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2화 〉봄개학 (172/201)



〈 172화 〉봄개학

원래 세계의 신재희는 매일 같이 자기 오빠에게 모욕을 줬다고 했다.


모욕을 주는 이유는 매번 어처구니 없었다.


자기가 왔는데 인사  했다고 인성이 쓰레기라고 욕하고, 밥을 제 시간에  먹었다고 게을러 빠졌다고 욕하고...

신재희의 입에서 나오는 모욕은 하나하나는 어이가 없어서 무시하고 넘어갈 법했지만, '그 녀석'은 넘어갈  없었다고 했다.

그 말의 내용 뿐만 아니라 사람을 깍아내리는 말투와 사람을 얕잡아보는 표정과 태도에 분노가 치솟았다고. 애초에 감금을 당하다 보니까 감정 조절이 힘들었다고 했다.


신재희가 맞는 것을 좋아하는 마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신재희를 때리면 신재희만 좋을 걸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도 결국 신재희를 폭행하게 됐다고.


 순간에 신재희를 때리지 않으면 분이 안 풀려 화병에 죽을 것 같았다고 했다.


'원래 세계의 신재희에 비하면, 우리 재희는 완전 착하지. ...음, 아닌가?'

친오빠를 강간하는 여동생을 착하다고 하긴 좀 그러긴 했다.

지금은 내가  대줘서 저렇게까지 인성이 나빠지지 않은 것이지, 내가  거절했다면 저 모양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차고 넘쳤다.


'내 외도가 들켜도 마찬가지로 저렇게 흑화하겠지... 절대 들키지 말아야겠다.'

지금은 귀엽게 애교까지 부리는 신재희였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현상유지를 하고 싶었다.


나와 김하늘은 걸음을 옮겼다.


나는 갑자기 생각난 '기미정이 김하늘을 초대를   이유'에 대해 말해보았다.


"기미정하고 너하고는 싸움한 것밖에 트러블 없었잖아, 그거 이미 너한테 사과했고. 그 사과한 걸로 끝났다고 생각해서, 집에 초대는 안 한 거 아닐까? 나랑 재희한테  건 도 넘은 잘못이니까 사과했음에도, 또 사과하려는  같고."
"그렇다고 해도 기미정... 이년, 좀 불안해. 너 노리는  아닌가 하고. 나도 따라가야겠다."

'기미정네 집에 가려는 게, 결국 나 때문이었군...'

"기미정한테 한 번 전화해봐야겠다."

김하늘은 기미정이 자신만 쏙 빼놓고 집에 초대한 게 신경에 거슬렸는지 핸드폰을 들었다.

"안 받네, 새끼."
"걔 학교 오겠지? 학교에서 물어보든가."
"물어보는 게 아니라 통보할 거야."
"근데 기미정은 둘째치고, 기미정네 아버님한테는  아니냐. 나랑 재희만 오는 줄 알고 식사 준비하실 텐데."
"걔네 아버지, 손 크셔. 음식 엄청 많이 만드실 걸? 그리고 나 초딩  엄청 좋아하셨어. 분명 나 찾아가면 기뻐하실 거야."
"그러냐?"


갑자기 말이 끊겼다.


뭔가 대화 화제를 찾아보다가 '싸움 실력'이 떠올랐다.

"그런데 너 싸움 잘 하더라? 기미정한테 발리긴 했지만."

고미혜와 교실 뒷편에서 싸울 때, 체급 차이가 심했는데도 김하늘이 이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기미정이 난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고미혜는 전의를 잃고 움찔했었다.


"기미정, 그년은 돌연변이라고. 내가 일진년들 다 이길 걸?"
"아, 그래?"
"못 믿나보네? 진짠데?"

김하늘은 갑자기 킥복싱 자세를 취했다.


"아뵤오~"

근데 입에서 나오는 건 절권도에나 어우릴 법한 소리였다.


"아, 킥킥, 너 지금 뭐하는 거야.  팔리게 진짜."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등굣길이 인적이 드물어서 다행이었다. 누군가가 봤으면 김하늘을 모르는 척해야할 뻔했다.


"그리고  짓 하려면 적어도 그 멍자국은 없어질 때 하라고."
"아오, 기미정. 개년."


관자놀이에 난 멍만 생각하면 기미정에 대한 분노가 솟아오르는 모양이었다.




학교에 도착했다.

"왔능가."

먼저 교실에 도착해있던 소희정의 인사였다.

"왔도다."
"안녕, 희정아."


희안한 김하늘의 대답 이후에, 나는 소희정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소희정이 내 인사에 살풋 웃었다.


"나 7반 갔다온다."

김하늘은 책상 고리에 가방을 걸더니 곧 바로 교실에서 나가려고 굴었다.


내가 물었다.

"7반? 7반이 기미정네 반이야?"
"어."

전에 장군님이 윗층으로 올라가라고 했을 때, 나를 기미정과 만나게 하려고 올라가라고 한 건가 싶었다. 그때 기미정의 반이 몇 반인지 몰라 찾으려고 했었는데...

'7반이었구나.'


"그 '통보'하러 가려고?"


나랑 신재희를 따라서 기미정의 집에 같이 가겠다는 '통보'.


기미정한테 따먹힐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약 나 혼자 기미정의 집에 가기로 예정된 상태였다면, 김하늘의 저런 행위에 짜증났을 거였다.


하지만 어차피 나 혼자 가는 게 아닌 신재희도 동반해서 가는 것이었다. 거기에 김하늘이 더해지는 거면 난 딱히 신경 안 쓰였다.


"나도 기미정한테 초대 받아주겠다고 말해야하니까 같이 갈래."
"어, 그래. 가방 놓고 와."


가방을 내 책상 고리에 걸었다. 옆자리의 나예성은 아침부터 자고 있었다.

'잘 자네. 또 밤새도록 섹스했나? 그 피곤함 잘 알지...'

깨우지 말아야겠다.

요즘엔 신재희가 엄지혜네 안 가서, 신재연에게 시달리는 일이 적어졌다. 덕분에 아침마다 개운했다.

신재연은 다크서클이 늘어나는 것 같았지만.


소희정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도 구경 가야지."

우리 셋은 위층으로 올라갔다.

난 계단을 오를  일부러 두 여자애 보다 밑에서 따라갔다. 짧은 교복 치마 속, 팬티스타킹에 덮어진 팬티를 감상했다.

'아, 좋네...'


눈요기하는 건 좋은데 자지가 발기하는 것을 막느라 고생해야했다.

"김하늘. 근데 기미정네 반은 왜? 리벤지 하게?"
"기미정이 사과한다고 재준이랑 재희를 집에 초대했대. 나도 거기 끼려고."
"오... 근데 왜 싸우러 가려는 분위기를 내고 있냐?"
"그년이 내 전화 씹어서."

그런데 우리가 올라가는 도중에, 윗층의 학생들 여러 명이 우르르 내려오기 시작했다.

'뭔 일이지?'

어제  내리고 눈이 내리고 했던 터라, 오늘 날씨는 특히나 추웠다. 2월 들어서 가장 추웠다.


그러니 학생들이 더더욱 히터가 틀어진 교실에 있고 싶어할 거였다. 그런데 이토록 뛰어나오는 걸 보면 아랫층에  일이 터진 듯했다.


내려가는 학생 중 하나가 김하늘의 얼굴을 보더니 아는 척했다.

김하늘을 아는 척, 지금 무슨 특이사항이 생겼는지 아는 척. 둘 다.

"야. 김하늘, 들었냐?"
"뭔데? 어디 싸움이라도 났냐?"
"정답. 1반에서 박슬기랑 안유리, 또 맞짱 뜬다는데?"
"걔들은 지치지도 않나. 허구한 날 쌈박질이야."

김하늘은 그렇게 말하더니  쳐다봤다.

"재준아."
"기미정은 나중에 만나러 가고, 싸움 구경하러 가자고?"
"응. 아, 근데 너 싸움 구경 무서워했지?"


무서워하던  아니었다. 박슬기와 안유리가 속옷을 노출해대며 싸우는 통에 발기할 것 같아 고개를 옆으로 돌린 거였다.


그런 내 모습을 김하늘은 내가 싸움 구경 무서워해서 그런 거라고 착각 중인 듯했다.

"안 무서워. 1반부터 구경가자."

기미정은 나중에도 볼 수 있을 테지만, 싸움 구경은  번 지나가면 끝이었다.


우린 1반으로 향했다.


싸움 소식에 20명 가까이 모여들었다. 본래는 쌀쌀했어야할 복도가 따듯했다. 학생들의 체온 때문에 공기가 달아오른 것이었다.

"너 시발,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공부나  하지 왜 일진회에 들어오고 지랄이야."
"나도 마찬가진데. 싸움도 볼라 못하면서 잘 싸우는 척 나대고 말이야."
"하! 나한테   새끼가...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저번 싸움, 내가 이긴  아니었나?"
"개소리 하지 마, 샹년아. 선생만  왔으면 넌 그때 작살났어."
"다음 쉬는 시간에 이어서 싸울  있었잖아? 근데 다음 쉬는 시간에 곧장 교실에서 떠나버린 건 누구였더라?"
"아놔... 그때는 화장실 급해서 나간거고 븅신년아."

'얘네는 말로 싸우나? 빨리 좀 치고 박고 싸우지.  있으면 아침조회 시간인데.'


나와 김하늘, 소희정은 구경 인파를 파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가  흠칫해서 돌아봤다.

'아, 누가 또 엉덩이 만졌는데... 누군지 모르겠네.'

사람들로 번잡한 곳에만 들어오면 누군가 엉덩이를 만지는 것 같았다. 내 엉덩이가 무슨 공공재인가?


 범인을 못 찾을 것 같아 다시 걸음을 옮겼다. 김하늘과 소희정이 뚫어둔 길이 다시 막히기 전에 이용해야 했다.

그렇게 도착한 1학년 1반의 교실 뒷문이었다.


교실 뒷편에서 마주보고 서있는 박슬기와 안유리를 보자니 기시감이 느껴졌다. 저번주에 봤던 둘의 대치 장면과 판박이여서 그랬다.


두 여자애는  주먹을  쥐고 있었다.


둘의 작고 새하얀 손등 위로 파란색 핏줄이 도드라져있었다.

김하늘이 교실뒷문 쪽에 앉아 있던 1반 여자애한테 물었다.

"야. 쟤들 왜 또 싸우는 거냐?"
"저번주랑 똑같은데... 박슬기가 공부하려는데, 안유리가 계속 무시하고 떠들었거든. 근데 오늘은 안유리가 저번 노골적으로 떠들더라고. 이번엔 작정하고 시비 거는 것 같더라."
"흐응."

'안유리랑 박슬기... 누가 이기더래도 둘 다 크게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네.'


나중에 나 따먹힐 미녀들인데,  예쁜 얼굴에 흉지지 않았으면 했다.

교실 뒷문 쪽을 쳐다볼 수 있는 위치에 선 건 저번과 마찬가지로 박슬기였다.


저번에도 나랑 눈이 마주쳤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마주쳤다.


'어? 날 뚫어져라 보네... 저번엔 내 주위에 있을만한 나예성 찾는 듯하더니만.'

어제 박슬기네 집에 들렸던 일 때문에, 그새 좋아하는 사람이 뒤바뀐 것이려나? 나예성에서 나로?


'쟨 뭐 저리 마음이 쉽게 변하냐. 그래서... 마음에 드네.'

여자들이 날 따먹은 다음에 버려줬으면 싶었는데, 박슬기가 쉽게 마음이 바뀌는 여자라면 버림 당하기 쉬울 것 같았.


안유리는 박슬기가 자신을 안 보고 딴데를 보고 있자, 그 시선을 쫓아 뒤돌아봤다.

이번엔 안유리하고도 눈이 마주쳤다.

'얘는 브래지어 다 보이게 입었네. 자지 아프게...'

안유리의 등이 보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단추가 열어진 블레이저 안쪽으로, 블라우스가 깊게 열려있었다.

파란색 브래지어. 지금 보니까, 오른쪽 거유의 윗부분에 매력점이 박혀있었다.


매력점을 손가락으로 콕 찔러보고 싶었다. 분명 거유가 부드럽게 쏙 들어갈 것이었다.

안유리가 입술을 굳게 다물며 비장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박슬기를 노려봤다.

나는 이제 다시 박슬기를 바라봤다.

박슬기는 날 쳐다보다가, 눈동자를 활활 불태우며 싸우게 될 상대인 안유리를 노려보았다.


'와... 설마 얘네 둘. 둘 다 나 좋아하는데, 마침 내가 싸움 구경오니까 반드시 이기려고 벼르는 것이려나? 으음... 아닌가. 내가 너무 도끼병인가?'


싸움은 갑자기 시작됐다.


안유리가 시작부터 하이킥을 날린 것이었다. 치마 입은 상태에서 하이킥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뻔했다. 속옷이 노출됐다.

'오... 생각 외로 파란색 팬티도 예쁘네.'


박슬기는 두 손을 맞댄채 자신의 얼굴을 치려는 하이킥을 막아냈다.

그러자 안유리는 갈고리를 걸듯, 발꿈치로 박슬기의 어깨를 찍으며 아래로 내리그었다.

삼선슬리퍼가 박슬기의 어깨에 걸려서 나가가떨어졌으며, 안유리의 발꿈치는 박슬기의 유방까지 타격을 입힌 뒤 바닥으로 떨어졌다.


"큭!"

박슬기는 어깨보다 유방이 아팠는지 그 부위를 손으로 덮었다.

안유리는 몸의 높낮이가 안 맞는게 거슬리는지, 다른 발의 슬리퍼도 벗어날렸다.

"시발!!"

박슬기가 반격에 나섰다. 힘껏 주먹을 날렸다. 안유리는 고개를 뒤로 내빼는 것으로 박슬기의 공격을 쉽게 회피했다.

안유리의 치마가 위로 들썩이며 파란 팬티를 입은 하얀 엉덩이를 슬쩍 보여줬다.

'아, 팝콘 먹고 싶다.'


공격을 피했던 안유리가 숙인 몸을 앞으로 옮기며, 바디블로우를 날렸다.

박슬기는 제대로 맞아버렸다.

"컥!"

'박슬기가 안유리보다 싸움 더 못하는  같네. 두뇌파라 어쩔 수 없나.'


그래도 박슬기는 그 한 방에 쓰러지지 않았다. 이를 악물더니 근접하고 있던 안유리의 얼굴에 기어코 주먹을 날렸다.


안유리는 회심의 일격을 때린 이후, 반격이 들어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한 걸까? 안유리는  공격을 쉽게 허용했다. 그녀의 고개가 옆으로 홱 돌아갔다.

안유리는 고개를 똑바로 하며 주먹을 날렸고, 박슬기는 그걸 피하지 않고 몸으로 받아냈다.

이후 두 사람은 가드가 없는 난타전을 시작했다.


'와... 예술인데...'

저번주의 개싸움보다 지금의 난타전이 훨씬  흥미진진했다.


저번주에는 서로의 팬티가 다 보이고, 그래서 눈요기에는 좋았다.

이번 싸움은 그런 눈요기는 적지만, 두 사람의 진검승부에 숨을 죽이게 되고 마는  있었다.

처음엔 둘 모두 다치지 말았으면 했는데, 이젠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갔다.

'둘 중에 이긴 애부터 공략해야지...'

나도 모르게 그런 결심을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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