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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의 집착을 얕봤다 (57)화 (57/112)

057. 루블리안과 파괴된 세계 (10)

잘 쓰지 않던 욕이 나올 만큼이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정도면 마신이 가지고 놀다가 죽이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도 신은 할 말이 없는지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나는 정신 좀 차리라는 의미에서 손을 가로로 세워 박시찬의 정수리에 타격을 가했다.

“악! 나 왜 때려?”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는 네 머리 좀 고치려고.”

“야. 얜 기계가 아니라 더 멍청해지기만 하는데 감당 어떻게 하려고 이러냐?”

김민식이 한 대 맞은 박시찬을 흘기며 고개를 저었다. 노답 취급이었다.

“야!”

“때린 거 미안하니까, 그만해 봐. 둘 다 내 손에 이마나 대.”

마법진을 그리는데 이용되었던 마력을 거두고 두 손을 내밀었다. 박시찬은 날 안느라 이미 눈높이가 맞았기에, 김민식만 무릎을 구부리면 됐다. 그는 편하게 아빠다리를 했다.

아닌 척해도 이리형도 그렇고, 얘네도 그렇고. 얼굴에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운 건지 눈가도 짓물러있었다. 하긴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그럴 만했다. 나는 한 손씩 둘의 이마에 올렸다. 그러고는 경고했다.

“이상한 기운이 느껴질 텐데, 최대한 움직이지 마.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나니까. 그리고 거부 반응이 심하면 구역질할 수도 있어. 머리도 꽤 아플 거야. 양쪽으로 벌리는 느낌도 들 테고.”

빠르게 뱉은 말에 둘이 당황할 겨를도 주지 않고 바로 정신계 마법을 시전했다. 외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으니, 머리에 새겨주려는 거였다.

스멀스멀. 가는 마력이 그들의 체내에 들어갔다. 머릿속에 침투하니, 박시찬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그는 엉망인 바지를 꽉 잡고,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깨물며 신음을 참고 있었다.

“다 됐어.”

마법을 거두자, 박시찬이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연신 헛구역질을 해댔다. 김민식은 어지러운 것뿐, 별다른 반응은 없는 모양이었다. 처음으로 정신계 마법을 받은 건데, 이 정도면 양호했다. 적어도 기절은 하지 않았으니.

마법을 거는 김에 마력도 확인했는데, 김민식은 보통이었고 박시찬은 많은 쪽에 속했다. 아무래도 예민하기까지 한 듯하다. 친한 사이라도 하면 안 될 짓이었지만, 지금 상황은 예외였다.

“일어나. 가야지.”

나는 둘을 챙겼다. 좋아질 생각을 하지 않는 박시찬의 낯빛에 신성력이라도 걸어 편안하게 해줄까 했지만, 곧 괜찮아질 테니 마력은 최대한 아끼는 게 좋았다.

마신은 호락호락하지 않아 최대한 절약해서 써야 했다. 사실 지금 아무런 작전 없이 전투에 뛰어드는 거라 걸리는 게 한둘이 아니었다. 아까 말했듯 먹잇감이 제 발로 포식자에게 찾아가는 꼴이었다.

“원래 있던 곳으로 가자. 난 모르니까 앞장서.”

“어.”

평소라면 먼저 답했을 박시찬이 상태가 좋지 않아, 김민식이 짧게 답했다. 정말 신성력이라도 걸어줘야 하나 했는데, 차츰 나아지는 게 보였다.

둘을 따라갈수록 무언가 부서지고, 터지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리고 잔챙이들도 나타났다. 저 잔챙이를 처리하기엔 마력과 신성력이 아까웠다. 처치하지 않고 있으니, 박시찬이 더듬더듬 기억을 되짚는 듯 미심쩍은 투로 말한다.

“그러니까…… 이건가?”

붉게 타오른 마법진에서 불덩이가 빠르게 쏘아졌다. 머릿속에 주입한 덕인지, 수식과 고대 언어를 그리지 않아도 바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수식을 외우다가 한 곳이라도 실수하면 다른 마법이 발동될 가능성이 컸기에, 이렇게 하길 잘했다.

그러나 마물의 핵이 아닌 곳에 맞았기에, 숨을 끊어내지는 못했다. 맞춘 게 어딘가 싶기는 했다. 그리고 공격당하자 더욱 흥분한 마물을 김민식이 공격 마법진을 펼쳐 사살했다.

“빡대가리야. 명중률 높이는 마법이랑 같이 써야지.”

“미친. 그런 게 있어?”

알려준 마법진들을 살피고 응용한 걸 보면 센스 자체는 김민식이 더 뛰어났다. 마력 양은 박시찬이 더 많고. 두 개가 적절히 섞이면 좋을 텐데, 아쉽게 됐다.

신성력이 없기에 핵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으나, 나아갈수록 둘은 잔챙이를 처음보다 잘 잡았다. 그 순간 큰소리가 울리고 뿌옇게 오르는 연기가 우리를 덮쳤다. 옆에서 마물의 기척이 느껴졌다. 세 마리 정도인데, 둘은 연기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처리해야 할 성싶었다. 나는 안경알처럼 신성력을 눈에 두르고 붉게 반짝이는 세 개의 핵에 압축한 마력을 창의 형태로 만들어 던졌다. 단숨에 마물의 핵이 부서지고 숨을 거뒀다.

“주변에 없어.”

마법을 써 연기를 걷어내며 말했다. 깔끔하게 한 방에 죽은 마물의 시체에 둘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그 얼굴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기서 루블리안과 평행 세계 루블리안의 몸을 차지한 마신이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웬만하면 둘이 붙어서 해. 합이 맞으니까.”

“뭐? 너 어디,”

순간 이동을 하느라 김민식의 말이 끊겼다. 공중에 떠올라 있는 루블리안 곁으로 간 나는 채찍처럼 날아오는 마력을 막아냈다. 이어 루블리안을 치유했다. 다행히도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드디어 나왔네, 용사.”

음은 같았지만, 말투와 드는 느낌이 달랐다. 평행 세계 루블리안은 녹진한, 묘하게 위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면, 마신은 다른 의미로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다. 어딘가 음습하기까지 했다.

“하찮은 인간들이 발악하는 걸 보며 네가 오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따분했다는 듯이 말한 그가 혀끝으로 입술을 축였다. 이어 입술을 죽 찢듯 입꼬리를 올렸다. 조커를 떠올리게 하는 미소에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올라왔다.

“널 죽이고 싶었거든.” 이어지는 음성이 끝나자, 바로 멈췄던 공격이 거세게 몰려들었다. 평행 세계 루블리안의 힘만이 아니었다. 마신의 힘까지 포함된 듯 대치했던 아까와 달리 공격이 더욱 강해졌다.

나와 루블리안은 방어 마법진을 펼쳤다. 방어막에 튕긴 공격이 땅에 꽂힌다. 큰소리와 함께 아스팔트였던 바닥이 산산조각이 난 탓에 한가득 매캐한 가루가 날린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의 기척이 읽혔다. 밑에서 마물에게 놀아나는 사람들도 신경 쓰며 공격해야 할 것 같은데.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그렇게 신경 쓰이면 내가 친히 죽여줄 수 있는데.”

나지막한 음성이 떨어짐과 동시에 나와 루블리안에게 향하던 공격이 유려하게 방향을 틀었다. 곡선의 끝은 혼자 있는 이리형에게 향했다. 신성력을 개화한 터라, 김민식이나 박시찬처럼 방어를 하지 못한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순간 이동으로 이리형의 허리를 끌어안아 당겼다.

쾅! 커다란 소음과 함께 무형의 기운에 의해 이리형이 있던 자리가 움푹 파였다. 아주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파인 건 땅이 아니라 이리형의 살갗이었으리라. 이 회색 가루들은 온통 빨갛게 물들었을 테고.

열이 제대로 뻗쳤다. 일부러 방어하지 못하는 이리형을 공격한 게 틀림없었다. 방어 마법진을 쓰더라도 몸을 써 피하지 않았다면 타격이 컸을 만한 위력이었다.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느껴졌다. 안색이 시퍼렇게 질린 이리형이 내 팔을 꽉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를 보며 입을 연신 벙긋거린다. 내가 오지 않았다면 죽었으리란 걸 직감적으로 느낀 듯, 두려움에 도무지 말이 안 나오는 모양이었다.

“이리형.”

“…….”

“말 안 해도 돼.”

터놓고 말하자면, 여기 있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신성력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싸우는 방법도 잘 알지 못하니 그냥 박시찬, 김민식과 함께 안전한 곳에 가 있으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지 못하는 건, 어디론가 가는 것보다 내 시야에 있는 게 더 나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지역은 멀쩡하리란 생각이 들지 않았으며, 도망쳐도 마신은 찾아낼 수 있었다. 저 힘으로는 못할 게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도망치라는 말도, 거짓된 위로도 할 수 없었다.

“저기 보여? 나 다시 저기로 가야 해.”

마신과 싸우는 루블리안은 고전 중이었다. 내게 붙어있는 신도 못 이기는 마신이라도, 승산이 없다 해도 루블리안이 있다면 우선 가야 했다. 그를 죽게 둘 수는 없었다.

내 팔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리형에게 다시 시선을 두자, 그가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애써 괜찮은 척하더니, 죽음의 두려움 한 번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나 네 옆에 못 있어.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너 방금 진짜 죽을 뻔했어.”

그렇기에 나는 현실을 깨닫게 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죽을 상황에 놓였다는 사실이 확연히 와닿게 했다.

적절한 긴장감과 두려움은 정신을 놓지 않는 데 도움이 된다. 지금은 두려움에 잡아먹혔으니, 적당히 풀어줄 말을 해야 했다.

“그렇지만 위험하면 올게. 지금처럼. 그리고 박시찬하고 김민식한테 데려다줄 테니까, 둘이랑 있어. 내 말 알아들었어?”

“어……. 알아들었어.”

간신히 낸 목소리가 귓전에 울린다. 나는 박시찬과 김민식이 있는 곳에 이리형을 두고 셋에게 방어 마법을 걸었다. 더불어 위협을 느끼면 알림이 오는 마법도.

다시 루블리안에게 간 나는 그의 상처를 빠르게 치유하고, 마신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시간을 끌거나,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고민했다. 막고, 찌르고, 막고, 막고. 공격이 점차 날쌔졌다. 틈을 파고들어 공격하기가 어려워졌다.

나는 근본적인 원인을 파고들었다. 마신이 이렇게 힘을 쓸 수 있는 이유는, 견제로 인해 직접 인간계에 오지 못하는 마신이 평행 세계 루블리안과 계약을 했고, 그로 인해 죽은 육체를 얻었기 때문이다. 몸의 주도권은 그가 죽은 후에야 잡았다. 그렇다면…….

연쇄적으로 일어난 일을 천천히 되짚자, 나오는 결론에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평행 세계 루블리안이 숨을 거둘 때, 선택은 내 몫이라 한 게, 일부러 원하는 시간대로 시간을 되돌리는 완벽한 마법진을 선명하게 기억시킨 게, 뒤틀어진 것을 바로 잡고 싶으면 사용하라는 의미였나 보다.

시간과 공간이 어긋나고 섞이면서 나는 내 고유 세계가 아닌 곳에서 살아왔고, 평행 세계의 백시현은 내 운명을 따라 죽고. 모든 게 뒤틀어졌으니 그것을 되돌리고 싶다면 말이다.

그런데 그걸 다르게 사용해야 할 것만 같았다.

방어 마법만 시전하며 생각에 돌입했던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평행 세계 루블리안은 모든 추억을 버리고, 모든 감정을 버리고 시간을 되돌린다는 선택을 한 건지. 내게 향한 맹목적인 애정이 대단하다 싶었다.

머릿속이 엉망진창이다. 차라리 다른 방도는 없나 찾고 싶어졌지만, 내 눈에 애쓰는 루블리안과 마물을 처치하는 친구들이 들어왔다.

모두가 잊고, 나만이 갖는 추억과 무로 돌아가는 관계라니. 끔찍했다. 특히나 루블리안이 걸렸다. 되돌린다면 볼 일이 없을 테지만, 나만 마음을 가질 거라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감정의 농도가 얼마나 차이가 날까.

그러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 문장과는 상반되는 접속사들이 머릿속에 나열된다. 그 접속사로 만든 문장의 끝은 모조리 다 똑같았다.

그러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간을 되돌려야만 했다.

내 소중한 이들과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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