네. 지금 자고 있을 거 같은데.”
“혹시 바꿔 줄 수 있어?”
“지금요?”
“어. 통화가 계속 안 돼서. 여민이랑 태윤이는 숙소 아니라 그러고.”
“……네. 잠시만요.”
유호는 잠시 행동에 텀을 뒀다. 그리고 곧 인한을 흔들어 깨웠다.
“인한아. 일어나 봐.”
“……형. 왜요?”
인한은 겨우 눈을 뜨고 졸음이 가득한 얼굴로 유호를 쳐다봤다.
“수한이 형한테 전화가 와서.”
“아.”
인한은 금세 표정을 굳히고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곧장 방을 벗어났다.
유호는 의아해하며 침실 밖으로 귀를 기울였다. 간혹 언성을 높이는 인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호는 불안한 마음으로 인한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미안해요. 우리 형 때문에 깼죠?”
잠깐의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인한은 유호의 상태부터 살폈다. 유호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아냐. 일어날 시간이었어. 근데 형이랑 무슨 일 있었어?”
“아니에요. 해체 기사 난 것 때문에 그래요.”
“근데 왜 형 전화를 안 받았어?”
“자꾸 잔소리하니까.”
인한은 별거 아니라는 듯 대화를 마무리했다. 유호는 찝찝했지만, 더 캐묻지 않았다.
“잘 잤어요?”
인한은 곧 다정한 말과 함께 유호의 한쪽 뺨을 감싸고 눈가에 입을 맞췄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유호가 대처할 새도 없었다.
“……응. 너는?”
“나는 잘 못 잤는데.”
“왜? 나 때문에?”
“응. 형 때문에.”
책임을 전가하는 말과는 달리 인한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다음 기지개를 켜며 유호에게 물었다.
“지금 9시인데 더 잘래요, 일어날래요?”
“일어날래.”
“그래요.”
유호는 침실을 벗어나는 인한의 뒤를 졸졸 따라 거실로 향했다.
“아침 먹어야죠. 뭐 해 줄까요?”
“그냥 간단하게 어제 사 온 케이크 먹을까?”
“그럴래요?”
인한이 되물었고 유호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앉아요.”
“도와줄까?”
“괜찮아요.”
“알겠어.”
유호가 식탁 의자에 앉자 인한은 바로 우유 한 잔을 따라 주고 케이크를 준비해 유호의 앞에 놔 주었다. 자신은 간단하게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시기로 했다.
금세 커피 한 잔을 타 식탁 위에 내려놓은 인한은 굳이 의자를 끌고 와 유호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아침부터 검은 속내를 드러내며 유호에게 물었다.
“형. 손잡아도 돼요?”
“그래.”
유호는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인한은 오른손으로 유호의 손을 잡고 왼손으로 커피잔을 집었다. 양손잡이인 게 이런 식으로 쓸모가 있을 줄은 몰랐다.
“형. 안아도 돼요?”
인한은 계속해서 장난스럽게 물었다.
유호는 이번에도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한은 손을 뻗어 유호를 품속으로 끌어안았다. 행복에 겨워 죽을 것만 같았다.
이제 인한은 한 단계를 더 나아가기로 했다.
“형. 뽀뽀해도 돼요?”
인한의 질문에 유호는 얼굴을 찡그리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발언으로 인한을 놀라게 했다.
“……어디다 할 건데?”
인한은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겨우 내리며 유호에게 물었다.
“어디다 했으면 좋겠는데요?”
“입술은 좀 그래.”
유호의 답을 듣고 인한은 푸스스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무조건 안 된다고 하던 과거에 비하면 많은 발전이 있는 상태였다. 그 변화가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인한의 반응에 유호는 민망한지 변명을 덧붙였다.
“우리 사귄 지 하루도 안 됐잖아.”
“그럼 언제 되는데요?”
인한은 태연하게 커피를 홀짝이며 유호에게 물었다. 유호는 인한의 눈을 피하며 어렵게 대답했다.
“어……언젠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언젠가는, 이 정확히 언제인데?”
“음. 조만간?”
“얼마나 조만간. 내일?”
“그건 아니고.”
“모레?”
“그것도 너무 빠른데.”
“그럼 그냥 오늘 하면 되겠네.”
그렇게 말하며 인한은 유호의 얼굴로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댔다.
인한의 얼굴이 바로 앞까지 다가오자 유호가 놀라 몸을 움츠렸다. 으아아. 저도 모르게 손등으로 입술까지 막은 상태였다. 인한은 장난스럽게 유호의 손등에 입을 쪽 하고 맞추고 떨어졌다.
그다음 몸을 물리며 유호에게 말했다.
“장난이에요.”
“장난 아닌 거 같은데.”
“형이 된다고 할 때까지 기다릴게요.”
은은하게 전해진 인한의 말과는 달리 유호는 그가 별로 기다려 주는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바로 미팅 장소로 가요?”
“아니. 숙소 들렀다가 씻고 옷 갈아입고 가야지.”
“여기에도 형 입을 만한 옷 많은데.”
“엥? 아직도?”
유호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숙소에 대형 캐리어로 한 짐을 챙겨 와 놓고 아직도 자신의 물건이 남아 있다니 놀라웠다. 유호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인한에게 물었다.
“혹시 일부러 수집하는 건 아니지?”
“글쎄요.”
“설마 속옷도 있어?”
“…….”
“아냐. 대답하지 마.”
“있는데.”
“아아.”
유호는 결국 알고 싶지 않았던 과도한 정보까지 알아 버렸다.
“왜? 너 속옷 광고는 한 적 없잖아.”
“혹시 몰라서.”
그래. 그럴 수 있지. 두 번이나 자고 갔으니까. 유호는 애써 합리화하며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 더는 질문을 삼가기로 했다.
인한은 심지어 자신의 것과 디자인까지 같다는 말을 겨우 참아 냈다.
유호는 인한의 설득에 휘말려 숙소에 가지 않고 그의 집에서 모든 외출 준비를 끝냈다. 덕분에 시간이 남아 두 사람은 밖에서 점심까지 함께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오늘 숙소 올 거야?”
“네. 내일 여민 형이랑 동반 스케줄이라.”
“안 자고 기다릴까?”
“아뇨. 먼저 자요. 얼마나 늦을지 몰라서.”
“그럼 12시까지만 기다릴게.”
“그래요. 내가 그 전에 전화할게요.”
“응. 그래.”
“형. 잠시만.”
“응?”
두 사람이 막 짐을 챙겨 현관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인한이 문 앞에서 유호를 멈춰 세웠고 유호는 의아해 인한을 돌아봤다.
그와 동시에 인한이 한 손으로 유호의 양 볼을 쥐고 그대로 얼굴을 내려 콧잔등에 입을 맞췄다. 유호는 무방비한 상태로 당하고만 있었다.
“여기는 입술 아니니까 괜찮잖아요. 그렇죠?”
유호는 뻔뻔하기 그지없는 인한의 발언에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자신이 말한 조만간의 순간이 굉장히 빨리 찾아올 것 같다고 생각했다.
‘유호&인한 한식집 목격짤 (57)’
출처는 별그램
찍은 사람은 일반인이고 매니저 없이 둘이 점심 먹으러 간 듯
처음에 인한이가 유호 숟가락 위로 계속 반찬 놔 줬다고 함
유호는 괜찮다고 너 먹으라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서로 반찬 주고받고 난리 났다고 함
글 작성자분이 원래 아이돌은 멤버끼리 이러냐고 당혹스러워하심
우리 애들 서로한테 다정한 거 남들이 보면 놀랄 만함 ㅋㅋㅋ
근데 저희도 가끔 눈치 보이거든요 ㅋㅋㅋ 우리 칠스팟 애기들 자기네끼리 너무 찐사랑임
[아웅 우리 아가들 예뻐 죽어]
[장단즈 얼마만의 투샷이야ㅜㅜㅜ]
[우리 멈무들 세븐스팟 계속해 줘]
└ [222 내새꾸들 영원히 붙어 있어]
[요새 유호 엄청 자유롭게 다니네]
└ [5년 차인데 그럴 만두]
[이렇게 찐사랑인데 해체 말도 안 됨 쌍스 진짜 가만안도]
유호는 드라마 미팅을 하러 가는 길에 핸드폰으로 팬 커뮤니티를 확인했다.
설마 동네 식당 가는 것까지 포착될까 싶었지만, 각종 SNS에는 어김없이 목격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사진뿐 아니라 행동과 대화 내용까지 상세히 적혀 있는 걸 보고 유호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인한과 함께 외출할 때마다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니 앞으로 집 밖에서의 애정 행각은 절대적으로 삼가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유호 - [커뮤에 사진 엄청 떴던데 봤어?]
인한 - [ㅇㅇ 봤어요 형 사진 잘 나왔던데]
유호 - [우리 밖에서는 조심해야겠더라]
인한 - [안에서는?]
유호 - [응?]
인한 - [조심 안 해도 돼요?]
유호 - [우리 안팎으로 조심해야겠더라]
인한 - [ㅋㅋㅋㅋㅋㅋ]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이어지는 인한의 폭주에 유호는 과연 자신이 그의 행동을 컨트롤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다.
그런 유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인한은 연달아 메시지를 보내왔다.
인한 - [다음 주 평일에 시간 돼요?] [월, 화, 수 중에]
유호 - [다음 주?] [나 오디션 일정 나와 봐야 알 거 같은데]
인한 - [언제 결정 나는데?]
유호 - [아마 이번 주 중에?]
인한 - [정해지면 비는 날에 놀러 가요]
아니 얘가 온갖 커뮤니티를 목격 글로 도배시키려고 그러나. 유호는 걱정되면서도 인한의 데이트 신청에 기분이 좋아졌다.
유호가 알겠다는 답장을 보내려는 찰나였다. 인한에게서 하나의 메시지가 더 도착했다.
인한 - [참고로 1박 2일이에요]
유호는 그대로 핸드폰을 덮어 버렸다.
아무래도 지금 상태의 인한을 막을 수 있는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