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화 〉봄개학
기미정은 신재준이 잘 오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목발을 짚고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아버지 있는 앞에서 남자랑 통화하면, 괜히 엿들을 것 같아서 그랬다.
전화를 걸자 신재준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오고 있어?"
[어, 가는 중이야.]
"김하늘도 오냐?
[어.]
기미정은 깝치는 김하늘을 짓밟아버리고 싶었다.
<"왜 안 되냐? 그리고 너 아침에 내 전화 씹었더라?">
<"너 꼭 와야겠냐? 우리 아빠가 너 안 불렀는데?">
<"왜? 가면 안 되냐? 나 가면 반갑게 맞이해주실 것 같은데.">
자고 있는데 깨우더니 친한 척이었다.
바로 근처에 신재준이 없었다면 깝치지 말라고 하며, 바로 욕을 박았을 텐데.
'재준이... 교실 뒷문에 서서 들여다보고 있는 거 귀여웠지...'
[하늘이가 길 안내해주고 있어서 마중 안 나와줘도 돼. 아니, 나오지 마. 너 다리 불편하잖아.]
"알았다."
기미정은 그의 목소리를 이렇게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또한 자신을 걱정을 해주는 그 상냥한 마음씨에... 그를 짓밟아서 고통스럽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찡그러진 표정을 관찰하고 싶었다.
그 상상에 손발에 전류가 찌릿하고 흘렀다.
이런 기대심과 황홀함은 신재희를 통해서도 느꼈었지만, 그때는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도 동시에 들어 불쾌했다.
반면에 신재준은 온전한 남자였다. 자지가 달려있었고, 그 육봉이 자신의 보지 속을 비집고 들어와 질벽을 긁어댈 수 있었다.
[너희 아버님이 우리 기다리셔?]
"어. 근데 빨리 올 필요없어. 우리 아빠, 지금 6시 맞춰서 식탁 차리고 있으니까."
[그래, 알았어. 끊을게.]
기미정은 통화가 종료된 핸드폰 화면을 보다가 가슴에 끌어안았다.
아, 이런 이성애에 눈을 뜨게 된 것이 너무나 기뻤다.
기미정은 요새 자신이 제대로 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여자가 여자를 좋아한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됐다. 잘못된 걸 알지만, 자꾸만 원하게 되니까 미칠 노릇이었다.
여자가 남자를 좋아한다? 이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여태껏 자신은 그 정상적인 것이 잘 안 됐다.
억지로 남자를 사귀어보려고 해도, 연애하는데 들어가는 시간과 정신적 피로가 짜증났고 이 뭔 병신 같은 짓인가 싶어서 사귀지 않게 됐다
신재희를 성추행해면서, 이상한 소문이 돌까봐 그걸 방지하기 위해 소개팅은 계속 다녔다.
'그런데도 몇 명이 눈치까서 내 성벽에 관해 뒷담을 해대기도 했지.'
일진이다 보니 적이 많았다. 기미정의 앞에서 욕을 하는 애들은 없었지만, 뒤에서 욕하는 애들은 많았다.
들리는 뒷담 중에 종종 기미정이 레즈비언이 아니냐 하는 뒷담이 있었다. 신재희를 학교에서 대놓고 성추행하기에 발생한 일이었다.
그 뒷담한 새끼들? 다 짓밟아줬다. 소녀원에 들어가는 한 있더라도 죽여버릴 테니까, 알아서 꺼지라고 하자 다들 전학갔다.
다른 일진이 살해협박을 했더라면, 허세겠거니 싶어 계속 학교를 다녔을 테지만 기미정의 협박은 먹혔다.
기미정은 자신의 치부인 동성애 성벽을 들키는 게 끔찍하게 싫었다. 진심으로 죽여버리고 싶은 생각을 하며 협박하니 먹혀들었다.
"미정아, 친구들 언제 온대?"
거실에서 아버지의 물음이 들려왔다.
"오고 있대. 6시에 맞춰서 도착할 거야."
아버지에게 대답해주고, 나약한 척을 할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러다가 이를 악물었다.
'아, 시발. 김하늘, 그 년이 있으니까 약한 척하기 싫은데.'
꼬시기 위해서는 참을 수 있었다.
나약한 척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그토록 혐오하던 신재준이 스킨십을 허용해준 것만 봐도, 그 연기는 할만했다.
'김하늘년이 있어도 해야지.'
기미정은 달콤한 과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을 기대하며,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했다.
'그리고 준비해둔 것도 있으니까. 사용해먹고.'
깁스를 하지 않은 멀쩡한 손으로 가방을 열었다. 그안에는 초록색 유리병들이 들어있었다.
/ / /
기미정의 집은 시내에서 고가도로와 시장 사이에 조성된 주택가에 있었다. 언덕길을 올라야했다.
기울어진 오르막길 옆으로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있었다.
나는 앞서 걸아가는 김하늘의 뒷태를 살폈다. 데이트를 할 작정인 것처럼 미니스커트에 커피색 스타킹 차림이었다. 향수가 그녀가 걷는 자리에 남겨져, 뒤따라오던 내 코에 들어왔다.
스타킹에 감긴 매끈한 다리와 여성스러운 향기에, 내 자지가 신호를 받았다.
소희정의 질에 그토록 싸대고 텅텅 비었던 고환이었다 그런데 몇 시간 휴식을 취했다고 벌써 정액으로 채워져있었다.
김하늘의 보지에 꽂아넣어 흔들고 싶었다.
"하늘아, 상처는 언제 낫는데?"
난 그런 음란한 생각을 숨긴채 태연하게 물었다.
"이거?"
김하늘은 붕대감은 손을 들어올렸다.
"한 달은 넘을 거라던데."
"한순간 실수 때문에 오랫동안 후회하겠다, 글치?"
"...그러게 말이야. 다신 실수 안 해야지."
신재희가 뒤를 두리번거렸다.
"재희야, 왜 그래?"
"아, 웬 여자가 뒤따라오는 것 같아서. 우리집에서부터. 느낌 탓인가."
"뭐야, 농담이지? 소름돋게 왜 그러냐..."
"농담은 아니고, 내가 그렇게 느꼈다고. 그냥 내 느낌탓이겠지..."
나는 신재희의 말에 한 여자가 떠올랐다.
엿보기범.
왼쪽 눈가에 점이 있던 여자...
나는 그녀가 엿보는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서, 신고 당하기 싫으면 꺼지라고 했었다.
그런데도 이후 몇 번이나 우리집에 얼쩡거렸었다. 내가 화장실에 있을 때, 화장실 쪽문을 열어 엿보기도 했고.
'그 여자가 지금 우릴 스토킹하고 있나? 장군님... 아.'
장군님한테 엿보기범이 지금 우릴 스토킹 중이냐고 물어보려고 했다. 나는 또 장군님한테 의지할 뻔했다.
'내가 물어보면 또 나한테 뭔가를 보여달라고, 요구하겠지.'
엿보기범의 스토킹 유무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정보였다. 그래서 이상한 미션을 수행하면서까지 장군님을 통해 알아내고 싶지 않았다.
김하늘은 한 빌라 건물에 앞에 멈췄다.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겼고, 동 숫자만 다른 건물이 주위에 6개는 되었다.
김하늘은 헷갈린지 건물 안으로 들어가길 망설이기 시작했다.
"하늘아, 기미정네 어딘지 까먹었어?"
"아씨. 막상 오면 떠오를 줄 알았는데 안 떠오르네."
하긴, 초등학생 때나 친구 사이였고, 그 이후엔 타인 만도 못한 사이가 된 기미정과 김하늘이었다. 잊어버렸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도 '오석준'으로서 어렸을 때 친했던 친구집을 이제와서 찾아가보라고 하면 못 찾아갈 것이었다. 그 친구의 집안 풍경은 어렴풋 기억나지만, 몇 동 몇 호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하늘아, 기미정한테 전화해 봐."
"내가? 이 새끼, 또 전화 씹을 것 같은데. 오늘 아침처럼. 그냥 네가 전화하는 게 나을걸? 아, 아니다. 재희야, 네가 해봐."
'재희는 네가 시킨 거라 안 할 걸?'
이제는 친해졌어도 신재희는 김하늘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 김하늘의 '시킨 것'이니 무시할 것 같았다.
특히나 신재희가 그토록 싫어했던 기미정에게 연락하라는 명령이니 더더욱.
"알았어."
그런데 뜻밖에도 신재희는 순순히 핸드폰을 들었다.
'웬일이지? 아...'
알 것 같았다.
김하늘이나 신재희나. 내가 딴 여자랑 통화하는 게 싫어서 저러는 게 아닐까 싶었다.
"여보세요? 아, 언니. ...네. 하늘이 언니 따라서 빌라 앞에 도착했는데요. 하늘이 언니가 몇 동, 몇 호인지 까먹었나 봐요. 어디 사세요?"
기미정에게 전화로 사과를 들었다고 듣긴 했다. 언니언니 하는 걸 보면 신재희도 그 사과를 잘 받아준 모양이었다.
'장군님이 그랬지. 기미정이... 날 따먹고 싶어한다고...'
기미정도 여자니까 당연했다. '신재준'의 몸은 그 어떤 여자라도 따먹고 싶어 못 배길 몸이니까.
'아, 근데 '따먹고 싶다'는 게 꼭 '강간하겠다'는 아니잖아. 기미정이 아무리 일진이라도, 강력범죄인 강간을 막 하려고 할까?'
난 장군님을 통해 기미정이 날 따먹고 싶어한다는 걸 알게 되고, 너무 쓸데없는 걱정을 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김하늘을 따먹고 싶고, 최아란을 따먹고 싶어했지만. 그게 곧 '강간하고 싶다'는 아니었다.
보통 '따먹고 싶다'는 건, '섹스하고 싶다'라는 뜻이었다.
내가 요새 하도 강간당하느라, '따먹는다'='강간하고 싶다'로 치환해 생각하고, 지레 걱정하고 말았다.
'에이, 장군님 말에 괜히 걱정했네. 오늘 기미정네 집에서 뭔가 당할줄 알고.'
나는 기미정네 집 앞에 오기까지 느끼고 있던 불안감을 털어냈다.
또한 생각해보니 박유리와 안유리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보였다.
둘 다 인생 막장인 애들 같아보이진 않았다. '일진회 소속'이라는 비행을 저지르고 있긴 하지만, 그 정도야 범죄 취급도 안 하지 않은가.
박슬기는 국회의원 딸인데다가 공부 잘 했다.
안유리는 싸움닭 같은 여자애 이미지였으나, 사실 자기 어린 여동생에게 장보기를 직접 가르쳐주기까지 하는 가정적인 여자애였다.
'둘 다 날 좋아하는 것 같지만... 내가 먼저 '강간 유발'을 하지 않는 이상 '강간'을 시도하진 않겠지.'
장군님한테 통수 맞은 것 때문에 충격받아, 미래에 대한 걱정에 너무 '최악의 상황'만 상정해 생각하고 말았다.
나는 큰 안도를 느꼈다.
'그럼 나 그냥 학교 평범하게 다니면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