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라이의 집착을 얕봤다 (63)화 (63/112)

063. 루블리안과 기억 없는 본래 세계 (6)

애교 섞인 녹녹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입술을 말아 물었다. 저런 낯간지러운 말을 면전에 대고 하다니, 괜히 뻔뻔하다고 하는 게 아니었다. 쿵쿵. 심장 소리가 아까보다도 크게 귓전에 울려댔다.

박동 소리를 들은 듯 루블리안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귓가에 간지러운 웃음소리와 숨결이 닿았다. 살랑이는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 사이에 있는 기분이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있으니, 방 안은 간지러운 웃음소리만이 울렸다. 이내 웃음을 멈춘 루블리안이 묘한 분위기 속 내 귓불을 잘근 약하게 깨물고는 사람을 살살 꾀는 구미호처럼 속살거렸다.

“시현, 저 키스도 하고 싶어요.”

한껏 풀린 음성에 뜨거운 숨결이 섞인다. 나는 한 박자 늦게 입을 뗐다.

“……헛소리하지 마.”

“으응. 왜 이게 헛소리지? 할래요, 응?”

배시시 눈을 접으며 루블리안이 다시 입을 맞출 것처럼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의 고집은 상당했기에 말로 말려 봤자일 테다. 나는 손으로 내 입가를 막았다.

그러자 루블리안이 손등에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 부러 소리를 내며, 눈을 휘고는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본다. 내 반응을 즐기는 모양새였다. 손등에 입술이 닿는 건, 자주 겪었던 일이라 다를 게 있나 싶었다. 진하게 문지르는 게 익숙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리 생각하기가 무섭게 뭉근하게 문질러지는 입술 사이로 붉은 혀가 나왔다. 손등 가운데에서 점차 위로 올라가 검지와 중지 사이에 도달한다. 이어 그 사이를 쑤시듯 앞뒤로 힘 있고, 느릿하게 움직인다. 젖은 소리 조금과 함께 미끄덩한 감촉이 선연했다. 어쩐지 외설적으로 느껴지는 행위에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진득한 혀 놀림이 익숙하지 않아 손을 내빼고 몸을 물리고 싶었으나, 어느새 손목이 잡혀 있었다. 허리는 입맞춤을 할 때부터 단단한 팔이 감겨 있었다.

“루블리안.”

말리기 위해 호명했지만, 오히려 뭔가를 자극한 듯 혀가 조금 더 움직여 검지의 아랫부분을 삼켰다. 습한 열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검지에 뜨겁고 두툼한 감각이 선명해지는 동시에 열기를 띤 푸른 눈동자 위의 눈매가 더욱 가느스름한 선을 그린다.

자극이 너무 과했다. 연애 한 번 해본 적 없기에 질척이는 스킨십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갔다. 정신이 혼미했다. 이상하게 호흡이 힘들었다.

이내 루블리안은 고개를 비스듬히 하며 아예 내 검지를 삼켰다. 이어 고개를 조금씩 움직였다. 느릿하게 핥았다가, 힘 있게 빨았다가. 타액으로 인해 젖은 입천장에 문질러지기도 하는, 그런 생소한 감각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 손이 내 입을 막고 있지 않다는 걸 입술에 폭신한 감각이 느껴졌을 때 알아차릴 정도였다.

“정말 안 돼요?”

입술을 맞댄 상태라, 입술의 움직임이 그대로 느껴졌다. 어쩐지 애가 타는 음성이었다. 더불어 맑다고만 느꼈던 푸른 눈동자가 더없이 깊어 보였다. 열망과 갈망으로 인한 변화인 듯했다.

섣불리 대답하지 않고 입을 닫고 있으니, 열어달라는 것처럼 살짝씩 아랫입술을 깨문다. 대답을 재촉하기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싫어요?”

그럴 리가 없다는 확신이 담긴 눈이어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내 그 작은 틈 사이로 뜨거운 온도를 지닌 말캉한 혀가 들어온다. 뒤로 도망가려는 혀를 얽매고는 쪽쪽 빨아당긴다. 이어 치열과 젖은 점막, 입천장을 고루 훑으며 끊임없이 혀를 움직인다. 질척이는 외설적인 소리에 귓속을 점령당하고, 삼키지 못한 타액이 입 밖으로 흘렀다.

“으, 으응.”

내가 했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낯이 확 뜨거워졌다. 그런 나를 보며 루블리안은 기분 좋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고 드러냈다. 내 입안을 유영하는 혀는 탐험가라도 된 것처럼 모든 곳을 구석구석 핥고 빨았다.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탓에 젖은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내 숨을 쉴 타이밍이 어딘지 도저히 찾지 못해 숨이 부족해져, 루블리안의 팔을 꽉 쥐며 고개를 내빼려 했다. 그러자 그가 천천히 입을 떼어 냈다. 가느다란 실선이 생기다 툭 끊어지는데, 낯을 들 수가 없었다. 온도계로 얼굴 체온을 재면, 40도는 가뿐히 넘을 것만 같았다.

“하아. 하…….”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서서히 제정신을 차리자, 숙인 얼굴을 들지 못하겠다. 어쩌자고 이런 짓을 벌인 건지. 조금 전의 나는 루블리안만큼이나 미쳤었던 게 분명했다. 분위기에 떠밀려 거의 표류한 기분이다.

“진짜 너무 좋아요…….”

황홀하단 음성이 귀를 적셨다. 루블리안은 곱게 눈웃음 지은 채로 내 입술에 연신 입을 맞췄다. 입술이 타액으로 젖은 탓에 맞댈 때마다 소리는 물론이고 실선이 늘어졌다. 습관처럼 클린 마법을 쓰려다, 신전 내부라는 걸 깨달아 멈추고 손등으로 입술을 문질러 닦았다.

그러고 보니 루블리안이 차원 이동 마법을 쓴 탓에 울리던 경보음은 어느새 들리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다. 마법사가 침입했는데, 그 누구도 용사가 있는 방에 와 보지 않다니.

그런 내 눈길을 가져간 건, 입술이 막혔음에도 기분이 좋은지 양팔로 내 허리를 꼭 끌어안는 루블리안이었다. 그는 어깨에 이마를 비비적거리며 너무 좋다는 말을 여러 번 내뱉었다.

“시현.”

“왜 또.”

“시현이 혼전순결인 제 순결을 가져갔어요. 그러니까 제 세계로 가서 우선 결혼식부터 올릴까요?”

색감 옅은 꽃이 핀 듯한 뺨과 몽롱하게 풀린 눈을 한 루블리안이 또다시 개 울음을 흉내 냈다. 누가 혼전순결이라는 건지. 수작을 부릴 거면 그럴듯한 걸로 부려야지. 기가 막혔다.

“으응. 왜 대답이 없지. 해요, 네?”

내 목에도 입술을 묻으며, 루블리안이 사근사근하게 말했다. 얼핏 어린아이의 칭얼거림처럼 들릴 수 있었지만, 음성이 곱고 나긋하여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조금의 애교스러움이 가미가 된 느낌이었다.

대답이 없자, 곧 루블리안은 미인계를 쓰기 시작했다. 눈매를 부드러이 휘고, 촘촘하고 선명한 금빛 속눈썹이 사뿐히 살랑인다.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니, 속눈썹이 만든 그림자 속 눈동자의 푸른색이 더욱 또렷해진다.

“결혼식은 역시 봄날에 올리는 게 좋겠죠? 시간대를 봄으로 맞춰 이동할까요?”

그래서 그런지 계절을 정해, 그때로 차원 이동하겠다는 미친 소리를 듣고도 헛소리하지 말라고 타박하지 않을 수 있었다. 루블리안은 저렇게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해야 했다.

대신 입이나 닫으라고 하려던 순간이었다. 문이 열리고 평행 세계 루블리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웃는 낯이지만, 심기가 더럽다는 게 드러났다. 이내 바싹 마른 붉은 입술이 열렸다.

“신전에서 입술을 비비고 있다니……. 그런 취향이었어, 자기야?”

“우리 여보 취향도 모르나 보네. 이건 내 취향이거든.”

삐딱한 말을 맞받아친 루블리안 또한 입가에 조금 더 매끄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신경전이 시작되려는 듯했다.

“너, 되지도 않는 흉내를 왜 내고 있어.”

걸리는 점을 집어 말했다. ‘자기야’는 시간을 되돌리기 전 평행 세계 루블리안만이 쓰던 호칭이었다. 좀 전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체하다 갑작스럽게 바뀌는 것도 그렇고, 무어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알던 그와는 미묘하게 달랐다. 더불어 눈이 맑았다. 광기에 잡아먹히긴커녕 그저 흥미만 맴돌았다.

“시간을 되돌리기 전의 날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알아차리네. 사실 날 싫어하지 않았나 봐, 자기야.”

들을 필요도 없는, 무가치한 내용을 담은 나른한 음성이 퍼졌다. 무시로 일관한 내가 루블리안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내 목에 가벼운 입맞춤이 떨어졌다. 이어 마력이 한꺼번에 쑥 들어왔다.

생각해 보니, 아까 마력을 준 적이 없었다. 내가 묻기도 전에 루블리안은 미려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당신하고 순수하게 키스를 하고 싶었던 거지, 마력 전달을 위한 접촉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니까요.”

뱃속이 간질거리는 기분에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저런 소리를, 저런 표정으로 하다니. 식은 열이 서서히 다시 오르는 듯했다.

“아, 그리고 리안은 못 가.”

“‘우리’의 일을 왜 ‘너’가 결정해?”

루블리안이 우리와 너로 확실하게 구분 지었다. 나누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평행 세계 루블리안은 느른히 여유를 잃지 않았다. 도리어 검지로 제 팔을 톡톡 두드리다 우아한 선을 그리며 침대 쪽으로 다가왔다.

이내 나를 빤히 바라본다. 내 머리 쪽으로 손을 뻗길래, 막자 눈을 조금 더 가늘게 뜬다. 휘어진 눈매는 여전했다.

“예상했겠지만, 나한테는 마신이 남아있지.”

역시나. 마신은 여전히 평행 세계 루블리안에게 기생하고 있었다. 신계에서 알아서 해결하겠다고야 했지만, 그게 당장은 아니었다. 그가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그가 어떻게 나올지, 경우의 수를 예측하는데, 이내 느릿하게 은근한 속삭임이 들려온다.

“내가 죽으면 마신이 내 몸을 차지할 테니, 이쪽 애새끼는 몰라도, 리안은 신경 쓰겠지. 모든 인간계가 멸망할 테니까.”

“…….”

“이상하게도 죽는 건 그다지 무섭지 않더라고.”

나직한 중얼거림은 진담이었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에 어딘가 오류가 있었나 보다. 아니면 감정은 기억과 달리 남아있을 수 있나. 애매했지만, 다음 말이 이어져 생각을 미뤘다.

“어쨌든 난 궁금해졌어. 내 목숨을 버려서까지 자기를 몇십 번이고 구한 이유가 뭔지. 흥미롭긴 한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나.”

“그러니까 네 옆에 있어라?”

마신을 이 세상에 강림시키고 싶지 않다면?

단조로이 묻자, 그렇다는 대답이 즉각 되돌아온다. 루블리안이 바로 나서려는 게 보였으나, 적당히 말렸다. 저쪽은 우릴 죽일 수 있어도, 이쪽은 마신 때문에 죽이지 못한다. 죽이면 마신이 나올 테고 세상을 멸망으로 이끌 테니까.

말을 듣지 않는다면 자결해 마신을 불러오겠다는 평행 세계 루블리안과 기어이 나를 제 세계로 데려가 함께 결혼식을 올릴 듯한 집념의 루블리안.

……따지자면 후자가 당연히 더 마음에 들지만, 곤란하게 됐다. 신이 마신을 처리하는 데만 해도 1년은 걸릴 거라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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