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프롤로그. 해체 논의
회의실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열댓 명의 사람들이 회의실 책상에 둘러앉아 있었지만, 숨소리도 마음대로 낼 수 없을 만큼 적막이 감돌았다.
유호는 드디어 올 게 왔구나, 하고 깨달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을 거 같은데.”
회사 대표라는 사람이 한참을 뜸 들이다 뱉은 말이 겨우 저거였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저 말 하나로 모든 게 확실해졌다.
“이제 결단을 내릴 때가 된 거 같죠? 우리 모두의 인생을 위해서.”
멤버들을 위하는 척 위선을 떠는 대표의 모습은 이골이 날 만큼 봐 왔다. 제 속 편해지자고 돌려 말하는 걸 모를 줄 알고. 애초에 남의 인생, 남의 기분 따위는 관심도 없으면서.
“계약 기간은 아직 2년 더 남아 있지만, 저는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
매니저들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다들 컨디션이 별로더니. 멤버들만 속도 없이 천진난만했다. 이렇게 정리당하는 줄도 모르고.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말도 안 되죠. 계약 기간도 남았는데.”
제일 먼저 불만을 제기한 건 여민이었다. 사실 이 자리에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멤버는 단둘뿐이었다. 여민과 인한. 성적도 안 나오는 아이돌 그룹을 5년이나 활동하게 해 준 연기돌들.
“여민아. 다 너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드라마랑 활동 병행하는 거 힘들어했잖아. 맨날 잠도 못 자고. 안 그래?”
“그렇다고 해체하길 바란 건 아니었어요. 괜히 저 때문에 형들이…….”
“네 덕분에 5년이나 활동했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
저게, 회사 대표란 사람이 할 말인가.
대표는 그룹의 수명이 한참 전에 끝났다는 말을 대놓고 하고 있었다.
발언권이 없는 멤버들은 어떤 결정이 나든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나름 변명을 하자면 앨범을 낼 때마다 지인 파티를 열었던 저 대표란 사람의 탓도 적지는 않았다.
곡도 구리고 콘셉트도 구린데 어떻게 떡상을 해.
할 말은 많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제가 더 열심히 할게요.”
가장 구석 자리에 앉아 내내 빡친 표정을 짓고 있던 인한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나갈 줄 알았는데 고새 컸다고 성질머리가 좀 나아진 모양이었다.
“힘든 내색도 안 할게요. 스케줄 더 잡아 주세요. 앞으로는 불평도 안 하고 멋대로 돌아다니지도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2년 마저 채우게 해 주세요.”
“인한아. 나는 그런 뜻으로 얘기한 게 아니라…….”
“저는 그만둘래요.”
유호의 갑작스러운 발언은 겸사겸사 나온 것이었다.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킬 겸, 사고 칠 기세의 인한을 막을 겸, 지독한 짝사랑을 그만둘 겸.
어쩐지 실보다 득이 커 보이는 결정이었다.
“형!”
“유호야.”
“그렇게 갑자기 결정할 문제가 아니잖아, 유호야.”
멤버들과 매니저들은 하나같이 유호의 발언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특히나 인한이 그랬다.
“형.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회사에서 어떤 결정을 하든 따르겠지만 우선 저는,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유호 형!”
“제 의견은 말씀드렸으니까 이만 나가 봐도 될까요?”
유호의 막무가내식 발언에 인한은 단단히 화가 난 듯 보였다.
회의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살벌해졌다.
“그래. 잘 생각했다. 유호야. 나중에 따로 얘기하자.”
“대표님!”
인한은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화를 내고 있었다. 더 큰 사달이 일어날세라 유호는 서둘러 자리를 뜨기로 했다.
“네. 그럼 얘기 마저 나누세요.”
이미 마음을 굳힌 듯 보이는 유호의 태도에 선뜻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인한아.”
회의실을 나서는 유호를 따라 문을 박차고 나온 인한은 무작정 유호의 팔을 잡아끌었다.
힘에서는 한참 열세인지라 유호는 인한에게 속수무책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인한아. 이거 놔 봐.”
인한은 유호를 빈 연습실까지 끌고 갔다.
꺼져 있던 불을 켜고 구석 소파에 유호를 앉힐 때까지도 인한은 끝내 유호의 손목을 놓아주지 않았다.
유호의 발 앞에 무릎 하나를 굽히고 앉은 인한은 고개를 푹 숙이고 화를 삭였다.
이런 순간에까지 발휘되는 인한의 다정이 유호는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형. 갑자기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었어요?”
인한은 유호의 양손을 잡은 채 유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 보려는 심산이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런데 왜요? 대표가 뭐, 형보고 나가래? 안 나가면 매장이라도 시키겠대?”
“아냐.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런데 왜요?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지쳐서.”
유호의 대답에 인한은 눈을 질끈 감았다.
누군가의 압력이 있었다면 자신이 나서서 해결할 생각이었다. 희생도 방패막이도 다 제가 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유호는 그마저도 필요 없다고 말하고 있는 거 같았다.
“그럼 좀 쉬어요. 내가 다시 다 같이 정산받게 해 달라고 할게. 내가 욕심부려서 그래. 형들하고 나누는 거 하나도 안 아까운데, 우리 형이 괜히 그래서…….”
“진짜 그만두고 싶어서 그래.”
확인 사살과도 같은 유호의 말에 인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좋아하는 이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게 유호의 입장에서도 쉬울 리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빌어먹을 대표의 말대로 모두의, 아니. 인한의 인생을 위해서.
“내가 이제 그만하고 싶어서 그래.”
“……왜?”
인한은 이해가 안 된다는 목소리로 유호를 향해 물었다. 단 몇 시간 만에 달라진 유호의 태도에 인한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왜 그만하고 싶은데?”
인한은 유호의 팔목을 당겨 유호의 상체가 자신의 쪽으로 기울게 했다.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졌고 유호는 계속해서 인한의 눈을 피하기가 어려워졌다.
인한은 한쪽 손으로 유호의 뺨을 감싼 채 애원하는 투로 얘기했다.
“형. 나한테 다 말해 봐요. 응? 왜 그만하고 싶은데?”
“너희 들러리로 사는 거, 이제 싫어서.”
유호는 인한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거짓말.”
“거짓말 아냐. 나 네 받침대 노릇 하는 거 이제 지겨워. 그러니까 이제는 네가, 형 좀 놔줘.”
흔들림 없는 유호의 태도에 인한은 충격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빈틈을 기회로 유호는 인한의 손을 천천히 떼어 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 네가 형 앞에서 좀 비켜 줘. 나도 빛 좀 보면서 살아 보게.”
나 때문에 형들이 빛을 못 보는 건 아닐까. 언젠가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던 인한의 고민을, 유호는 비겁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그래야 인한의 등에 짐처럼 매달려 있는 일을 그만둘 수 있으니까.
유호는 뒤로 천천히 몸을 물렸다. 인한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지만 유호가 자리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였다.
“……가지 마요.”
인한이 서둘러 유호의 행동을 제지해 보려 했으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유호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인한에게서 멀어졌다.
“가지 마요, 유호 형. 형 지금 가면 나…….”
형 두 번 다시 안 봐. 그 말이 뭐라고 인한은 유호에게 제대로 된 협박도 못 하고 있었다.
유호의 결정에 이미 그것마저 포함된 거 같아서.
“형……. 유호 형. 제발…… 응?”
인한의 애달픈 부름을 애써 외면하며 유호는 빠르게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지긋지긋했던 5년간의 외사랑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 * *
[ 다정한 아이돌 멤버가 유죄인 이유 ]
1부 팬들이 미는 너의 *CP
- 7SPOT 해체 논의 6개월 전 -
[나의 정인, 여민]
[난염의 정인이여]
[난염♡ 7SPOT♡]
아. 저게 뭐람.
유호는 콘서트장 스탠딩석에 대놓고 들려 있는 정인한x이여민, 일명 난염 커플링 플래카드를 보며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호모포비아라든가, *알페스를 극혐해서라기보다는 도저히 취향 존중을 해 줄 수가 없어서.
바보들. 진짜는 난효(정인한x선유호)인데.
무려 멤버 본인이 직접 미는 커플링이건만 팬들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그래. 사람은 원래 보고 싶은 거만 보게 되어 있으니까.
“효야. 빨리 와. 우리 다음 무대 여기야.”
“유호. 뭐 하냐? 정신 안 차릴래?”
그건 유호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중앙 무대에서 빨리 오라고 채근하는 멤버들 중 유독 한 사람의 얼굴만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효 형, 빨리 이리 와요. 거기 혼자 있지 말고.”
그 주인공은 유호가 속해 있는 아이돌 그룹 ‘세븐스팟’의 최장신 막내이자 얼굴로 세계 제패 할 상이라는 칭호를 가진 얼굴 인재, 정인한이었다.
“어. 가. 지금 가려고 했어.”
유호는 잡생각을 털어 내며 무대 중앙으로 달려 나갔다. 재빨리 제자리를 찾아 준비 동작을 마치니 누군가의 손길이 어깨에서 느껴졌다.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인한인 걸 알아차렸다.
“정신 놓지 마요. 아직 다섯 곡 더 남았어.”
몸을 밀착해 귓속말을 건네 오는 인한의 행동에 팬들의 환호성이 일제히 커졌다.
이것 봐. 난효가 진짜라니까.
이렇게 떠먹여 주는데도 받아먹을 생각을 안 하다니. 유호는 혀를 차며 팬들의 구린 안목에 애도를 표했다.
물론 그 이유를 대자면 끝도 없었다.
하나같이 유호가 원인인지라 그는 애써 모른 척 팬들을 탓해 보기로 했다.
잡념을 더 이어 갈 새도 없이 음악은 시작되었다. 유호는 마치 기계처럼 음악에 반응하며 춤을 이어 나갔다.
얼마 없는 파트라도 최선을 다하는 게 당연했다.
“잠버릇이라, 잠버릇……. 아! 저는 침대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자요. 가끔 바닥에서 깰 때도 있어요.”
래퍼 라인들이 무대를 준비하는 사이, 보컬 라인들은 팬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 중이었다.
잠버릇이 뭐냐는 질문에 처음으로 대답한 건 맏형이자 메인보컬인 주언이었다.
유호는 드문드문 보이는 자신의 플래카드를 열심히 눈으로 찾는 중이었다.
“인한이는?”
대답을 마친 주언은 자연스럽게 옆에 있는 인한에게 차례를 넘겼다. 하지만 인한은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지 말을 망설였다.
“음. 잠버릇이요? 나 잠버릇 있나? 아. 이거 유호 형이 대답해야 하는 건데. 효 형, 나 잠버릇 있어요?”
그리고 대뜸 유호에게 질문을 돌렸다. 아. 그걸 왜 나한테.
유호는 얼떨결에 마이크를 입으로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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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 : Couple/ 커플
*알페스: RPS(Real Person Slash)/ 허구의 상상으로 실존 인물을 엮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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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 유호 (7SPOT)
본명: 선유호
나이: 24세
생일: 6월 17일
키/ 몸무게: 174cm/ 55kg
포지션: 리드보컬
별명: 효. 댕효, 선두부, 선댕이, 멈무효, 꿀떡갱얼쥐
취미: 영화 보기, 노래 듣기
특기: 기타 연주, 배드민턴
형제 관계: 누나
특징: 10대픽, 그룹 내 셋째이자 최단신, 연습생 기간 6개월, 실질적 막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