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라이의 집착을 얕봤다 (108)화 (108/112)

12. Chapter 외전 3. 스물두 살의 백시현은.

루블리안 벨리텐트는 마신과의 계약을 풀기 위한 조건인 ‘행복한 스물두 살의 백시현 곁에 있기’를 충족하기 위해 차원 이동을 했다. 순식간에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달라졌다.

높게 솟은 건물,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 그리고 낯선 옷을 입고 이동하는 사람들. 자신의 세계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차원 이동이 성공했단 사실을 깨달은 루블리안 벨리텐트는 곧장 마법을 이용했다.

순간 세계가 일그러지는 듯한 착시가 일어났으나,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 현상을 본 그는 신이 개입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세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애새끼나 백시현의 능력 제한을 푼 게 분명했다.

[만나더라도 스물두 살의 용사가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나?]

계약을 통해 인간 말살을 꿈꾸는 마신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낮은 목소리에 곧 쓰러질 것만 같았으나, 지금 꼭 백시현을 만나야 했다. 루블리안 벨리텐트는 심한 두통에 인상을 쓰며 탐지 마법을 이용했다.

‘마력이 느껴지는 곳은…… 저기다.’

유일하게 확실한 마력이 느껴지는 곳이 있었다. 백시현 혹은 그 애새끼일 게 분명했다. 시끄럽게 머릿속을 뒤집어대는 마신을 무시한 채, 루블리안 벨리텐트는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까워지는 마력이 느껴졌다. 방향이 확실한 걸 보니, 저쪽도 자신을 만나려 다가오는 듯했다.

“아저씨.”

모습은 드러낸 건 루블리안 셀턴. 애새끼였다.

“나는 자기가 오기를 바랐는데…… 애새끼가 왔네. 아쉬워라.”

“바랄 걸 바라. 늙다리 주제에 우리 여보 넘보지 말고.”

타격 하나 입지 않았다는 얼굴로 애새끼가 생글거렸다. 그 모습에 루블리안 벨리텐트는 머리가 울려 구겨지려는 얼굴 근육을 붙잡고 애써 붉은 입술을 위로 당겼다.

‘아, 확 죽여 버리고 싶네.’

뒤죽박죽 들이닥친 회귀 전 감정과 기억들이 날뛰었다. 백시현도 애정보다 증오가 컸지만, 루블리안 셀턴의 경우 증오밖에 없었다. 애정? 웃기는 소리였다. 시간을 되돌리기 전, 자신에겐 애새끼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루블리안 벨리텐트는 느리게 호흡하며 감정을 가라앉혔다. 지금 해야 할 건 행복한 스물두 살의 백시현을 만나 마신과의 계약을 끝내는 것뿐이었으니.

[네 앞의 놈이, 네게 협조할 것 같나? 제 용사를 노리는 너를? 웃기지도 않아. 인간은 참 간사하여 제 것은 못 내어주지. 너의 뭘 보고 저놈이 용사에게 널 데려다주겠나.]

그 생각을 읽은 마신이 속살거렸다. 어떻게든 백시현과 마주치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뻔했다. 이러한 행동에 그는 알아차렸다.

‘……행복한가 보네?’

백시현이, 스물두 살의 백시현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기분이 저조했다. 애정보다 증오가 더 큰 덕인지 자신 없이 행복하다는 사실에 화가 들끓었다. 모든 걸 자초한 것이었음에도 루블리안 벨리텐트는 그러했다.

회귀를 수없이 많이 했음에도 여전히 그는 인간이었다. 치졸하고 마신의 말대로 간사하기도 한.

“마음 같아선 우리 여보와 만나게 하고 싶지 않지만…… 얼른 끝내는 게 더 나으니까.”

물끄러미 그가 하는 행동을 응시하던 루블리안이 썩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그가 무어라 받아치기도 전에 순간 이동을 시전했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이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낯선 구조 속 백시현은 의자에 앉아 회색 노트북을 노려보고 있었다. 루블리안 벨리텐트는 머릿속에서 더욱더 시끄럽게 떠드는 마신에 인상을 구겼다.

“여보, 다녀왔어요.”

“어. 잘했어.”

애새끼는 곧바로 백시현에게 향했다. 칭찬 하나에 개새끼처럼 환히 웃는 모습이 꼴 보기 싫었다. 루블리안 벨리텐트는 걸음을 옮겨 백시현의 앞으로 향했다.

“자기야, 행복해?”

물으면서도 의아했다. 행복하다면 바로 계약이 풀려야 하는 거 아닌가. 어째서 여전히 마신이 머릿속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대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시발. 행복하냐고?”고운 얼굴에 주름이 졌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는 표정이라 되레 그가 의문스러워졌다. 마치 행복하지 않다는 것처럼 보여서.

“하아……. 루블리안, 저 또라이 기절시키고 아무 데나 던져놔.”

짜증을 가라앉히려는 듯 백시현이 제 머리를 꾹꾹 눌렀다. 저 말에 어이가 없는 건 두 루블리안 모두였다.

“날 기절시키겠다고, 자기야?”

“여보, 우리만의 보금자리에 저 새끼를 데려온 것도 싫은데 여기서 재우겠다고요?”

두 루블리안이 동시에 대꾸하자, 백시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바쁘고 짜증 나 죽겠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야 너 얼굴 창백해.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버티지 말고 자. 지금 내가 행복하기엔 무리니까.”

한차례 숨을 들이마신 백시현이 이번에는 루블리안 셀턴에게 답했다.

“그럼 어떡하자고. 네가 쟤랑 떠들고 있을래? 하하호호?”

“윽, 싫어요…….”

루블리안이 바로 반응했다. 질색이란 속내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백시현은 그것 보라는 듯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턱을 괴었다.

“그렇지만, 여보. 들어 봐요오.”

백시현의 옆자리를 차지하고는 그의 허리에 팔을 두른 루블리안이 말꼬리를 늘이며 애교를 부렸다. 옛날과 다르게 스킨십에 익숙해진 백시현이 알아서 편한 자세를 찾았다. 이어 고개를 까딱이며 다시 키보드를 두들겼다.

“침대는 우리가 같이 자는 공간이고 격렬한,”

“루블리안.”

“으응. 알겠어요. 아무튼 소파도 우리가 뒹군,”

“야.”

또 말을 토막 낸 백시현이 루블리안을 째려보았다. 그래 봤자 루블리안에게는 간지럽기만 했다. 귀엽기도 하고.

“자기야, 나 아직 있는데.”

자기들만의 세상에 빠지는 둘을 강제로 실시간 관람하던 루블리안 벨리텐트가 손을 흔들었다. 존재를 알리는 행동에 백시현이 한숨을 흘리며 정신력 하나는 바퀴벌레 같다고 중얼거렸다.

“아직도 기절 안 했나. 끈질기긴.”

“하, 너보다 끈질기겠어?”

또다시 두 루블리안이 대치하자, 백시현이 들으라는 듯 크게 숨을 내뱉었다.

“루블리안.”

“네에.”

호명에 답한 루블리안이 곧바로 날렵하게 몸을 움직였다. 상태가 좋지 않은 벨리텐트가 기습을 피하지 못하고 기절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_oOo_

이제야 조용해졌네. 패대기쳐진 것처럼 바닥에 늘어져 있는 미친놈을 일별하고는 다시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켜진 톡 대화창에는 조별 과제 빌런들의 변명이 수두룩했다.

[나]

자료 보내달라고 했는데, 왜 다들 안 보내주시죠. 오후 1:48

[ㅅㅂ1]

미안하게 됐다

갑자기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식 때문에 발표를 못 할 것 같다 오후 2:10

[ㅅㅂ2]

헉 죄송합니다 저도 갑자기 가족 모임이 생겨서... 자료를 오늘까지 못 보낼 것 같아요ㅠㅠㅠ 오후 2:13

[ㅅㅂ3]

저기요 제정신이세요?

오늘 자정이 마감이잖아요;

발표 못 하신다고 하면 ppt 만드시는 분이 내용 잘 아실 테니까 해주세요

저 사람들은 이름 다 빼는 게 낫겠네요 오후 2:13

[ㅅㅂ2]

네? 이름을 뺀다고요?

아니 이건 아니죠;;

제가 일부러 안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러세요ㅠ,, 오후 2:14

[ㅅㅂ1]

ㅅㅂ

할머니 장례식 때문인데 어떻게 하라고 ㅅㅂ

넌 장례식이 우습냐? 오후 2:14

[ㅅㅂ3]

ㅋㅋ

작년에도 장례식 운운하고 이름 빼져서 졸업 못 했다던데 이번에도 못 하겠네요 오후 2:14

제정신이냐고 한 시발3한테 물어보고 싶다. 나무X키에서 그대로 긁어 자료 제출해 놓고는 할 말이냐고. 어쩌다 이런 조가 짜인 건지 슬슬 교수님께 따지고 싶었다. 제가 뭐 잘못한 게 있나요, 하고.

최대한 화를 억눌렀다. 이러다간 무슨 사고를 쳐 버릴 것만 같았다. 보통이라면 생각만 하고 말겠지만, 용사로 살아온 세월은 누군가를 해치면서 느끼는 거부감을 희석시켰다.

“이름 다 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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