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 루블리안과 봉인 (1)
압박감이 가시질 않는다. 점차 호흡이 힘들어져 시야까지 흐릿해졌다. 내게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가장 인간적인 주신을 만나 원래 시간대로 돌아오라던 신을 욕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힘, 이나. 하아, 걷으시, 죠.”
가까스로 완성된 문장은 뚝뚝 끊겨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거친 숨 사이로 소리를 토해내자, 더 죽을 맛이었다. 손으로 가슴팍을 움켜쥐고 간신히 정신을 붙잡았다. 자칫하면 금방이라도 혼절할 것만 같았다.
“아.”
힘을 퍼트리고 있다는 걸 지금에서야 깨달았다는 듯한 탄식이었다. 이윽고 내게 압력을 가하던 압박감과 힘이 사라졌다. 내리누르던 무게감이 사라지니,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미안하구나. 내가 원래는 이렇지 않은데…… 지금은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 조절을 못 했단다.”
언제 바닥에 닿았는지 모를 무릎을 펴고 일어났다. 신은 여전히 자애로운 낯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그 얼굴 위로 곤란함이 스쳤다. 정말 실수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우선 넘어가기로 했다.
축축해진 머리칼을 위로 쓸어넘기며 신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미형의 얼굴에는 불안정한 기색이 역력하다. 간헐적으로 떨리는 손끝 역시 그의 근심을 드러냈다. 왕좌 같은 화려하고 거대한 의자에 앉아 있는 신은, 신 같지 않았다. 오만하고 태생부터 모든 걸 손에 쥔 느낌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야.”
인간 같다면 모를까.
“너라면 어떻게 했을지 궁금하구나.”
“…….”
“자식과 형제. 그 둘 중 하나만 고를 수 있다면 너는 무엇을 선택할 것이니.”
온화한 음성은 시름에 잠겨있었다. 루블리안의 목소리가 아니었음에도 귀를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서 신이 던진 물음이 상당히 뜬금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자식과 형제?
“……당신이 만든 인간과 마, 아니. 셜치모를 말하는 건가요?”
“눈치가 빠르구나. 그렇단다. 내게 인간들은 내 자식과 같고 셜치모는 내 형제와 다름없지. 이 신전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가 어찌 모를 수 있겠니. 필연적으로 나는 내 아이들이 봉인을 시도하려 한다는 걸 알았단다.”
체념적인 태도였다. 청초한 낯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잠시 고개를 낮췄다가 든 주신이 부드러운 선을 그리며 눈을 둥글게 휘었다. 그럼에도 아련한 분위기는 조금도 가시질 않았다.
방금까지 케이필을 만나서 그런지 주신이 내보인 반응이 거짓이 아닌지부터 가늠하게 되었다. 진심인 것 같은데……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둘 중 어느 한쪽도 고르지 못해 방관하셨나요?”
대신에 질문을 했다. 당장 원래 시간대로 보내 달라고 해도 보내주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살아 숨 쉬는 루블리안을 보고 싶다는 마음을 내리누르는데, 자조적인 음성이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래……. 나는 이기적인 신인지라,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게 어렵더구나. 내 형제도, 내 아이도. 너무나 사랑하고 있어 모른 척하는 것밖에는 답이 나오질 않았지. 사실 전부터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지리란 걸 알고 있었단다.”
“…….”
“내 형제는 참으로 무정하거든. 내 형제의 손에 만들어진 인간들은 대부분 통제 아래 살게 되는데, 자유 의지라고는 없다고 봐도 무관할 정도란다. 그런 내 형제와 다르게 나는 내 아이들을 자유로이 풀어놓았으니…… 언젠가 마찰이 일어나리라 예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
눈을 찡그리듯 웃은 주신이 창백하다 여겨질 정도로 하얀 검지를 움직였다. 바로 아래 팔걸이와 손끝이 부딪히며 톡톡 소리가 난다. 그 소리가 왠지 모르게 주신의 마음에 금이 가는 소리 같았다.
어느덧 톡톡 소리가 끊겼을 무렵, 주신이 잠시 과거를 회상하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훗날 내 아이들이 나를 찾아와 내 형제의 행동을 입에 올리며 옳고 그름을 따지더구나.”
목소리가 수척하다 느껴질 수도 있는 걸까. 그런 감상을 남기며, 한 손으로 속절없이 무너진 입매를 매만지는 주신을 응시했다. 그는 그 기억이 괴로우면서도 소중한 듯했다. 온 세상의 녹음을 담은 눈동자에 서린 애정이 이를 증명했다.
“처음에는 나와 내 형제의 사이가 나쁘지 않으니, 두 신전의 신도들끼리도 사이가 좋았단다. 문제는, 통제 아래서 제 의지라고는 없는 삶을 사는 내 형제의 신도와 내 아이가 친구라는 점에서 점차 발생했지.”
주신이 말한 ‘내 아이’가 케이필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 봉인을 시작한 사람이 그였기 때문에 든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내 아이는 제 삶을 제대로 살지도 못하는 친구를 구하고 싶어 했고, 결국 통제 아래서 살던 그 아이는 내 형제에게 반항을 했단다. 결말이 어땠을 것 같니?”
뭐든 간에 좋은 방향은 아니었을 테다. 좋았다면 봉인 시도가 왜 일어나고 있겠는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할 대답을 알아차린 건지, 신이 눈을 내리깔았다가 그대로 고운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죽었단다.”
죽었다는 말에도 큰 감흥이 일지는 않았다. 죽음을 겪은 적도, 목도한 적도 있어서 그런 건지. 내 주변 사람이 아니라 내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예상했기 때문인 건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러했다.
“거기서 끝나면 좋았을 텐데…… 화가 난 내 형제는 내 아이들에게까지 손을 뻗더구나. 그걸 참을 수 없었던 내 아이가, 케이필이 봉인을 계획했지.”
“당신의 자식에게 해를 끼치려 했는데도 셜치모를 사랑한다고요?”
믿을 수 없는 소리라 반사적으로 질문이 툭 튀어나왔다. 형제지만, 자식을 건드렸다면 그건 원수나 다름없지 않나. 나도 쌍둥이 동생이 있지만, 사이가 안 좋았다면 안 좋았지, 결코 좋다고 하지 못해 주신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주신은 그런 나를 이해한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죄인까지도 너그러이 포용해줄 것만 같은 목소리를 냈다.
“인간은 나와 내 형제에게서 파생되어 다른 신들보다도 우리와 비슷하지만, 다른 점은 존재하기 마련이란다. 나와 인간의 다른 점을 꼽으라면…… 사랑이겠지.”
“…….”
“내 형제가 잘못을 저질렀음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아. 그렇기에 마찰을 막아보려 했으나, 실패로 거듭나기도 했지. 그럼에도 내가 내 형제를 사랑하는 건, 불완전하더라도 내 형제이며 사랑스러운 구석을 알고 있기 때문이란다.”
주신은 마신에게서 사랑스럽다 느낀 구석을 하나하나 나열했다. 그다지 궁금하지도, 듣고 싶지도 않았으나 귀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 탓에 둘의 사이가 얼마나 좋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런 마신이 인간에게 그리 무자비하게 굴었다고는 상상조차 못 할 정도였다. 그만큼 주신이 말하는 마신은 한없이 무르고 온화했다. 정말 안 어울리게도.
“하하.”
별안간 주신이 웃음을 터뜨렸다. 변화 없는 내 얼굴이 웃기기라도 한가 싶었다.
“고맙구나, 아이야.”
“……?”
“내 이야기를 들어줬잖니.”
죄를 사하여 줄 것만 같은 음성이었다. 부드러이 웃는 모습에서는 여전히 애달픔이 느껴졌으나, 따로 해줄 말은 없었다. 루블리안이 최우선인 나는,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하는 주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동시에 신이 말한 ‘주신은 가장 인간적이다.’라는 문장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만이 존재하여 칼같이 끊어내는 게 아니라 몇백 년간 미련하게 끙끙 혼자 앓는 게 인간 그 자체였다. 모두를 공평히 사랑하는 점을 보다 보면, 인간이 아니긴 하네 싶지만.
“네가 떠날 아이란 걸 알아서 그런가. 한탄하고 싶었다. 수백 년간 이에 대해 고민했지만…… 나는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고, 그 누구에게 털어놓지도 못했으니. 들어 줘서 고맙구나, 아이야.”
잘가렴.
나긋한 목소리가 끝을 맺자, 내 바로 앞에 포탈이 생겼다. 그 탓에 주신의 형상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주신의 심리를 반영한 듯 어두운 방을 한 번 훑다 맞붙은 입술을 떼어 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신은 미련스러워요.”
“…….”
“그다지 현명하다는 생각도 안 들고요.”
결국 둘 다 너무나 사랑한 탓에 이기적인 선택을 했다지만, 그건 이 싸움 끝에 자식이든 형제든 둘 중 한쪽은 죽는 걸 모른 척하는 거 아닌가. 소중하면 지켜야지, 이럴 게 아니라.
“저는 제게 소중한 사람이 따로 있어서 그런가 방관하는 게 이해도 잘 가지 않고요.”
“그렇구나.”
포탈 때문에 신이 어떠한 표정을 짓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금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다는 듯, 괴롭다는 듯 웃고 있겠지.
“이건 오로지 제 생각일 뿐이니까, 어딘가에는 당신의 선택을 이해하는 이들도 있겠죠. 뭐, 이대로 더 지켜볼지, 지금이라도 개입할지 그건 알아서 생각하고 정하세요. 지금도 당신, 후회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많은 걸 알려주면서까지 제게 확신을 얻고 싶었던 거잖아요.”
이야기를 꺼내며 주신은 무언가 확신을 얻고 싶어 하면서, 얻고 싶지 않아 했다. 차라리 괴로움 속에 잠겨 이대로 안주하고 싶다가도, 지금이라도 달려가 둘을 저지하고 싶어 했다. 사전에 말려보려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 반쯤 포기한 기색이긴 했지만 말이다.
“안녕히 계세요.”
할 말은 다 했다. 한 걸음 내디뎌 포탈로 들어갔고, 익숙해진 어지럽고 속을 뒤집는 감각이 나를 덮쳤다. 시야가 팽글팽글 돌아간다. 곧장 토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어지러움이 걷히고 나니, 황폐해진 회색빛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황금빛으로 타오르는 마법진 한가운데 서 있는 루블리안까지도.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다. 일순 멍했던 나는 착각이 아니라는 것과 원래 시간대보다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직시할 새도 없이 뛰어가 그를 끌어 안아버렸다.
“사, 윽. 시현……?”
울렁이는 감각이 걷혔는데도 이상하게 시야가 뿌옇고, 어지러웠다. 그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았다.
살아 있다. 루블리안이 살아 있다.
루블리안을 끌어안은 팔부터 손끝까지 달달 떨렸다. 점점 느려지는 박동 소리가 아니다. 일정한 박자로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체온 또한 따뜻했다. 피로 범벅된 몸도 아니었다. 살아 있다. 산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들이다.
“시현? 괜찮아요?”
이 목소리 또한 산 자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비로소 안심하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만 있었다. 그러자 루블리안이 마법을 거두고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이내 내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가 올리며 나를 안정시킨다.
“왜, 왜 울어요. 하지 말까요? 그냥 이대로 둘이 떠나버릴까요?”
내가 울고 있나? 얼굴을 묻은 어깨가 축축한 걸 보니 울었나 보다. 어쩐지 얼굴이 뜨겁더라. 시야가 뿌옇게 변한 이유를 알아내니, 또다시 다정한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당신을 울리고 싶던 건 아니었는데…… 미안해요. 안 할게요. 같이 다른 방법이 있나 찾아봐요.”
내가 이미 수억 년 전의 과거를 갔다 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한 반응이었다. 루블리안이 천천히 나를 어르고 좀 더 힘있게 안았다. 그 상태로 한숨과 같은 음성을 흘렸다.
“그런데 진짜 어떡하죠. 당신이 나 때문에 울어 주는 게 기뻐요.”
솔직하게 속내를 토로한 루블리안이 내 얼굴을 보려는 듯 날 조금 떼어 내려 했으나, 내가 거부했다. 더욱 세게 그를 끌어안고,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좀 더 루블리안이 살아 있다는 걸 몸소 느끼고 싶었다. 머리로 인지는 했지만, 부족했다. 아마 루블리안을 놓아주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리라. 그리 확신하며 나는 루블리안의 목에 이마를 댔다. 따뜻한 체온이 전해진다.
루블리안이…… 정말로 살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