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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의 집착을 얕봤다 (56)화 (56/112)

056. 루블리안과 파괴된 세계 (9)

자연스럽게 상처를 치료하는 이리형은 당황스러워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빠르게 다가와 나를 살폈다. 루블리안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모양새였다. 그런 그에 도리어 놀란 쪽은 나였다. 신성력과 마력, 오러. 그 무엇도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았었기에, 이리형이 자연스레 신성력을 쓰는 모습이 낯설었다. 신이 잠재된 능력을 개화했다더니, 그는 신성력인 듯했다.

“아, 시발. 개쪽팔려…….”

그는 양손으로 세수하듯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흘렸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창피해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는 이리형에게 다급히 물었다.

“박시찬이랑 김민식은? 걔네 살아있어?”

“아주 잘 살아있지. 너어무 잘 살아있어서 놀림 받게 생겼어…….”

‘~죠.’하는 장난스러운 투가 아니었다. 무언갈 한탄하고 있었다. 다음 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쿵! 콰쾅!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렸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듯 이리형이 다시 건물 밖으로 나가려 했다. 반사적으로 나는 그의 팔을 붙들었다.

“백션, 왜?”

“너…… 저길 다시 가게? 신성력으로 싸울 줄은 알아?”

예상보다 느껴지는 신성력이 많긴 했다. 그런데 제대로 응용하여 싸울 줄은 알까? 게임과 같은 곳에서 신성력은 무조건 힐이었다. 치유밖에는 없는 터라, 응용법도 모른 채로 전장 한가운데로 갔다간 살아남지 못한다.

이리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하단 목소리를 내었다.

“적당히 이렇게 해서 날리면 되던데?”

완벽하진 않지만, 이리형은 신성력을 길쭉하게 뽑아냈다. 응용 방법을 알아낸 건 대단하지만, 응축력도 약하고, 새는 양도 많았다. 거기다 날카롭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무뎌서 타격이 먹히긴 할까 싶었다. 이런 응용력으로 싸우다니 지금 살아있는 게 천운이었다.

“왜? 문제 있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낯이었다. 나는 신을 불렀다.

‘신.’

신도 할 말이 없는지, 기어가는 목소리로 네, 하고 답했다.

‘차라리 다른 세계에서 불러오면 안 돼? 용사, 나 말고 용사였던 사람이 다른 세계에도 있을 거 아니야.’

[그게…… 욕망이 커지는 건 마신 때문이거든요? 마신이 마법적 재능이 뛰어난 평행 세계 루블리안의 몸에 들어가는 바람에 다른 세계의 사람을 데려오면 오히려 안 좋아요.]

목소리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신은 그 까닭을 설명하려는 듯 말을 이었다.

[천계에도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잖아요. 저는 마신이 육체를 얻고 날뛰는 세계의 담당이라 빠져나와서 이러고 있지만, 거긴 자기 세계의 사람들을 신경 쓸 틈이 없어요. 그러니까 데리고 오더라도 주술과 마법을 동원해서 욕망을 더 크게 만들면 속수무책으로 마왕이 된다는 거죠.]

평행 세계 백시현에게 수를 썼던 방법이었다. 신의 축복과 가호를 내려도 욕망을 아주 크게 만들어 그 틈을 이용하는 것.

[그나마 다행인 건 제가 관리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의 욕망을 키워 침입하려는 건 막을 수 있는 거예요. 신들은 제 세계에 한에서는 능력이 배로 강해지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절 창조한 거나 다름없는 마신을 죽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요.]

딱 막는 것. 그것 외에는 불가능하다고 신은 단정 짓고 있었다.

“백션? 나 가야 하는데. 저기 박시찬이랑 김민식도 있어.”

그리고 그러한 신은 자신보다 한없이 약한 인간에게, 그것도 싸우는 방법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인간에게 마신을 처치하라 했다. 그간 이 신이 그나마 인간성이 있다고 생각했던 내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저 마신이나, 내게 들러붙어 있는 신이나. 인간의 목숨을 한 번 쓰고 버릴 소모품이라 여기고 있다.

의아한 얼굴의 이리형을 일그러진 낯으로 바라보니, 루블리안이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준다. 말하지 않아도 의도가 전해졌다. 루블리안은 우선 진정하라며 나를 달래고 있었다.

“이리형.”

“어어?”

“신성력 더 날카롭게 갈아. 너 너무 무뎌. 그냥 버려지는 양도 너무 많아. 제대로 단단하게 모아. 너 지금 살아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니까.”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많은 말을 쏟아내자, 이리형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를 위해 차오른 신성력과 마력을 확인하고 시범을 보여줬다. 그저 길게 뽑아낸 응축된 신성력이 날카롭게 갈아진 검처럼 느껴지게끔. 나를 보곤 다시금 신성력을 뽑아낸 이리형은 내 신성력과 본인이 한 것을 보더니 입을 헤벌렸다.

쿵! 콰과광!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에 사람의 비명이 겹쳤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죽어 나갈 테지만, 다른 사람은 죽어도 이리형은, 내 친구인 그들은 조금 더 살았으면 했다. 인간은 언제나 이기적이었고, 나 또한 인간이었다. 나는 내 소중한 이들이 더 중요했다.

“얼른.”

다그치듯 일갈하자, 이리형이 좀 더 신성력을 뭉친다. 보고 듣기만 했는데 이 정도면 재능이 있다. 내가 없고, 신성력과 함께 마법도 쓸 수 있었다면 얘가 용사로 발탁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더.”

“더?”

여기서 더 하는 게 가능하냐는 투였다. 가능한지 따질 게 아니라 가능해야만 하는 거였다.

3분가량이 지나자, 얼추 비슷해졌다. 막 형태로 만들어 마법처럼 쓰는 것은 나와 데드리언만 가능할 정도로 난도 높았기에 그건 가르치지 않았다. 몇 년에 걸쳐 가르친다면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지금 몇 분 만에 저걸 습득할 수는 없었다. 절대 못 한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루블리안.”

“네, 시현.”

“마력 얼마나 찼어?”

내 진의를 알아차린 듯 루블리안이 눈을 접어 웃었다.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주변을 밝히는 미소였다.

“괜찮아요.”

그러나 우습게도 그 미소와 괜찮다는 말에 심적 안정감이 들었다. 정말 하고 싶지 않은 말을 꺼내야만 했다. 위험한 곳에 그를 보내는 게 죽기보다 싫었지만, 해야만 했다.

“부탁할게. 이리형이랑 가고, 박시찬이랑 김민식 좀 여기로 이동시켜줘.”

“네.”

“나도 얼른 갈 테니까, 제발 죽지 마. 알겠지?”

“……당연하죠. 당신이 살아있는데 내가 어떻게 죽어.”

내 말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달게 웃은 루블리안이 잡은 손을 놓기 전에 신성력으로 상처를 치유했다. 이내 부드러운 손이 빠져나간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이리형에게 고개를 돌렸다. 자체로 빛을 발하는 미소가 어딘가 싸하게 변모했다. 이리형은 이름이 루블리안이냐는, 이 전시에는 다소 태평한 물음을 던지며 끌려가듯 비명과 큰 소리가 울리는 곳으로 사라졌다.

[시현…….]

‘왜.’

루블리안이 그 둘을 이리로 보내는 동안 머리를 굴릴 생각이었던 나는 단조롭게 물었다. 그러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느낀 건지 답지 않게 신이 우물쭈물했다. 짜증이 났다.

‘빨리 말해. 생각하기도 바쁘니까.’

[기분 상했어요? 그래도 싸우게 하지 않으면 결국 다 죽으니까 어쩔 수 없이 그런 거예요……. 마신이랑 저희 주신이랑 여러 문제가 있어서 신계가 좀 규율에 엄격하긴 해요. 신들의 일인데 인간들을 끼어들게 하고 당장 해결하지 못해 미안해요.]

신의 사과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본래 마력과 신성력이 있는 세계에 갔다면 생겼을 잠재된 능력을 일깨워준 건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럴지언정 차라리 도망치라고 하지, 싸우라고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건 죽음을 앞당긴 거였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저기다 대고 따져봤자 달라질 게 없었다. 지금 가장 답답한 건 신일 터였다. 게다가 우리끼리 이럴 때가 아니기도 했다.

‘알겠어. 지금 당신 목숨이 간당간당해?’

[네? 어, 완전 직접적으로 개입하면 당장 소멸하고, 약하게 한두 번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겨우 목숨이 붙어있는 꼴이긴 하겠지만요.]

‘루블리안의 마력이랑 내 마력하고 신성력. 완전히 차오르게 해 줄 수 있어?’

[네. 그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아요. 대신 이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어. 해줘.’

루블리안이 가장 중요했다. 마신이 현재 가장 위협되는 루블리안을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게다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느 세계에서든 내 옆자리를 차지해서 잊고 있었지만, 그는 이 세계의 인물이 아니었다. 적어도 마법에는 당하지 않기를 바랐다.

순식간에 마력과 신성력이 차오르고, 내 눈 앞에 놀란 낯의 박시찬과 김민식이 나타났다.

“미친! 백시현!”

멍한 김민식보다 빠르게 정신을 차린 박시찬이 앉아있던 나를 확 끌어안았다. 목소리에는 안도감이 가득했다. 내가 안 보여서 걱정했던 것 같은데,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모르겠다.

“야, 놔.”

어깨에 둘린 팔을 풀자, 박시찬의 표정이 어이없다는 듯이 바뀐다.

“아니, 재회의 감격을 느끼지도 못하게 하네.”

“와, 시발. 살아있었냐? 살아있었으면 얼굴을 비춰야지, 이 미친 새끼야!”

이제야 반응하며 내 뒤통수를 때리려는 팔을 막고, 나는 본론을 꺼냈다. 조금이라도 살 확률을 높여놓고 얼른 루블리안이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너희 능력 뭐야.”

“어? 나 마력.”

“나도 마력인데?”

세 명 모두 정령사의 자질이 없어 다행이었다. 이렇게 무너지고 황폐한 곳에서, 애초에 정령은 존재하지도 않는 세상에서 정령사의 자질을 하고 있었다면 이미 죽었다. 무쓸모였다, 그건.

“빨리 머리 굴려서 외워.”

허공에 가는 실 같은 마력으로 방어 마법진 하나와 공격 마법진 하나를 그려냈다. 마법진을 본 둘은 아까 날카롭게 뽑은 신성력을 보던 이리형의 얼굴과 똑같아졌다. 그래도 둘은 다그치기 전에 놓았던 넋을 되찾았다. 이내 왜 얘가 이딴 걸 알지? 하는 의문이 가득 찬 낯을 했다. 묻지 않는 걸 보니 우선 외우려나 했는데―.

“너, 너…… 힘숨찐이었어?” 저딴 소리나 하고 있다.

시발, 진짜 얘네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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