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화 〉봄개학
기미정이 김하늘을 죽어라 마시게 한 건 그러려니 했다. 옛 친구끼리 자존심 경쟁을 하나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김하늘이 뻗자, 이번엔 신재희를 죽어라 마시게 하는 걸 보고 이상함을 느꼈다.
'느낌이 싸한데...'
하지만 나는 머릿속에서 울려퍼지는 경고를 무시했다. 어차피 장군님이 있으니까.
잘못되면 장군님의 명령 하나 따르고 구해달라고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방심한 게 문제였다.
콜라를 만 소주를 너무 생각없이 퍼마셨다. 술에 취해서 졸려웠다.
"내 어깨에 기대."
내 옆자리로 온 기미정이 내게 어깨를 빌려줬다. 나는 자면 안 될 것 같으면서도, 장군님이 있으니까. 장군님을 믿고 그냥 그녀의 어깨에 기댔다.
게다가 기미정이 선심을 지니고 어깨를 빌려주는 것일 수도 있잖아. 그 친절을 거부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재준아, 그래도 자면 안 돼."
기미정이 무릎을 내 무릎을 흔들며 날 깨웠다.
"으응... 안 자..."
기미정의 손이 무릎에서 내 허벅지로 올라온 게 느껴졌다. 나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아... 기미정, 이 년... 나 술 취하게 만들어서 따먹으려는 게 목적이었네.'
역시 이 세계의 여자다웠다.
생각해보니 기미정은 일진이었다. 그것도 일진 중에서 역대급으로 강한 편인 일진.
그런 그녀니 만큼 살면서 이 남자, 저 남자를 다 따먹어댔을 것 같았다. 특히 술마신 남학생을.
그러니... 술마시고 취한 남자인 나를 따먹지 않고 그냥 넘어갈 리가 없겠지.
'장군님?'
나는 협상을 시도하기 위해 그녀를 불렀다.
'장군님?'
그런데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아... 시발... 설마 그냥 지켜볼 작정인가.'
난 뒤늦게 깨달았다. 장군님이 절대적으로 갑이라는 걸. 나와 그녀는 대등한 관계가 절대 아니었다.
내가 불러도 그녀가 씹으면 난 어쩔 수 없었고, 내가 그녀의 힘이 필요할 때 그녀가 무리한 요구를 한다면 무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녀가 날 괴롭히기로 작정한다면, 난 그녀의 괴롭힘에서 반항할 수 없었다.
기미정이 내 허벅지 노골적으로 잡고 흔들었다.
"재준아?"
"아, 나 안 자."
나는 기미정이 알아서 멈춰줬으면 하고 바랐다.
하지만 그건 며칠 굶은 사람이, 알아서 눈앞에 있는 음식을 먹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같았다.
그녀의 손은 내 허벅지를 타고 올라오더니 결국 내 자지에 손을 댔다.
"만지지 마..."
나는 그녀의 손을 밀어내려고 했다. 그 손에 힘을 크게 주려고 해도, 취한 몸이 내 의지대로 작동을 잘 하지 않았다.
기미정의 손장난에 발기하기 시작했다.
"하지 말라니까..."
그녀의 손등을 때려 아프게해 떨어뜨리려고 했으나, 내 손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앙탈부리는 꼴이 되어버렸다.
기미정의 손이 이윽고 내 바지 속에 들어와 생자지를 잡아챘다.
"안 돼... 하지 마... 미정아, 그만해..."
더는 성연시에선 딴 여자들에게 따먹히지 말아야 하는데... 하필이면 기미정한테 따먹힐 것 같았다.
기미정이 내게 입술을 부딪치며 키스를 시도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거부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 목덜미에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윽. 이럼... 안 돼..."
'어떻게 하지...'
일단 소극적으로 거부의사를 밝히면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막 소리 질러서 재희나 하늘이를 깨워봐? 그럼... 하아, 어떤 일이 벌어지지...?'
두뇌가 알코올에 절여졌다 보니,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돌리는 게 힘들었다.
'...좆될 것 같은데... 아니, 백퍼 좆 된다. 깨우면 안 돼.'
신재희나 김하늘이나. 누가 깨어난들, 둘 다 깨어난들 만취된 상태라, 기미정한테 두둘겨 맞고 쓰러질 것 같았다.
그리고 기미정은 그렇게 쓰러진 여자 앞에서 날 강간하는 걸 생라이브로 보여주지 않을까... 그런 그림이 그려졌다.
그럼 그 이후의 발생한 일은?
'그럼 씹망이야.'
기미정이 내 자지를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제발... 하지 마..."
늘 해왔던 연약한 척 연기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왔다. 그렇게 해놓고 나 스스로도 흠칫 했다.
'그냥 일단 이어서 연기하자.'
"처음부터 이러려고 했어...?"
나는 기미정을 믿었는데 실망했다는 듯 말했다.
기미정은 내 셔츠를 들춰올리고, 내 배와 가슴을 빨아대는 것으로 대답했다.
'경찰에 신고해서 사태를 무마시켜보려는 것도... 여자들 전부를 폭주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지겠지. 하, 시발. 기미정한테 강간 당하면 안 되는데... 어쩌지.'
기미정은 내 상체가 뭐 그리 맛있는지 게걸스럽게 빨고 핥았다. 나는 술 때문에 침침해진 눈을 깜빡거리며 신재희와 김하늘을 살폈다.
신재희는 이와중에 내 무릎을 베고 잘 자는 중이고, 김하늘 역시 상자 위에서 잘 자고 있었다.
'지금 이 장면, 얘네 중 하나라도 깨버리면 좆 된다...'
신재희나 김하늘이나 이 장면을 보고 폭주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한 명이라도 폭주하면 균형이 무너지고 말 것이었다.
"저기... 딴데 가서 하면 안 될까..."
일단 자리부터 옮겨야겠다. 계획 짜는 것이든, 뭐든 하는 것은 다른 곳에서 하고 싶었다.
다행히 기미정은 내 말에 수락했다.
"부축해."
나는 옷을 정리했다. 신재희의 머리를 내 다리에서 내려놓고, 기미정을 부축하기 위해 그녀의 팔을 내 목에 감았다.
기미정을 부축하고 일어나려는데, 그녀가 팔에 힘을 줘서 날 밀어버렸다.
"큭!"
나는 아직 남아있는 안주더미 위로 넘어졌다.
'아, 이 개시발년이...'
"아니, 부축 하나도 제대로 못 해? 병신이냐?"
그녀가 넘어진 내 엉덩이를 깁스한 팔로 콕콕 찔렀다.
'시발...'
머리로는 짜증이 나는데... 몸은 오싹오싹 하면서 성적 쾌락을 느꼈다. 쿠퍼액이 흘러나오는 게 느껴졌다. 사태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빌어먹을 몸이었다.
'기미정, 시발년... 그래,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겠어. 한 번 시발년은, 영원한 시발년이지.'
장군님이 내 아군이었다면, 이 상황을 꼴린 상태로 제대로 즐겼을 텐데.
아쉬웠다.
나는 자지에선 쿠퍼액이 흐르고, 가슴에는 위액이 역류하는 걸 느꼈다.
걷는 소리에 눈동자를 굴리니 기미정이 걷는 게 보였다. 그냥 깁스한 다리로 땅을 짚고 있었다.
맨날 깁스한 다리가 아픈 것처럼 목발을 잡아야 하거나, 부축을 받아야하는 것처럼 행동하더니.
'여태까지 다리 아픈 척 한 거, 다 엄살이고 연기였네, 이 미친년... 하...'
"...어나."
기미정이 뭐라고 말했다. 딴 생각하느라 제대로 듣지 못했다. 고개를 들어올려다보니 그녀가 재차 말했다.
"일어나."
'그래, 일단 여기서 나가야지.'
신재희와 김하늘이 없는 곳으로 가야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 때문에 어질어질했다.
"가봐. '딴데'."
나보고 이동할 곳을 결정하라고 할 줄은 예상 못했다.
'뭐지? 모텔이라도 가자는 건가? 그러면 안 될 것 같은데... 재희랑 하늘이 여기 내버려두고 갔다간 얼어죽는 거 아니야?'
"안 가? 여기서 할까?"
최대한 빨리 기미정과의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와야했다.
'하아...'
"5층에 라꾸라꾸침대 있다."
허스키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관찰자로 일관하던 장군님이 사건에 끼어든 것이었다.
날 구해주려는 것이 아닌, 쓸데없는 힌트를 주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거 알려줘서 고맙네요. 시발... 경찰에 신고도 못하니... 아, 건물 밖으로 나가서 누구 한 명한테 도움을 요청해볼까...'
어, 괜찮다.
그 사람에게 구조를 받고 난 뒤에 사정사정하는 거다. 경찰에는 신고하지 말아달라고 하고...
'완벽해. 그럼 밖에 나가자고 해야...'
"기미정이 그 사람을 폭행할 생각은 안 들고? 애초에 지나가던 아무개가 기미정을 이길 수 있을 것 같니?"
'아, 그러네요. 시발...'
장군님의 지적이 옳았다. 술에 취해서 단순한 상황 예측조차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다. 일단은... 따먹혀야겠다.
'하아... 씹... 근데 이럼 좆 되는데...'
이러면 결국 앞으로 계속 기미정한테 끌려다니게 될 것 이었다. 그럼... 늦거나 빠르거나 시간 문제지, 망하는 건 확정이었다.
'기미정은... '균형'의 일원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폭주 상태'로 들어오는 거잖아...'
그러면 안 됐다.
'그렇다면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최선은... 기미정을 잘 다독여서 '폭주 상태'가 아닌 상태로... '균형'에 잘 편입시키는 거...'
"야."
"..."
옷가게를 먼저 빠져나가려는데 뒤에서 기미정이 불렀다.
부축해달라고 하려는 건가?
"이 컵에 든 거 마셔."
돌아보니 그녀의 발 옆에 종이컵 하나가 있었다.
'소주 들어있겠지... 날 더 꽐라로 만들어서 덮칠 생각인가...'
"하아..."
종이컵에는 소주가 한가득 채워져있었다.
'이거 마신다고 정신줄을 완전히 놓치진 않겠지?'
소주 1병의 1/3 정도를 단번에 원샷했다.
나는 소주의 쓴 맛과 기미정의 술자리를 안일하게 생각했던 나 자신과 장군님을 믿었던 내 자신에 화가 났다. 종이컵을 구기고 던졌다.
"시발... 하아..."
그런 뒤에 5층으로 올라갔다.
'어디로 가요.'
난 장군님에게 퉁명스럽게 물었다. 5층도 다른 층처럼 비어진 가게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성연일보. 들어가서 쭉 들어가보면, 오른쪽에 휴게실 있어. 거기에 침대가 있단다."
'나빴어...'
난 장군님한테 심한 말을 하지 못했다. 또한 속으로 생각할 때 계속 '님' 자를 붙였다.
난 장군님의 비위를 맞춰야 했다. 사실 장군님이 더 위험했다. 지금의 기미정 보다...
'짜증나네.'
스트레스에 위액이 턱밑과 귀밑까지 올라와 타들어가는 듯했다.
옛 성연일보 사무실의 휴게실로 들어왔다. 장군님이 알려준 대로 라꾸라꾸 침대가 있었다. 그것도 4개나.
"꼭 이래야겠어?"
나는 기미정에게 최후통첩을 내렸다.
내가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면, 혹시나 그녀가 마음을 접어줄까 싶어서.
"어."
그런데 역시나 아니었다.
그녀는 두 목발을 내팽개치고, 내 목을 한 손으로 조였다.
"큭...!"
"재준아. 우리 재준이, 수많은 여자들한테 사랑도 받고, 미움도 받고 그랬겠다."
"뭐...?"
"넌 모르겠지만, 넌 행동 하나하나가 주위 여자들한테 '혹시 나를 좋아하나?'라는 생각을 심어줘."
'어쩌라고...'
"걸레 같은 놈."
내 배에서 격통이 느껴졌다. 딱딱한 것에 타격당한 것이었다.
"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