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정한 아이돌 멤버가 유죄인 이유 (24)화 (24/120)

#024

“가끔 이렇게 둘이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자. 어때?”

“그래. 그러자.”

유호는 선찬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장담할 수 없는 약속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5년간 그렇게 스쳐 간 인연이 한 무더기였다.

데뷔 전까지만 해도 사교적이었던 유호는 학교 친구며 동네 친구까지 옷깃만 스쳐도 친구를 먹는 마당발의 청소년이었지만,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처음에는 바빠서 친구들을 만날 시간이 없었고 나중에는 삶의 방식이 너무 달라져서 대화의 공통 주제를 찾을 수 없었다.

너 언제 앨범 나와? 너 그룹명이 세븐 뭐라고 했더라. 무심코 뱉은 말들에 상처받아 위축되는 일도 잦아졌다.

그러다 보니 점점 같은 환경의 멤버들하고만 어울리게 됐고 이제는 멤버들 말고는 따로 만나는 사람도 없게 됐다.

무엇보다 지금 유호는 다른 인간관계에 힘을 쓸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선찬이 너 한가해지면 그때 그러자.”

하지만 인사치레에 불과한 말뿐이라도 오늘은 새로운 약속을 정해 보기로 했다.

시간이 약이라고 유호에게도 언젠가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날이 올 테니 혹시 모를 그때를 기약하기로 했다.

“좋아. 약속했다.”

유호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 낸 선찬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호도 마주 웃어 줬다.

유호가 잠실 본집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였다.

선찬의 매니저는 굳이 됐다는 데도 유호를 잠실 집까지 데려다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덕분에 편하게 집에 당도할 수 있었지만, 숙소로 가지 않는 이유를 만들어 덧붙여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기기는 했다.

“지금 휴식기라 본집에서 쉬는 중이야.”

“그럼 놀 시간 많겠네?”

“그렇……겠지?”

당분간 놀 시간이 왜 없을 예정인지에 대한 변명도 생각해 내야 했다.

“유호. 들어가. 연락할게.”

“응. 선찬아. 잘 가.”

유호는 선찬에게 짧게 인사를 건네고 부모님 집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하루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유호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해 세수와 양치를 마치고 방에 들어가 다시 방전 모드에 돌입했다.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12시간이 지난 다음 날 오후 11시였다.

핸드폰을 보니 메시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선찬 - [유호야 일어났어?]

소이 - [오빠 어제 선찬 오빠 보러 갔다 왔어요?]

수형 - [어제 별일 없었지?]

여섯 점돌이들 방 6 - [ㅇㅇ] (19)

선찬과 소이, 수형에게서 각각 한 개씩의 메시지가 와 있었고 세븐스팟 단톡방에는 19개의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유호는 우선 멤버들부터 살피고자 했다.

- 여섯 점돌이들 방 6 -

여민 - [사진][사진]

여민 - [효형 이거 뭐야] [왜 나 몰래 데이트했어?] 1

라울리 - [뭐야 옆에 누구야?] 1

여민 - [말랑웹드 같이 찍은 배우] [어제 혼자 시사회 다녀왔대] 1

라울리 - [와 배신자]

라울리 - [사진][사진]

라울리 - [서도명 형님이랑도 같이 찍혔는데?] [뭐야 정인한 너 알았어?]

라울리 - [뭐야 정인한] [대답해] [대닫바ㅏㅁ] [읽씹하지 마] 1

주언 - [울아 한이 촬영 중인 거 같은데] [그만 보내렴] 1

라울리 - [ㅇㅇ]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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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가 난 단체 채팅방을 보며 유호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애초에 멤버들 모르게 공식적인 자리에 다녀온다는 게 말이 안 됐다.

여민이 단톡방에 올린 사진은 선찬과 고깃집을 나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물론 사진의 출처는 선찬의 SNS였다.

라울리가 올린 사진은 도명과 찍힌 영화 VIP 시사회 기사 사진이었다. 심지어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까 되게 친한 사이처럼 보이네. 유호는 착잡한 마음으로 단톡방에 메시지를 입력했다.

유호 - [친구 시사회 초대받아서 잠깐 다녀온 거야] 1

여민 - [친구?] [친구?????????????] 1

유호 - [그래 친구] [동생 말고 형 말고 친구] 1

여민 - [힝 나도 유호 형이랑 친구 할래] 1

유호 - [그러게 조금만 더 빨리 태어나지 그랬어] 1

여민 -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1

라울리 - [서도명 형님은?] [인한이도 같이 간 거 아냐?] 1

유호 - [아냐 선배님은 가서 우연히 만난 거야] 1

여민 - [효 형 나랑도 우연히 만나서 사진 오백 장 찍어ㅜㅜㅜㅜ] 1

유호 - [알겠어 다음에 연사로 찍어 줄게] 1

라울리 - [그래서 유호 형 언제 오는데] 1

직설적으로 던져진 라울리의 질문에 유호는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마냥 답을 피할 수만은 없으니 대충 에둘러라도 말을 해 놓기로 했다.

유호 - [이번 달 안에?] 1

라울리 - [ㅇㅇ 그럼 다음 주 월요일 아침에 와] 1

여민 - [좋다 방 청소해 놓고 기다릴겡 마이브로] 1

주언 - [월요일 저녁에 유호 좋아하는 오므라이스 해 줄게] 1

우리의 거침없는 라울리는 멋대로 유호의 컴백 일자를 월요일로 확정시켰다. 덩달아 여민과 주언까지 바람을 잡았고 유호는 어쩔 수 없이 멤버들에게 대답했다.

유호 - [네 월요일에 갈게요] 1

여민 - [야호 신난당 그날 스케줄 빼 달래야딩] 1

라울리 - [일정이 공유되었어요.│월요일 오후 07:00 ~ 오후 09:00│초대 6명]

라울리 - [필참하도록] 1

대화는 빠르게 마무리됐다.

다만 계속 거슬리는 건 채팅창에 표기된 숫자 1이었다.

테일러야 단톡방을 거의 스팸 취급하니까 숫자 1의 주인은 당연히 테일러일 게 분명했다.

그렇다는 것은 인한이 실시간으로 채팅창을 보고 있다는 말이 된다.

예전 같았으면 나 몰래 누굴 만났냐며 벌써 전화를 걸어 호들갑을 떨고도 남았을 텐데.

유호는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서글퍼졌다.

* * *

늦은 점심 식사를 마친 유호는 침대에 드러누워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기사 사진이 얼마나 떴는지 한참 찾아보다가 기어이는 들어가지 않기로 다짐했던 SNS에 들어가 이름 검색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핸드폰 중독이 위험한 거였다.

[난 지인을 효가 따로 만난다? 이건 진짜 되는 주식인 거지]

└[난효는 진짜 남모르게 터지는 게 레알 찐 바이브임]

└[쌍스(소속사SS엔터를 지칭)가 백날 수납해도 숨길 수 없음ㅜㅜ 그들은 사랑을 해]

└[염도 서돔 따로 만난 적 없다고 그랬는데 대박임]

우리의 위대한 난효러들은 유호와 도명과의 만남조차 떡밥으로 먹고 있었다. 같은 날 유호가 선찬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듯했다.

[선찬x효도 되는 주식 같은데 함께 하실 분]

└[CP명 뭐로 함 선효? 찬효?]

└[찬효가 나은 듯 선효는 효 풀넴이랑 겹침]

그 와중에 크로스오버페스 지지자도 생겨났다.

[테도 서돔 따로 만난 적 있는데 난효빠들 날조로 먹는 것도 정도껏 하길]

└[테랑 서돔 언제 봄?]

└[테절친 혅웅이 서돔절친 섟재랑 친하잖아 다 같이 본 적 있댔음]

└[심지어 난보다 먼저 봄]

[난효빠들 논리라면 난테가 더 레알임]

유호는 새로운 TMI도 하나 알게 됐다.

테일러 형이랑 도명 선배가 어떻게 아는 사이인가 했더니 이런 비하인드가 있었군. 유호는 깨달으며 서치에 박차를 가했다.

검색어는 ‘인한’이었다.

[인한이 셀카 어디까지 왔니 다음 주에는 오는 거지]

[우리 인한이 셀태기왔니 왜 안 오니]

[쌍스놈들아 인한이 적당히 좀 굴려라 아픈 지 얼마나 됐다고 스케줄 풀로 돌리냐]

[인한이 아파서 유호랑 시사회 같이 못 갔나 봄ㅜㅜ]

팬들이 난리 난 이유는 간단했다.

두 달 전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월요인한 이라는 태그를 달고 셀카를 올려 주던 인한이 이번 주에는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유야 너무 뻔하니 더 검색해 볼 것도 없었다.

유호는 SNS을 빠져나왔다.

괜찮아진 줄 알았던 기분이 다시 바닥을 쳤다.

유호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낮잠을 청하려고 했다.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건 힘든 일이었고 당분간은 회피하는 것으로 실연의 아픔을 이겨 내기로 했다.

유호가 침대에 바르게 누워 눈을 감자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유호가 놀라 액정을 확인하니 예상치 못한 인물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다름 아닌 정인한이었다.

당연히 받지 않았다. 받을 수 없었다는 것에 더 가까웠다. 유호는 인한이 두려웠다.

인한 - [할 말 있어 전화 좀 받아]

유호의 반응을 예상이나 한 것처럼 인한은 곧바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하아. 유호는 깊은 한숨과 함께 머리를 부여잡았다.

동시에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이번에도 발신자는 인한이었다. 유호는 마지못해 전화를 받았다.

“어. 인한아.”

- 정말 다음 주 월요일에 돌아올 거야?

“…….”

- 왜 대답이 없어?

“……잘 모르겠어.”

유호는 겨우 입을 떼 인한에게 대답했다. 인한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는 상태였다.

- 나도 돌아왔으니까 형도 그냥 돌아와. 끝낼 때 끝내더라도 할 도리는 다하고 끝내야 할 거 아냐.

사실 유호도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해체가 확실시된 상태도 아니었고 상의도 없이 숙소를 이탈한 것이니 당장이라도 돌아가는 게 맞았다.

다만 인한을 어떤 얼굴로 마주해야 하나 자신이 없었다.

- 듣고 있어?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 충분히 설명한 거 같아서.”

- 하나도 설명되지 않았는데?

“너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게 맞아?”

- 이해했지. 그리고 결론도 냈고.

결론을 냈다는 인한의 말에 유호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결론은 이미 오래전에 나 있었다. 그 사실을 유호는 몇 번이고 인한에게서 증명받았다.

“결론은 네가 굳이 안 내 줘도 돼.”

- 알아. 형은 나랑 다 끝내고 싶어서 고백했다는 거. 사랑 고백이 언제부터 그런 용도로 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미안해.”

- 미안해할 필요 없어. 생각해 보니까 차라리 잘됐더라고.

뭐가 잘됐다는 건지 유호는 인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인한이 먼저 전화해 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뿐더러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서로 대화를 나누게 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인한은 계속해서 의외의 행동을 이어 가고 있었다.

- 사귀자. 형.

인한은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유호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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