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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의 집착을 얕봤다 (77)화 (77/112)

077. 루블리안과 봉인 (6)

루블리안 셀턴은 늘 하나의 의문을 품고 다녔다.

도대체 신은 어떻게 백시현이라는 사랑스러운 존재를 만들었는가, 라는.

그만큼 그는 매 순간 백시현이 사랑스러워 욕구를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제게 닿는 시선이, 하는 말들이, 다정한 행동들이. 그냥 백시현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사랑스러웠다.

그래서였다. 얼른 마신을 봉인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겠다는 마음을 먹고서도 자제하지 못하고 시현에게 자꾸만 달라붙은 것은.

이리도 사랑스러운 존재가 옆에 있는데, 저렇게 사랑스러운 말만 내뱉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그건 신이어도 불가능했다. 루블리안은 장담할 수 있었다.

그는 조급하게 입술을 비비며 시현의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숨을 쉴 틈을 주자 빠른 속도로 꾹 다물린 입술을 열고 싶었다. 저 안을 헤집고 싶었다. 저열한 충동이 배 속에서부터 들끓으며 머릿속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입술, 입술. 열어 줘요.”

“…….”

“으응. 얼른. 얼른요.”

루블리안이 애가 닳는 목소리로 졸라 댔다. 얼굴 곳곳이 붉게 변한 시현은 한 차례 움찔했으나,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는 코로 숨을 쉬었다.

그 모습이 루블리안을 더욱 부추겼다. 저 심지 굳은 마음을 흐물흐물하게 만들고 싶었다. 달뜬 숨결을 생생히 느끼고 싶었다. 질척하게 얽히는 소리에 덤덤한 척하면서도 낯부끄러워하는 게 보고 싶었다.

한 번 터진 욕구는 보수될 틈이 없었다. 계속해서 줄줄이 샜다.

“시현.”

“…….”

“시혀언.”

쪽쪽 입술을 맞붙였다가 떼어 내며 말끝을 질질 끌었다. 흥분한 탓인지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이 함께 터져 나왔다. 가지런한 손끝이 미세하게 움찔거리는 걸 포착한 루블리안이 보채듯 시현의 아랫입술을 약하게 깨물었다.

“조금만 할게요. 응? 조금만.”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보드라운 살결을 둥글게 어루만지자, 시현의 허리가 움찔 떨렸다. 곧바로 막는 손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입술을 붙이고, 손을 움직였다. 살짝 들쳐진 옷자락에 드러난 피부가 손등보다도 하얬다.

루블리안은 끝없이 끓어오르는 충동을 내리눌렀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안 됐다. 이성을 유지해야 했다.

“너 정신 좀 차려.”

제 입술을 핥고 깨무는 루블리안을 손으로 막은 백시현이 숨을 돌리며 말했다. 반쯤 맛이 간 건 조급하게 입술을 맞댈 때부터 알아봤지만, 이대로는 위험했다. 봉인이고 뭐고 자칫 잘못하면 지금 거사를 치를 분위기였다.

평소와 달리 저 혼탁해진 눈과 밀착된 몸 아랫부분에서 느껴지는 단단함이 이를 증명했다. 물론 시현 또한 몸이 달아올랐다. 좋아하는 사람이 저와 닿지 못해 안달인데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또한 한창 그럴 나이였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였다. 백시현은 루블리안이 이성을 놓은 만큼 정신을 더욱 굳건히 붙들었다.

“싫어요?”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럼 해요. 짐승 새끼처럼 굴고 있는 건 아는데…… 자제가 안 돼요. 제가 어떻게 참고 있었는데 그런 말을 해요. 이건 시현이 잘못했어요. 진짜, 진짜 너무 좋아서 참는 게 어렵단 말이에요.”

쪽쪽 거리던 걸 멈춘 루블리안이 입가를 덮은 손바닥에 무게를 실었다. 이어 가련한 소동물처럼 금빛 속눈썹을 파르르 떤다. 그 아래 눈동자는 우수에 찬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시현의 눈에는 그렇게 비쳤다.

그 때문에 시현은 책임 전가하는 말을 듣고도 반응하지 못했다. 그저 홀린 듯 아주 연약한 새끼 동물처럼 애교부리는 루블리안을 바라보았다.

“네? 그러니까, 조금만요.”

종내에는 제 얼굴을 활용하며 예쁘게 살랑대는 루블리안에게 홀라당 넘어갔다. ‘그’ 시현도 좋아하는 연인의 작정한 듯한 구슬림에는 이길 수 없었다.

_oOo_

“그만, 그만 좀 해!”

언성을 안 높일 수가 없었다. 늘 목소리에 따라붙던 단조로움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도 물리고 빨려서 입술이 퉁퉁 부어오른 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루블리안은 조금만 더, 라는 말을 계속 내뱉으며 입술을 찾아 댔다.

다행히 거사를 치르지는 않았다. 루블리안이 제 마지막 고삐를 어떻게든 붙잡았으며, 중간중간 나 또한 그를 제지한 덕이었다.

“으응? 조금 했는데 힘들어요?”

“이게 뭐가 조금이야, 미친 새끼야.”

굳이 거울을 통해 목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쓰라린 만큼이나 붉은 자국과 잇자국이 한가득하리란 걸. 얼마나 물고 빤 건지 목이 헐린 느낌이다.

얼굴을 들이미는 루블리안에 뒤로 몸을 빼내며 거리를 유지했다. 집요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마지막 고삐가 풀렸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봉인이 끝나면 참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그 말을 철회해야 할 것 같았다. 이 미친놈은 좀 참는 법을 배워야 했다. 아랫배며, 목이며, 발목이며. 드러난 살갗 중 제 색인 부분이 없었다. 온통 잇자국과 함께 울긋불긋했다.

자연스럽게 신성력을 쓰려다가 멈칫했다. 조금 전 얼얼한 피부에 신성력을 썼다가 자국이 다 지워지자 루블리안이 그곳에 똑같이 붉은 흔적 새겼다. 애써 만든 자국이 없어진 게 불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러니 지금 신성력을 써봤자 다시 자국이 생길 터였다. 부어도 발갛고 예쁘기만 한 저 입술로.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바짝 올라간 통통한 입술을 바라보았다. 그 입술에는 흐뭇함말고도 타액이 많이 묻어 있었다. 빛을 받아 더욱 번들거리는 걸 보니, 얼굴에 열이 몰리는 기분이다.

닦아 내고는 싶은데 다가가면 입맞춤 세례를 면치 못할 것 같았다. 말해도 모른 척 요사스럽게 웃기만 할 테고. 그렇다고 해서 눈을 감으면 다가와 눈가에 입을 맞출 게 분명했다. 느닷없이 내게 달려들기 전, 루블리안이 그랬듯이.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없었다. 그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루블리안은 눈을 둥글게 휘고는 온몸으로 기쁨을 표출하고 있었다.

한껏 상기된 뺨이 아기 같았다. 왠지 모르게 자기 앞길을 철저히 막던 어린 루블리안이 떠올라 바람 빠지는 웃음이 입술 새로 새어 나왔다.

“시현.”

“……너 또 왜.”

눈이 30도쯤 돌았지. 반사적으로 흠칫하고는 몸을 물렸다.

“방금 누구 생각했어요?”

“뭐?”

“누굴 생각했길래 그렇게 예쁘게 웃어요? 저 생각했어요?”

루블리안이 꽃받침을 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드럽게 호선을 그린 눈매. 하늘을 향하는, 유독 도드라진 번들거리는 입술. 그 때문에 함께 솟은 발그레한 뺨. 행동부터 얼굴까지 모든 게 조화로웠다.

살그머니 치는 눈웃음에 속절없이 시선을 빼앗겼다. 더불어 내 정신까지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가오는 인기척에 뜨고 뒤로 물러났다. 등 뒤로 벽이 닿았다. 침대의 끄트머리였다. 이 말은 루블리안이 다가온다면 더는 도망칠 곳이 없다는 거였다.

“오지 마.”

“남편한테 너무 야박해요, 여보.”

“더 야박한 대우 받기 싫으면 말 들어.”

어떻게 들어도 명령조였으나,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다. 다가온 루블리안이 입을 맞추지 않을 확률이 극히 낮았기 때문이었다.

아까보다는 덜 하지만, 눈이 조금 돌아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물론 평소에도 멀쩡하다고는 못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달랐다. 아직 식지 않은 열기에 방 안 공기가 후끈했다.

“……입술도 닦고.”

“으음? 입술이요?”

갸우뚱, 루블리안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동시에 그가 모르쇠로 일관했다. 어떻게 된 게 예상을 빗나가지를 않는다.

“어. 네 입술.”

“뭐가 묻었어요?”

루블리안이 입술을 야트막하게 벌려 붉은 혀를 내밀고는 아랫입술을 느릿하게 훑었다. 그렇게 누구의 타액인지 모를 것이 그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간드러진 목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외설스럽게 느껴지는 행동이었다.

심지어 핥으면서 일부러 눈을 맞추며 웃기까지 했다. 살짝 숙인 고개에 딸려온 금빛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열망 어린 푸른 눈동자를 떠올리니 귀 끝이 불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일부러 저런 게 틀림없었다.

나는 앞머리를 흐트러트리며 헛숨을 내뱉었다. 동물원에 데려가 여우 우리에 넣어둬도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루블리안이 여우 같았다.

“그거 알아요, 시현?”

클린 마법을 썼어도 됐었단 거. 첨언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당연하게도 클린 마법 또한 떠올렸었으나, 그건 가장 먼저 제외된 방법이었다. 그야 그럴게…….

“썼어도 네가 파훼했을 거잖아.”

“그렇긴 하죠.”

봄날의 바람 같은 목소리가 선선히 수긍했다.

어느 정도 열기가 사그라든 게 느껴졌다. 나는 다시금 봉인을 입에 담을까 고민하다가 말기로 했다. 우선 혼자 좀 더 방안을 고안한 뒤, 이 세계에 있는 데드리언에게 조언을 구하는 식으로 해야겠다.

지금 루블리안에게 말해 봤자 역효과만 일어날 테다. 안 그래도 질투심 많은데, 입 맞추고 나자마자 다시 봉인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 이후 일어날 일들을 머릿속에 그려보다 고개를 저었다. 역시 안 하는 게 옳다.

“루블리안. 데드리언하고 연락 좀 하고 싶은데…….”

잠시만.

“너 왜 여기 있어?”

왜 루블리안이 여기에 있지?

너무나 늦은 깨달음이 들이닥쳤다. 내가 있었던 평행 세계 쪽에서는 이미 용사 동료들과 인사까지 나누었다. 그렇다면 여기도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세계가 달라 시간의 흐름 또한 다르다고 보기엔 현재 루블리안의 모습이 시간을 되돌리기 전, 용사일 적 처음 마주했을 때와 똑같았다.

“용사가 나타나기 전이야?”

“아. 그 말이구나. 아니요. 용사는 이미 나타났어요.”

“그런데 왜,”

“그 용사는 시현이 아니니까요. 당신이 아닌 백시현이 저한테 의미가 있겠어요?”

왜 가지 않았냐는 타박으로 들렸는지 대답이 조금 퉁명스러웠다. 입술을 삐죽인 루블리안이 내게 다가와 내 손을 움켜쥐었다. 이어 제 뺨에 가져다 댄다.

“제게 가장 중요한 건 당신이에요, 시현.”

“…….”

“그러니 제가 당신의 곁에 있는 건 당연한 거고요.”

부드럽고 다정한 음성은 진솔했다.

그에 낯이 뜨거워졌다. 심장이 제멋대로 날뛰었다. 가슴께가 간질거렸다. 손끝이 움츠러들었다. 나는 루블리안의 행동과 얼굴에도 약했지만, 꾸밈없는 말에는 더 약했다. 결국 그와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던 것도 물리고,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나 또한 그렇다는 게 전해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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