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화 〉봄개학
만화나 드라마 같은데서 곧잘 나오는 걸 따라해봤다. 이마 맞대서 체온 재기.
해보니 소희정의 이마로부터 뜨끈함이 느껴졌다.
'진짜 어디 아픈가?'
"와. 너 이마 좀 뜨겁네. 열 있나봐. 어? 너 코피 난다."
소희정이 곧 코피를 흘렸다.
나는 얼른 코피를 닦을 것을 주머니에서 꺼내려고 했다. 최아란이 선물로 줬던 손수건을 꺼내려다가, 빈 주머니인 것에 당황했다.
"어라? 손수건이..."
곧 깨달았다.
"아, 맞다. 하늘이 줬지."
"나 휴지 있어."
소희정이 한 손으로 코를 막은 상태로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려고 했다.
"가만히 있어. 내가 꺼내줄 테니까."
"아, 재준아. 자, 잠깐만..."
나는 소희정의 가방을 서둘러 열었다. 휴지 꺼내서 코를 빨리 막아줘야 하니까.
가방은 거의 텅텅 비어있었다. 공부를 하지 않는 자의 가방다웠다. 얇은 공책 몇 권과 필통. 그리고 사각팬티.
'음? 사각팬티? 생리 기간 때, 생리 새면 팬티 갈아입으려고 갖고 다니나?'
가방 속에서 휴지를 찾다가, 사각 팬티가 움직이게 만들어버렸다.
"어딨지..."
본의 아니게 사각 팬티의 안감, 정확하게는 생식기가 닿는 부분 보고 말았다. 깨끗했다. 사용감이 없는 새 것 같았다.
"아, 찾았다."
휴대용 휴지가 필통 밑에 깔려있었다.
얼른 휴지를 뽑아서 소희정에게 건넸다.
그녀는 코피를 닦아내고, 코를 막았다.
"어제 야동보다가 밤샜지?"
"뭐, 뭐?"
"그래서 그렇게 코피 나는 거 아니야?"
"아니야. 안 봤어."
정색하며, 억울하다는 듯 얼굴을 하는 걸 보니 밤새서 본 건 아닌 듯했다.
그래도 이 세계의 여자애니까 매일 한 번씩은 야동이나 망가를 보며 자위하겠지. 분명 어제도 야한 걸 보며 자기위로했을 거다.
'내가 반찬이었으려나?'
"흐음, 그렇다고 해줄게."
"정말인데..."
그때였다. 내 귓가로 장군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이야. 우리 희정이는 밤새도록 보진 않았지. 자위 1번 하고 곯아떨어졌어."
'아, 그래요?'
"킥킥, 방금 희정이가 코피 터뜨린 이유 알려줄까?"
'음? 왜 그런데요?'
"방금까지 소희정 눈에 너 알몸으로 보이게 했거든."
'아하.'
그런 재미난 짓을 저지르셨구나.
'4교시 수업 때부터요?'
"그래."
우리 순진한 소희정은 내 알몸을 보지 않으려고 4교시 수업 때, 계속 노력해왔던 것이다. 날 똑바로 보지 못하고 계속 정면을 바라봤던 까닭이 그것이었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자꾸만 소희정에게 알몸 보여주려고, 그녀 앞에서 얼쩡거린 거였다.
''방금까지 보이게 했다'라고 하시는 거 보니 지금은 아닌가 보네요?'
"그렇지. 킥킥, 희정이한테는 네 알몸이 많이 자극적이었나봐.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그런데 오늘 희정이네 집에 안 가면, 저한테 큰일난다면서요. 무슨 큰일인데요?'
"그거? 사실 뻥이야."
'예?'
"우리 재준이, 자지맛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밖에선 너의 정액을 못 마시까"
'지금 하시는 말씀... 희정한테는 안 들리죠?'
"응, 안심해. 네가 알리기 싫어하는 것 같아서 희정이한테는 비밀로 하고 있어."
'하아... 다행이다.'
장군님은 당연히 나보다 소희정의 편일 것이었다. 그녀는 소희정의 아버지에게 모심을 받고 있었고, 어쩌면 더 윗대의 조상에게 모셔졌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모시는 이의 피붙이 보다, 좀 특이한 영혼을 지녔을 뿐인 내 편을 들어줄 리가 없었다.
그래도 나에게 호감을 느끼긴 해서, 나의 프라이버시는 지켜주려는 것 같았다.
'장군님.'
"응?"
나는 나보다 조금 앞서 계단을 내려가는 소희정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이 캐시미어 재질의 교복 블레이저에 내려앉았다.
블레이저의 허리 부분이 보기 좋게 날씬해서,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고 있었다.
풍만하게 오른 엉덩이가 짧은 교복 치마가 감싸여 있었다. 저 치마 속에, 긴 다리 사이로 보지가 있을 걸 생각하면... 자지가 바로 뻐근해졌다.
'장군님, 우리 같이 '큰일' 만들어볼래요? 오늘 희정이한테 따먹히고 싶은데요.'
"오... 그거, 매우 흥미로운데. 그래, 도와줄게."
나이스.
오랜만에 새로운 여자한테 따먹힐 수 있겠다.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새로운 여자와의 첫 경험은 언제나 긴장하게 됐다. 이건 섹스를 아무리 많이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도와줄까?"
'그건 희정이네 가면서 생각 좀 할게요. 제 성벽도 유지하면서, 희정이한테 상처를 최대한 주면 안 되니까.'
"흐흫... 잘 생각해봐. 너 때문에 희정이가 많이 힘들어하면... 네 성벽을 밝힐 수밖에 없단다, 아가야."
'예...'
역시 장군님은 내가 아닌 소희정의 편이었다.
'그런데 희정이 처녀인가요?'
처녀가 아니라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신품인 게 좋잖아?
"희정이한테는 오래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지."
'아...'
실망했다.
'신재준'과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였던 소희정이었다. '신재준'의 기억에 따르면 소희정이 누군가와 사귄 적 없다고 했다.
그럼 '신재준' 몰래 사귀었던 것이 되려나.
"태어날 때부터 함께 해온 남자친구."
'네? 태어날 때부터요? 아, 설마 손이요?'
"킥킥, 맞아. 소희정의 왼손."
그럼 처녀 맞네.
난 미소가 지어졌다. 앞으로 할 섹스를 소희정은 평생 기억해주겠지?
난 두번째 섹스는 어땠는지 기억은 안 나도, 첫번째 섹스 만큼은 아직도 기억났다.
우리는 계단을 모두 내려와 학교 건물 밖으로 나갔다.
"재, 재준아?"
"응?"
"아까 내 가방 뒤질 때, 이상한 거 보지 않았어?"
"응? 아, 사각팬티?"
"윽. 조, 조용히 좀 말해줄래."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 뭐. 다들 멀리 있지.
"그냥 생리가 새면 입으려는, 여분의 팬티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상하다고는 못 느끼고."
"아, 그, 그래?"
"뭔가 주술적인 이유 때문에 가방에 넣고 다니는 거야?"
"응... 나 음기가 세서, 양기를 눌러줘야한대. 신내림 받기 전까지."
"고생이 많구나."
이런저런 얘기를 해가며 학교의 언덕길도 다 내려왔다.
멀리서 박슬기와 안유리를 포함한 일진 무리가 보였다.
아침에 내지 못한 싸움을 승부내기 위해 이동 중인 듯했다. 난 소희정에게 구경가자고 했는데 거절 당했다.
'내가 걱정되나 보네. 자기 집에 나 빨리 안 데려가면, 내가 '큰일'나는 줄 알고 있을 테니... 박슬기 대 안유리... 둘 중에 누가 이기려나? 이긴 쪽한테 먼저 따먹힐 생각 있었는데... 뭐, 누가 이겼고 졌는지 소문나겠지. 소문으로 안 나면, 일진애 아무나 잡아서 물어보면 되고.'
지금은 박슬기와 안유리의 싸움이 중요하지 않았다. 난 딴 생각을 접고 '큰일'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소희정을 다치지 않게 하고, 따먹힐 수 있을까...
'아, 맞다.'
나는 뒤늦게 가장 중요한 걸 알아내고자 장군님한테 물었다.
'희정이네 집에 지금 누구 있어요?'
"아무도 없어. 너와 희정이, 그리고 귀신 하나가 있게 되겠지."
'오, 그러면요. 저 좀 발정시켜주세요.'
"뭐?"
'장군님이 저한테 '큰일' 날 거라고 했잖아요. 그 떡밥을 이용하죠. 마침 제 얼굴이 다른 남자의 얼굴과 겹쳐서 보인다면서요? 그것도 이용하고요. 제 영혼에 문제가 있는 탓에 제게 '부작용' 같은 게 발생했다고 하는 거예요.'
"흐응? 어떤 '부작용'?"
'제가 성욕이 끓어넘쳐서, 자칫 잘못하면 아무 여자에게나 박아대는 미친놈이 되고. 그 '부작용'을 임시방편으로나마 막으려면 '신기가 있으며, 오랜 기간 저와 함께 지냈던 여자'와 음양합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이에요.'
"킥킥, 그 '신기가 있으며, 오랜 기간 저와 함께 지냈던 여자'는 딱 한 명 뿐이겠네?"
'흐흫... 네, 그렇겠죠.'
"괜찮은데? 그래도 희정이가 괴로워하지 않도록 주의하렴."
'네, 희정이가 알겠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그래야 소희정한테 따먹히는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었다.
"재준아."
소희정이 날 불렀다.
"응?"
"그.. 너 혹시 안 무서워? 무당이나 귀신 같은 거. 우리집에서 이상현상 같은 것도 겪었잖아."
무서울 리가 있나. 날 지켜주시는 수호령 같은 분이신데.
심지어 내 성벽도 이해해주시고, 내 프라이버시까지 지켜주실 줄 알았다.
"딱히? 나한테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신기해서 재밌던데. 아, 이런 말은 너한테 실례가 되려나? 미안."
"아, 아니야. 미안할 거 없어. 재밌다고 생각해주니 오히려 고맙다."
이제 15분 정도면 소희정의 집에 도착할 것이었다. 나는 슬슬 밑밥을 발동해야할 때라고 생각했다.
'장군님? 고, 밑밥, 고.'
"희정아, 큰일이다."
장군님의 목소리가 내 코앞에서 들렸다. 내 눈에는 안 보이지만, 장군님이 내 앞에 있나보다.
소희정이 옆에서는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런 소희정의 시선을 못 알아챈 척, 앞만 보고 걸었다.
그런데 소희정이 날 빤히 쳐다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더 이상 내가 소희정의 시선을 못 알아채는 것도 이상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를 돌아봤다.
마른 체형의 미녀가 날 걱정스럽게 쳐다보는데, 곧 저 두 눈이 정욕으로 활활 타올라 날 따먹을 것을 상상하니...
기뻐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희정아, 왜?"
"아, 아무것도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