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
‘얼굴 합 쩌는 여민& 인한 유닛 ‘위로 (To The Top)’ 콘셉트포토 사진(127)’
한동안 커뮤니티 방문을 끊었던 유호는 저도 모르게 움직이는 손을 어쩌지 못하고 게시 글을 클릭했다.
와. 이제는 숨길 생각도 하지 않는구나. 노림수가 분명해 보이는 사진들에 유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진 속 인한과 여민은 서로 닿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몸과 얼굴을 맞붙이고 난리가 났다. 게다가 그 배경이 욕조이고 침대 위인 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을 지경이었다.
특히 두 사람이 침대에 누워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사진은 대장 난효러인 유호마저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만큼 감탄스러웠다. 이건 누가 봐도 사랑이잖아. 누가 연기돌들 아니랄까 봐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서사가 넘쳐흘렀다.
이런 거 질색할 줄 알았더니 아주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네. 유호는 인한에게 괜한 배신감을 느끼며 소속사를 향한 악플이라도 달고 싶었다.
물론 팬들의 입장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광경이었다.
[쌍스(소속사) 드디어 정신 차림]
[진짜 얼굴 합 춤합 보컬합 다 되는 조합]
└ [라임 무슨 일 쇼미인 줄]
[진심 존버 성공이다ㅜㅜ 나 울어ㅜㅜㅜ ]
[나 지금 개안해서 몽골인 된 듯ㅜㅜㅜ]
[쌍스 드디어 되는 조합만 밀기로 한 듯]
└ [악개 어그로 ㄲㅈ]
[미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감격에 겹다 못해 터져 나갈 듯 폭발하는 댓글 창의 반응을 보며 유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난염이 진리네. 이제는 유호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원래가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는 게 일반적이니까. 요새 급격히 증가한 신생 난효러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난효주식은 상장 폐지 됐어요, 여러분. 새로운 떡밥은 안 나올 예정이니 더 떡락하기 전에 우량주로 옮겨 가세요. 나서서 등이라도 떠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유호 뭐해?”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에 놀란 유호는 다급하게 인터넷 창을 닫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매니저 수형이었다.
“그냥. 컴퓨터 좀 하고 있었어요.”
“아. 그래?”
유호의 대답에 수형은 반색하며 미소를 띠었다. 괜히 악플 같은 거 찾아보지 말라고 잔소리부터 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반응에 유호는 당황스러웠다.
“다음 주 오디션 준비는 잘하고 있지?”
“네. 대사는 다 외웠어요.”
“그래. 연습 잘해 놓고. 나 여민이 스케줄 다녀올 테니까 어디 나갈 거면 연락하고.”
“네.”
“특히 라울이 몰래 나가거든 꼭 알려 주고.”
“아 넵.”
“그리고 다음 주 목요일에 예능 잡혔으니까 전후로 일정 잡지 말고.”
“네?”
갑작스러운 수형의 통보에 유호는 반가움보다는 당혹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숫기 없는 성격 탓에 예능 섭외에서 항상 뒤 순위로 지목됐던 유호인지라 지난 5년간 단독으로 출연한 예능이 손에 꼽았다.
“저 혼자만요?”
“여민이랑 인한이도.”
“아.”
역시 그렇겠지. 유호가 인기 멤버에 끼워져 덤처럼 예능을 출연한 게 한두 번이 아니라 놀라운 것도 없었다. 애초에 단독 게스트라니. 유호는 가당치도 않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나가는 건 안 돼요? 저 노잼이라 분량도 안 나올 텐데.”
“응. 안 돼.”
평소답지 않게 단호한 수형의 반응에 유호는 할 말을 잃었다. 수형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유호에게 전했다.
“정확히는 여민이랑 인한이 고정하는 예능, 거기 너 게스트로 갈 거야. 너 말고 남자 게스트랑 여자 게스트 한 분씩 더 있을 거고.”
“갑자기요? 제가 왜요?”
바보 같은 질문임을 알면서도 유호는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타이밍에 그 예능이라니. 떠올릴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혹시 인한이가 부탁한 거예요?”
“아니. 작가님이 직접 요청하셨는데.”
“그럼 여민이가…….”
“유호 요새 네 기사 안 찾아보는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사 찾아보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잔소리를 해 대던 수형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수형의 태세 전환을 유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유호는 의아해하며 수형에게 말했다.
“……그냥 팬 카페만 들어가요. 좋은 거만 보려고.”
“너 출연했던 영롱 웹드 요새 난리잖아.”
“그게 왜요? 그거 잘 안 됐잖아요.”
“네 얼굴이 재밌다고.”
2년 전 K 플랫폼에서 공개됐던 유호의 첫 웹 드라마 작품인 ‘영롱하게 빛나리’는 유호가 고등학교 2학년생으로 나오는 하이틴 로맨스물이었다.
하지만 그 작품이 화제성도 얻지 못하고 망작이 되리라는 걸, 유호는 첫 대본 리딩을 하는 그 순간 직감했다.
연기 경력도 인지도도 없는 아이돌로만 꾸려진 출연진에, 개연성 없이 오글거리는 대사로 범벅된 대본, 그리고 실력 없는 감독에 급조한 촬영 장소까지.
웹 드라마라고 부르기도 창피한 결과물에 유호의 개인 팬들마저 시청을 중도 포기하게 만든 희대의 괴작이었다.
공식계정 평균 조회 수가 2천 회, 좋아요 100개 미만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낳았던 그 웹 드라마가 지금에서야 난리일 이유가 무엇일까.
유호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수형이 곧바로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 줬다.
“몇 주 전에 신인 그룹 여자애가 자기 최애가 선유호라고 네 웹 드라마까지 거론했잖아. 내용은 오그라드는데 네 얼굴이 재밌다고. 그 뒤로 좀 화제였는데. 웹드 조회 수도 열 배 넘게 오르고.”
“몰랐어요.”
“한창 난리였는데 그걸 이제 알면 어떡해? 이제라도 좀 찾아봐.”
라울리 - [‘열여섯 살 하이모션 루시아의 최애돌은 세븐스팟 선유호... 웹 드라마도 챙겨 봐’ / 출처: T 뉴스 | S사 TV 연예]
라울리 - [효형 이 기사 봄?]
유호 - [아니 지금 처음 봐]
라울리 - [역시 10대픽] [조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기분은 어떠신가요]
유호 - [아이들의 안목에 감탄하는 바이며 대한민국의 장래가 밝다는 생각에 벅차오르네요]
라울리 - [ㅋㅋㅋㅋㅋㅋㅋ 언제 이렇게 뻔뻔해졌어]
유호 - [저도 프로아이도루 5년 차인지라]
라울리 - [이대로 떡상 갑시다]
유호 - [ㄱㄱ갑시다]
3일 전 라울리한테 대충 전해 듣기는 했는데 그 여파가 이렇게나 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미비하기는 했지만 떡상이란 게 이렇게 시작될 수도 있구나 싶어 유호는 새삼 놀라웠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꼭 애들 예능에 나가야 해요?”
“나갈 수 있는 데는 다 나가야지. 무슨 소리야?”
수형의 물음에 유호는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어요.”
“그래. 그럼 준비 잘해 두고 있어.”
예상과는 다른 유호의 반응에 수형은 의아했지만, 다음 스케줄이 급해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하고 방을 떠났다.
혼자 남겨진 유호는 착잡한 마음으로 한숨을 몰아쉬었다.
* * *
여민과 유호는 회사 연습실에서 한창 춤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인한. 왔어?”
예상보다 늦은 시간에 인한이 연습실에 등장했고 여민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응. 늦어서 미안.”
인한은 덤덤한 어투로 대답했다. 유호가 근 한 달 만에 마주한 인한의 얼굴은 전과 다를 바 없이 멀끔했다.
“오랜만이네요. 유호 형.”
“그러게. 잘 지냈어?”
“네. 바빠서 정신없이 지냈어요.”
인한은 아무렇지 않게 웃는 얼굴을 만들어 냈다. 유호만 괜히 어색해 시선을 내리깔았다.
“인한. 안무 다 외워 왔지?”
“어. 나 왼쪽에 서면 되는 거잖아.”
“어. 대충 맞춰 보기만 하면 금방 끝날 듯.”
여민과 인한의 대화가 이어졌고 유호는 알아서 가운데 자리에 가서 섰다. 세 사람은 예능 출연에 앞서 동반 게스트인 남자 솔로 가수 클라우드의 춤을 함께 커버 해 추기로 했다.
센터는 유호가 섰고 사이드에 인한과 여민이 섰다. 안무는 각자 따로 숙지해 온 상황이라 간단하게 동선하고 동작 타이밍만 체크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인한이 동작 너무 크다. 좀 작게 써. 그리고 뒷부분 아래에서 더 머물다 올라와야 해. 가뜩이나 더 큰데 먼저 올라오니까 엄청나게 튄다.”
“네. 신경 쓸게요.”
안무 디렉터의 말에 인한이 수긍했고 다시 연습이 시작됐다. 5년 차 아이돌인데다 춤 멤버 위주인 덕분에 연습은 30분 만에 종료됐다.
“집으로 바로 가?”
여민은 구석에 앉아 더위를 삭이고 있는 인한에게 물었다. 인한은 바로 대답했다.
“어. 가서 바로 자게.”
“같이 숙소로 가자. 가서 맥주나 한잔해.”
“형이 우리 집 와. 숙소 너무 정신없어.”
“자식이. 비싸게 굴기는.”
여민의 말에 인한은 그냥 웃고 말았다. 유호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음료를 들이켜 목을 축이고 있었다.
“그럼 이제 갈까?”
수형의 말에 세 사람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형은 먼저 인한의 집으로 향했다. 회사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자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타고 있던 인한이 내릴 준비를 했다.
“가.”
“어.”
여민의 인사에 인한이 대충 대답했고 이어서 유호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그럼 촬영 날 봐요, 형.”
“응.”
유호는 덤덤하게 인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인한이 내리고 출입문 안으로 들어설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인한은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유호 형. 우리 치킨 시켜 먹을까요? 아니면 로제 떡볶이?”
여민은 유호에게 갑작스럽게 말을 건넸다. 덕분에 창밖을 향하고 있던 유호의 시선이 여민에게로 옮겨 갔다. 여민은 한 번 더 유호에게 물었다.
“응? 맛있는 거 시켜 먹자.”
“그냥 둘 다 시키면 안 돼?”
유호는 짓궂게 웃으며 여민에게 물었다. 여민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유호에게 말했다.
“그래요. 둘 다 먹어요. 우리 형 먹고 싶은 거 다 먹어도 돼요. 내가 다 사 줄게.”
“안 돼. 내가 살 거야.”
“원래 먼저 제안한 사람이 사는 건데요?”
“그래도 내가 형인데?”
“내가 더 선배인데?”
“엥.”
“내가 이겼다. 그죠?”
그렇게 서로가 없어도 괜찮은 하루가 계속되고 있었다. 앞으로도 그런 날들이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니 유호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일이었는데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