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진짜 미쳤어?”
예상한 대로 집에 들어가자마자, 입술이 먹혔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끝끝내 하다 기절하고, 침대에서 하다 또 기절하고, 씻다가 해서 또 기절하고. 총 다섯 번의 기절을 기록한 뒤, 깨어난 나는 목소리가 다 쉬었다. 루블리안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걸 알긴 아는지 배시시 웃기만 했다.
그게 얄미워 뺨을 잡아당기자 아프다고 앙살을 부린다. 진짜 어이가 없었다.
“나보다 아파?”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하다 보니, 허리가 남아나질 않았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은 건 당연했고.
내 말에 루블리안은 데굴데굴 귀엽게 눈을 굴리다 고개를 저었다. 슬금슬금 가까워지려는 걸 손으로 저지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시험이 금요일이라 망정이지, 평일에 끝나 봤어라. 병결을 내야 했을 것이다. 그것도 꾀병으로. 확인서를 떼 오려면 병원을 가야 하는데, 만약 그랬을 때 갈 수나 있을까 싶다.
내 고유 세계로 돌아오고 나서 함께 밤을 보낸 평일은, 아침마다 회복 포션을 썼다. 돌아가자마자 루블리안에게 시달릴 나를 예측하고 신이 준 덕분에 학교를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도 싫지는 않았죠?”
“……안 좋았으면 했겠어?”
그리 반문하자, 눈을 사르르 접어 웃는다. 웃는 모습은 또 예뻐 화가 가라앉았다. 얼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쓴다.
“그리고 이 짓, 너랑만 해.”
어제 루블리안이 한 말이 걸려 말하자, 그의 눈이 크기를 키웠다가 사르르 접힌다.“아, 저도 당연히 알아요. 우리 여보는 저 아니면 서지도 않을걸요.”귓가에 입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는 속닥이는 루블리안을 세게 쳤다. 안 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음담패설이었다. 불에 쬔 것처럼 얼굴이 달아올라서는 그만하라 하자, 루블리안이 웃음을 흘렸다. 아주 행복하게 들리는 웃음이었다.
“좋아해요.”
“너…… 또 고백으로 넘어가려고 하지.”“아니에요. 그냥 진짜로 좋아서 그런 거예요. 여보.”
루블리안이 얼굴을 베개에 파묻고는 웅얼거렸다. 그 모습이 귀여워 보여서 문제였다. 진짜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파렴치한인데, 저런 모습만 보면 자꾸 넘어가게 되었다.
“믿어 줘요, 네?”
슬그머니 내 검지에 제 검지를 걸고는 조르는 루블리안에 침음을 삼켰다. 어쩐지 이대로 평생 루블리안의 술수에 넘어가 주며 살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예감이 든다.
“여보가 내 사랑 안 믿어 주면 너무 슬플 것 같은데…….”
말끝을 살살 늘이며 검지만 걸쳤던 손을 움직인다. 꽉 맞물린 손을 일별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루블리안이 내 세계에서 같이 살게 된 순간부터, 원래라면 만날 수 없는 우리가 만나게 된 순간부터 나는 이런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믿어.”
깍지 낀 손등에 입을 맞추자, 루블리안의 하얀 뺨이 발그스름해졌다. 그가 행복에 푹 빠진 것처럼 미소 지었다.
“어떻게 안 믿겠어.”
그러니 그냥 책임을 지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매일매일 루블리안에게 넘어가고, 루블리안에게 져 주고, 루블리안을 사랑하는 책임을. 물론 일주일에 세 번으로 정한 횟수만큼은 철저하게 지킬 생각이지만.
Chapter 외전 2 : 그들의 행방은,
“이, 현, 너 그만, 흣, 좀!”
“오늘은 루블리안이라고 안 불러 줘요?”
신, 에리스는 루블리안이 백시현을 끌어안고 있는, 둘의 모습을 홀로그램과 비슷한 창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너가. 싫, 윽!”
“네에. 제가 뭐요?”
“싫다, 며!”
이 사실을 알면 시현이 기겁할 게 뻔했지만, 자신의 아이들이 사랑 넘치는 모습이 궁금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재미로 보고 있었던 신 에리스는 괜히 찔려 속으로 변명해 댔다.
“……에리스 님.”
“실비, 무슨 일이야?”
“주신님께서 부르십니다. 일전에 요청했던 것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일전에 요청했던 것!’
에리스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곧바로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는 모습이 담긴 화면을 꺼 버렸다.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신전 문을 열었다.
“다녀올게!”
“네. 그리고 다녀오시면 남은 서류를,”
“어엉!”
에리스는 실비의 말을 반 토막 내고는 바쁘게 발을 움직였다. 주신님이 시현과 관련된 일을 기각할 리가 없었다. 주신은 마신을 봉인한 백시현을 많이 사랑했으니까. 다른 인간들 또한 마찬가지긴 했으나, 명백한 차이가 있었다.
백색과 푸른색의 신전을 지나 신계에서 가장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신전에 도달했다. 신전의 크기는 신이 가진 본연의 힘 크기와 비례했기에 이 신전은 주신이 머무는 곳일 수밖에 없었다.
“주신님, 저 왔어요. 에리스.”
웅장한 신전 앞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주신은 에리스의 조용한 말소리를 들었다.
에리스는 열리는 신전 내부로 들어섰다. 몇 번 와 봤던 터라 그는 익숙하게 발걸음을 놀렸다. 목적지는 주신과 대면할 수 있는 알현실이었다.
“들어오너라.”
“오랜만에 뵙습니다, 주신님. 일전에 요청한 것에 대한 답을 주신다고 실비가 전해 주어서요.”
“그래. 그 아이와 연락을 하고 싶다고 했지.”
“네. 그리고 다른 세계의 백시현과 연락할 수 있게도 하고 싶다고 했었습니다. 그쪽 아이에게는 의지할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마신의 봉인은 상당히 급작스러웠다. 그 때문에 시현과 평행 세계 백시현은 잠시간 이야기를 나눴던, 그 딱 한 번의 기회를 제외하고는 말 섞을 틈도 없이 헤어졌다.
인간을 사랑하는 주신은 그 평행 세계 백시현을 불쌍히 여길 것이다. 그의 운명을 안타깝게 여길 것이다. 그러니 이 요청을 허락할 수밖에 없다. 그 사실을 에리스는 잘 알았다.
“두 요청 모두 허락하마. 그 대신으로 네가 걸었던 조건은 잊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단다.”
“네. 새로이 창조된 세계 다섯 개를 맡는 것이었지요.”“하나 더 있잖니.”
“……잔업도 더 하기로 했지요.”
아이를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에 에리스는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궜다. 모른 척하면 한 번쯤은 넘어가 주시지 않으려나 했는데, 이런 부분에선 여전히 칼 같으셨다. 점점 불어나는 세계에 비해 신의 수는 잘 늘지 않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깜찍한 잔꾀를 실패한 에리스는 코를 훌쩍였다.
“힘드리란 걸 안단다. 어찌 힘들지 않겠니.”“주신니이임…….”
“곧 천사들의 시험이 있으니 그때까지만 더 고생해 주렴.”
주신이 자애롭게 웃으며 상급 천사가 하급 신이 되기 위해 치르는 시험을 언급했다. 그 말에 에리스는 감동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만의 시험이야……!’
신들은 몇천 년을 살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을 보통 체감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가끔 예외가 있는데, 그게 바로 천사들이 승급 시험이었다.
주기가 정해진 건 아니었으나, 짧게는 10년, 길게는 1,000년에 한 번 치러지고는 했다. 오로지 주신님의 마음이었기에 상당히 상도덕 없는, 갑작스러운 시험이었다.
“물론 곧 시험이 열린다는 건 비밀이란다. 알지?”
“그럼요. 저 에리스, 입 간수 하나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결연한 낯으로 에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니, 주신이 귀엽다는 듯 웃었다. 이내 종이 두 장이 펄럭이며 날아가더니 에리스의 손에 안착했다.
“허가서는 가지고 가야 하지 않겠니.”
곧바로 뛰쳐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기세라 주신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그 아이에게 말 한마디만 전해 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