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7
“저희 샤워만 하고 나올게요.”
여민은 짐을 챙겨 방으로 향하면서 주언에게 말했다. 인한 역시 거실을 지나쳐 구석방으로 향했다.
“안주는 뭐 시킬까?”
“저는 상관없어요. 형들 먹고 싶은 거 시켜요.”
주언의 질문에 인한이 대답했고 인한 대신 메뉴를 정한 건 결국 라울리였다.
“보족 세트?”
“거기다 냉채족발까지.”
주언은 라울리의 대답을 반기며 메뉴를 추가했다. 라울리도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완전 콜이죠.”
“유호는? 같이 안 먹을래?”
주언의 질문이 이번에는 유호에게 향했다. 덩달아 방문 앞에서 멈춰선 인한의 시선도 유호에게 향해졌다. 유호는 잠시 고민하다 주언에게 말했다.
“네. 저는 먼저 잘게요.”
“그래.”
“잘 자요. 유호 형.”
다정한 얼굴로 건네는 인한의 인사에 유호는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응.”
인한이 방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유호도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말 걸지 말라는 조항도 넣을 걸 그랬나. 유호는 잠시 후회를 해 봤지만, 그것까지는 너무하다는 생각에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숙소에서는 간만의 술판이 벌어졌다. 사람 하나 더 늘었다고 이렇게 분위기가 달라지나 싶었지만 그만큼 인한은 존재감이 큰 사람이었다.
거실의 불은 새벽까지 꺼질 줄을 몰랐고 유호는 가사를 마저 외우다가 귀마개를 하고 먼저 잠이 들었다. 별로 한 것도 없었는데 하루가 고됐는지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이었다.
유호는 잠옷 차림으로 침대에 드러누워 핸드폰 기사부터 확인했다.
‘라이징 스타 주선찬×선유호의 훈훈한 브로맨스 웹드라마, 말랑말랑 로맨스’
‘주선찬X선유호, ‘말랑말랑 로맨스’에서 돋보이는 브로맨스 케미’
‘사랑보다 돋보인 ‘말랑말랑 로맨스’ 주선찬, 선유호의 우정’
웹드라마 ‘말랑말랑 로맨스’는 나름대로 순항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영화로 입지가 달라진 선찬의 공이 컸으며 소소하게 커가는 유호의 인기도 한몫을 했다.
문제는 여주인공인 소이와의 러브 라인보다 선찬과 유호의 브로맨스가 더 주목을 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유호 역시 대본에서부터 은근하게 브로맨스 요소를 깔아 놨다는 걸 느끼기는 했지만, 반응이 이렇게 격렬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선찬유호 무슨 일이야 너희가 친구면 나는 친구 없어]
[찬효 된다 이거는 되는 조합이다]
[둘 다 온미남이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후끈해짐 겨울도 날 수 있어]
[대학교에 저런 선배들 있을 리 없어ㅜㅜㅜ]
물론 SNS도 난리가 났다.
벌써 연성 글을 쓰는 계정도 생겨났다.
[#찬효 #찬효연성
리얼물로 촬영하다 눈 맞는 찬효
찬이 효한테 첫눈에 반해서 볼 때마다 플러팅 장난 없음
효도 처음에는 우정인 줄 알았다가 점점 헷갈리는 거지]
[캠게 #찬효
찬효 과에서 유명한 CC였는데 권태기로 헤어짐
근데 과가 같으니까 자꾸 마주치게 되는데 그때마다 서로 악다구니 써가며 개싸움남
근데 사실은 서로한테 미련 뚝뚝인 거지]
[여름청게 #찬효 #팬아트]
[늑대 수인 찬x 토끼 수인 효 한 번 그려봄 #찬효]
[그림_말랑말랑 미대캠게 #찬효]
고퀄리티의 팬아트까지 등장했고 기존 세븐스팟 CP에 선찬을 끼얹어서 삼각으로 엮는 연성물도 눈에 띄었다.
[#난효찬 #난효 #찬효
효는 찬 짝사랑하고 난은 그런 효 짝사랑하는 피폐물 보고 싶다
난이랑 찬이랑 두 살 터울 형제인데 효가 찬 짝사랑함
난은 효가 찬 좋아하는 거 알면서도 효한테 이용당해주고 짝사랑 도와주는 척하면서 은근히 효랑 찬 관계 망쳐놨으면]
유호는 흐린 눈으로 연성 글을 피해 가며 열심히 칭찬 리뷰만 찾아 읽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웹드라마가 흥하고 있는 것에 기쁨을 느끼기로 했다.
선찬 - [웹드 반응 어쩔 거야ㅋㅋㅋ] [이런 식으로 흥할 줄은 몰랐는데]
선찬 역시 의외의 반응에 놀란 눈치였다. 유호는 괜히 긴장했다.
자신이야 오랜 아이돌 생활로 이런 음지 문화에 익숙하지만 선찬이 알아채고 불편해할까 봐 살짝 걱정됐다. 인한 역시 한동안 이런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는 했으니까.
유호 - [그러게 소이 서운하겠다]
선찬 - [우리 둘 잘 어울리나 봐 큰일 났다]
다행히 선찬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즐기는 눈치였다. 유호는 부디 선찬이 찬효 연성 글까지 읽게 되는 일은 없기를 바랐다.
유호 - [나 때문인가 봐 내가 너무 애 같아서]
선찬 - [아니 네가 너무 귀여워서]
어쩐지 선찬이 시청자들보다 한술 더 뜨는 느낌이었다.
선찬 - [안 되겠다 시청자들 기대에 부응해 줘야지]
유호 - [햄버거 먹으러 가자고?]
선찬 - [그건 당연하고]
유호 - [웬일로 안 조르나 했어]
선찬 - [그래서 우리 햄버거는?]
잊을 만하면 햄버거 얘기를 해 대는 선찬 덕에 유호는 질릴 대로 질린 상태였다.
아주 햄버거 못 먹은 귀신이 붙었나. 유호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선찬에게 답장을 보냈다.
유호 – [나 수요일에 라이브 방송해야 해서 목요일 이후에는 괜찮을 거 같은데]
선찬 - [그럼 목요일 점심 콜?]
유호 - [ㅇㅇ 콜]
선찬 - [오예 유호 만난다]
유호 - [그럼 그날 봐]
선찬 - [ㅇㅇ 라이브 방송 잘하고] [나 그때 실시간으로 볼 거야]
유호 - [제발 그러지 좀 마]
선찬 - [그럼 몰래 볼게]
유호 - [그럼 들키지 말고ㅋㅋㅋ] [너도 영화 촬영 잘해]
선찬 - [얍]
선찬과의 대화를 마친 유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벌써 시간이 오전 1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여민은 아침 일찍부터 스케줄을 나갔고 새벽까지 부어라 마셔라, 술판을 벌였던 주당들은 오전 내내 인기척이 없었다.
결국 유호가 먼저 거실로 나섰다.
유호가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까 고민하는 사이 현관 쪽 방문이 열리고 라울리가 나타났다. 유호는 숙취로 앓는 소리를 내는 라울리에게 말을 걸었다.
“라울아. 일어났어?”
“아 형. 죽을 거 같아.”
“뭘 얼마나 마신 거야?”
“몰라. 머리 깨질 거 같아.”
“물 줄까? 마실래?”
“형. 라면 먹게?”
의도가 분명해 보이는 라울리의 질문에 유호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주언이 형은?”
“깼어. 금방 나올 거야.”
“알았어. 끓여 줄게.”
유호는 바로 냄비에 라면 물을 올렸다. 잠시 몇 개를 끓일까 고민하다가 세 개만 끓이기로 했다. 인한이 나오면 자신이 안 먹으면 된다는 계산에서였다.
“유호. 잘 잤어? 어제 시끄러웠지?”
곧 주언도 방에서 나왔고 유호는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아뇨. 저 어제 피곤해서 바로 잠들었어요.”
“그래? 다행이네.”
유호의 예상과는 다르게 라면은 주언, 라울리, 수형 세 사람이 먹게 됐다. 라면이 완성되고 세 사람에 의해 냄비가 비워질 때까지도 인한은 거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유호. 진짜 안 먹어도 돼?”
“네. 아직 배가 안 고파서.”
수형이 미안해하며 유호에게 물었으나 유호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사실 유호도 굉장히 허기진 상태였지만 라면을 새로 끓일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근데 우리 먹으라고 끓여 준 거야? 완전 감동.”
유호의 대답에 주언은 감격하며 말했다. 의도한 바와는 다른 결과였지만, 유호는 주언의 감동을 파괴하지 않기로 했다.
“형은 맨날 저희 맛있는 거 해 주잖아요. 그럼 맛있게 드세요.”
“응. 고마워.”
유호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는 대신, 잔에 주스를 따르고 소파로 향했다.
온 신경이 인한이 잠들어 있을 구석방으로 향해 있었다.
두 시간 후였다.
유호는 여전히 거실에 남아 TV 시청 중이었고 슬슬 인한을 기다리는 데 지친 상태였다.
“형. 운동 안 가?”
방문이 열린 쪽은 현관 쪽이었다. 운동복 차림으로 짐가방을 든 라울리가 유호에게 물었다.
“너 운동 가게? 머리 아프다며?”
“숙취에는 운동이 직방이지.”
언제부터 그런 공식이 생겼는지 모를 일이지만 유호는 대충 넘어가기로 하고 라울리에게 말했다.
“나는 오늘 좀 쉬려고.”
“왜? 어차피 노래 연습하러 회사 가야 하잖아.”
“피곤해서 이따 오후에나 가려고.”
“그래? 알겠어. 그럼 이따 저녁에 시간 맞으면 밥이나 같이 먹어.”
“응. 이따 봐.”
“응.”
라울리는 미련 없이 숙소를 떠났다.
잠시 후 한 번 더 방문이 열렸다. 이번에도 현관 쪽 방문이었다.
“유호 뭐해? 드라마 봐?”
청바지에 셔츠를 차려입은 주언이 유호에게 말을 걸었다.
“네. 정주행하던 거 있어서요. 형은 연습 가요?”
“응. 형 오늘 좀 늦을 거야.”
주언이 현관으로 향하기 무섭게 한 번 더 방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주방 옆쪽의 안방이었다. 어느새 나갈 채비를 모두 마친 수형이 차 키를 들고 현관을 향하고 있었다.
“형도 같이 가요?”
“어. 마침 시간 비어서 태워다 주고만 오려고.”
“지하철 타고 가도 된다니까요.”
주언이 민망함에 수형에게 얘기했지만, 수형의 입장은 단호했다.
“너는 세븐스팟 아니야? 따라오기나 해.”
결국, 주언은 앞서가는 수형의 뒤를 따랐다.
“다녀올게.”
“네. 연습 잘하고 오세요.”
유호는 주언에게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유호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테일러는 독립 이후 숙소에 온 적이 없었고 주승은 여민과 함께 예능 스케줄을 갔다. 그렇다는 것은 숙소에 남은 사람이 인한과 유호뿐이라는 이야기였다.
“누구 나갔어요?”
유호가 처한 상황을 받아들일 새도 없이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구석방의 문이 열렸다. 아직 잠이 덜 깬 인한이 눈을 비비며 비몽사몽 상태로 거실로 나왔다.
“어. 수형이 형이랑 주언이 형. 대학로 연습실 갔어.”
“수형이 형도? 이따 나랑 촬영가야 하는데.”
“데려다만 주고 바로 올 거래.”
“그럼 지금 숙소에 누구누구 있어요?”
인한의 질문에 유호는 마른 침을 삼켰다. 이게 뭐라고 대답하는 게 긴장이 됐다.
“너랑 나.”
유호의 대답에 인한의 행동이 뚝 하고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