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정한 아이돌 멤버가 유죄인 이유 (31)화 (31/120)

#031

“뭐?”

“괜히 그런 거로 책잡히면 나만 손해잖아. 나는 너랑 달라서 회사에 한 번 밉보이면 그대로 끝이거든. 혹시 알아? 너 무사히 데려다 놓은 대가로 대표님이 힘 좀 써 줄지?”

유호는 어차피 부정당할 마음을 증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자신은 이미 양치기 소년이고 상대는 진짜 늑대가 나타났대도 믿어 주질 않는데. 어쩌면 믿고 싶지 않아서 외면하는 중인지도 모르고.

“그게, 진짜 형의 진심이야?”

“그래. 그러니까 이딴 장난질은 이제 그만하자.”

“형.”

“더 정확히 말해 줄까?”

“유호 형.”

“헤어지자.”

사귀는 게 그렇게 쉬웠는데 이별이라고 뭐 어려울까. 고백까지 한 마당에 더 물러설 곳이 없는 유호였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데 자신이라고 인한을 못 물까 싶었다.

“나는 너만큼 인내심이 좋지 않아서 이렇게 당해 주는 거 더는 못하겠어. 그러니까 우리 헤어지자.”

받은 만큼 돌려주는 건 유호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습득력 하나만큼은 남다르다고 소문난 선유호니까.

“나는 부탁도 애원도 아니고 협박이야.”

응용은 덤이었다.

“그래.”

흐르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대충 닦아 낸 인한이 몸을 뒤로 물리며 침대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유호를 쳐다보지 않은 채 혼자만의 다짐처럼 얘기했다.

“다 끝내자. 나도 이제 좋은 동생 노릇은 그만하고 싶어졌으니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인한은 문밖으로 향했다. 인한이 방을 나서고 잠시 후 여민이 다시 방에 들어설 때까지도 유호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이불을 뒤집어쓰고도 새어 나오는 유호의 울음소리에 여민은 당황한 채 문 앞을 서성였다.

“들어오면 안 될 거 같아서 밖에서 기다렸는데 중간에 들어오는 게 더 나았을까요?”

어렵게 뱉은 여민의 질문에 유호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민망해진 여민은 결국 모르는 척 잠을 청하는 선택지를 고르기로 했다.

“그럼 불 끌게요.”

여민은 불을 끄고 혹시 몰라 유호의 수면 등까지 켜 둔 후 2층 침대로 향했다. 그리고 유호에게 대답이 필요 없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걱정 마요, 형. 정인한이 그래 봤자 정인한이지. 걔는 형 절대 못 이겨 먹어.”

여민의 예상대로 유호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여민은 간헐적으로 들리는 유호의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하려고 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말을 정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도 혹시 해체 문제로 싸운 거라면 저도 이번 한 번만 인한이 편 할게요. 아직 저희들 형들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 그러니까 형이 이번만 좀 져 줘요.”

유호도 인지하고 있었다. 요새 부쩍 동생들이 자신의 눈치를 본다는 사실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보듯 불안한 마음으로 유호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유호는 제 잘못된 마음으로 모든 걸 망쳤다는 생각에 쉽게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괜히 눈치 없이 말 보태서 미안해요.”

유호의 울음소리가 더 커진 걸 느낀 여민이 미안함에 사과의 말을 전했으나 유호의 눈물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잠들지 못하는 밤이었다.

* * *

‘김석재♥유주아, 열애 인정…… 올해 초부터 만남 이어 가’

연예 뉴스면 메인을 떡하니 차지한 열애 기사를 보고 유호는 울적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제목을 클릭해 기사 내용을 확인하니 더 기가 막힌 스토리가 쏟아져 나왔다.

‘정인한과의 열애설 보도 당시에도 두 사람은 이미 사귀고 있는 사이였으며 홍대 술자리에 김석재도 동행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석재와 정인한은 서도명, 김운성이 함께 속해 있는 친목 모임 ‘도란’의 멤버로 여행도 함께 다닐 만큼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지난 열애설에 관해 김석재는 아끼는 동생인 정인한이 곤란한 상황을 겪게 돼 미안하게 생각하며 비싸고 좋은 술을 평생 사 주며 보답하기로 약속했다고 전했다.’

인한과 주아의 열애설을 부인하는 후속 보도에도 성난 팬심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고 결국 유주아, 김석재가 공개 열애를 선언하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이제 와 이런 게 다 무슨 상관이라고.

유호는 한탄하며 인터넷 창을 닫았다. 동시에 유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수형이었다.

“어. 유호야. 왜 전화했어?”

20분 전 유호가 남겨 놓은 부재중 전화를 보고 다시 수형이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유호의 손은 이미 핸드폰을 향해 있었다. 관심사는 온통 인한이 괜찮은지 여부였다.

“그게, 형 언제 오나 해서요.”

“나? 이틀 뒤에. 왜? 무슨 일 있어?”

“아뇨. 그냥 궁금해서.”

유호는 잠시 말을 망설였다. 그리고 기어이 인한의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 놓았다.

“형. 인한이는 별일 없어요?”

“인한이? 어. 별일 없는데? 왜? 바꿔 줄까?”

“아뇨. 나중에요. 나중에 통화할게요.”

유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헤어지자는 말에 난리라도 칠 줄 알았던 인한은 마치 폭풍전야처럼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대화의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던 단톡방에서도 확인의 1만 없앤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있었다. 유호는 찝찝한 기분을 애써 무시한 채 수형에게 말했다.

“형. 제가 전화한 거 인한이한테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왜? 또 무슨 일 있었어?”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얘기 안 하면 안 될까요?”

“유호야.”

수형은 대답 대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유호에게 물었다.

“너 그냥 숙소에서 나가 살래? 형이 회사에다 말해 줄까?”

수형의 걱정 어린 말에 유호는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동시에 울컥 설움이 치밀었다.

“그래도 돼요?”

“안 그래도 조만간 말해 보려고 했어. 팀 활동도 불분명한 마당에 굳이 숙소 생활 계속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서.”

“형. 저 그럼, 그럴래요. 저…… 나가 살래요.”

기어이 울음을 터뜨린 유호가 수형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형. 저……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못 하겠어요. ……다 그만둘래요. 저 좀 도와주세요.”

“알겠어. 유호야. 울지 마. 형이 회사에다 잘 말해 볼게. 응? 다 잘될 거야. 형 믿지?”

“형…….”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달래 보려는 수형의 목소리를 들으며 유호는 한참을 아이처럼 울었다.

수형의 바로 뒷자리에는 인한이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쪽잠을 청하는 중이었다.

정확히는 눈만 감은 채 수형의 통화 내용을 전부 듣고 있었다.

* * *

유호가 이별이라고 지칭하기도 민망한 헤어짐을 통보한 지 이틀이 지난 시점이었다.

시간은 새벽 두 시였고 유호가 잠에서 깼을 땐 인한에게서 두 개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인한 - [자요?] [안 자고 있으면 잠깐 얘기 좀 해요 거실에서 기다릴게요] 오전 12:34

메시지를 받은 지 이미 한 시간 반이나 지나 있었다.

아마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유호는 침대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문밖으로 향했다.

유호는 방문 앞에 선 채 거실 쪽을 바라봤다. 멀리서 지켜본 소파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유호는 헛걸음을 했다고 생각하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콜록. 그때 누군가의 잔기침 소리가 들렸다. 유호는 조심스럽게 소파로 다가갔다.

소파에는 인한이 상체만 옆으로 뉜 채 잠들어 있었다. 날씨가 제법 추운데 덮을 것도 없이 다리를 늘어뜨린 불편한 자세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잠시 인한을 지켜보던 유호는 다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여분의 이불이 전부 안방 드레스 룸에 있어 마땅한 덮을 것을 찾기 어려웠다. 유호는 급한 대로 장롱에서 롱패딩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잠시 고민 후 롱패딩을 침대에 두고 이불을 들고 낑낑대며 거실로 향했다.

유호는 인한의 몸 위에 조심스럽게 이불을 덮어 주었다. 자세가 불편해 보였지만 인한이 깨어날세라 서둘러 방으로 돌아갔다.

베개도 가져다줄 걸 그랬나. 유호는 괜한 생각을 하며 패딩을 펼쳐 덮은 채 잠이 들었다.

유호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이불이 다시 유호에게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인한은 이미 숙소를 떠난 후였다.

인한은 다 늦은 밤에야 숙소로 돌아왔다.

다 같이 야식을 시켜 먹자는 라울리의 말에 별말이 없길래 외박을 하려나 싶었는데 멤버들이 모두 모여 있는 그 시점에 갑자기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뭐야? 너 올 줄 알았으면 한 마리 더 시키는 건데.”

“아. 저는 됐어요. 저녁 먹고 와서.”

라울리의 볼멘소리에 인한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거실을 지나쳐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맥주라도 한잔하지.”

“그럼 옷만 갈아입고 올게요.”

주언의 제안에 인한은 순순히 대답하며 방으로 향했다.

잠시 후 편한 차림으로 다시 거실로 돌아온 인한은 주언의 옆자리에 앉아 캔 맥주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맥주를 한두 모금 들이켜더니 예상치 못한 발언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형들 저 숙소 나가려고요.”

멤버 중 가장 놀란 건 유호였다. 안 그래도 숙소 나가는 얘기를 어떻게 꺼내야 하나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인한이 먼저 선수를 쳤다. 덕분에 멤버들의 모든 비난이 인한을 향했다.

“야. 정인한. 뭔데.”

제일 먼저 인한에게 불만을 드러낸 건 여민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라울리가 인한을 나무랐다.

“뭐야. 이 태세 전환은? 그새 마음이 바뀌었어?”

“그냥 숙소만 나가겠다는 거예요. 집도 이 근처로 잡을 거고.”

“왜? 너 혼자 있는 거 싫어하잖아.”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질문을 던진 건 주언이었다. 인한은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제 애도 아닌데 언제까지 형들하고 살 수는 없잖아요. 태윤이 형도 많이 불편해했고.”

“내 핑계 대지 마. 이 자식아.”

“네. 그냥 제가 불편해서.”

인한의 말이 끝나고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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