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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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장에 갇힌 개

녹슨 쇠 냄새는 피부 위에 달라붙은 공기처럼 익숙했다.

그 위로 낯선 냄새가 덧씌워졌다.

소금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미각이 아닌 후각이면 이런 느낌일까. 정희연은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울퉁불퉁한 벽에 툭 고개를 기대었다. 무릎을 당겨 앉은 탓에 넓은 공간을 차지한 어둠이 한결 더 광활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작고 하얀 오메가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물끄러미 응시했을 뿐이다.

끊임없이 움직이던 뜬장이 멈춘 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사방이 막혀 있으니 뜬장이라고 부르기에는 어폐가 있었으나, 정희연은 이 공간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녹슨 쇠 냄새와 살결을 얼어붙게 만드는 섬뜩함이 비슷하니, 뜬장이라고 부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그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도 굳이 시간을 셈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얌전히 기다리는 편을 택했다.

텅!

누군가 밖에서 벽을 쳐 댔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진동이 전해져 왔다. 얼핏 여러 개의 목소리가 섞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무심한 낯의 오메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관성적으로 숨을 죽일 뿐.

끼기기기긱-.

귀를 찢을 듯한 소음과 함께 시야 끝에 닿아 있던 문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훤한 달빛이 쏟아지며 공기를 부유하던 소금기가 고스란히 코끝으로 스며들었다. 구둣발 소리가 그 뒤를 따라 점점 가까워졌다. 갑작스럽게 망막에 새겨지는 빛이 눈부셔 정희연은 눈꺼풀을 반쯤 내리깔았다.

거리낌 없이 뜬장을 짓밟는 소리가 이어지더니 고급일 게 분명한 구두코가 시야 안으로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이건 또 뭘까.”

낮은 목소리가 머리 위로 떨어지고 나서야 정희연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구두의 주인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받기로 한 건….”

뒤에서 쏟아지는 빛 때문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가 식별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제 쪽으로 고개를 기울인 커다란 그림자가 전부였다.

“이런 잡종이 아닌데.”

빈정거림이라고는 하나도 담겨 있지 않은 평온한 목소리였으나, 도리어 그 평온함이 상대방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듯했다.

그러나 정희연은 모멸감을 느끼는 대신 무표정한 얼굴로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어느새 망막이 빛에 적응한 듯, 상대방의 얼굴이 흐릿하게나마 아로새겨졌다.

부드럽게 끌어 올린 입꼬리와 달리 냉혈 동물처럼 서늘한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는 깨달았다.

“…아.”

온종일 그의 곁을 배회하던 소금의 굳은 숨결이 바로 바다 냄새였다는 사실을.

정희연은 입술을 벌린 그대로 저를 내려다보는 남자를 응시했다. 느른한 입꼬리가 한층 더 깊게 패었다. 뒤에서는 여전히 파란 달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지나치게 생경하고 지나치게 아름다우며 지나치게 섬뜩한 순간이었다.

동시에 정희연이 지금껏 보지 못한 세계였다.

단 한 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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