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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화 〉봄개학 (187/201)



〈 187화 〉봄개학

"네, 그럼 거기로 갈게요."

신재희는 기미정과의 통화를 끊었다.


"가자."


이제는 신재희가 앞장 서서 우리를 이끌었다.

신재희는 한 건물에 들어가 계단을 올라갔다.

김하늘이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아, 여기였지. 기억난다."

초인종을 누르자 안쪽에서 문이 열렸다.

작은 키에 귀염상을 지닌 아저씨가 우릴 보고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어서와, 미정이 친구들이지? 하늘아! 오랜만에 보네?"
"안녕하세요."
"자주 좀 오지."
"네, 앞으로 자주 올게요."


김하늘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저 말을 지키지는 않을  같았다.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겠지.

목발을 짚는 소리가 들리더니 기미정이 나타났다.


"왔냐?"

기미정의 얼굴이 하루 사이에 많이 나아져있었다. 아직도 얼굴이 멍으로 알록달록하긴 했지만, 반반한 미모는 느껴지게 되었다.

"킁킁... 고기..."


코가 예민한 신재희가 가장 빨리 고기 냄새를 맡았다.

"배고프니? 들어와."

처음 들어온 장소에,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어색함을 느끼며 기미정의  거실에 들어섰다.

거실의 안쪽으로 들어가니 6인 테이블에 가득 차려진 음식이 보였다. 찜닭에 보쌈, 소고기말이, 정체불명의 후라이드 튀김에, 양념게장, 잡채... 1인당 백숙 닭 1마리씩 세팅돼 있었다.

육해공이 전부 차려진 식탁에 군침이 돌기도 하면서, 과연 저것을 다 먹을 수 있을지 걱정부터 됐다. 그리고 이걸 혼자 다 만드신 기미정의 아버님의 노고가 느껴졌다.


'다 먹고 설거지라도 도와드려야겠네...'


기미정이 신재연의 참교육에 제정신을 차렸으니까, 그게 예뻐서 한 번 해줘야겠다.

기미정이 자기 아버지한테 '친구 잘 뒀네' 소리 듣게 해줘야지.


'아, 그런데 정신차린 거 맞겠지? 오늘 7반 분위기 장난 아니던데.'


기미정이 자고 있으니까 교실이 쉬는 시간임에도 기강 잡힌  조용했다.

'부상이 다 나을 때까지 일진회에서 나오지 않을 생각이라니까... 평소대로 행동하는 거겠지?'


그렇지 않으면 기미정의 그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게 보였던 반성한 모습들, 약해진 모습들이 말이다.


기미정은 미쳤다고, 나를 꼬시려고 약한 척하는 것은 아닐 테고...

"다들 아무데나 앉아."

기미정의 아버님은 상석에 앉았고, 그 오른편에 기미정이, 기미정의 맞은 편에는 김하늘이 앉았다.

신재희가 자리를 편성을 살펴보더니, 기미정 옆에 앉았다.

6인용 식탁에는 이젠 김하늘의 옆자리만 남겨두었다. 난  자리에 앉았다.


기미정의 아버님이 김하늘의 붕대 감긴 손을 보며 물었다.

"하늘아, 근데 너 손은  그래?"
"아, 오늘 장난치다가  때려서요. 다쳤어요."
"조심하지... 아, 그리고 우리 미정이 때문에 미안하다. 재희랑 재준이 맞지? 너희들한테 큰 잘못을 했다며. 하늘이, 너한테도 미안하고..."

우리보다 어른인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그냥 말로만 사과하시지 보기 불편하게 뭐하는 거람...

"미정이한테 사과 받았으니까 괜찮아요. 그치?"

내가 얼른 말하자 김하늘과 신재희가 각각 긍정했다.

"우리 미정이의 사과를 받아줘서 고마워. 아, 식겠다. 얼른 먹자."


점심을 굶었던 신재희가 빠르게 음식을 입에 넣었다. 우리집은 아침 식사를 하지 않으니, 지금이 신재희에게는 첫끼일 것이었다.


햄스터처럼 볼을 잔뜩 채우고, 먹는 게 복스러웠다.

"재희야, 맛있어?"

기미정의 아버님이 묻자 신재희는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네!"

'내가 해준 것보다  맛있어하는 것 같네.'

나는 신재희를   노려보았다.


신재희는 내가 노려보는 것도 모르고 음식을 먹기 바빴다.

나는 백숙의 국물부터 숟가락으로 떠서 마셨다. 소금간이 덜 되어있어 소금을 살짝 떠서 휘저었다.


간을 맞추고 먹어보니 속이 따뜻해졌다.


우리집에서 기미정의 집까지 걸어오느라 많이 차가웠던 몸이라서, 백숙 국물이  속에 들어오자 기분 좋게 몸이 녹아들었다.


나는 가까이 있던 게살부터 시작해, 소고기말이, 보쌈을 한 점씩 입에 넣었다.

'맛있게 만드셨네.'


뒤이어서 잡채도 건드려보고, 양념게장도 입으로 물어 쪽쪽 빨아먹었다.

'딴 것들도 다 맛있고... 근데 이게 뭐지?'

정체불명의 튀김요리.


튀김 하나하나가 작았다. 순살치킨이려나?


튀김옷을 입히고, 기름에 튀긴 것은 어지간하면 맛있었다. 나는 기대하며 젓가락으로 집어들었다.

붉은 기가 도는 소스가 뿌려져있었다. 매콤새콤한 향이 나는  보니 칠리 소스였다. 그리고  소스 위로 부순 땅콩 가루가 뿌려져잇었고.

입에 넣어  물어보니까, 튀김옷 안쪽에서 쫀득한 식감의 고기가 씹혔다.


'조개? 아, 아니다. 꼬막이구나.'


신재희가 보쌈과 찜닭을 번갈아 먹다가, 꼬막 튀김에 젓가락을 뻗었다.

입에 넣고는 꼭꼭 씹었다. 눈을 감고, 맛의 여운을 느끼는 폼을 보니까 어지간히 감동한 모양이었다.

칠리 소스의 매콤달콤함과 바삭한 튀김, 땅콩의 고소함, 꼬막의 쫀득함이 잘 어울려지긴 했다.

'나중에 조리법 물어봐야겠다.'


신재희가 나중에 집에서 똑같은  해달라고 할 삘이었다.

'신재연한테도 해줘야지.'


신재연에게게도 같은 맛을 즐기게 해주고 싶었다.


음식을 해주는 사람으로서, 남이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면 뿌듯함이 들게 됐다. 특히 그 '남'이 가족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하늘이랑 재준이는 사귀는 거야? 둘이  어울리네."

이 아저씨가 쓸데없는 관심을 가졌다.

아씨,  얌전해진 김하늘을 자극하실까.


"아뇨, 재준이, 여친 있어요."

김하늘은 속으론  했을 것 같은데, 겉으로는 웃으면서 말했다.

'근데 그걸 말하면 어쩌냐...'


'성인이랑 사귀는 것 때문에 괜히 구설수 오르기 싫어서'라는 핑계로 내가 최아란과 사귀는 건 비밀로 해달라고 했었는데...


나는 식탁 밑에서 김하늘의 다리를 툭 쳤다.


"아..."

김하늘은 뒤늦게 내가 함구령을 내려놨다는  깨달은 눈치였다.


'속으로 욱하고, 생각없이 말한 거겠지.'

"재준아, 여친 있어?"

기미정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이미 들킨 거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여친이 '성인'인 건, 김하늘이 언급하지 않았다.

"응."


'아, 그런데 이제는 굳이 감출 필요 없겠네.'

내가 여친이 있다는 숨기려는 까닭은 장군님의 도움을 받아, 학교에 있는 많은 여자들에게 쉽게 따먹히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장군님은 언제 떠날지 모르는 상태라, 성연시에서는 더 여자를 늘리지 않기로 했으니까. 굳이 비밀로 할 필요는 없었다.


"누구? 우리 학교 학생이야? 나는 너랑 김하늘이 사귈 줄 알았는데."
"있어. 네가 모르는 애."


나는 애매한 대답으로 말해주기 싫음을 드러냈다.


굳이 감출 필요는 없지만, 일단 내가 애들한테 말해둔 게 있으니까. 그렇게 말해두고 얼마 안  '말해도 돼'라고 하기 뭐하니 그냥 '감추고 싶은 척'을 하기로 했다.


기미정이 눈치없이 여친이 누구냐고 또 물어보진 않았다.

이번엔 기미정의 아버님이 입을 열었다.


"재연이랬나?"


신재연의 이름이 나오자 기미정이 움찔했다.

"우리 애엄마가 그러더라. 나중에 재연이랑 술 마시고 싶다고. 혹시 재연이한테 물어봐줄  있을까?"

기미정의 어머님은 기미정을 참교육하려다가 시키려다가 실패했었다.

신재연이 대신 기미정의 참교육을 성공하자, 기미정의 어머님은 신재연에게 관심과 호감이 생긴 모양이었다.

"네, 물어볼게요."


신재연은 왠지 그 술자리에 나갈 것 같았다. 본인도 소녀가장 노릇을 했으니, 기미정의 아버님이 어떤 마음일지 이해할  같고...


식사를 마치고 기미정이 자신의 방으로 가자고 했다.


김하늘이 기미정의 얼굴을 보더니 물었다.


"뭔데? 뭔가 자랑하고 싶은 얼굴인데?"


난 기미정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냥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근데 저게 자랑하고 싶은 얼굴이라고?

두 사람이 베프였던 시절이 있어서 보이는 게 있는 걸까.

"나는 아버님, 뒷정리 하는 거 도와주고 갈게."

혼자 식탁을 치우고 계시던 기미정의 아버님이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아, 재준아. 안 도와줘도 되는데."
"도와드릴게요. 치우실 거 많잖아요."
"에휴... 재준이가 여친만 없었으면 미정이랑 잘 되라고 꼬셨을 텐데. 아쉽다."
"하핳..."


이 세계에서는 부엌 일이 남자의 영역이라는  박혀있나 보다.


여자애들은 전부 기미정을 따라서 기미정의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씻을 것을 설거지통에 쌓아뒀다.

"설거지도 제가..."
"됐어, 들어가."


그는 직접 내 어깨를 밀며 기미정의 방문 앞까지 밀었다.

이렇게까지 하셨는데, 설거지 하기 뭐해서 기미정의 방문을 열었다.


기미정의 방에 있던  여자 애들이 흠칫하고 놀라서 날 돌아봤다.

셋은 컴퓨터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기미정이 컴퓨터 의자에 앉아있고, 김하늘과 신재희는 그 의자 뒤에 서있었다.

내가 방에 들어오는 기척에 얼른 최소화를 시킨 건지, 컴퓨터 모니터에는 바탕화면이 보이고 있었다.

나는 방문을 닫으며 코웃음을 쳤다.


"뭐야. 야동이라도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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