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정한 아이돌 멤버가 유죄인 이유 (19)화 (19/120)

#019

“유호는?”

“전화 꺼져 있는데요?”

“인한이는?”

“안 받거나 통화 중이요. 형 전화도 안 받아요?”

“어.”

테일러와 매니저 수형은 숙소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관리자의 고충을 나누는 중이었다.

지난 5년간 스케줄 펑크 한 번 안 내고 잘 활동해 온 애들이 이렇게 돌발 행동을 할 줄은 수형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사고를 쳐도 라울리나 테일러가 칠 줄 알았는데. 수형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두 멤버를 바라보며 역시 사람을 속단하면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유호는 걱정 안 되는데…….”

“인한이가 걱정이지.”

“진짜 정인한 어쩌죠, 형?”

테일러의 걱정 어린 물음에 수형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일 촬영스케줄 어쩌지. 이제라도 조감독님께 전화를 드려야 하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유호 - [저 부모님 집이에요 내일은 꼭 전화 받을게요 죄송해요]

유호야 친절히 행선지를 알리는 문자까지 보내 놓고 잠적했으니 걱정이 덜했지만 인한은 달랐다.

멤버든 매니저든 회사 이사든, 전화란 전화는 다 쌩까고 아무도 모르게 날라 버린 상황이었다.

“팀장님. 어디 가세요?”

수형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자 계속해서 인한에게 전화를 시도하던 집념의 매니저 주승이 질문을 던졌다.

수형은 저승에라도 끌려가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조감독님께 전화드리러.”

아무래도 내일 촬영은 그른 거 같으니까. 수형은 깊은 한숨과 함께 방으로 사라졌다.

* * *

유호는 택시를 잡아타고 곧장 잠실의 부모님 집으로 향했다. 이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도저히 멤버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계속해서 울려 대는 핸드폰은 꺼 놓은 지 오래였다.

“유호야.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야?”

유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부모님은 놀란 눈치였다.

한바탕 울어 젖히고 난 후라 잔뜩 부어 있는 유호의 얼굴에 묻고 싶은 게 많은 눈치였지만 굳게 닫힌 유호의 입을 굳이 열려고 하지는 않았다.

유호는 저녁도 마다하고 방 안에 틀어박혀 잠을 청했다. 자다 깨기를 반복하고 마주하게 된 아침 햇살은 여느 때와 달리 지나치게 눈부셨다. 아. 암막 커튼. 언젠가 달아야지 해 놓고 계속 미뤘던 게 이제야 후회로 다가왔다.

“매니저 형한테 전화 왔더라.”

방 밖으로 나가자 엄마가 미지근한 물 한 잔을 건네며 말을 걸어왔다.

유호가 물 한 잔을 다 비우자 식탁 위로 아침밥이 차려졌다. 유호는 얌전히 식탁 의자에 앉았다.

“뭐라고 왔는데?”

“그냥. 너 집에 잘 도착했냐고. 유호 너 뭐 사고 친 건 아니지?”

“아냐. 그런 거. 그냥 스케줄 없어서 온 거야.”

“그래. 근데 인한이 걔는 왜 갑자기 아픈 거라니?”

“어?”

“인한이 말이야. 아파서 실려 갔다던데?”

엄마의 말에 놀란 유호가 서둘러 핸드폰 전원을 켰다.

요란한 진동 소리와 함께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를 알리는 알림이 연달아 떴다.

유호는 알림을 전부 무시하고 연예 뉴스 창부터 들어갔다.

‘세븐스팟 측 ‘인한, 오늘 새벽 급성장염 진단 받고 휴식 중’ [공식]’

‘정인한, 급성 장염으로 ‘함께 걸어요’ 녹화 불참... 일정 조율 中’

‘‘팬텀 하우스’ 정인한, 급성 장염으로 응급실行... 촬영 스케줄 전면 취소’

유호는 잠시 놀란 마음을 가라앉혔다. 큰 사고나 위험한 질병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유호는 우선 인한에게서 온 메시지부터 확인해 봤다. 전부 하루 전날에 보내온 메시지였다.

인한 - [형 지금 어디예요?] 오후 3:07

인한 - [집에 간 거예요? 전화 좀 받아요] 오후 3:15

인한 - [형. 진짜 이럴 거야? 갈 때 가더라도 이렇게 가는 건 진짜 아니잖아] 오후 3:37

인한 - [메시지 보면 바로 연락해요] 오후 4:24

인한 - [형 마음대로 해 나도 내 마음대로 할 테니까] 오후 8:48

극단적인 말로 끝나 버린 인한의 메시지에 유호의 마음은 다시 불안해졌다.

“엄마. 나 전화 좀.”

“그래.”

유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방으로 향하면서 수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들리자마자 곧바로 전화는 연결됐다.

“유호야. 이게 무슨 일이니 진짜…….”

“수형이 형. 인한이 어떻게 된 거예요?”

“날랐어.”

“네?”

“날랐다고. 저녁에 갑자기 사라져서 지금까지 연락이 안 돼.”

“어디 있는지도 몰라요?”

“어. 형네 집에도 없대고. 친한 배우들한테도 연락해 봤는데 다들 모른대. 지금 회사 난리 났어.”

수형의 대답에 유호는 아찔해졌다. 이러려고 독한 마음을 먹고 인한을 밀어낸 게 아닌데. 의도와는 다르게 악화되는 상황에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너 우선 핸드폰 끄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봐. 상황 정리되는 대로 다시 연락해 줄게.”

“네.”

수형은 바쁜지 서둘러 전화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유호는 순순히 대답하고 전화가 끊어지길 기다렸다.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얌전히 있고. 핸드폰 또 꺼 놓으면 진짜 가만 안 둔다. 집으로 당장 데리러 갈 거야.”

“네. 죄송해요.”

수형의 소소한 협박과 함께 전화는 끊어졌다.

‘전원이 꺼져 있어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며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인한에게 전화를 걸어 봤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결국 또 저지른 만큼 당하는구나.

하루 만에 상황이 역전되고 말았다.

유호 - [어디야? 메시지 보면 연락 줘]

유호는 인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동시에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인한인가 싶어 다급히 확인했으나 전화를 건 이는 테일러였다. 아. 큰일 났다. 상황 판단을 모두 끝낸 유호는 자신이 얼마나 큰 사고를 쳤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유호는 걱정 가득한 마음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죽을래?

“죄송해요.”

- 사고를 칠 거면 라울리처럼 자잘하게 쳐. 이렇게 크게 쳐서 놀라게 하지 말고.

테일러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화가 누그러졌다기보다는 해탈한 느낌이었다. 유호는 죄스러운 마음에 변명부터 내뱉었다.

“작정하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갑자기 상황이 그렇게 돼서…….”

- 그게 더 무섭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아서.

“진짜 죄송해요. 면목이 없어요.”

- 앞으로 사전 예고는 좀 하자. 고민이 생기면 제발 털어놓고. 우리가 그 정도도 안 되는 사이는 아니잖아?

“당연히 아니죠. 이렇게 일이 커질 줄은 몰랐는데, 정말 죄송해요.”

거듭되는 유호의 사과에 테일러의 잔소리도 1절로 끝이 났다. 지금 시급한 건 유호가 아니라 인한이었다.

- 인한이 나른 건 들었지?

“네.”

- 데리고 와야겠지?

“네. 그래야죠.”

- 너도 당연히 와야 하고.

테일러의 말에 유호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어떤 마음으로 나온 회사인데.

그런 유호의 마음을 가늠했는지 테일러가 한층 다정한 목소리로 유호의 이름을 불렀다.

- 유호야.

“네.”

- 무조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상의하고 결정하자는 거야. 이렇게 끝내는 건 팬들한테도 예의가 아니잖아.

“네. 알아요.”

- 형이 너 힘든 거 몰라줘서 미안해. 이렇게 된 데에는 내 탓도 크다. 진작에 신경 써 줬어야 됐는데.

“아니에요, 형. 형은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요. 그냥 제가, 제가 부족해서…….”

- 네가 어떤 결정을 하든 형은 너 응원해. 그러니까 우선은 돌아와서 다 같이 얼굴 보고 얘기하자. 응?

“……네. 알겠어요.”

테일러의 거듭되는 설득에 유호도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사실 충동적인 결정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대로 끝내는 건 테일러의 말대로 너무 무책임했다.

- 그래. 마음 좀 추스르다 돌아와.

“네. 형. 그럴게요.”

- 그래.

테일러와의 통화는 간단하게 끝이 났다. 이후에 다른 세 명의 멤버들과도 한 명씩 통화를 마쳤다. 다들 나무라기는커녕 위로해 주기 바빴다. 유호는 더욱더 죄책감을 느꼈다.

인한으로부터의 답장은 결국 오지 않았다.

* * *

유호 - [아직도 연락 없어?]

유호는 여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두 시간 전에도 이미 같은 내용으로 연락을 했었지만 그런 걸 고려할 마음 상태가 아니었다.

상황이 정리되면 연락을 준다던 수형은 밤이 되도록 깜깜무소식이었다.

여민 - [ㅇㅇ 아직도 행방불명]

여민의 답장은 곧바로 돌아왔다. 그러나 유호가 원하던 소식은 아니었다.

여민 - [형은 언제 올 건데요]

유호 - [수형이 형이 우선 대기하라고 해서]

여민 - [엥 그냥 오지] [인한이 왔는데 형 없으면 또 난리 날 거 같은데]

하지만 아직 유호는 인한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때 갑자기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발신인은 수형이었다. 유호는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 유호야.

“네. 형. 어떻게 됐어요?”

- 인한이 찾았어. 지금 데리러 갈 테니까 준비하고 있어. 한 30분 뒤에 도착할 거야.

“네? 저도 가요?”

- 너도 같이 가야지. 인한이가 내가 데리러 간다고 순순히 오겠니? 그나마 걔가 네 말은 잘 듣잖아.

“인한이 다른 형들 말도 잘 들어요. 테일러 형이 가도 될 텐데.”

- 테일러가 너 데리고 가래. 안 그러면 소용없을 거라고.

수형은 지금 유호의 기분을 고려해 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 다급한 심정을 알기에 유호는 순순히 수형과 동행하기로 했다.

사실 수형만큼이나 유호도 마음이 급한 상태였다.

* * *

“안녕하세요.”

유호는 눈앞에 선 낯선 이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건넸다.

직접 현관문을 열고 수형과 유호를 집 안으로 안내한 이는 연예인의 연예인이라 일컬어지는 톱 배우 서도명이었다.

인한과는 2년 전 드라마를 함께한 것을 인연으로 친해져 무리를 형성해 함께 놀러 다닐 만큼 절친한 사이였다.

인한이 사라지고 당연히 연락했어야 할 1순위의 인물이었지만 연락이 닿은 그의 매니저에게 칼차단을 당해 곤란하던 차였다.

하지만 다행히 도명이 직접 일면식이 있던 테일러를 통해 먼저 연락을 해 왔다.

“도무지 안 갈 기세라. 쫓아낼 수도 없고.”

“정말 감사합니다.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몰라요.”

수형은 도명을 향해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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