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3화 〉봄개학 (173/201)



〈 173화 〉봄개학

살이 살을 때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으윽!"
"큭!"

두 여자의 입술이 터지고, 코피가 터지고 난리났다.


박슬기와 안유리는 동시에 코에서 흘러내리는 코피를 훑어내더니 자신의 손을 내려다봐 코피를 확인했다.


우연히 싱크로가 맞아떨어진 모습에 괜히 웃음이 삐져나왔다.

싸움의 승부가 나기 전에 복도에서 여자의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너희 지금 뭣들 하는 거냐!?"

선생님이 오셨다. 슬슬 아침조회시간이기도 하고, 애들이 모여있으니까 문제가 발생한  알고 바로 달려온 모양이었다.

교실 뒷편에서 싸우던 박슬기와 안유리는 결착을 짓지 못하고 싸움을 멈췄다.

"박슬기, 시발아. 학교 끝나고 보자."
"이번엔 튀지 마라."
"아, 시발. 그때 튄 거 아니라니까."

둘은 교복을 정리하고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이 뒤에서 구경꾼들을 밀어내고 있는 건지, 나는 앞으로 떠밀렸다.

김하늘이 넘어지려던 나를 붙잡아줬다.

교실 안에 들어온 선생님은 교실을 둘러봤다. 그녀는 코를 휴지로 막고 있는 박슬기와 안유리의 뒷모습을 빤히 지켜봤다.


그녀는 마치 경고하듯 박슬기와 안유리의 앞에 서서 노려보다가 교탁으로 갔다.

'그냥 싸운 거 모른 척 하려나 보네.'

"너희들 뭐야? 빨리 자기 반으로 돌아가?  아침조회 시간이다."


선생님의 말에 구경 온 인파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와 김하늘, 소희정 역시 4반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와, 살벌하게 싸우네."
"터프하네."

소희정이 감탄했고, 김하늘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내가 김하늘에게 한 마디 했다.


"우리 하늘이는 주먹 한 방에 날아갔었지."


기미정의 주먹 한 방에.

"아씨, 그건 방심하고 있을  맞은 거라 그런 거지. 기미정, 그년이 세기도 했고."
"기미정 빼고  이긴다며. 어때? 박슬기랑 안유리의 싸움 보고도 생각 똑같아?"
"내가 둘  씹바르지."


아침조회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쳤다. 그때 김하늘이 뭐 마려운 것처럼 허벅지를 붙였다.


"아, 화장실 갔다와야 겠다. 소희정, 담탱이가 나 찾으면, 나 화장실 갔다고 말해라."
"즐똥."
"똥 아니야, 인마."

볼 일이 마려운지 김하늘이 화장실로 향했다.


소희정과 함께 교실에 들어가려는데 그녀가 말했다.

"재준아."
"응?"
"으음... 아니야, 아무것도."
"뭐야. 말해 그냥."

느낌상, 지금 소희정은 장군님과 관련된 얘기를 꺼내려다가 만 것 같았다.

'아, 맞다. 저번 주말에 아란이한테 캠핑장으로 끌려갔을 때, 장군님이 집에 놀러오랬는데.'


직접 물질계에 몸을 드러낸 그녀가 내 뒤에 누우며, 소희정네 놀러오라고 했었다.


그랬던  깜빡하고 있었다.


'장군님이 소희정한테 재촉이라도 한 걸까? 나를 집에 데려오라고?'


"아, 아니야. 아무것도..."
"괜찮아. 말해."


난 웃으며 소희정을 다독였다. 어떤 말을 하든지 용서해주겠다는 듯.


"그, 그게... 우리 집에 또 놀러오지 않을래...?"

역시  예상이 맞은 듯했다.

난 갑자기 정색하고 소희정을 탓하듯 말했다.

"내가 너희집에서 무슨 꼴 당했는지 몰라? 그런데도 그렇게 말하기야?"

주위에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춰서.

"미, 미안해..."


소희정이  숙인채 사과했다.


"흐흫, 농담이야."
"뭐?"


내가 웃으면서 분위기를 환기시키자, 소희정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다가 내 미소에 소희정도 얼결에 미소를 따라했다.


"근데 너, 나에 관해서 뭐 들은  있어? 너희 아버님이나 장군님한테."
"너에 대해서 들은 건..."
"뭐하냐? 왜 아직도 안 들어가고 있어?"


흐름 깨지게 김하늘이 나타났다. 볼 일을 보고 씻은 손이었다.


김하늘은 허공에서 딱밤을 날리며 소희정에게 물방울을 쏘았다.


"아씨, 그만해라."

난 나만 안 당하면 된다고 생각하다가, 김하늘이 표적을 바꿔 나한테도 물방울 튕기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아, 입에 물 들어갔잖아."
"킥킥, 근데 정말 너희 뭔 얘기했냐? 교실에 안 들어가고."


내가 대충 둘러댔다.


"그냥 네 뒷담? 싸움도 별로 못하면서 쎈 척한다고?"
"아니, 이것들이?"
"너희 뭐해? 교실 안 들어가?"

담임선생님이 나타났다. 우리는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교실로 들어갔다.


'소희정이 어디까지 알려나... 무당 아저씨나 장군님한테  성벽 들어서 알까?'


몰랐으면 좋겠다. 그래야 '소희정에게 제대로 따먹히는 것'이 가능했다.  성벽을 아는 상태에서  따먹으면 강간 상황극이나 다름없잖아.


소희정이  성벽을 모르는 상태에서 날 따먹어야, '진짜'였다.



/ / /



소희정은 귀신이 보였다.


'장군님... 또 재준이한테 붙어계시네...'

귀신은 어디에나 있고, 또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존재였기에 장군님이 신재준에게 붙어있는다고 해도, 무당인 아버지가 장군님의 도움을 못 받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수업 중이었다.

장군님은 신재준의 뒤에 서서, 신재준의 머리카락으로 이런저런 모양을 만들며 갖고 놀고 있었다.

가시를 세운 듯한 모양으로도 만들고, 태양처럼 일렁이는 모양처럼도 만들고, 머리카락을 꼬부랑 뜨려 하트 여러 개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머리카락으로 꽃게까지 만들기 까지.


신재준의 머리가 초자연적으로 이리저리 바뀌고 있었지만, 신재준 본인은 물론이고 다른 학생들과 선생님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장군님의 신적인 힘에 의해 신기 없는 이들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장군님은 웬만하면 임진왜란 당시 군복을 입고 계셨다. 그런데 지금은 현대의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계셨다. 신재준을 따라다니기 시작하고 생긴 의상 변화였다.


'지금은 저렇게 장난만 노시지만... 신재준이 화장실 갈 때마다 따라가시던데. 장군님, 엿보시려나? 재준이가 화장실 이용하고, 씻고 하는 거...'

지금의 생각을 아버지가 들었다면 크게 경을 칠 것이었다. 장군님께서 왜 그런 삿된 짓을 하겠노라며.


'그치만, 저렇게 스토킹 하는 꼴을 보면 그런 생각이 안 들 수 있겠냐고.'

저번주에 자신의 집에 데려온 이후로, 장군님은 계속 신재준에게 붙어다녔다.

신재준의 머리카락을 갖고 노시던 장군님이 소희정을 바라봤다.

'헉!'

소희정은 보지 말았어야 할 것을 훔쳐보다가 걸린 것처럼 죄악심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소희정의 귓가로 불호령 대신에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희정아, 이쪽 봐봐."


여자 치고 허스키한 목소리. 장군님의 것이었다. 장군님의 말을 거스를 수도 없었고, 장군님이 왜 신재준이 있는 쪽을 보라는 건지 궁금하기도 해서 고개를 들었다.

목격하게   때문에 소희정의  눈이 커졌다.

열심히 공부하던 신재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재준은 뭔가에 홀린 듯 두 눈이 공허했다. 그는 몽유병 환자처럼, 힘없이 소희정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그만하세요.'

"왜? 좋은 거 시켜줄게. 우리 희정이도 가끔 모시는 신의  좀 봐야지?"


소희정은 어쩔 줄 몰라했다.

어렸을 때부터 장군님은 소희정에게 있어 '신'이었다. 그녀를 찬양해야 했고, 그녀의 말에 거부할  없었으며, 그녀의 호의를 감히 거절할  없었다.

신재준은 소희정의 책상 앞에 멈췄다.

갑자기 신재준이 수업 도중에 일어서고, 소희정에게 다가왔지만 교실에 다른 그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희정아, 의자 좀 뒤로 빼볼까?"


장군님의 괴력에 소희정의 의자가 뒤로 밀려났다.


소희정은 자신의 책상과 멀어졌다. 그렇게 생긴 틈으로 신재준이 파고 들어와 책상 위에 앉았다. 그리고 다리를 벌렸다.


꿀꺽.

신재준의 자지가 발기 전인데도,  존재감을 바지 밖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해."


'이런 짓은 좋지 않아요. 하면 안 된다고요.'


그때 신재준이 말했다.


"보지에서 홍수난 주제에."


신재준의 입에서 상스러운 말이 나오자, 소희정은 흠칫하고 말았다.


지금 신재준은 귀신에 홀려서 자각하지 못하고 지껄이는 것이었다. 그걸 아는데도, 야해진 신재준의 모습에 소희정은 아랫배가 둥근거렸다.


'그만하세요... 제 친구라고요.'


"흐응... 답답하네. 미련해."


지금의 말은 뒤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아 장군님을 올려다봤다.

'네?'


"난  위해 이런 건데. 나만 나쁜 귀신 취급하고 나빴어."

'아니, 그래도... 그 힘을 이렇게 사용하시면...'

"그러면 그만 꿈에서 깨렴. 좋은  꾸게 해주려고 했더니. 줘도 안 받네."


'네?'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순간 세상이 깨지기 시작했다. 창문 밖으로 보이던 시내 풍경에서부터 운동장까지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이윽고 교실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안유리 라는 애는 의심없이 바로 재미보던데... 너는 조심성이 많아서 탈이네."
"예?"


신재준마저 사라지고, 이젠 소희정이 사라질 차례였다.

이제야 이 상황이 '현실'이 아니고 '꿈'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이 망가질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소희정은 자신의 몸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고통은 없고 무감각했다.






소희정은 잠에서 깼다. 엎드리고 있던 고개를 퍼뜩 세웠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고, 수업을 당담하시던 선생님은 무표정한 얼굴로 교과서와 참고서를 챙겨 빠져나갔다.

교실을 둘러보니 엎드려 자는 애들이 태반이었다.

평소 때의 봄 개학 보충수업 풍경이었다.


'아...'

신재준은 그와중에도 똑바로 고개를 들고 있었다. 남들은 듣지 않고 퍼잤던, 방금 전의 수업을 열심히 들었는지 필기한 것을 정리 중이었다.

'젖었네...'

소희정은 팬티가 젖은 걸 느끼고는 이마를 책상 위에 박았다.

'아... 장군님께서 주신 꿈을 못 받아먹었어.'

아무리 장군님이 심령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강한 귀신이래도, 방금 꾼 꿈처럼 교실 전체 인원을 한꺼번에 홀리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 과도한 힘을 보고, 그 상황이 '꿈'이라는 걸 바로 알아챘어야 했는데...

'아, 아깝다! 꿈에서나마 재준이랑 섹스할 수 있었는데!'

"다시 한 번 꾸게 해줘?"

들려온 허스키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원피스를 입은 장군님이 신재준의 뒤에서,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었다.


'네!'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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