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화 〉봄개학
"나는 어떻게 알았냐고?"
김하늘의 날카로운 지적에도 기미정은 태연했다.
신재희가 김하늘의 말에 의심을 갖고 기미정을 노려봤다.
기미정은 '이것들 봐라?'하는 듯한 비웃음을 머금으며, 톡방 하나를 열었다.
"처음부터 읽어봐라."
기미정은 해당 톡방의 스크롤을 가장 위로 올렸다. 오래된 메시지부터 읽을 수 있게 됐다.
김하늘과 신재희는 집중해서 쳐다봤다.
(나) [야]
(나) [아 시발 ㅋㅋㅋ 내 말 씹냐? 뒈질래?]
두 개의 톡 메시지는 겨우 1분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기미정에게 윽박지름을 당한 당사자는 0분대 차이로 답톡을 달았다.
박하나 [누구세요?;;;]
(나) [나다 씹새끼야]
김하늘은 찌푸렸다.
박하나인가 뭔가 하는 애는 기미정이 자신한테 톡한 줄 모르는 것 같은데...
저렇게 말하면 어떻게 알아.
박하나 [혹시 기미정...?]
근데 상대방은 용케 알아챘다.
(나) [ㅇㅇ]
박하나 [미정아 왜?]
(나) [너 저번에 신재준 도촬사진 공유하는 톡방 들어갔었잖아. 맞지?]
기미정의 질문 뒤로, 다음 답톡이 오기까지 텀이 1분 걸렸다.
(나) [또 말 씹네. 개잡년이. 내일 학교가서 볼래?]
박하나 [들어갔엇지... 그건 왜?]
(나) [들어가는 링크 줘봐]
박하나 [아 ㅎㅎ 너도 신재준한테 관심 생겼어?]
(나) [넌 그냥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해]
(나) [예.아니오]
(나) [주관식 질문에는 그것에 대한 대답만]
(나) [안 그럼 내일 죽인다]
박하나는 죽기 싫었는지, 딴말 없이 오픈채팅방 링크를 보내왔다.
박하나 [https://open.kokoa.com/o/[email protected]$*]
기미정은 보란 듯이 주소를 클릭했다. 그러자 아까 그 신재준의 도촬사진을 공유하는 톡방에 들어가게 됐다.
"이젠 알겠지? 내가 어떻게 저 오픈채팅방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박하나? 얘는 누구냐?"
김하늘이 물었다.
김하늘이 인맥이 넓은 편이지만, 학생들 하나하나를 전부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있어, 우리반에. 그냥 찐따 중에 한 명이야. 이 새끼한테 데이터 좀 달라니까 안 준대서, 폰 빼앗었더니 마침 도촬 공유 톡방이 켜져있더라고. 그때는 그냥 병신년이 병신짓한다고 뒤통수 한 대 때리고 넘어갔었는데... 지금은 내가 재준이랑 재희한테 잘못한 게 있잖아? 그걸 갚을 생각으로 이 톡방의 정체를 알려주려고 했지."
'이 시발년들이...'
김하늘은 옆얼굴을 간지럽히는 머리카락을, 거칠게 귀 뒤로 넘겼다.
"이건 재준이 보여주지 마라. 충격받을라."
"맞아요. 오빠 보여주지 말고, 우리끼리 해결하죠."
신재희가 김하늘의 말에 동의하자 기미정은 비릿하게 웃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이 없는 줄 아냐? 신재준까지 불러놓고는 소주만 보여줬지. 이건 원래 재희한테만 보여줄 생각이었어."
기미정이 도촬 공유 오픈채팅방에서 마우스휠을 굴렸다. 과거에 올라온 톡 메시지가 보였다.
기미정이 이 오픈채팅방에 들어온 것은 어제였기에, 곧 최상단에 막히고 말았다.
그럼에도 최근에 올라온 사진들이 열 개는 넘었으며, '신재준 따먹고 싶다', '수면 발기한 거 볼라 빨고 싶네' 등 음담패설이 사진 사이에 끼어있었다.
"우리반에서 찍은 게 많네. 어떤 시발년들이지..."
오늘 아침, 1반에서 박슬기와 안유리의 싸웠다. 그 싸움을 구경하는 신재준이 찍힌 사진도 있었다. 각도를 보니 1반에도 범인이 있었다.
그 외에는 죄다 4반에서 찍은 것들이었다.
교실에서 쉬는 시간에 핸드폰을 갖고 노는 애들이야 넘쳐났다.
하루 사이에 열 장 찍혔는데도 김하늘은 알아채지 못했다. 항상 신재준을 눈여겨봤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오로지 신재준만 쳐다보고 신재준의 주위는 살피지 않아서 느끼지 못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내일부터 잘 관찰해야겠네. 잡아내고... 어떻게 조지지...'
신재준이 익명에 숨은 애들에게 딸감이 되어있는 것을 보고 개빡쳤다.
어떻게 조져야지 마음이 후련해질까...
그때 신재준과 기미정의 아버님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거지도 제가..."
"됐어, 들어가."
신재준이 들어올 것 같자 김하늘이 얼른 도촬 공유방을 끄라고 말했다.
"야, 꺼."
기미정은 '닫기' 버튼을 눌러야했는데, 왼손으로 마우스 잡는 게 불편했는지, 커서를 잘 옮기지 못했고, 차선책으로 '최소화' 버튼을 눌러버렸다.
방으로 들어온 신재준이었다.
그는 방문을 닫고 코웃음을 쳤다.
"뭐야. 야동이라도 봤어?"
'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겨.'
김하늘은 신재준에게 황당한 오해를 사자 억울했다.
그건 기미정도 신재희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김하늘은 생각했다.
"아니, 너희들이 야동본다고 내가 혼내기라도 하겠냐? 나도 좀 같이 보자."
'...발칙하네, 우리 재준이'
나중에 신재준하고 같이 야동보며 섹스해봐야겠다.
그런데 오늘 신재준이 뭐랬지. 우리가 '친구'라고?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여자가 '하늘이'라고 말할 때까지, 자지를 쥐어짜줘야겠다. 겸사겸사 임신도 노려볼까.
'마침 소주도 있겠다. 잘 됐네.'
김하늘은 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아랫배가 쿵쿵 뛰기 시작했다.
확정된 것도 없는데 벌써부터 아기씨를 맞이할 준비를 시작한 것이었다.
신재준은 신재희를 뒤에서 끌어안고 턱을 그녀의 어깨에 올렸다.
친남매끼리의 스킨십이라 화가 나지는 않는데... 그래도 꼴보기 싫기는 했다.
"진짜 킨다?"
"뭐야? 진짜 야동 본 거였어?"
기미정이 정말로 켜냐는 듯, 도발하자 신재준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되물었다.
"역시 키지 말까?"
"아니... 키지 마라."
기미정이 당당하게 구니까, 신재준이 물러났다.
김하늘은 기미정의 대처를 칭찬하고 싶었다.
* * *
'이 사건은 원래 신재희하고만 공유하려고 했는데...'
신재준 도촬 공유방의 존재를 알려서 신재희에게 신뢰와 호감을 사려고 했었다.
'김하늘 년까지 끼어서 짜증나지만... 어차피 신재희는 김하늘하고, 걔 누구지, 키 큰 년한테 도촬꾼들 처리를 부탁하려고 했겠지. 재희는 성연중에 다니고 있는데다가, 도촬꾼들 대부분이 1학년 4반에 소속된 년들일 테니.'
기미정은 소희정을 잘 몰랐다. 소희정은 김하늘이 기미정과 절연한 이후로 새로 사귄 친구였다.
학교를 다니다가 가끔 멀리서 김하늘을 발견하면, 그 옆에 소희정이 있었기에 얼굴만 알았다.
봄개학 첫날. 신재준에게 접근하려던 자신을, 쓰러진 김하늘 대신에 소희정이 대신 막았었다. 그 모습이 인상깊었다.
'그 시발년도 재준이 노리고 있겠지... 아, 빨리 따먹어야지. 동정 빼앗길라.'
신재준은 동정일 지도 모르겠다.
방금 전에 [아니, 너희들이 야동본다고 내가 혼내기라도 하겠냐? 나도 좀 같이 보자.]라고 했지만, 결국 기미정이 보여주려고 하자 그러지 말라고 한 걸 보면은...
'아, 근데 시파. 여친 있댔지? 시발 이미, 데이트할 때마다 떡치고 있는 거 아니야?'
한창 성욕이 클 나이에 사귀는 커플이었다. 일진년놈들이 매일 같이 붙어먹는 걸 생각하면 신재준이 동정이 아닐 확률이 높아보였다.
'개열받네...'
기미정도 유니콘 기질이 있었다. 이 세상의 여자들 대부분이 기본적으로 탑재한 게 유니콘 기질이었다.
"근데 보여줄 게 있다며. 그게 야동이었던 거야?"
신재준의 물음에 기미정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김하늘을 시켜서 가방 속에 소주를 보여줬다.
처음에 술 마시는 걸 싫어하는 척 튕겼지만, 약한 척을 한 번 보이자 결국 받아들이는 신재준이었다.
"하아... 그래. 그럼 마시자. 근데 난 조금만 먹을 거다?"
'술 먹어서 제정신 아닐 때, 기정사실로 만들어야지...'
신재준은 겉으론 도도한 척 굴지만 마음이 약한 남자애였다.
신재준의 집에서 그걸 확인했다.
술의 힘을 빌리고, 조금 '여자의 눈물'을 보여주면서 억지로 밀어붙이면 한 번 즈음 따먹을 수 있을지 몰랐다.
'나도 꽤 반반하니까.'
기미정은 믿는 구석도 있었다.
그리고 따먹는데 실패한다고 해도 손해볼 것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신재준에게 자신을 신경쓰게 만들면 이득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찜질방 가야지. 흐흫... 재희 알몸 구경 좀 해보자.'
기미정은 술 마신 다음에 찜질방에 가서 노는 걸로 이끌어낼 작정이었다. 그러면 신재희와도 술을 마시고 얘기하며, 알몸도 볼 수 있는 엄청난 기회...
'하아, 시발. 괴롭히고 싶은데... 당분간 물 익을 때까지는 참아야겠지...'
김하늘이 물었다.
"근데 어디서 먹냐?"
'꼴 보기 싫은 년...'
김하늘을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감시꾼' 같았다.
'네가 신재준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지켜볼 거다'하는 감시꾼.
식사하는 내내 탐색하는 듯한 김하늘의 시선을 받았었다.
'김하늘, 어렸을 때부터 자존심 셌지. 자존심 자극해서 술 잔뜩 먹여야겠어.'
그래야 신재희와 신재준을 마음대로 갖고 있을 테니.
"그냥 이 방에서 먹게?"
"아니, 일진 애들끼리 모여서 마시는 아지트 있어."
기미정은 그 아지트를 오늘 하루종일 비워두라고, 일진회 애들에게 '명령'했다.
3학년 선배부터, 동갑인 2학년, 그 아래 학년들. 모두 자기를 두려워할 테니, 오늘은 그 아지트를 전세낼 수 있으리라.
"미정아."
신재준이 자신을 불렀다.
뭔가 부탁이 있는 듯, 예의상의 미소가 있었다.
그가 불러주는 목소리가 달콤하고, 그 미소가 사랑스러웠다.
'아... 듣고 싶다. 비명하고,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
"응?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