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생물학적 쌍둥이 동생이 입술을 달싹이는 모습에는 영 흥미가 없어 시선을 루블리안에게 돌렸을 때였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굵은 손가락이 느릿하게 들어찼다. 속도가 느리기 때문인지 손가락 하나하나가 세밀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열이 확 올랐다. 어제는 쉬었지만, 토요일에는 끝없었던 음란한 행동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현.”“으응? 왜 불러, 시현아.”
루블리안이 간드러지게 눈웃음 지었다. 이내 엄지를 손가락 사이에서 빼내고는 깎지 않아 어느 정도 자란 손톱으로 손바닥을 살살 긁다가 뭉근히 문지른다. 그걸 느끼자마자, 나는 깍지를 낀 손에 힘을 주어 손바닥과 손바닥이 꽉 맞물리도록 했다.
행동을 제지하자, 아쉽다는 듯 혀를 차면서도 만족스러움을 내비친다. 손을 빼내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뻐하는 게 보였다.
저래서 미친놈이라고 속으로 욕을 하다가도 사랑스럽게 봐버리는 거였다. 작고 사소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런 표정을 지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백시현. 나와 봐. 나랑 얘기 좀 해.”
저 자식 아직도 안 갔나. 느릿하게 눈동자를 굴려 백정혁을 바라보니, 무언가 쎄함을 감지한 얼굴이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툭, 긴 교복 바지를 입은 무릎이 나를 건드렸다. 그 다리의 주인인 박시찬을 응시하자, 입 모양으로 뻐끔거리는 게 보였다.
‘티.나.미.친.놈.아.’
여전히 얼굴 근육을 참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그다지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라 다음에 또 보고 싶지는 않았다. 전에도 이렇게 생각하고 오늘 또 보게 된 거긴 하지만 말이다.
“싫은데.”
방금 루블리안과 내가 한 행각 때문에 저러는 거라면 굳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긍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혹시라도 생물학적 부모님의 귀에 들어갔다간 지금보다 더 귀찮아질 게 뻔했다.
내 거절에 백정혁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주먹 쥔 손에 힘이 들어간 게 보였다. 상당히 억울하고, 또 처량해 보였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 알 바는 아니었다.
“야, 저 새끼가 왜 우리 반에 있어? 딴 반 출입 금지니까, 얼른 꺼지시죠~”
김민식에게 잡혀 질질 끌려오던 이리형이 말했다. 나갈 때와는 반대인 모습이었다.
뭘 해야 쫓아가던 놈이 저렇게 잡혀 와? 우습기 그지없다. 박시찬도 그리 여기는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학! 이리형, 너는 왜 잡혀 오냐? 기세등등하게 잡으러 가던 이리형은 죽음?”
“어휴우. 귀엽고 깜찍한 리형이한테 너무 관심이 많다니깐?”
“잡으려다 잡힌 사람이 혀가 기네.”
“어쩔 티비~”
“저쩔 티비~”
유치하게들 논다. 한심하게 그들을 바라보자, 질색이라는 얼굴을 한 김민식이 이리형을 내다 버렸다. 저쪽은 티비 소리를 끔찍이 싫어해서 다행이었다. 두 명도 감당이 안 되는데, 세 명이 티비 소리를 한다고 상상하니 소름이 끼쳤다.
“넌 안 가냐?”
“내가 왜.”“널 반겨 줄 새끼, 여기에 아무도 없는데 계속 있고 싶냐?”
까칠하게 답하는 백정혁에게 김민식이 반문했다. 오로지 사실로 이루어진 질문에 백정혁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자존심이 상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가 입을 뗀 순간,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쳤다.
“……학교 끝나면 이야기 좀 해. 기다려.”
찰나의 침묵 끝에 백정혁은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반을 나섰다. 나올 말이 거절이라는 걸 알아, 일부러 발 빠르게 나간 게 틀림없었다.
그의 뒷모습을 응시하다 웬일로 조용한 루블리안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까부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 불안하던 차였다.
“눈 제대로 떠.”
아니나 다를까, 푸르른 눈동자가 사납게 빛나고 있었다. 먹잇감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위해 고요히 숨을 죽이는 육식 동물이 연상되는 모습이었다.
“으응. 내 눈이 왜?”
부러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귀여움으로 무마하려는 속셈이 훤히 보였다. 그걸 알면서도 넘어가 주는 게 문제라는 사실을 훨씬 전부터 인지했지만, 고치기가 어려웠다.
“수업 시작한다. 다들 얼른 자리 앉아라.”
그렇다. 이번에도 나는 그냥 어영부영 넘어가 주었다.
_oOo_
모든 수업이 끝나고 하교하던 무렵이었다. 우리 반보다 늦게 끝났으면서, 백정혁은 기어코 내 행적을 따라 나를 찾아왔다.
“이럴 줄 알았어!”
아파트 단지 근처까지 따라온 분통스럽다는 듯 백정혁이 소리쳤다. 그러고는 숨이 모자라는지 헉헉거린다. 여태 뛰어온 모양인지 얼굴이 온통 땀투성이였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진심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생물학적 부모는 백정혁의 천재성을 사랑했고, 그런 천재성을 가진 그를 좋아했다. 쓸모에 의한 사랑이긴 했지만, 사랑이 모두 한 종류는 아니지 않은가.
어찌 되었든, 그는 그 사랑을 누리면 됐다. 자처해서 빠져 주겠다는 내게, 그 사랑을 빼앗아 올 수 있는 내게 이리 매달리는 게 아니라.
“너, 도대체 왜 이래?”
“뭐?”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나한테 왜 이러냐고.”
백정혁은 어릴 때부터 그랬다. 이미 한 번 열아홉 살까지 살아, 남의 눈에 어른스럽게 비치는 나를 지독히도 거슬려 했다. 그걸 나도, 백정혁도 알았다.
턱을 타고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은 백정혁은 조금 참담해 보였다. ‘백정혁’과 ‘참담함’은 ‘루블리안’과 ‘양심적인’이라는 단어처럼 상당히 어울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자존감이 높았고, 대부분의 일에서 이리 되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오만하게 웃었다.
사과하는 꼴을 본 적이 없지. 무심히 생각을 이어나가는 찰나, 작은 웅얼거림이 들렸다.
“……했으니까.”“시현, 혹시 내가 귀가 안 좋은 걸까? 시현이랑 하~나도 안 닮은 사람이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들리지 않아…….”
여태 얌전히 있던 루블리안이 입을 털었다. 시무룩하게 눈꼬리를 추욱 내리며 진심이라는 얼굴로 비꼬는 게 명연기였다.
“야!”
“아니었나 봐. 지금은 또 잘 들리네. 그냥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 자기 자존심 지킨다구 그런 거였나 봐.”
애교스럽게 말끝을 늘인 루블리안이 내 어깨에 팔을 감았다. 더웠으나, 이 정도는 참기로 했다. 벗어났다간 집에서 어떤 화를 입을지 몰랐다. 오늘은 꼭 그 외설적인 짓 말고 공부를 해야 했다.
“와……. 아니, 허! 내숭 미쳤나? 아니, 백시현 너는 왜 쟤랑!”
“얘 욕하면 나 너 다신 상대 안 해.”
차갑게 말을 끊어내자, 백정혁이 벌어졌던 입을 도로 닫았다. 그는 막 드리운 구름으로 인해 진 그늘 속에서 고요히 숨을 내쉬었다.
“할 말 없으면,”
“있어!”
푹 숙였던 고개를 재빠르게 들어 올린다. 백정혁은 자꾸만 제 바지를 잡았다 놓기를 반복했다. 긴장하는 모습이 생소했다.
“……우선 어렸을 때 일, 미안해. 잘못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어. 부모님은 너를 그다지 안 좋아하셨잖아. 변명일 뿐이지만, 나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어. 어릴 때 내 세상이라고는 부모님이었고, 부모님이 하는 행동이 뭐든 옳았다고 봤으니까.”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왜 있겠나. 솔직히 터놓자면, 이렇게 사과하는 게 더 신기할 지경이었다. 괜히 해리포터에서 순수혈통 가문의 아이들이 그 순수혈통 주의라는 사상을 이어 나가는 게 아니었다.
나는 계속 말하라는 뜻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처음에는 잘못이라는 걸 인식하고도 받아들이지 못했어. 나는…… 모두가 나랑 똑같은 줄 알았는데, 내 친구는 형이랑 잘 지내더라. 걔네 부모님은 차별도 하지 않으셨고, 둘을 똑같이 사랑하려고 노력하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