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화 〉봄개학
신재준이 알몸으로 보이는 소희정 눈에는, 신재준이 허벅지 위를 손을 더듬는 것처럼 보였다. 신재준은 지금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것이리라.
"어라? 손수건이... 아, 맞다. 하늘이 줬지."
"나 휴지 있어."
소희정은 자신의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한손으로 코를 막고 있어, 한 손만으로 가방을 풀기 힘들었다.
"가만히 있어. 내가 꺼내줄 테니까."
"아, 재준아. 자, 잠깐만..."
소희정은 남이 보면 창피하게 되는 물건이 가방 속에 있었기에, 신재준을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신재준은 빠르게 가방을 열어버렸다. 이미 들켰을 것임을 짐작한 소희정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어딨지... 아, 찾았다."
신재준은 딱히 놀란 것 같지 않았다. '그 물건'을 보지 못한 것일까? 아니다. 아닐 거다.
신재준은 속으로는 놀랐는데, 놀라지 않은 척을 하는 것일 터였다. 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신재준은 휴대용 휴지를 꺼내고 몇 장 뽑은 뒤, 다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휴지를 소희정에게 내밀었다.
소희정은 휴지의 일부로 코피를 닦아내고, 일부는 돌돌 말아서 콧구멍을 막았다. 쌍코피가 터진 거여서 두 콧구멍 모두 막아야했다.
"어제 야동보다가 밤샜지?"
"뭐, 뭐?"
"그래서 그렇게 코피 나는 거 아니야?"
신재준의 말에 억울했다. 어젯밤에 야동을 본 건 맞는데, 밤새도록 보지는 않았다.
"아니야. 안 봤어."
"흐음, 그렇다고 해줄게."
"정말인데..."
다행히 코피를 터뜨린 다음부터, 신재준의 몸 위로 교복이 걸쳐진 채로 보였다.
'다행이다...'
다행이지만 동시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다시 알몸으로 보이게 해줄까?"
'아뇨!'
소희정은 장군님의 말에 얼른 거부했다.
"재, 재준아?"
"응?"
"아까 내 가방 뒤질 때, 이상한 거 보지 않았어?"
"응? 아, 사각팬티?"
"윽. 조, 조용히 좀 말해줄래."
신재준과 소희정은 주위를 둘러봤다.
하교하는 애들이 많았으나 모두 거리가 떨어져있어서, 방금 신재준의 목소리는 듣지 못했을 거였다.
"그냥 생리가 새면 입으려는, 여분의 팬티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상하다고는 못 느끼고."
"아, 그, 그래?"
남자 팬티를 가방 속에 넣고 다니는 것 때문에 이상한 여자로 찍힐 줄 알아앗는데,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뭔가 주술적인 이유 때문에 가방에 넣고 다니는 거야?"
"응... 나 음기가 세서, 양기를 눌러줘야한대. 신내림 받기 전까지."
"고생이 많구나."
둘은 교문에서 나와 짧은 언덕길을 내려갔다.
집에 가는 길 반대편으로, 십여 명의 학생 무리가 이동 중인 게 보였다. 대다수가 여학생들이고 남학생 몇몇이 끼어있었다. 그중에 안유리와 박슬기도 보였다.
"쟤들 일진애들이지?"
신재준의 물음에 소희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아침에 안유리랑 박슬기랄 맞짱 뜨다가 말았잖아. 그거 결판내려는 것 같네."
"구경갈까?"
"아니."
소희정은 무의식적으로 빠른 부정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래놓고는 스스로 놀랐다.
'재준이랑 단둘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줄이고 싶지 않아서... 싫다고 한 거지, 나.'
"왜? 싸움구경 재밌잖아."
"일진 애들이 시비걸 수 있으니까..."
"그렇긴 하겠다. 그럼 그냥 너희 집 가자."
"응."
소희정은 신재준의 집 가자는 말에 설레임을 느꼈다. 좋은 이유로 가는 게 아님에도.
'장군님, 재준이가 우리 집에 안 오면 큰일 난다는데, 그 큰일이 도대체 뭐예요?'
"나중에 알려주마.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큰 문제없이 넘어갈 테니, 너무 걱정은 말고."
계속해서 장군님에게 그 '큰일'이 뭔지 물었지만 장군님을 알려주지 않았다.
소희정은 집으로 향하기 시작하면서, 좀 전에 느꼈던 설렘이 증발했고 후회했다.
'김하늘이었다면, 재준이가 해달라는 대로 해줬을 텐데... '싸움구경? 보고 싶어? 그럼 가자!' 막 이랬겠지... 방금 나한테 실망했으려나. 아, 그런데 재준이 어차피 성인인 여자친구 있었지.'
순간 소희정은 기쁨을 느꼈다. 친구의 실연을 기뻐한 것이었다. 자신이 얻지 못한 거, 친구도 갖지 못하니 다행이다 싶었다.
'아, 젠장...'
소희정은 그딴 생각을 한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하교하는 학생 대부분은 버스정류장이 있는 시내로 향했다.
학교 동쪽의 주택지역에서 사는 학생은 적었다. 그렇기에 학교에서 멀어지기 무섭게, 신재준과 소희정 만이 인적드문 거리를 걷게 됐다.
"재준아."
"응?"
"그.. 너 혹시 안 무서워? 무당이나 귀신 같은 거. 우리집에서 이상현상 같은 것도 겪었잖아."
"딱히? 나한테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신기해서 재밌던데. 아, 이런 말은 너한테 실례가 되려나? 미안."
"아, 아니야. 미안할 거 없어. 재밌다고 생각해주니 오히려 고맙다."
어렸을 때, 생각이 짧았던 초등학생 때. 김하늘이 무당집인 자신의 집에 아무렇지 않게 놀러오자, 신재준도 초대한 적 있었다.
그때 어린 신재준이 무당집 분위기에 짓눌려, 시종일관 불편해 하는 표정을 지었었다. 소희정은 그때 처음으로 자신의 집에 친구를 함부로 데려오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재준이 무당집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신적인 일'로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기가 굉장히 망설여졌던 것이었다.
저번에 집에 데려갈 때도 그랬고.
신재준에게 초자연적인 현상을 겪게 만든 이후인 지금은 더더욱 그러했다.
"희정아, 큰일이다."
장군님이 신재준을 코앞에서 살피면서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네? 무, 무슨 일인데요?'
장군님이 저렇게 정색하는 건, 살인마가 법당에 들어왔을 때 이후로 처음 봤다. 그 살인마는 재미삼아 찾아왔던 것이었다. 무당이 자신의 죄를 알아챌지 못 챌지.
못 알아채면, 그 법당에서 아버지를 죽일 계획이었다고 했다.
그 살인마는 며칠 안 돼,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지상파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기까지 했다.
영혼이 있으니 지옥도 있었다. 범죄자는 빨리 죽는 게 나았다. 살아있을 때 진심으로 회개라도 한다면, 지옥에서 겪게 되는 처벌이 다소 줄어들기에.
지옥의 존재를 알기에, 소희정은 살아갈 때 죄를 짓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사후에 지옥 가기 싫었다.
그런데 지금이 그때 만큼이나 장군님이 심각해질 상황인 건가? 소희정은 두려워졌다. 신재준이 너무나 걱정됐다.
'무슨 일인데요?'
신재준은 겉으로 보기엔 아무렇지 않았다.
소희정이 바라보고 있자, 신재준이 그녀를 올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희정아, 왜?"
"아, 아무것도 아니야."
장군님이 신재준의 위아래를 살피더니 말했다.
"이유는 묻지 말고, 서둘러 법당에 가라."
장군님의 말에 소희정은 긴장됐다.
'얼굴이 겹쳐보이는 거... 괜찮다고 했었는데... 설마 저 현상 때문에, 뭔가 잘못된 건가?'
"재준아, 미안한데 좀 빨리 걸을까?"
"왜? 똥이라도 마려워?"
"어, 맞아. 그러니까 빨리 걷자."
화장실 급한 게 아니었지만, 신재준을 서두르게 만들기 위해 그리 말했다.
10분 즈음 빠르게 걸었을까. 신재준이 소희정의 팔을 잡았다.
"저쪽으로 가면 바로 우리 집이잖아. 화장실 급하면 우리집 화장실 써."
"아, 나는... 집 화장실 아니면 똥 못 싸서..."
소희정은 얼굴을 붉히며, 그렇게 둘러댔다. 신재준의 집에 들리면 시간이 쓸데없이 낭비될 것이었다. 또한 신재준이 서둘러 걷게 만들 구실도 사라지게 되고.
"그래? 그럼 서두를까?"
신재준이 빠르게 나아가자, 소희정도 긴 다리를 뻗으며 쉽게 따라잡았다.
장군님은 아까부터 말이 없었다. 표정은 아까부터 더욱 심각해졌따.
'도대체 무슨 심각한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것이길래...'
빌라와 빌라로 들어가면 보이는 돌계단이 보였다. 높은 언덕길을 서둘러 두 칸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희정아, 잠깐만. 하아... 하아..."
뒤따라오던 신재준이 계단을 올라오다가, 무릎을 짚은채 숨을 헐떡였다.
그 헐떡임 소리가 마치, 어제 본 야동에서 남자 배우가 섹스할 때 내던 헐떡임을 떠올리게 해 소희정의 아랫배를 움찔거리게 만들었다.
여자인 소희정과 다르게 남자인 신재준이 약한 건 당연했다. 그런데도 자기가 위험에 처한 지도 모른채 쉬고 있는 신재준에게 조금 짜증도 느끼고 말았다. 소희정은 조급증이 났다.
"조금만 더 힘내자, 응? 거의 다 왔어."
소희정은 신재준의 손을 붙잡았다. 남자들은 키나 소니아나 모든 게 여자보다 큰 편이었다. 그런데 신재준은 남자인 거 치고, 작고 부드러운 손을 갖고 있었다.
소희정은 급하다는 것을 핑계로 신재준의 손 감촉을 자세하게 느끼려고 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하아... 희정아, 조금만 천천히... 하아... 하아... 잠깐 쉬었다가..."
"미안해, 재준아. 장군님이 지금 상황이 급하대. 빨리 집에 도착해야 한대. 조금 힘내줘."
소희정은 그렇게 장군님을 언급했다.
"큰일이다. 늦었어."
"네? 큰일이요?"
장군님의 말에 소리를 내어 되묻고 말았다. 속으로 말해야 했는데. 신재준의 눈에는 방금 자신이 혼잣말 한 것으로 보일 것이었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알아채고, 신재준의 눈치를 살폈다.
신재준의 얼굴이 새빨갰다. 호흡이 거칠고, 두 눈은 몽롱하게 소희정을 쳐다봤다.
그러더니 갑자기 소희정을 꽉 끌어안았다. 방심하고 있던 차에 무게가 실려오니 소희정은 뒤로 넘어질 뻔했다.
이 돌계단에는 난간이 없어서 잘못 넘어졌다간 굴러떨어질 위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아찔함이 느꼈다. 소희정은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재, 재준아?"
신재준은 마치 발정기에 접어든 동물처럼 그녀의 몸에 발기한 자지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단단하고 거대한 물건이 찔러오니, 소희정은 자신의 아랫배가 쿵쿵 떨려왔다.
"하아...! 하아...!"
'자, 장군님?! 이, 이게 그 '큰일'이에요?!'
"일단 집으로 옮겨!"
'네, 넵!'
"재, 재준아! 저, 정신 차려!"
"하아..."
소희정은 신재준이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고, 장군님은 서둘러야 한다고 보챈다. 그녀는 할 수 없이 신재준을 꽉 안아 들어올려서, 그의 몸을 든채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재준이 두 팔과 두 다리를 모두 사용해, 거미처럼 소희정에게 매달렸다.
작고 왜소한 몸답게 가벼웠다. 그래서 들만했다.
신재준과 진한 스킨십을 하니 몸이 발정해서 보짓물 홍수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소희정은 상황이 심각한데도 발정하고 마는 자신의 몸이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