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정한 아이돌 멤버가 유죄인 이유 (68)화 (68/120)

#068

그 뒤로 유호는 여민의 옆자리에 앉아 내내 말동무를 해 주다가 여민&인한 유닛의 카메라 리허설을 모니터링해 주고 생방송 무대까지 지켜봤다.

유호가 직접 목격한 두 사람의 무대는 영상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웅장했다.

늘 여섯 명으로만 채웠던 세븐스팟 무대와 달리 남녀 댄서가 열 명은 넘게 동원됐고 조명이나 세트도 대표가 작정을 한 건지 말도 안 되게 화려했다.

무엇보다 인한과 여민의 존재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유호는 그 모습을 무대 아래에서 바라보면서 한 번 더 그들과 함께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히 해 봤다.

“이제 유호 가.”

두 사람의 무대가 끝나자마자 수형은 유호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여민은 놀라 반응했다.

“왜요?”

“유호 드라마 오디션 준비해야 돼. 너희도 바로 다음 스케줄 가야 되잖아.”

“잉. 안 돼요.”

“여민아. 유호 그만 괴롭히자.”

수형은 고집을 부리는 여민을 나무랐고 유호도 어쩔 수 없이 대기실에서 퇴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유호 형. 잘 가요. 이따 숙소에서 봐.”

여민은 아쉬워하며 유호를 끌어안았고 유호는 여민의 등을 두드려 주며 인사를 건넸다.

“응. 우리 여민이 스케줄 잘하고 와.”

그다음 유호는 인한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인한은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유호를 보고 있었다. 유호는 인한에게도 다가가 양팔을 벌렸다.

동생들에 대한 애정은 공평해야 하니 당연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인한은 그런 유호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다가가 포옹을 했다.

“우리 인한이도 스케줄 잘하고 와.”

두 사람의 체격 차 때문에 유호가 인한을 안아 주는 게 아니라 되레 안긴 꼴이 되긴 했지만, 유호는 개의치 않아 하며 인한의 등을 두드렸다.

“뭐야? 왜 인한이도 안아 줘?”

그 행동에 여민이 곧바로 불만을 드러냈지만 유호는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우리 인한이 애기잖아.”

유호는 한때 멤버들 사이에서 유행어가 됐던 주언의 망언을 시전하며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그 말에 유호를 감싸고 있던 인한의 팔에 힘이 풀렸다. 여민은 계속해서 항의를 이어 나갔다.

“이렇게 큰 애기가 어디 있어요?”

“여기 있지. 우리 막냉이 너무 무리하지 말고.”

인한의 팔이 거둬지자 유호는 까치발을 한 채 손을 뻗어 인한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인한은 웃는 얼굴로 유호의 인사에 화답했다.

“네. 형도 조심히 들어가요.”

“응. 그럴게.”

인사를 마친 유호는 곧바로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인한은 씁쓸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그제야 인한은 유호가 자신에게 형임을 인지시키며 선을 긋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그 사실은 인한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선찬 - [유호 12월 5일에 시간 어때? 그날 일정 있어?]

선찬의 메시지는 유호가 회사 연습실에서 대사를 외우고 있는 와중에 도착했다. 유호는 잠시 고민하다 답장을 보냈다.

유호 - [5일에?] [나 별거 없기는 한데]

인한의 생일은 12월 6일이었고 5일은 하루 전이니 상관없을 거라는 결론을 냈다.

선찬 - [바다 가자]

유호 - [바다?]

선찬 - [ㅇㅇ 나 그날 휴가 받음]

유호 - [근데 나 6일에 일 있어서 너무 늦게까지는 힘들어]

선찬 - [ㅇㅇ 괜찮아 아침 일찍 갔다가 금방 올라오면 돼] [내가 늦지 않게 데려다줄게]

유호 - [알겠어] [몇 시에 출발할 거야?]

선찬 - [9시]

유호 - [그럼 그날 시간 맞춰서 준비할게]

선찬 - [그래 이따 또 연락할게]

유호 - [응]

선찬과의 대화를 마친 유호는 다시 대사 연습에 집중했다. 이미 세 개의 오디션을 봐 그중 한 작품의 1차 오디션에 합격한 상태였다. 그리고 아직 7개의 오디션이 더 남아 있었다.

그때 한 번 더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액정을 확인해 보니 다름 아닌 인한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유호는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인한아.”

- 형. 잘 도착했어요?

“응. 지금 회사 연습실이야.”

- 이틀 내내 멀리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나 아마 내일은 못 가고 주언이 형만 가게 될 거 같아.”

- 괜찮아요. 3일이나 오는 건 안 바라요.

“밥은? 잘 챙겨 먹었어?”

- 네. 남아 있던 거 제가 다 거덜 냈어요.

“갑자기 너무 많이 먹는 것도 안 좋은데.”

- 괜찮아요. 저 튼튼해서.

그동안 어색하게 지냈던 기간이 무색하게 두 사람의 대화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유호는 이 평화가 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형.

“응?”

- 혹시 5일 밤에 우리 집에 안 올래요? 같이 생일 파티 해요.

“몇 시에?”

- 11시쯤?

“그래. 그 시간에는 맞춰 갈 수 있을 거 같아.”

- 네. 그럼 그날 보는 거로 해요.

“응. 그때까지는 우리 얼굴 보기도 힘들겠다.”

- 제가 자주 전화할게요.

“알겠어. 너 시간 날 때 전화 줘.”

- 네. 오디션 준비 잘하고요.

“응. 또 연락해.”

- 네.

그렇게 전화는 끊어졌다.

유호는 인한과의 통화를 마치고 다시 대사를 보려고 했으나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유호는 괜히 핸드폰을 한 번 더 쳐다봤다가 바람이나 쐬자 싶어 연습실을 나섰다.

그날 이후 인한과 유호는 각자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인한은 한 주에 다섯 개나 되는 음악 방송을 소화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지냈고 유호도 이곳저곳 드라마 오디션을 보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신 두 사람은 하루 한 번 통화를 하며 일상적인 대화만 나눴다.

그렇게 인한의 생일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 * *

5일 아침이었다.

유호는 해가 뜨기도 전에 그날 하루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고 생각했다.

하필 드라마의 2차 오디션 날짜가 그날로 옮겨졌고 유호는 11시가 넘어서야 선찬을 만날 수 있었다.

“미안. 너무 늦었지?”

유호는 오디션장까지 데리러 온 선찬의 차에 올라타면서 사과의 말부터 전했다. 선찬은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아냐. 오디션이 더 중요하지.”

“지금 가도 안 늦을까?”

“잠깐 찍고만 오는 거지.”

“그냥 다음에 갈까?”

“그럼 오늘도 가고 다음에도 또 가자.”

선찬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유호는 선찬의 수가 너무 잘 보인다고 생각하면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럼 출발할게.”

두 사람의 차는 곧 고속도로로 접어들었고 점심은 휴게소에 들러 우동과 소떡소떡, 회오리 감자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었다. 그때까지 유호는 여행 가는 기분에 들떠 신이 난 상태였다.

문제는 휴게소를 벗어나면서부터 시작됐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차 좀 막히네.”

선찬은 꽉 막혀 있는 도로의 상황을 보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순조로운 여정이 될 거라는 두 사람의 기대와는 달리 도로는 점점 정체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택한 날짜가 하필이면 연말의 주말인 탓이 컸다.

“그러네. 다음에는 평일에 가는 게 낫겠다.”

유호는 선찬의 말에 동조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다음에는 화요일이나 수요일쯤으로 잡아 보자.”

선찬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음 약속을 구체화시켰다. 기왕이면 1박 2일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결국 두 사람이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였다.

선찬은 항구 바로 앞에 차를 주차했고 곧장 유호를 데리고 바닷가로 향했다.

문제는 12월의 겨울 바다가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다는 데 있었다.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만큼 바람이 세차게 몰아쳤고 주변의 커플들 사이에서는 시시때때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20대의 건장한 청년인 선찬과 유호는 어떻게든 추위를 견뎌 내 보려고 해 봤으나 그 패기는 10분을 버티지 못하고 끝이 났다.

“카페라도 가는 게 낫겠지?”

먼저 항복을 선언한 건 선찬이었다.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덜덜 떨고 있는 유호의 가여운 몸짓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어서였다.

“그, 그럴까?”

유호는 냉큼 선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바닷가를 거니는 대신 전망 좋은 카페에서 눈으로만 바다를 감상하는 것으로 계획을 급하게 변경했다.

“그래도 온 김에 사진 한 장은 찍자.”

“그래.”

이어진 선찬의 제안에 유호는 부들부들 떨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게 찍은 셀카 사진은 인물의 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현장감이 느껴졌다.

“으. 이제 가자.”

결국 선찬은 베스트 샷을 찍는 것을 포기하고 유호의 어깨를 감싸며 바다와 멀어졌다.

잠시 후 선찬은 히터가 빵빵하게 틀어진 카페의 3층 창가에 앉아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온몸의 찬기를 달랬다.

[seonchan_joo ⓥ 주선찬 · 0초 전

거센 바람도 우리의 젊음을 막을 수는 없지

#사실은너무추워요 #겨울바다가지마세요

#그래도유호와함께라면 #거기가어디든따숩다]

SNS를 럽스타그램처럼 활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랑과 감기는 숨기지 못하는 거라더니 선찬의 SNS는 흐린 눈으로 봐도 유호에 대한 애정이 넘쳐 났다.

[오빠들 예쁜 사랑 하세요]

[선찬 오빠 럽스타그램 티 나요]

[부러운데 둘 중 누가 부러운지 모르겠다]

[거기 어딘가요 눈치 없이 제가 껴도 되나요]

팬들도 익숙한지 이제는 하나의 장난 소재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선찬의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선찬의 건너편에 앉은 유호는 여전히 몸을 웅크리고 유자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선찬은 그런 유호가 걱정돼 물었다.

“아직도 추워? 겉옷 좀 벗어 줄까?”

“아냐. 이제 괜찮아졌어.”

“감기 걸릴까 봐 걱정이네.”

“나 진짜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유호는 손사래를 치며 자신이 멀쩡하다는 걸 어필했다. 하지만 같은 경험을 한 번 더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 마음을 선찬에게 드러냈다.

“다음에는 날 풀리고 오는 게 좋겠다.”

“왜? 나는 겨울 바다도 좋은데.”

“아까 그렇게 찬 바람을 맞고도?”

“그래도 유호 너랑 함께잖아.”

훅 들어오는 선찬의 멘트에 유호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제야 자신이 단순히 친구랑 놀러 나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그러니까 썸 비슷한 건가. 유호는 괜히 민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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