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인한은 콘서트장 내에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에게 응급 처치를 받은 후 바로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유호는 구급차에서부터 응급실 대기실까지 인한의 옆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인한은 그런 유호의 얼굴을 이따금 쳐다보면서 기쁜 듯 웃었다. 지켜보는 수형의 입장에서는 대환장 할 광경이었다.
병원 원무과 창구 앞에 나란히 앉은 인한과 유호는 손을 맞잡은 채 수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콘서트는 결국 중단됐고 남은 2회 차 공연도 취소되고 말았다.
덕분에 수형은 이곳저곳에서 걸려 오는 전화에 대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콘서트 그냥 해도 되는데.”
“이렇게 다쳤는데 무슨 소리야.”
인한의 오른 손목은 골절 진단을 받아 깁스를 해야 했고 찢어진 이마는 밴드만 붙인 후 다음 날 성형외과에서 꿰매기로 했다. 우측 어깨와 골반에는 타박상 진단을 받았다.
“그래도. 1년 만에 하는 단독 콘서트였잖아.”
“좀 미루면 되지. 팬들도 다 기다려 줄 거야.”
유호의 말에 수긍하며 인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한 오기를 부려 유호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아픈 게 이렇게 큰 무기가 될 줄 알았다면 진작 엄살이라도 피워 볼 걸 하는 유치한 생각도 해 봤다.
“형. 나 아파.”
“어? 어디가?”
인한의 앓는 소리에 유호가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유호의 손이 인한의 얼굴로 향하자 인한은 얼굴을 움직여 유호의 손바닥 위에 제 뺨을 기댔다.
인한이 바라는 바를 눈치챈 유호는 손가락을 움직여 인한의 얼굴을 쓰다듬어 줬다.
“어디가 아픈데? 손목? 머리? 진통제 좀 더 놔 달라고 할까?”
“그냥 다 아파.”
“그래. 너 많이 다쳤잖아. 피도 나고 뼈도 부러지고. 여기저기 멍도 들고.”
“그전부터 계속 아팠어, 나.”
과거형으로 이어지는 인한의 말에 유호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인한은 사고 이전의 얘기를 하고 있었다. 유호에게 멋모르고 밀쳐져 방치당했던 순간들을.
어쩌면 오늘 일어난 사고도 자신의 탓인지도 모른다고 유호는 생각했다. 인한이가 그렇게 다칠 애가 아닌데. 그런 생각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진통제도 소용없을 만큼 나 진짜 많이 아팠어.”
“……인한아.”
“유호 형. 형도 내가 아픈 건 싫은 거잖아. 그렇지?”
“인한아. 내가…… 내가 미안해.”
“내가 미워도 다치니까 걱정되는 거잖아.”
그렇게 말하는 인한의 두 눈엔 눈물이 차올라 있었다. 아플 때나 슬플 때나 늘 꿋꿋하던 인한이었는데. 유호 때문에 서럽게 눈물짓고 있었다.
“내가 죽어도 좋을 만큼 미운 건 아닌 거잖아. 그렇지?”
“왜 그렇게 말해. 나 너 안 미워해.”
“그럼? 내가 가진 게 미워? 근데 형. 나 그런 거 하나도 필요 없어. 내가 이런 말 하면 형이 더 화낼 거 아는데, 진짜야. 나는 그냥 형들이 좋고 무대가 좋아서, 그래서 다 하는 거야. 사실은 나도 너무 힘들어. 다 그만두고 싶어, 형.”
서러운 마음을 쏟아 내는 인한이 가여워 유호는 결국 같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미 한바탕 쏟아 낸 직후라 그런지 눈물이 떨어지는 속도가 빨랐다. 인한은 멀쩡한 팔을 뻗어 유호를 자신의 품속으로 끌어안았다.
“형.”
“응.”
“그러지 마. 응? 나한테 그러지 마.”
애원과도 가까운 인한의 말에 유호는 자신이 쌓아 놓았던 모든 방어벽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억지로 밀어낸다고 끊어 낼 수 있는 마음이 아니었다.
어차피 끝까지 모른 척하지도 못할 것을 알았다. 며칠 내내 그랬다. 아플까 다칠까 전전긍긍하다가 이렇게 한달음에 달려갈 것을 어쩌면 미리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유호는 지난 노력이 부질없이 느껴졌다.
그리고 사실 유호는 단 한 번도 인한과 멀어지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응. 미안해. 인한아. 내가 미안해.”
“내가 형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면서 나한테 그러면 안 돼, 진짜.”
“응…… 안 그럴게.”
“나 진짜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거거든?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있는데 참고 있는 거란 말이야. 그러니까 형까지 나한테 이러면 안 돼. 나 그러면 진짜 못 버텨.”
“내가 다 잘못했어.”
그날 유호는 처음 알았다. 인한이 견디고 있는 부담감과 버거움을.
언제나 웃는 얼굴로 괜찮은 듯 굴어서 모든 게 다 괜찮은 줄로만 착각했던 거다.
고작 스무 살밖에 안 된 인한은 팀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데, 자신은 고작 질투에 눈이 멀어서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그게 창피해 유호는 더 눈물이 났다.
“안 그럴게. 미안해. 인한아.”
유호의 다짐에 인한이 유호를 안은 팔에 더 힘을 줬다.
모든 일 처리를 마치고 돌아온 수형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유호와 인한을 바라보았다. 싸움도 요란하게 하더니 화해는 더 야단법석으로 하는구나.
낯 뜨거우면서도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그게 벌써 2년 전의 일이었다.
* * *
- 7SPOT 해체 논의 4개월 전 -
< 1. 지 혼자만 추운 상여호
유호는 두꺼운 니트 폴라 티에 카디건을 입고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인한은 그런 유호가 걱정돼 물었다.
“효 형. 추워요?”
“조금?”
“이거 입을래?”
인한은 입고 있던 블루종 점퍼를 이미 반쯤 벗은 상태였다. 유호는 손사래를 치며 인한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냐.”
“입어. 감기 걸려.”
유호가 말릴 새도 없이 인한의 점퍼가 유호의 어깨 위로 걸쳐졌다. 인한이 지퍼까지 야무지게 잠그는 동안 유호는 인한의 행동이 끝나길 얌전히 기다렸다. >
아. 이건 자체 콘텐츠 너튜브 영상이고.
< 2. 매운 거 먹으면서 어그로 끄는 상여호.
“효 형. 이거 먹지 마요. 매워.”
인한은 식탁 중앙에 놓인 낙지 볶음밥을 유호의 반대편 가장자리로 치웠다.
“아냐. 나 먹을 수 있어.”
“이거 신라면보다 매운데?”
“나 요새 좀 늘었어. 이제 엽떡도 먹는데?”
유호는 당당하게 말하며 낙지 볶음밥으로 숟가락을 가져갔다.
형이 먹었던 건 로제 순한 맛이었는데. 인한은 속으로만 생각하며 유호의 행동을 불안한 눈길로 바라봤다.
“으아.”
기어이 낙지 볶음밥을 입 안으로 가져간 유호는 몇 번 씹지도 않고 맵다고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아. 너므 매어.”
“그러게. 맵다니까.”
인한은 테이블에 놓인 생수를 냉큼 집어 뚜껑을 연 채 유호의 입으로 가져갔다. 유호는 인한이 먹여 주는 물을 얌전히 받아 마셨다.
“민이 형. 그거 마실 거야?”
인한은 여민의 바로 앞에 놓인 초코우유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초코우유? 어. 마실 거야. 왜?”
“효 형 주게.”
“자. 가져가.”
인한에게는 절대 주지 않을 것처럼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던 여민이 유호에게 준다는 말에 냉큼 초코우유를 건넸다.
인한은 들고 있던 물을 내려놓고 초코우유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빨대를 꽂아 유호에게 건넸다.
“형. 물 말고 이거 마셔요.”
“응. 고마워.” >
이건 관찰 예능 나갔을 때 대기실 영상이고.
< 3. 손발 없고 염치도 없는 상여호
“졸려요?”
인한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위태롭게 걸어가는 유호를 향해 물었다. 비행시간 막바지에 잠들어 착륙 직전에 깬 유호는 대답할 기운도 없어 고개만 끄덕였다.
“업힐래?”
이번에도 유호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젓는 것으로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유호의 뒤에 딱 붙어 선 인한이 유호의 움직임을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봤다. 그러다 안 되겠는지 유호의 어깨를 붙잡았다.
“업혀요. 가방 이리 주고.”
“아냐…… 나 걸어갈래…….”
“안 돼. 이러다 넘어져.”
인한은 유호의 가방부터 뺏어 여민에게 건넸다. 그리고 몸을 낮춰 유호를 들쳐 업었다. >
이건 두 달 전 입국 영상이네. 심지어 사생짤이고. 하.
유호는 열어 놓은 웹페이지의 스크롤을 천천히 내렸다.
SNS 라이브 방송부터 컴백 인터뷰 영상, 그리고 단체로 예능 나갔을 때 게임 영상까지. 아주 다채롭게도 모아 놓은 게시 글이었다.
영상을 다 본 소감은 역시 인한은 유호성애자고 난효(인한x유호)는 찐이다, 였다.
근데 왜 게시 글 제목이 ‘올해 상반기 비게퍼짓 하는 상여호 만행’이지?
아무리 봐도 행한 자는 정인한이고 당한 자가 선유호인데.
[난염 제발 탈 칠스팟 해]
[상여호 비게퍼짓 하는 거 개역겨움 난염이 무슨 죄야]
[난염한테 붙어서 콩고물이라도 받아먹고 싶은가 보지 그럼 뭐 해? 지가 향기 없는 꽃인걸]
[꽃은 무슨 쟤 얼굴만 보고 빠는 애들이 제일 이해 안 됨 난염 인생에서 좀 꺼져 줬으면]
댓글은 더 가관이었다.
이러는데 내가 어떻게 신경을 안 써.
아니 근데, 내가 뭐 병크를 터뜨린 것도 아니고 해도 해도 너무하네. 아. 실력 없는 것도 병크랬지. 근데 그것도 이제는 봐줄 만하지 않나.
연습생 기간 6개월. 그 짧은 기간은 유호를 프로 아이돌로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아이돌 그룹에서 동작만 따라 하기에 급급한 멤버를 누가 달가워할까.
데뷔 직후 유호는 정말 삼 일에 한 번꼴로 댓글로 처맞았다.
데뷔 2년 차 때부터는 무대에 민폐가 안 될 정도로 실력을 키웠지만 한번 미운털 박힌 걸 빼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때는 인한과 한창 사이가 좋을 때였고 인한보다 유호가 더 애정 표현에 적극적일 때였다.
그래서 비게퍼짓 한다고 처맞았다. 사이가 안 좋을 때는 인한이 눈치 보게 한다고 처맞고 다시 사이가 좋아졌을 때는 성격 지랄맞다고 처맞았다.
노력해도 달라지는 게 없으니 차라리 탈퇴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고민을 수없이도 했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와 효 가지고 또 지랄이네 비게퍼짓 하는 거 누가 봐도 난 아님? 너네 난 줘도 안 가지니까 효 머리채 좀 놔주길]
[이거 난효 영업 글임? 난이 효 ㅈㄴ사랑하는 거로밖에 안 보이는데]
[난염러들 또 배 아파서 ㅈㄹ난 거지. 요새 떡밥 없어서 뱅글 돈 듯]
[제목 ‘유난 떠는 난’으로 바꿔야 되는 거 아님? 난아 제발 효 좀 가만 냅둬라]
요새는 유호를 실드하는 댓글도 제법 늘었다. 되레 인한을 욕하는 댓글도 늘어서 유호는 짜증 났지만, 마냥 욕을 먹던 때보다는 한결 낫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