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라이의 집착을 얕봤다 (98)화 (98/112)

2.

달라붙는 루블리안을 밀어내고는 다리에 힘주어 일어났으나, 노력이 무색하게도 빠르게 힘이 풀렸다. 그 때문에 다시금 루블리안의 품에 안겼다. 따스함과 별개로 느껴지는 단단함에 나는 질색을 해 버렸다.

진짜 짐승 새끼 아니야? 마법도 있는 세계였는데 수인이라고 없을 리가. 사실 루블리안이 수인이고 지금이 발정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가설에 신빙성을 더할 만큼, 그는 매일 해댔다. 누가 우리의 성생활에 대해 듣는다면 기겁하리라 장담할 수 있었다.

“얌전히 내려놔.”

“으음. 한 번 더 하는 건 별로예요?”

“진짜 짐, 으읏!”

갑작스럽게 커다란 손이 살결을 훑었다. 이내 살살 매만지는 손길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예민한 곳만 건드리는 통에 이렇게 하지 않으면 신음이 흘러나올 게 분명했다.

“입술 상해요.”

“으응. 읏. 잠, 으흐, 만지, 지, 아윽!”

두꺼운 엄지가 입술을 벌렸다. 그 새로 앓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이내 검지가 입속으로 들어왔다. 입천장을 꾹 누르고 긁으며 예민한 지점을 건드리는 바람에 정신이 혼미했다. 강한 자극에 제대로 된 생각을 하기가 어려웠다

온몸에 열기가 올라 뜨겁고, 조금 더 만져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한 자극과 이 행위를 함께하는 이가 루블리안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한 생각이었다.

“그만, 해!”

남은 이성을 긁어모아 소리치자, 루블리안이 목 부근에 입술을 지분거렸다. 다행히 손은 멈춘 채라 서서히 정신이 돌아왔다. 이대로 또 거사를 치를 뻔했다. 그것도 식탁에서.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건지 다디단 음성이 귓가에 닿았다.

“우리 이틀 전에 식탁에서 했는데…… 여보, 기억 안 나?”

“야.”

“그만하려고 하니까 안 된다고 그렇게 졸라 놓고는, 기억을 못 하면 속상한데요.”

“그만 좀 말해! 기억나니까!”

옷가지를 정리하며 드물게 목청 높여 소리쳤다. 더운 걸 보니 얼굴이 시뻘게졌을 게 뻔했다. 어떻게 저런 소리를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할 수 있는지. 다른 의미로 대단했다.

“그럼 여보가 식탁 잡, 읍.”

“내가 그만하랬지.”

손으로 입을 막자, 루블리안이 손바닥에 입을 맞추며 웃었다. 더 안 하겠다는 의미의 가벼운 입맞춤이었다. 장난스러운 쪽쪽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 입맞춤 소리 속에서 애정이 느껴졌다. 괜스레 온몸이 간지러워 손을 거둬들였다. 루블리안은 아쉽다는 눈길로 내 손을 한번 훑고는 나를 좀 더 힘있게 안았다.

“잘못했어요.”

“뭘.”

“시현이 힘들어하는데도 하려고 했어요. 다음부터 안 그럴게요. 잘못했어요.”

빠르게 용서를 구하는 모습에 한숨이 흘러나왔다. 돌아오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루블리안은 아주 가끔 눈이 풀리는 경우가 있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것에 스위치가 눌린 건지 알 수 없었다.

“또 뭐가 눈에 띄었는데.”

“여보의 하얀 목덜미랑 제가 남긴 흔적이요.”

내 말을 바로 알아들은 루블리안이 곧장 답했다. 이어 내 머리가 새까매 그 밑으로 보이는 목덜미가 더 하얗고 붉어 보였다며 이유를 주절주절 설명했다. 꼭 들었으면 했는지, 이번에는 입술을 막으려고 뻗었던 손이 잡혔다.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 루블리안의 품에서 자력으로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렇게 온화한 음성으로 이어지는 말들을 다 듣고 나서야 칭찬과 꼴리는 점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낯부끄러워 차라리 이대로 기절하고 싶었다.

“그만 말하라니까.”

한숨을 흘리듯 한탄하자, 루블리안이 이제 그만했다는, 속 터지는 소리를 했다. 그 순간은 귀엽다는 것보다 민망하다는 감정이 더 커, 평소처럼 넘어가 줄 수가 없었다. 저 화려한 낯짝이 또 날 꾀려 들어도 이번에는 절대 넘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것도 마찬가지야. 적당히 좀 줄일 필요가 있어.”

“뭐를요?”다 알아듣고서 모른 척이다. 그를 노려보자, 알겠다는 듯 배시시 미소 짓는 낯이 보인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예쁘게 웃는 얼굴에는 침도 못 뱉는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루블리안은 그런 내 기색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살포시 웃음을 흘리는 게 확실했다. 그 모습에 괜히 불퉁한 생각이 들었다. 너는 즐거워 죽겠지, 나는 몸이 진짜 죽을 것 같은데.

“용사일 때랑 다르게 몸 안 좋아, 나.”그랬다. 우선 용사인 시절과 비교했을 때, 기본 체력에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시간을 되돌리기 전에도 그랬지만, 고등학교 때의 체력도 나쁘지는 않았다. 앉아서 하는 공부도 결국 체력 싸움이었으니까.

그 말에 루블리안이 섬세하고 풍성한 속눈썹을 살랑였다. 사라졌다가 드러나길 반복하는 청명한 눈동자는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하고 난 뒤에는 회복 포션 쓰잖아요.”

“그거 다 썼어.”“아…….”진심으로 아쉬워하는 탄식이었다. 그 아쉬움을 잡아채자마자, 무심코 질색했다. 저게 사람인가. 용사일 적에는 몰랐던 몬트리오의 마음을 알겠다. 결이 다르긴 하겠지만, 그 질색팔색을 했던 마음을.

뭐라도 더 이유를 대 설득해야만 할 것만 같았다. 처음 생각난 건 나이였으나, 이건 그 짓을 그만하자는 이유로 부적합했다.

그야 그럴 것이 시간을 되돌리기 전까지 포함하면 이미 스무 살이 훌쩍 넘었다. 시간을 되돌리기 전을 기억하지 못하고 다시 살아온 게 아니다 보니, 솔직한 심정으로는 나도 나를 성인이라 여겼다.

거기다 루블리안이 살아온 그의 고유 세계에선 열아홉 살은 이미 성인이었다. 술을 마시고, 그 짓을 하든 상관하지 않는. 그래서 저 관념이 머리 박힌 루블리안한테는 나이로 설득해 봤자인 것이다. 나도 수긍할만한, 반박할 내용이 차고 넘쳤다.

“갑자기 뭐야.”

훅 몸이 들려 생각이 멈췄다. 루블리안을 바라보자, 그가 입술을 당겼다. 해사한 미소를 입가에 띤 그가 이마를 콩 맞대왔다.

“시현이 저를 홀로 방치해 둬서요.”

그렇게 옮겨진 곳은 침대였다. 의심스럽다는 눈길을 보내니, 억울하다는 말이 돌아온다. 어느 정도 소화가 됐을 테니, 편한 곳으로 옮겨주고 싶었다는 말도.

이런 부분에서는 못 미더웠기에 잠시 루블리안을 빤히 응시하다, 정말 생각이 없어 보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붉은 입술이 움직인다.

“시현이 원한다면 줄일게요. 이건 차차 정해봐요.”

지금 정하자고 하려는데, 루블리안이 상당히 뜬금없고 말을 내뱉어 화제를 전환했다.

“혹시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요?”

“루블리안, 양심 어디갔, 아. 없지.”

의식의 흐름대로 물음을 던지다가 말을 바꿨다. 매일 몇 번이나 해 대는 것도 그렇고, 용사 시절 때 다른 사람들에게 하던 행동도 그렇고. 아무리 루블리안을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양심이 있다고 말하긴 좀 그랬다.

거짓말에도 적정선이란 게 있는 법이다.“너무해요. 저도 양심 있어요. 없었으면 큰일 났을 거라고요, 여보.”

농담이라도 양심이 있다는 말은 못 해주는 내게 루블리안이 투덜거렸다. 그 모습이 귀엽게 보이기 잠시, 의문이 들었다. 양심이 없으면 큰일 난다는 게 무슨 소리지? 이미 없으면서?

“모르면 됐어요. 가끔 눈치 없는 여보도 전 좋아요.”

더 말할 생각은 없어 보였기에 캐묻지 않았다. 알게 돼 봤자 내게 좋지는 않으리란 본능에 가까운 감이 들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루블리안의 제어 기제가 풀릴 것 같다는 느낌이려나.

“그래서 가고 싶은 곳은 없어요? 가령 시현이 저한테 보여 주고 싶은 곳이라거나.”

“있어도 내일은 못 가. 이런 몸 상태로 내가 어딜 나가.”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다리에 힘은 안 들어가고, 허리는 심하게 아팠다. 이미 하루의 절반이 훅 가 있는 상태라 아무리 편하게 쉰다고 해도 무리였다.

“왜 못 나가요. 제가 안고 다니면 되죠. 사실 체험 학습 신청도 생각해 봤는데, 이번 기말고사 여보한테 중요하잖아요. 같이 갈 어른이 없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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