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라이의 집착을 얕봤다 (46)화 (46/112)

046. 루블리안과 과거 평행 세계 (6)

“야, 린네!”

“아, 실수.”

직속 마법사의 외침에 기사는 전혀 실수로 보이지 않는 얼굴로 트레이를 끌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시녀인 척하고 있는 기사이니, 문에 기대고 있단 사실쯤이야 쉽게 알아차렸을 거다. 알면서 저런 걸 보니, 꽤 친근한 사이인 듯했다.

멋쩍은 얼굴을 흉내 내며, 테이블 위에 놓이는 음식을 바라보다 식기를 들었다. 허락 없이 침입한 사람답게 직속 마법사는 한마디 언질 없이 반대편 의자를 끌어내 앉았다. 턱을 괴고 나를 빤히 노려보는데, 그다지 신경은 쓰이지 않았다. 그때, 그가 휙 기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넌 안 나가냐?”

“…….”

“아오, 저게 또, 또 무시하네.”

왼쪽 눈가를 찡그리며 직속 마법사가 투덜거렸다. 이 밥만 먹고 방 안에서 알아낸 것을 기반으로 마법진을 그릴 생각이었는데, 이쪽이 쉽게 나갈 것 같지 않다.

“너 시간 많지.”

“저요?”

포크를 든 상태로 내 가슴께를 가리켰다. 알리를 떠올리며 놀란 척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 너.”

“아니요……? 저 바쁜데요?”

“허? 하는 것도 없잖아!”

“오늘부터 방에서 연구 시작할 거예요. 어제 날이 다 새도록 책도 읽고, 계속 고심해서 오늘 꼭 해봐야 하거든요.”

단호하게 말을 받아내자, 직속 마법사가 침음을 흘렸다. 기필코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 포크를 뒤집어 접시에 걸치고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시야가 온통 어두웠다가, 색채가 가득해지길 반복한다. 나는 의아하다는 목소리를 꾸며냈다.

“저한테 할 말이라도 있으세요?”

“있으니까 시간 많냐고 물어본 거 아니야!”

“아아. 마탑에서는 보통 시간이 많냐는 게, 연구할 게 적냐는 말로 통하거든요.”

사실인지 그 여부에 대해서는 모른다. 대충 그렇지 않을까, 하고 말하는 거다. 마탑의 마법사는 연구에 목숨을 거는 작자들이니, 시간이 많냐고 물으면 저 뜻으로 알아먹지 않을까.

마법사는 보통 마탑의 마법사와 개인 마법사로 나뉘는데, 이 차이가 극명하다.

마탑의 마법사는 대체로 비정상이고, 개인 마법사는 상대적으로 정상처럼 보인다. 두 마법사를 다 만난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간극이다.

방금까지 본 마탑의 마법사와 비교하면 직속 마법사는 제정신이다. 그러니 마탑에 가본 적이 없을 거고, 이게 거짓인지 진실인지 그 사실을 모를 테니 딱히 상관은 없었다.

“그렇게 알아듣는다고? 옛날부터 생각한 거지만, 거기 진짜 이상해. 마탑 출신 마법사들, 진짜 이상하더라.”

역시나 마탑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어투였다.

“그런가요?”

마탑에 몇 년이나 박혀 있단 설정이기에, 그냥 그 한마디 대꾸로 대화를 넘겼다. 계속해서 나를 응시하는 그를 내버려 두고, 식사를 마저 했다. 한 입, 두 입, 세 입. 손을 움직일수록 접시는 하얀 바닥을 보였다.

“야, 린네. 얘 다 먹었다.”

“…….”

“네가 그렇게 야려 봐도 안 무섭거든?”

기사는 차마 현재 신분인 시녀로 주먹을 내지를 수는 없었는지, 핏줄이 불거질 정도로 꽉 손을 쥐고 있기만 했다. 그걸 모르는지 직속 마법사는 계속해서 깐족거렸다.

테이블 앞까지 다가온 기사가 접시를 치우며, 직속 마법사의 발을 콱 짓밟는 것이 느껴졌다. 직속 마법사가 “악!”하고 소리를 내질렀지만, 나는 마법진 생각에 집중하느라 못 들은 척을 했다. 일일이 연기하기가 귀찮았다.

“이만 가볼게요. 필요한 게 있다면 줄을 당겨 불러주세요. 너는 따라 나와.”

앞서 말했던 아무런 감정이 깃들지 않은 목소리와 다르게 작게 중얼거리듯 뱉은 따라 나오라는 음성은 스산했다. 살기가 담겨 있었다.

얼마나 평화로운 삶을 살아온 건지, 직속 마법사는 살기를 못 느낀 듯 한쪽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고 있었다. 비열한 낯으로 부정의 말만을 할 뿐이었다.

“안 가세요?”

“어. 할 말 있다니까?”

“아, 네. 그럼 빨리 끝내주세요. 저 연구할 때 누가 있는 거 싫어해요.”

“나라고 너랑 오래 있고 싶은 줄 알아? 나도 할 말만 하고 갈 거야!”

씩씩거리던 직속 마법사는 기사가 트레이를 끌고 방을 나가자마자, 닫았던 입을 열었다.

“너 왜 계속 마법 쓰고 다녀? 뭔 마법인지는 모르겠는데 비자연적인 마력이 왜 주위에 그렇게나 뭉쳐있는 거야.”

귀찮게 됐다. 마법사라 당연히 마력의 흐름을 읽을 줄은 알았다. 그러나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보러 올 줄은 몰랐다. 차라리 공작에게 말을 전했다면, 적당히 의심만 받는 선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마법진을 연구하면 됐는데.

답을 내려주기 전까지는 꼼짝도 하지 않을 기세다. 거기다 녹음구까지 가져와 틀어놨다. 용사 시절 당한 것들 때문에 미세한 마력에도 예민한 터라 모를 수가 없었다. 나는 테이블 위에 올라온 직속 마법사의 손등에 손을 얹고는 빼내기 전에 신성력을 움직였다.

“잘못 본 게 아닐까요?”

“뭐?”

이어 희대의 헛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의 직속 마법사의 머릿속을 아주 가느다란 실타래처럼 뽑은 신성력으로 조금씩 휘저어 잠시 정신을 빼앗았다. 동시에 그 틈을 타 방 전체에 환상 마법을 걸었다. 비자연적인 마력이 자연적인 마력처럼 느껴지도록.

“가끔 착각하시는 분이 계세요. 비자연적인 마력과 자연적인 마력의 흐름이 비슷해지는 때가 있거든요. 다시 한번 흐름을 읽어보실래요?”

“어, 어……?”

당황한 직속 마법사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얼마나 재빠르게 고개를 돌리는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날 정도다.

“너, 지금 안 쓰고 있는 거 아니야?”

“굳이 제가 그래야 할 이유가 있나요? 직속 마법사님은 제가 계속해서 마법을 쓴다고 하셨잖아요. 그랬다면 이렇게 갑자기 그만둘 수 있을까요?”

가늘게 뜬 눈을 마주하며 순박한 낯을 무심한 낯 위로 덮었다. 나는 진실만을 말하는 느낌을 주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내었다.

“공작님께서 절 은인으로 대우해주신다고 했는데, 이렇게 의심하셔도 되는 건가요? 전 아무런 마법도 사용하지 않았어요.”

공작은 직접적으로 의심한다는 티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직속 마법사는 이런 짓을 해본 적이 없는 건지, 널 의심하고 있다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공작이 은인으로 치하한 사람을 의심하고 몰아붙이다니. 공작의 뜻을 어기는 거나 다름없었다. 거기까지는 머리가 돌아가는지 직속 마법사가 한 박자 늦게 입을 뗐다.

“……그건,”

“이제 일 다 끝나셨으면, 나가주세요. 아까 말했듯 얼른 연구를 시작해야 하거든요.”

말을 자른 나는 직속 마법사를 밖으로 내보내는 동시에 모습을 바꾸는 환각 마법 위로 중첩했던 환각 마법을 없앴다. 매끄럽게 닫히는 문틈 새로 당혹스러운 눈빛이 나를 좇았으나, 이내 틈 없이 문이 닫혔다.

나는 침대로 가 앉으며 생각했다. 진짜 빨리 끝내고 여길 떠나야겠다. 용사가 되고 시간이 꽤 지났을 무렵에는 연기를 할 일이 없었다. 마왕성을 향하는 도중의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잠입하기보다는 본격적으로 마물과 마왕을 토벌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하필이면 평소와 정반대인 연기를 하니까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이내 나는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을 떨쳐 버리고 주제를 바꿨다. 최대한 빨리 완성해야 할 차원 이동 마법진으로. 허공에 가는 물줄기처럼 마력을 뽑아내며, 시간과 공간이 관련된 마법진을 그려냈다.

차원 이동이라는 건 세계와 세계를 넘는 것이다. 그것을 마법으로 이루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는 시간, 공간, 이동. 이 세 가지이다.

그리고 세계를 넘는 건 아니지만, 순간 이동은 좌표를 지정하여 공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마법이고, 잠시간 물체를 멈추는 마법 같은 경우에는 시간을 조정하는 마법이다. 그러한 시간과 공간에 관련된 마법진들을 분해하고 조합하다 보면 답이 나올 테다. 시간이 좀 들긴 하겠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애초에 새로운 마법진을 만드는 건 직접 여러 시도를 해봐야 가능했다.

수십 개의 마법진을 허공에 띄워둔 채로, 하나씩 분리하기 시작했다. 여러 수식과 고대 언어들이 혼란스럽게 허공을 채웠다. 순간 이동 마법진 같은 경우에도 꼭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주로 쓰는 수식과 고대 언어를 대체할 수 있는 수식과 고대 언어가 상당했다. 해서 공간 마법으로 분류된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수식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점심, 저녁을 마다하고 날이 새도록 마법진을 만드는 것에 열중했다. 시간과 공간은 오로지 신의 권한이었다. 작은 범위는 신이 허락했을지라도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걸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성공시키려다 보니 정신이 점점 나가는 것 같았다. 저 수식이 이 수식 같고, 이 수식이 저 수식 같아 보여 큰일이었다.

끝내 좌표를 새겨넣어야 할 부분을 제외한 60여 개의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도대체 세계를 기준으로는 좌표를 어떻게 나타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용사일 때 관심을 가져보는 건데. 이틀째 밤을 새우니 머리가 아팠다.

‘신.’

혹시나 들을까 하여 불러봤지만, 답이 없다. 고민하던 나는 좌표를 넣어야 하는 부분에 세밀히 사람의 조건을 넣어보기로 했다. 순간 이동 같은 경우에도 좌표가 아닌 대상을 상기하여 마법진에 좌표 부분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게 가능하다. 물론 세밀하지 않고, 포괄적인 터라 엉뚱한 곳으로 이동될 확률이 크긴 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집중하여 루블리안을 만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그려 넣었다. 내 세계로 가지 못한다면, 정확한 이동이 가능한 루블리안을 만나면 된다.

그렇게 나는 다음 날 아침, 점심을 거르며 60여 개의 마법진을 내 몸에 실험했다. 팔이 날아가거나, 자칫 위험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신성력으로 다 회복했다. 실패하면 이유를 찾으며 나머지를 보완했다. 마지막 하나의 마법진만 남아 실행하려는 때, 다른 세계로 넘어와 배로 강해졌던 힘이 약해짐과 동시에 스멀스멀 다가오는 다른 이의 마력이 느껴졌다.

불안한 느낌이다. 경계하며 뒤로 물러나는데 툭. 등 뒤로 무언가가 닿고, 이내 은근한 목소리가 속살거린다.

“또 보네, 자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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