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화 〉봄개학
화들짝 창을 내리는 게 딱 야동이나 성인사이트 보다가 숨기는 꼴이었다.
그나저나 보기 좋네. 기미정과 신재희는 일진회에 들어갔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일반 학생으로 돌아왔다. 둘 다 김하늘과 친했었고. 이 셋이 모인 장면이 훈훈하게 느껴졌다.
"아니, 너희들이 야동본다고 내가 혼내기라도 하겠냐? 나도 좀 같이 보자."
내가 그렇게 말하며 다가가자 세 여자 모두가 움찔했다.
나는 신재희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그녀의 어깨에 턱을 올렸다.
친여동생이니까 이런 스킨십도 남들 앞에서 해도 됐다.
이번에 처음 해보는 거였지만.
신재희의 머리에선 익숙한 향기가 났다. 남매가 같이 쓰는 샴푸향이었다.
신재희의 육체에 붙었다고 자지가 좀 커지려고 하는 걸 애써 참아야했다.
신재희는 내 스킨십에 얼어붙은 듯 멈췄다. 기미정이 하나로 뭉쳐있는 나와 신재희를 빤히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진짜 킨다?"
"뭐야? 진짜 야동 본 거였어?"
"역시 키지 말까?"
"아니... 키지 마라."
기미정이 너무 당당하게 구니까, 보여달라는 내가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물러나는 걸 기미정이 노린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보여줄 게 있다며. 그게 야동이었던 거야?"
내가 어이없다는 듯 묻자 기미정은 고개를 저었다.
"보여주려던 건 저거."
기미정이 턱짓으로 방구석에 있던 가방을 가리켰다.
"김하늘, 보여줘."
"야, 내가 네 꼬봉이냐? 그래도 다쳤으니까 봐준다."
김하늘이 가방에 다가가더니 지퍼를 열어서 내게 보여줬다.
내게 안겨져있던 신재희도 가방 속을 함께 보았다.
소주였다. 1병도 아니었다. 보이는 것만 3병이었다. 밑에 더 깔려있을지도 몰랐다.
"헐."
"마실 거지? 김하늘이랑 재희는 마신대."
"난 별로..."
김하늘과 신재희의 눈이 날 빤히 쳐다봤다. 둘은 술에 취한 나를 보고 싶은 걸까. 둘의 눈동자에서 성욕이 느껴졌다.
나는 눈동자를 시선을 옮겨서 기미정의 눈을 쳐다봤다.
기미정의 눈에도 역시 성욕이 느껴졌다.
나를 꽐라로 만들어버려서, 내 몸을 따먹고 말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아...'
이런 여자들의 눈을 보는 게 너무 좋았다. 몸이 오싹오싹해졌다.
그러나 인내심을 갖고 참아야할 때였다.
사람은 술 마시면 실수하기 마련이었다.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술을 마시면 안 됐다.
"너희끼리 마셔."
기미정이 내게 뭔가 이상한 짓을 할까봐 걱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김하늘과 신재희가 옆에 있는데, 그녀가 나한테 이상한 짓을 시도할 리가 없었다.
난 차라리 김하늘과 신재희가 걱정됐다. 둘 중 하나로 술취해서 뭔가 실수라도 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여지가 컸다.
'어? 생각해보니 그럼, 얘네들 술 못 먹게 해야 하잖아.'
"아니다. 너희들도 그냥 마시지 마. 학생이 무슨 술이야."
내 말에 김하늘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저번 달에 김하늘네 집에서 정수린을 끼고 치맥 파티를 벌였던 적이 있었다. 김하늘 입장에선 이런 내가 어이없겠지.
"재준이 빠지면 나도 빠질래."
김하늘은 어이없어하면서도 불참을 선언했다.
"나도."
김하늘이 조건부 불참 선언에, 신재희도 동참했다.
"후우... 그럼 나 혼자 이거 다 마셔야겠네..."
기미정이 약한 척을 했다. 나보고 죄책감 가지라는 듯 대놓고.
'얘도 약한 척을 다 할 줄 아네...'
나는 기미정을 다시 봤다.
내가 말했다.
"넌 친구없냐? 박슬기 친구 아니야? 네 치료비도 대줬다며."
일진 친구들... 아니, 부하들 많을 것 같은데.
"박슬기, 그년 나한테 치료비 대준 거 아니야. 빌려준 거지. 그게 친구냐. 그리고 나 친구 없어. 평소 나랑 어울리는 애들도 다 나 친구라고 생각 안 할 걸."
기미정은 그렇게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김하늘이 얼척없다 듯 말했다.
"뭔 같잖은 약한 척이냐..."
김하늘과 기미정의 케미가 오래된 친구 같이 느껴졌다.
'아...'
나는 순간, 기미정은 사실 '진짜' 친구를 원하던 게 아니었을까? 맨날 센 척하며 살려고 보니까, 다른 애들과 사이가 소원해지고 제대로 된 친구를 갖지 못한 것일 지도.
그랬다가 마침 참교육도 당했겠다. 이젠 슬슬 '친구'를 갖고 싶은데, 그 '친구'로 나와 재희를 택한 거지.
저 소주를 준비한 걸 보면 그럴싸한 추측이 같았다. 나를 취하게 해서 한 번 따먹어보겠다는 게 목적이었다면, 신재희를 부르진 않았을 거였다. 나와 신재희와 친구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기미정은?
"알았다. 그냥 가라. 혼술 할란다."
기미정은 나를 더 설득하지 않았다.
"오빠, 그냥 오빠도 마시자."
그대신에 신재희가 날 설득하고 나섰다.
"왜? 내가 마셔야하는 이유를 말해봐."
신재희가 날 술 마시게 하려는 이유는 알 것 같았다. 내가 취한 모습을 한 번 보고 싶어서 저러는 거겠지.
"재준아, 소주 어떤 맛인지 안 궁금해?"
김하늘은 간접적으로 내게 술을 마시기를 종용했다.
김하늘 역시 꽐라된 나를 어떻게 하고 싶어서 저러는 거겠지.
'이 방에 있는 여자 셋 중에 그나마 기미정이 가장 바람직한 의도로 날 술 먹이려는 거... 실화냐?'
"하아... 그래. 그럼 마시자. 근데 난 조금만 먹을 거다?"
내 항복선언에 여기저기서 승리의 미소가 그려졌다.
/ / /
식사를 하면서, 김하늘은 옛 친구의 얼굴을 쳐다봤다. 신재연에게 얻어터져 얼굴이 엉망이 되어있는 기미정이었다.
신재연이 '얼차려' 받는 경험은 지옥같았다. 하지만 저렇게 심하게 폭행받은 기억은 없었다.
기미정을 제대로 짓밟은 걸 보니, 신재연이 개빡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미성년자 폭행으로 고소 당하면 회사에서 잘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리스크를 감당할만 하겠지. '가족'이니까.'
처음에는 신재연도 '일진회' 단체 모두를 상대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단체 고소라도 하면 봊되니까. 그녀가 신체적으로 강하다고 한들, 사회를 이겨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심부름센터 직원'이라는 다른 수단에 의지하려고 했던 것일 거다.
그리고 그 수단은 즉효가 있었다.
다만, 그 수단이 먹혀들지 않은 독한 년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기미정이었다.
'듣기론, 재연 언니가 기미정네 부모님한테 허락 받고 했다지... 그렇게 안전하게 갔어도, 기미정이 빡 돌아서 개인적으로 경찰에 신고하고 그랬으면 재연 언니한테 안 좋은 일을 겪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네.'
'얼차려'도 아니고, 진짜 폭행을 신재연에게 당하면... 정신 개조가 확실히 됐긴 했을 것 같았다.
지금 보여주는 기미정의 모습을 보자니 확실히 기세가 빠져있었다.
'아, 근데 이 년도 재준이 좋아하게 된 삘인데. 아까부터 재준이 쳐다보네, 샹년이.'
기미정의 맞은편에서 식사를 했기에, 그녀의 시선이 모두 보였다.
'하여간 신재준, 얘는 가만히 있어도 여자가 꼬인다니까. 열 받게.'
역시 어디 가두고 혼자만 보고 싶었다.
기미정의 아버님이 해주신 식사는 양이 많으면서, 맛도 좋았다.
신재준과 기미정의 아버님은 깨작깨작 먹었는데, 한창 성장 중인 세 여자는 모조리 먹어치웠다.
기미정이 말했다.
"다 먹었냐? 보여줄 거 있는데. 내 방으로 가자."
"뭔데? 뭔가 자랑하고 싶은 얼굴인데?"
기미정의 얼굴은 시큰둥한 얼굴이었지만, 미묘하게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기미정은 어렸을 때도 신기한 게 있다며, 자신의 방으로 가자고 하곤 했다. 가보면 야동이나 고어한 동영상을 보여주곤 했다.
'야동은 둘째치고, 고어영상은 시발... 지금 생각해봐도 얘는 사이코패스인 것 같아.'
김하늘은 고어영상에 질색했는데, 친구인 기미정 앞이라고 정신적 충격을 받은 척했다.
반면에 기미정은 고어한 영상을 웃으면서 봤었다.
"나는 아버님, 뒷정리 하는 거 도와주고 갈게."
'역시 착하네, 우리 재준이.'
신재준을 거실에 남겨두고서, 기미정의 방으로 들어갔다.
목발을 짚으며 자신의 방으로 가는 기미정의 뒤를 따랐다.
기미정의 방에는 컴퓨터가 켜져있었다. 화면보호기 상태가 됐던 모니터는 기미정이 마우스를 움직이자 바탕화면이 보여줬다.
"보여줄 거란 게 설마 또 야동이나 고어 영상이냐?"
"아, 보여주려던 건 소주였어. 이따가 마시자. 마실 거지?"
김하늘은 신재희를 바라봤다.
신재희의 눈이 기대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있으면 마시지. 근데, 시발. 내가 억지로 안 왔으면 재준이랑 재희하고만 마셨겠네?"
"어, 지금도 그냥 돌아가면 안 되냐? 너 주기 싫은데."
"내가 다 뺏어 마실거다."
"그러다가 꽐라되지 마라. 버리고 갈 거니까."
"너나 꽐라되지 마, 새끼야. 근데 보여주고 싶어한 건 소주라면. 그 컴퓨터에 왜 앉은 건데? 그냥 게임하려고?"
"너희들 그거 아냐? 신재준, 도촬 사진 공유하는 년들 있다, 학교에."
김하늘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하. 시발. 그건 어떤 시발년들이냐."
기미정은 톡 PC버전을 실행했다. 톡방 목록에서 오픈채팅방 1개를 열었다.
그 방에는 익명의 참가자들이 갖가지 각도와 화질로 학교에서의 신재준을 촬영한 사진들이 올리고 있었다.
"개년들..."
저 사진 중에는 책상에 엎드려 자다가, 수면 발기해버린 사진도 있었다.
저 사진을 보고 불특정다수가 자위하고 그랬을 걸 생각하면, 속에서 열불이 치솟았다.
"아, 기미정. 근데 넌 여길 어떻게 알고 들어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