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 루블리안과 과거 평행 세계 (1)
아이의 얼굴을 드러나게 하지 말아달라 부탁한 이유가 납치했기 때문이었나. 그렇다면 자동적으로 숲에서 한 이야기는 거짓이란 결론이 난다. 보기 좋게 속았다.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나는 발을 한번 구르는 것으로 순간 이동을 하려는 스칼레인의 마력을 파훼했다. 이어 안고 있는 아이와 그의 얼굴을 제외한 몸을 굳게 만들었다. 섬세하고 정밀한 시전이었기에, 그의 얼굴에 절망이 어리는 게 보였다.
충격의 연속에 이제야 주변을 둘러보니, 지금 있는 곳이 벨리텐트 공작가라는 걸 알겠다. 공작가 문양이 벽에 딱 새겨져 있는데, 모르면 그건 지능이 낮은 거다. 방 전체에 걸린 방음 마법과 문에 걸린 잠금 마법을 확인하고 더 둘러보려는 찰나, 고성이 귀를 타격한다.
“이거 풀어라! 얼른 풀지 못하나!!”
“스칼레인. 닥쳐 봐, 좀.”
그가 다시 소리 지르려는 듯 입을 열길래 나는 스칼레인의 목소리를 앗아갔다. 입만 뻐끔거리는 그를 방치하고 생각을 정리했다.
신이 날 왜 여기로 보낸 건지 모르겠으나, 스칼레인이 루블리안으로 추정되는 갓난아기를 납치하는 걸 보니 여기는 어린 루블리안을 만났을 때보다 더 과거인 듯했다. 조금 헷갈리는 건, 여기서 납치를 막으면 원래 있던 미래가 틀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거다. 내가 납치를 막는다면, 루블리안은 벨리텐트 공작가에서 질 좋은 교육을 받고 자라, 공작이 될 테니까.
그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어느 순간 번개 치듯 진실을 깨달았다. 원인과 결과를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어 입술 사이로 허탈한 숨이 흘러나왔다.
나였다. 루블리안과 평행 세계 루블리안의 삶이 왜 이리 다른 건가 했더니, 그 까닭이 나였다.
여긴 평행 세계였다. 내가 납치를 하는 스칼레인에게서 평행 세계 루블리안을 구한 거고. 그래서 평행 세계 루블리안은 벨리텐트 공작가에서 자라 공작이 될 수 있던 거였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온통 숲으로 가득할 루블리안과 다르게. 그렇게 하면 의아했던 게 해결된다. 납치로 인해 인생의 궤도가 틀어질 요소를 제거하니 미래도 변하는 게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복잡한 심경에 머리를 쓸어 올렸다. 내가 평행 세계 루블리안을 구했다니. 그래서 그렇게 평행 세계와 흐름이 달랐던 거라니. 이 모든 일의 원인이 나라는 걸 안 기분은 참 묘했다.
걸음을 옮겨 스칼레인에게 다가갔다. 목소리를 빼앗았는데도 얼굴 근육이며, 눈이며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탓에 시끄럽다는 감상이 들었다.
나는 아이를 굳은 그의 팔에서 빼낸 후 안아 들었다. 이어 침이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거리를 벌리고는 목소리를 다시 선물했다.
“아이를 내놔!”
예상대로 큰 소리가 되돌아온다. 고막이 고통을 호소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스칼레인. 왜 아이를 납치하려고 했지?”
“같은 마법사로서 그걸 이해하지 못하나? 이 아이가 태어나던 날, 미친 듯한 마력 파동이 대륙에 퍼졌지. 다름 아닌 이 아이가 전례 없이 뛰어난 마법사의 재능을 가졌기에! 아이의 거대한 마력을 보고도 모르겠나? 얘는 공작이 아니라 마법사로 자라야 해!”
스칼레인은 자신의 행동이 옳다 여기는지, 묻는 말에 순순히 답을 내놓았다. 한마디로 공작이 아닌 마법사로 키우기 위해 납치했다는 거였다. 응당 그래야 한다는 얼굴로 짐승 울음소리를 내는 스칼레인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윽! 이게 무슨 짓이더냐!”
“네가 왜 그걸 정해, 시발…….”
평소에는 하지 않던 욕이 나직이 흘러나왔다. 욕을 내뱉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본인 미래면 말을 안 하지. 그런데 왜 남의 집 애를 납치해서까지 미래를 제멋대로 결정하지?
루블리안이 마탑주를 하기 싫었으면 때려치울 놈이란 걸 알았다. 그런데도 하고 있다는 건 꽤 마음에 들었다는 거였으나, 치솟은 열은 잠잠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평행 세계 루블리안은 공작이 된 걸 알아서 더욱 그랬다. 벨리텐트 공작가에서 계속 자랐다면, 더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을 테고. 원한다면 다른 직업도 가능했으리란 게 실감이 나서였다.
루블리안 고유 세계의 과거에서 스칼레인에게 스승 대우를 해준 게 화가 난다. 그냥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납치해서 여덟, 아홉 살이 되도록 숲에서 안 내보내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루블리안이 이딴 이유로 구속되며 살아왔단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열이 올랐다.
이래서 마법사들이 문제였다. 사회 생활력은 제로에, 순 자기 멋대로 생각을 하고 판결을 내린다.
분노한 내가 서늘하게 내려보기만 하자, 스칼레인은 석고 마법을 풀려고 아등바등했다. 그 꼴이 같잖아 머리에 손을 대고 정신계 마법을 걸었다. 마법이 시전되자 아픔을 호소하며 비명을 지르는 탓에 다시 목소리를 앗아갔다.
알아서 고통받는 납치범 새끼를 내팽개치고, 평행 세계 루블리안으로 추측되는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아이는 비명을 듣고도 울지 않았다. 멍하게 눈을 깜빡이며 나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순하다고 해야 할지, 아이답지 않다고 해야 할지. 조용한 쪽이 더 편해서 상관없긴 했다.
죽일까.
광기 없는 멍한 푸른 눈동자를 응시하며 고민했다. 이 작은 생명의 불씨를 꺼트리는 건 쉬웠다. 당장 저 다 큰 머저리 새끼도 죽일 수 있는데. 못 할 리가 없다.
이대로 평행 세계 루블리안을 죽여 버리면 미래가 모조리 바뀔 테다. 그로 인해 루블리안이 다치는 일도 사라질 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하는 건, 내게 인간성이 남아있으며 암살이 판치는 루블리안 세계가 아닌 내 고유 세계에서 살아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내게 안긴 갓난아기인 평행 세계 루블리안은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 그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일 뿐이었다.
어떻게 할지 선택해야만 했으나, 결정이 잘 나지 않았다. 죽이는 게 맞는가 싶다가도, 그저 맹한 푸른 눈동자를 보니 이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가 힘을 풀었다. 이 선택을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마음을 정한 이상 그대로 가기로 했다.
나는 납치범한테 건 석고 마법을 풀어내고, 침을 흘리며 고통을 호소하는 그를 마법으로 묶었다. 이어 환각 마법을 덧씌워 외향을 바꾼 뒤, 내 머리가 산발적으로 헝클어지고, 뺨에는 붉은 기가 감돌아 보이는 둥 싸워서 고전한 흔적을 만들어냈다. 여기서 나는 아무런 신분이 없으나, 저쪽은 마탑주였다. 마탑주는 그 세대에 가장 마법이 뛰어난 사람이 올라가기에, 쉽게 제압하면 오히려 수상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이야기까지 꾸며내어 준비를 다 마친 나는 방에 걸려 있던 방음 마법과 잠금 마법을 강제로 풀어냈다. 이어 문을 열고 환희에 찬 척을 하며 복도로 달려나갔다. 일부러 다리에 힘이 풀린 것처럼 아이를 감싼 채 쿵 소리를 내며 넘어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죄송, 죄송합니다……. 마탑주님께서, 도련님을, 납치하려고 했습니다.”
일부러 호흡이 달리는 것처럼 숨을 여러 번 들이마시며 천천히 말했다. 그러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나는 누가 봐도 루블리안의 부모인 사람들을 향해 팔을 쫙 펴 아이를 내밀었다.
“면목이, 없습니다…….”
“마탑주? 그대는 누구길래, 우리 애를 구했지?”
묵직했던 손이 가벼워졌다. 아이를 데려간 듯했다. 나는 묻는 말에 두려움에 젖어 덜덜 떠는 척을 하며 대답했다.
“저는 마탑의 마법사입니다. 오늘 밤, 아이를 납치한다는 말을 들어버려서…… 제가,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을 잃은 터라, 부모도 있는 아이를 납치하는 건 안 된다 싶어서, 어릴 적 제가 생각이 나서 탑주님을 따라와 말리게 되었습니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자연스럽게 있어도 없는 취급하던 부모를 죽은 사람으로 만들며 꾸며냈던 설정을 줄줄이 토해냈다. 아쉽게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것까지는 무리였다.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어깨가 잡힌다.
“고개를 들어라.”
“아닙,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그대의 잘못이 아니네, 그대는 오히려 우리의 아이를 구해 주었지. 그러니 고개를 들어줬으면 하네.”
낮은 음이 끝을 맺자, 나는 느릿하게 고개를 올렸다. 저들의 눈에는 머뭇거림처럼 보였을 테다.
용사로 동료들과 어딘가에 잠입할 때마다, 연기를 한 덕에 달달 떨며 비는 게 쉬웠다. 어릴 적, 부모의 싸늘한 눈초리에 잘못한 게 없으면서 몇 번 잘못했다며 빈 경험 덕도 있었다.
“한데 마탑 내에서 마탑주의 권한은 절대적이라던데, 목숨을 바쳐 마탑주를 등져 버렸으니 갈 곳은 있나?”
루블리안과는 다른 에메랄드빛 눈동자에서 의심을 읽어내릴 수 있었다. 곁에 두고 감시하려는 듯했다. 하긴 일개 마법사가 마탑주를 막았다는 설정부터 말이 안 되긴 한다. 그래서 다른 설정도 하나 만들어 놨지만.
“없습니다…….”
“아이를 구해 준 은인이니, 갈 곳이 없다면 여기에 머무르는 건 어떠한가. 우리 벨리텐트는 은혜를 잊지 않아. 원수도 잊지 않지만.”
느긋한 말은 경고가 담겨 있었다. 만일 네가 아이를 죽이는데 협조했다면, 살아서는 못 나간다는. 나는 그 말을 못 알아들은 척 순진한 낯을 꾸며낸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제가 은인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이어 죄책감에 못 이기는 척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전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저를 마탑에 데려다주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께서 주신 마력 결정석이 있었는데. 딱 한 번, 위급 상황에서 그걸 부수면 제게 와 주신다고 해서…….”
“이번에 부쉈다?”
“네. 이름조차 가르쳐주시지 않았던 분이라, 걱정했는데 약속을 지키러 와 주셨습니다. 마탑주님을 제압하신 후 곧바로 텔레포트 마법으로 날아가셨어요.”
루블리안의 아버지 되는 사람이 턱을 매만지며, 진실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사실을 모른다는 양 평행 세계 루블리안으로 추측되는 갓난아기를 보며 안심했다는 듯이 웃었다. 웃는 건 잘 못 해서 어색하진 않았을지가 문제였다.
“그 이름 모를 사람을 부른 건 그대가 아닌가. 은인이 아니라고 할 수야 없지. 오래도록 있다 가게. 베이, 안내해.”
……아. 저 집사, 평행 세계에서 본 사람이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연신 감사하다고 말하고 집사, 베이가 안내하는 대로 이동했다.
“저 줄을 당기면 시녀가 올 테니, 필요한 게 있다면 당기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그럼 푹 쉬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문이 닫혔다. 나는 푹신한 침대에 누우며 생각했다.
역시 평행 세계 루블리안을 죽이지 않는 게 옳았다. 은인이 되니, 평행 세계에서 머무를 곳도 생기고, 이 저택의 서재로 들락날락할 수 있을 테다. 집에 돌아갈 방법을 찾기만 하면 됐다.
내 신원이 나오지 않아 의심은 쉽사리 거두어지진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