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정한 아이돌 멤버가 유죄인 이유 (4)화 (4/120)

#004

유호는 7SPOT의 6명의 멤버 중 가장 마지막에 합류한 멤버였다.

동네 가요제에 나갔다 참가상만 받고 돌아온 유호를 지금의 소속사 실장이 캐스팅했고, 춤이라고는 춰 본 적도 없던 유호를 소속사 대표가 데뷔 팀에 보컬 및 비주얼 멤버로 합류시켰다.

합류 첫날 자신의 춤 실력을 보고 경악했던 멤버들의 표정을 유호는 아직도 잊지 못했다.

리더인 테일러는 수록곡 마무리 작업 때문에 바빴던 터라 유호는 자연스럽게 또 다른 춤 멤버인 인한에게 맡겨졌다.

“에어컨 껐죠?”

“응.”

“스피커는?”

“껐어.”

“겉옷은?”

“이게 다인데. 나 이것만 입고 왔어.”

“밖에 추운데.”

“괜찮아. 어차피 20분만 걸으면 되는데.”

“땀 흘린 채로 찬 바람 맞으면 감기 걸려요.”

그렇게 말하며 인한은 자신의 어깨에 대충 걸쳐 놓았던 재킷을 집어 유호의 어깨에 둘러 주었다.

형, 팔 좀. 알아서 입을 수 있는데도 친히 팔도 끼워 주고 지퍼를 잠가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는?”

“아직 더워서.”

“나가면 추울 텐데.”

“저는 바보라 감기 안 걸린다는데요.”

“누가?”

“태윤이 형이.”

테일러 형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묘하게 납득이 가는 대답에 유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인한이 만족해하며 유호의 손을 잡았다.

정확히는 치수가 큰 탓에 유호의 손을 감싸고 있는 재킷의 옷소매를 잡았다.

“형. 손 어디 있어요?”

“여기.”

유호는 인한에게 잡힌 소매의 안쪽에 있는 손을 짤랑짤랑 흔들어 보이며 웃었다.

그 행동에 인한이 대뜸 유호의 머리 위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왕 하고 유호의 정수리를 깨물었다.

“아. 뭐 하는 거야?”

“왜 이렇게 귀여워요?”

“어디가? 나 안 귀엽거든?”

“아닌데. 귀여운데.”

그렇게 말하며 인한은 유호의 손을 제대로 찾아 잡았다.

급작스러운 인한의 행동에 놀란 유호만 괜히 두 귀를 붉혔다.

인한은 연습실 불을 껐고 두 사람은 핸드폰 불빛만을 의지해 어두운 복도를 함께 걸어갔다.

“형은 손도 작네.”

“네가 큰 거지 내가 작은 건 아니거든?”

“그런가.”

“그리고 나 더 클 거야. 아직 성장기 안 지났어.”

“얼마나?”

“응?”

“얼마나 더 클 건데요? 여기서.”

“한…… 5cm 이상은 크고 싶은데.”

“그럼 나는 그거보다 더 커야겠네.”

“여기서 더 크려고?”

“네. 형이 제 턱 밑에 있는 게 좋아서.”

갑자기 멈춰 서서 허리를 끌어안는 인한의 행동에 유호가 놀라 파닥거렸다.

그러자 인한은 키득거리며 순순히 뒤로 물러났고 유호는 잡히지 않은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동안 유호는 인한이 남자를 좋아하나 오해도 했었다.

저뿐 아니라 다른 형들에게도 치대고 깨물고 몸을 조몰락거리는 게, 서로 닿는 것조차 극혐하는 제 친구들과는 결이 달랐다.

유호가 여태 해 본 남자와의 몸의 대화라고는 운동하다 하게 되는 몸싸움 내지는 하이 파이브 정도가 전부였는데.

이렇게 뒤에서 끌어안거나 손을 잡거나 하는 일은 상상도 못 해 본 일이었다.

하지만 오해는 금방 해소됐다.

혈기 왕성한 남자들끼리의 대화에서 여자 얘기가 빠질 리 없었고, 이상형 얘기를 하다 알게 된 사실은 인한이 한 여자 솔로 가수의 진성팬이라는 사실이었다.

얘 아이돌도 그분 만나려고 하는 거잖아요. 여민의 증언이 이어졌고. 만나서 결혼할 거예요. 인한의 확인 사살로 모든 게 확실해졌다.

아 얘는 그냥 사람 손 타는 걸 좋아하는 애구나. 그 뒤로 유호는 인한의 스킨십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이따금 자신의 얼굴에 열이 오르는 건 그냥 스킨십이란 게 원래 그런 거니까, 라고 간단하게 생각했다.

“너 추울 거 같은데.”

건물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재킷을 돌려줘야 하나, 유호가 재킷 밑단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는 사이 인한은 출입문 단속을 마치고 유호 앞에 섰다.

“괜찮다니까요. 저 몸에 열 많은 거 형도 잘 알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인한은 유호의 한쪽 옷소매를 접어 주었다. 덕분에 유호의 오른손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정 그러면 우리 숙소까지 뛰어갈까요?”

“응. 그래. 그러자.”

인한의 제안을 반기며 유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인한은 기다렸다는 듯이 유호의 오른손을 잡았다.

그리고 빠르지 않은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유호는 인한의 손에 이끌려 덩달아 달리면서 자신보다 조금 앞서 뛰고 있는 인한의 동그란 뒤통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따금 뒤를 돌아보며 웃는 인한의 얼굴은 청춘 로맨스 영화의 남자 주인공과 다를 바 없었다.

그 시절, 때 묻지 않은 열일곱 살의 인한은 청량감 백 퍼센트의 인간이었다.

수식어를 덧붙이자면 코발트블루 색상의 이온 음료 같은 싱그러운 느낌이 나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내 손을 잡고 달리며 웃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는데 사랑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돌이켜 보면 그 순간이 유호가 처음 인한에게 반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어려서 심장이 크게 뜀박질하는 이유가 숨이 차서인지 마음이 차서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인한아……. 잠깐 멈춰 봐.”

“왜요, 형? 힘들어요?”

“어. 나 심장이…… 너무 뛰어서.”

“아. 미안해요. 천천히 뛴다고 뛴 건데. 괜찮아요?”

유호는 잠시 멈춰서 숨을 골랐다.

유호가 상체를 굽힌 채 가쁜 숨을 몰아쉬자 인한이 무릎을 굽혀 앉아 유호의 상태를 살폈다.

유호의 시야에 인한의 말간 얼굴이 들어왔다.

“너는…… 아무렇지 않아?”

유호는 힘든 기색 하나 없어 보이는 인한이 신기해 물었다. 인한은 곤란한 듯 아랫입술을 물고 눈동자를 굴렸다.

“어. 그게, 음…… 네. 저는 아무렇지 않은데.”

인한은 머쓱해하며 대답했다. 그리고 바로 변명을 덧붙였다.

“근데 이건 제가 무식하게 체력만 좋아서 그런 거니까. 형이 이상한 건 아니에요.”

“진짜?”

유호의 되물음에 인한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 진짜.”

네가 그런 거면 그런 거겠지. 유호는 안심하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인한도 자리에서 일어나 유호의 옆으로 가 섰다.

“우리 이제부터는 그냥 걸어가요.”

“아냐. 나 다시 뛰어도 되는데.”

“제가 형이랑 더 오래 있고 싶어서 그래요.”

여전히 손을 잡은 채인 두 사람은 서로 보폭을 맞춰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는 숨찰 일이 없는데도 유호의 심장은 계속해서 널을 뛰고 있었다.

온몸을 가쁘게 만드는 그 감각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채 유호는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 5년 전 (7SPOT 데뷔 2주 전) -

“우리, 밥은 좀 먹고 하면 안 되겠니?”

오후 두 시. 점심시간이라고 칭하기도 모호한 시간에 결국 주언이 참지 못하고 불만을 터뜨렸다.

데뷔를 2주 앞둔 7SPOT의 여섯 멤버들은 모두 연습실 바닥과 한 몸이 되어 땀을 한 바가지씩 흘리는 중이었다.

“테일러 형. 인간적으로 밥은 먹고 합시다. 힘이 없어서 더는 못 추겠어요.”

막내라인 중 가장 거침없는 성격의 리드래퍼 라울리가 주언의 발언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안무팀장인 테일러의 반응은 단호했다.

“안무 다 맞으면 먹기로 했잖아. 지금 턴 타이밍이며 팔 높이며 다 따로 노는데 다들 어쩌려고 그래? 시간도 얼마 없는데.”

“형. 저 어제저녁에 고구마 한 개에 방울토마토 다섯 개 먹었어요. 밥 먹고 진짜 열심히 할 테니까 밥부터 먹어요.”

여민까지 가세해 의견을 피력하자 테일러는 어쩔 수 없이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기로 했다.

데뷔 무대 걱정에 수면욕은 물론 식욕마저 사라진 상태였지만 리더라고 독불장군처럼 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알았으니까 메뉴부터 빨리 골라.”

테일러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짬뽕 드실 분?”

라울리는 신이 나 메뉴 선정에 박차를 가했다.

동시에 인한이 유호를 향해 물었다.

“유호 형. 형은 뭐 먹고 싶은 거 없어요?”

유호는 맨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땀을 식히는 중이었다.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것처럼 인한은 당연하게 유호의 옆을 차지하고 앉았다.

“나는 아무거나 상관없는데. 짜장면 먹어도 되구.”

“그래도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거.”

“음. 돈가스?”

“라울 형. 저랑 유호 형은 돈가스요.”

“뭐냐, 정인한? 너 나랑 짬뽕 먹기로 한 거 아니었냐?”

인한의 메뉴 결정에 태클을 건 이는 라울리였다.

당시 3인 1실의 숙소 룸메이트였던 두 사람은 숙소에서부터 점심 메뉴를 짬뽕으로 통일하고 온 참이었다.

그러나 유호의 발언 한 번으로 인한의 의견이 호떡 뒤집히듯 뒤집혔다.

“생각이 바뀌었어요.”

“와. 저거 유호 형이 먹고 싶다니까 말 바꾸는 거 봐.”

“나는 우리 인한이가 사람 안 가리는 박애주의자인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가 보다?”

인한의 대답에 라울리가 불만을 제기했고 주언이 장난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유호는 놀라 라울리에게 말했다.

“라울아. 나 중국집도 좋아. 짜장면 먹으면 돼.”

“됐어요, 형. 인한이랑 돈가스나 먹어요.”

“아냐. 나 진짜 돈가스 안 먹어도 되는데.”

“라울 형. 뭐라고 할 거면 저한테 해요. 유호 형한테 그러지 말고.”

인한은 유호를 제 몸 뒤로 숨기며 라울리를 향해 말했다.

“와. 정인한 인성 보소.”

라울리는 기가 차 인한의 행동을 비난했다.

“가만 보면 유호가 막내 같아. 인한이가 아니라.”

“인한이 지금 막내 취급 벗어나서 행복한 거 같은데요?”

핵심을 파고드는 주언의 발언에 여민까지 가세해 막내 몰이에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순순히 당하고 있을 인한이 아니었다.

“그런 거 아닌데요.”

인한은 퉁명스럽게 형들의 발언을 부정했다. 괜히 유호의 눈치도 한 번 봤다.

“그냥 누구 챙겨 보는 게 처음이라서.”

인한은 머쓱해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인한의 행동이 마냥 귀엽게만 보이는 다섯 살 형 주언은 계속해서 인한을 놀려 댔다.

“그래서 좋아? 챙겨 줄 사람 생겨서?”

“네. 저는 좋은데요. 유호 형은요?”

인한은 제 뒤에서 얌전히 싸움 구경 중인 유호을 돌아보며 질문을 던졌다.

“어. 나도 좋아.”

유호는 해맑게 웃으며 인한에게 대답했다.

* * *

프로필 - 테일러 (7SPOT)

본명: 신태윤

나이: 26세

생일: 4월 19일

키/몸무게: 178cm/63kg

포지션: 리더, 메인댄서, 메인래퍼, 센터

별명: 테, 테신, 테깔, 일러, 갓테, 갓태윤, 테대장, 만재테

취미: 작사, 작곡, 농구

특기: 태권도, 영어, 비보잉

형제 관계: 남동생

특징: 케이팝 고인물픽, 그룹 내 둘째, 연습생 기간 5년, 대형기획사 WG 데뷔조 출신, 호주 거주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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