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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의 집착을 얕봤다 (6)화 (6/112)

006. 루블리안과 원래 세계 (1)

수업 시간 내내 느껴지던 강렬한 시선에 대화를 한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라면 그냥 놔뒀을 터였다. 그래, 시선의 주인이 지나치게 루블리안을 닮지 않았다면 무시했으리라.

따라오라는 말을 건네자, 예상대로 이현은 고분고분하게 내 말을 들었다. 그런 모습에서 내가 부르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치대고, 딴 데로 가라고 하면 절대 가지 않는 루블리안이 또 떠올랐다.

……이 정도면 병인데. 이현에게서 루블리안을 찾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이번 대화로 확실하게 끊어내고, 루블리안과 이현을 따로 구분하는 게 맞았다.

둘을 동일시하는 건, 어느 쪽에게든 실례였다.

그리 생각하며 앞서가던 나는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에서 걸음을 멈췄다. 도착한 곳은 반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바로 옆에 옥상 문이 있는 가장 끝쪽 계단의 맨 위층이었다.

뒤를 돌자, 눈을 둥글게 휜 루블리안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눈에 비친 이는 이현이 아니라… 루블리안이었다. 교복이 아닌 마지막 전투 때의 옷을 입고 있는.

“루블리안?”

너무나 똑같은 모습에 나도 모르게 나온 물음이었다. 잠시간 멍해진 나와 달리 이현은 오히려 웃는 낯 그대로 손을 뻗어 내 허리에 팔을 감았다. 그리고 머리를 내 어깨에 문댔다.

“으응. 나 불렀어?”

이어지는 음성은 긍정을 담고 있었다.

“너, 너 지금 뭐라고…….”

“오랜만이라고, 시현.”

루블리안의 옷이 다시 교복으로 돌아왔다. 환각 마법이었다. 내가 불러낸 걸 보고 그냥 정체를 알리려고 작정을 한 거였다.

“하… 미쳤어, 너?”

“시현한테 미치긴 했지.”

요사스럽게 눈을 접으며 하는 말에 일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래. 이런 놈이 세상에 둘일 리가 없다. 둘이면 그 세상은 아마 파멸되고도 남을 터다.

“……헛소리하지 말고. 반말도 하지 마.”

루블리안 세계의 나이로 따지면 루블리안이 나보다 한 살 어렸다. 여태까지는 동갑인 ‘이현’으로 알고 있었다지만, 루블리안인 걸 들킨 이상 그는 연하였다.

“역시 존댓말이 더 당신 취향인가?”

“…뭐?”

“으응? 옛날부터 반말은 안 된다고 하더니, 존댓말이 반말보다 더 좋은 거 아니에요?”

루블리안이 멈췄던 고개를 다시 움직였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내 목을 간지럽혔다. 그러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거리를 두기 위해 여태껏 존댓말을 고집했고, 정체를 들킨 루블리안에게 원래처럼 그러라고 했다가 들은 딴소리에 원래 주제가 방향을 잃었다.

일부러 말을 돌린 게 분명했다. 나는 정신을 다잡았다.

“개소리하지 말고. 네가 여긴 어떻게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얼른 돌아가.”

“왜 그런 소리를 해요.”

루블리안이 서운하다는 듯 투정을 부렸지만, 나는 단호하게 내 어깨에 기댄 루블리안의 머리와 허리에 감긴 팔을 떼어 냈다. 코를 맴돌던 포근한 향이 멀어졌다.

“분명 마왕도 잡았으니 당신을 따라다니면서 청혼한다고 했는데.”

“……하.”

이렇게 될 걸 예상하고 했던 말이라는 건가, 지금? 원래 세계로 돌아갈 예정이라는 사실을 입에 담은 적이 없었다. 혼자 유추한 후 준비까지 했다고 고하는 루블리안에 머리가 어질하면서도, 기분이 들떴다.

돌려보내야 하는데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는 양가감정이 피어올랐다. 돌려보내는 게 옳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나도, 쟤도 정상이 아니다.

“지금 그게 문제야?”

“당연하죠. 리안, 아니 시현. 제겐 당신만큼 중요한 게 없어요.”

고개를 모로 기울인 채 이어지는 음성은 가히 파괴적이었다. 연신 허탈한 숨을 내뱉는 나를 보며 루블리안이 웃었다. 봉긋 솟은 애교살이 괘씸하기 그지없다.

“루블리안. 너 다른 세계로 오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으응. 알죠.”

“그런데 세계를 넘었다고…….”

화를 꾹꾹 눌러 담은 차가운 목소리가 나왔다. 이러다간 정리되지 않은 단어들이 모여 가시 돋은 문장을 만들어버릴 것 같았다. 이런 내 속도 모르고 루블리안은 검지로 내 미간을 살살 문질렀다. 이어 손이 미끄러져 내려와 내 귀를 만지작거렸다.

“대신 시현과 여기 있을 방안을 생각했어요. 당신이랑 같이 있을 생각을 하니까 돌아갈 방안은 떠올리기도 싫던데.”

원래도 그딴 건 연구할 생각도 없었지만.

중얼거리듯 덧붙인 말이 들렸다. 나긋한 목소리는 진실만을 담고 있었다. 내가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하는 동안 루블리안의 손이 귀에서 목으로 내려갔다.

갑작스럽게 닿는 찬기에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쫙 끼쳐 올랐다. 나는 얼른 손을 내치고 물었다.

“네가 생각한 방법이란 건 뭔데.”

“이제 저 가라고 안 할 거예요?”

“아니, 우선 들어만 보게.”

듣고 아니다 싶으면 다시 보낼 생각이었다. 나는 루블리안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었다. 그가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죽어도 싫었다.

“좋아요. 우선 제 욕망의 대상은 시현이에요.”

“…….”

욕망의 대상이 나라는 건 예상하였기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이 세계에서 산 19년 동안, 가족에게 인정받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온갖 노력을 다 했다. 그 노력의 주를 차지하는 건 눈치 보기였기에 감정 읽기 하나는 도가 텄다.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인간은 해소하지 못한 욕망에 삼켜져 사람의 모습을 벗어나 마왕이 되어버리죠.”

‘마왕’은 잠재된 힘이 다른 세계로 와 개방되고 욕망에 삼켜져 인간의 모습을 버린 이에게 ‘사람’이 붙인 이름이었다.

“어.”

“그렇다면 저는 시현이 절 감당해주기만 하면 된다는 거죠. 그냥 평소처럼 안아주고 뽀뽀해주면 돼요.”

‘쉽죠?’라는 눈으로 루블리안이 웃었다. 쉽기는 무슨. 애초에 평소에 안아주고 뽀뽀해준 기억이 없었다. 내치고 떨어뜨린 기억은 있어도.

게다가 내가 그의 욕망의 대상이 확실한지 알 길이 없다. 욕망의 대상이 맞는다고 하더라도 욕망의 범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더불어 몇 배로 세진 힘도 남아있었다.

이런 내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건지 루블리안이 나를 꼭 끌어안곤 이어 말했다.

“제 욕망 시현 맞아요. 확신할 수 있어요.”

“그걸 어떻게 확신해.”

“왜 못 하겠어요. 시현 손가락만 봐도 빨고 깨물어 내 흔적을 남기고 싶은데.”

루블리안이 양 뺨을 산호색으로 물들이며 말했다. 내뱉은 말과 매치가 안 되는 표정이다.

“미친 새끼.”

“으응. 당신에게 미쳤다니까.”

“하아. …그걸 빼더라도 네 힘이 강해서 세계의 균형이 무너진다는 건 알고 있을 텐데.”

루블리안이 그것에 대한 방안 역시 생각했다는 듯 웃었다. 불길한 느낌이 강하게 들이닥쳤다.

“제가 시현한테 뽀뽀하면 돼요.”

루블리안이 검지로 내 입술을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내가 멍청했다. 애초에 루블리안에게 정상적인 대답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걸 잊고 있었다.

“내가 전부터 말했지. 개 같다고 해서 개소리 내라는 게 아니라고.”

“이번엔 진짜예요. 제 힘이라고 하면 마력이잖아요? 방대하고 강력한 마력.”

싸울 때마다 스태프로 두드려 팼으면서? 나도 모르게 반문할 뻔했다. 방대한 마력은 그리 쓰지 않고 매일 스태프로 때리던 장면만 기억에 수두룩하니.

“다행히도 마력은 상대에게 전달할 수도 있고요. 물론 상대와 제 마력 파장이 잘 맞아야 하는데 시현은 잘 맞잖아요.”

실제로 마력이 거의 다 고갈되어 루블리안의 마력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걸 굳이 뽀뽀로 받지 않아도 됐다.

마력을 전달하는 방법은 두 가지로 접촉과 비접촉으로 나뉜다.

비접촉은 닿지 않는 대신 오로지 주는 사람의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주다가 한 번이라도 정신이 흐트러지면 받던 사람 체내의 마력 회로가 꼬여 이상이 생길 수 있다. 혹은 마력 폭주를 하거나.

접촉은 비접촉보다 효율적이고 쉬웠다. 비접촉이 일정한 양을 흘려보낸다면, 접촉은 통째로 마력을 주고 싶은 만큼 줄 수 있었다. 손을 잡든 팔을 잡든. 어디든 닿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까 루블리안의 말은 헛소리라는 거다.

“내가 대마법사 경지에 올랐었다는 걸 네가 잘 알 텐데. 수작 적당히 부려, 루블리안.”

“아쉽네요.”

루블리안이 내 손을 잡아 얼굴을 문댔다. 애달픈 모습이 내숭임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알면서도 넘어가 줄까 싶은 나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봐도 안 돼. 얼굴 적당히 써.”

“으응? 지금은 얼굴 안 썼는데… 제가 귀여워 보였어요? 아니면 예뻐 보였나?”

곧장 루블리안이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을 종용했다. 이를 듣는 체도 하지 않던 나는 루블리안의 끈질긴 물음 탓에 결국 입을 열었다.

“……입 닫고 마력이나 옮겨.”

이렇게 된 이상, 루블리안을 설득하기 전까진 신이 오는 것을 최대한 미뤄봐야겠다. 우선, 루블리안을 살리는 게 먼저였다.

“네에. 예쁜 제가 드릴게요.”

건수를 하나 문 듯 루블리안은 싱글벙글했다. 일부러 말을 저렇게 하도록 유도한 거면서 뻔뻔하게 군다.

부드러운 입술이 잡힌 손바닥에 촉 닿는가 싶더니 살갗을 타고 마력이 전해졌다. 체내에 마력이 고이는 느낌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나저나 한 번에 줄 것이지, 루블리안은 일부러 조금씩 흘려보냈다. 수작 부리지 말라니까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입술로 하지 마. 그리고 한 번에 보내라니까.”

“너무 오랜만에 해봐서 한 번에 보내는 걸 까먹었는데 어쩌죠.”

뽀뽀하지 말라는 말을 가볍게 넘긴 루블리안이 말끝을 애교스럽게 늘렸다. 이어 더 내게 달라붙었다. 마력을 주고 있으니, 사기를 쳤다는 걸 내가 파악해도 자길 뗄 리 없다는 확신이 서린 몸짓이었다.

“……영악하긴.”

건조하게 던져진 말에도 루블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나를 감싸 안고 머리에 뺨을 비벼댔다. 나는 품 안에 갇힌 모양새로 궁금했던 거나 묻기로 했다.

마력을 아주 소량씩 주는 탓에 시간이 오래 걸릴 거란 걸 직감해버렸다.

“너 신분이랑 언어 같은 건 어떻게 된 거야?”

“아, 그거요? 이쪽 세계로 넘어온 건 시현 앞에 나타나기 전이에요. 시현에게 준 만년필, 추적 마법이 걸려 있는데….”

잠깐.

“추적 마법?”

“네에. 그거랑 시현의 반경 50m를 벗어날 수 없는 마법을 걸었어요.”

뻔뻔한 스토킹 선언은 상당히 어이가 없었다. 심지어 루블리안은 꺼릴 것 없다는 듯 당당한 얼굴이었다.

내가 왜 저 또라이한테 걸려서……. 박복한 인생에 대한 한탄의 시간이 필요했다. 매우.

“시현, 그래도 저 도청 마법은 안 걸었어요.”

“그건 당연한 거고.”

애당초 도청 마법을 걸 필요도 없었다. 화장실 가는 것까지 따라와선 강아지처럼 문 앞에서 낑낑대던 사람이 누군데.

“네에. 그런데 그게 있어서 시현의 세계를 알 수 있었던 거예요. 아니었으면 저 시현이 없는 세계에 갈 뻔했어요.”

……애초에 만년필만 없었으면 못 왔다는 거 아닌가. 습관적으로 매만지던 만년필이 떠올랐다. 순간 그걸 부숴버렸어야 했나 싶었지만, 루블리안은 한번 문 건 놓는 법이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나를 찾아왔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안 부숴서 다행이다. 어떻게든 올 거면 다쳐서 오는 것보단 멀쩡히 오는 게 낫지.

“그래서.”

성의 없이 대꾸하자, 루블리안이 비스듬히 고개를 내렸다. 어떻게 들어도 꾸며낸 게 분명한 시무룩한 음성이 귀에 닿았다.

“시현은 제가 걱정도 안 되나 봐요…. 저는 시현이 저 없는 세상에서 살면 너무너무 걱정될 것 같은데.”

가련한 분위기를 풍기는 얼굴은 얼핏 봐도 사연이 100개는 있을 법한 느낌을 줬다.

그런 루블리안에게 역으로 묻고 싶었다. 너 같으면 너 같은 놈을 걱정하겠냐고. 오히려 세계를 걱정하는 게 이로울 거란 말도 입안에 맴돌았다.

그러나 맴돌기만 했다. 밖으로 나오질 않고 돌고 돌다 목 아래로 쑥 들어갔다. 저런 얼굴에 대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는가.

“되니까 그만 좀 해.”

“정말이죠?”

“어. 얼굴 치우고.”

“왜요? 제가 또 귀여워 보였어요?”

루블리안이 샐샐 눈웃음치며 짓궂은 물음을 던졌다. 날 놀리려는 의도가 다분해 평소라면 하지 않을 법한 긍정을 내놓았다.

“맞아. 귀엽네.”

그러자 봉숭아 물이 스민 듯한 뺨의 루블리안이 평소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눈을 깜빡거렸다. 금빛 속눈썹이 팔랑이고, 찰랑이는 바닷물을 닮은 눈동자가 나타나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더 말해주세요. 저 귀여워요?”

도르륵 굴러가다 멈춘 눈동자 속에 내가 들어찼다. 기대를 품은 시선이다.

나는 살짝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더 보고 있다간 루블리안의 페이스에 휘말릴 것 같았다.

“어. 그러니까 신분은 어떻게 된 건지. 처음부터 끝까지 싹 나열해.”

초조한 마음을 감추고 최대한 영혼 없이 답했다. 흐름을 끊어내자, 루블리안은 조금 미련이 남는 듯한 얼굴을 하다, 이내 성실히 내 물음에 응했다.

“온 건 한 일주일 전이에요. 시현이 사라지고 바로 따라왔거든요.”

시작부터 놀라웠다. 나를 바로 따라왔는데 일주일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이.

“세계와 세계 간의 시간은 같지 않은 건지, 오랜만에 푹 잠든 당신을 봤고요.”

말을 잇던 루블리안의 얼굴에 아쉬움과 미련이 싹 사라졌다.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설렘과 기쁨이었다.

깍지가 끼워진 내 손등을 엄지로 살살 문지르다 이내 사르르 눈을 접어 달게 웃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것 같았다.

용사 1년 차쯤에 잠은 죽어서 자자는 마인드로 개같이 토벌했긴 했다. 그런데 자는 얼굴 하나 봤다고 저런 표정을 지을 일인가.

“그리고 당신 이름일 것 같은 문자를 보는데 도통 알 수 없어서 이쪽 나라 언어를 알아보려고 다른 사람 기억을 뒤지고,”

……뭘 해?

“19년 전 과거로 돌아가 마법으로 정신계를 조작해서 신분을 만들었어요.”

루블리안은 내가 자는 모습을 다시 곱씹은 여파인지,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날 반길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시간 마법과 정신계 조작을 입에 담으면서 산뜻하기 그지없다는 거다. 오늘은 날씨가 좋다고 말하듯.

할 말을 잃었다. 얘는 뭐가 문제지? 우선 얼굴은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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