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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9화 〉봄개학 (169/201)



〈 169화 〉봄개학

사실이었다.


안유리는 신재희가 신재준의 여동생이란 점을 의식해서, 신재희에게 잘 해줬다.


얼차려를 줘야하는 것도 단둘이 있을 땐 그냥 얼차려 시킨 것으로 입을 맞추며 봐줬고, 평소에도 친한 동생 대하듯 친근하게 대했다.

먹을 것도 나눠먹고, 신재희가 롤을 잘 하면 칭찬했다.

일진회의 결정에 완전히 맞서서 신재희의 린치를 막아줄 수는 없었지만...


린치 가할 때는 린치 강도를 심하지 않도록 조절해줄 생각이었다.


신재희에게는 다행히도 백호수의 보호 덕분에 린치는 보류되고 있어서, 안유리는  친절을 보여주진 못했다.

'앗... 근데 아까 내 말투, 너무 적대적이었던 것 같은데. 봊망했다...'

신재준의 얼굴을 슬쩍 봤다가 흠칫하게 됐다. 적개심을 품고 노려보고 있었다.


'윽...'

"안녕하세요."


다행히 신재희가 안유리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유리는 내심 안도하며 물었다.

"그래, 잘 지냈냐?"
"예, 뭐..."
"재희야. 쟤가 너한테  해줬어?"

신재준이 그 진의가 의심쩍다는 듯 물었다.

"다른 언니들에 비하면... 천사였지."

'나이스. 그동안 신재희한테 잘 대해준  빛을 발하는구나.'

신재희의 말을 바로 신뢰한 건지, 신재준의 눈에 담겼던 적의가 사그라들었다.

"안녕."


심지어 인사까지 해왔다.

"아, 안녕."


반사적으로 인사 대답했다.

처음으로 신재준에게 말을  것이었다.


'좋았으!'

 사실 만으로도 신재준과 연애하는 것에  걸음 다가간 듯했다.


'어...?'


그런데 신재준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아...'


다시 보니까 방금 전에 신재준이 인사한 건, 안유리가 아니라 안유은이었다.

"안녕하세요!"

남자에게 면역이 없는 안유리와는 다르게, 안유은이 신나서 신재준의 인사에 답했다.

신재준은 안유리에게 인사를 받았으니 해준다는 듯, 마지못해 안유리에게 인사했다.


"안녕."


'나한테도 인사해줬어!'

 번 말문이 트여서 그런가. 안유리는 쉽게 신재준에게 말을 걸었다.

"장보러 나왔냐?"
"어."
"아까 듣기론 삼겹살 산다는  같던데. 너희도 오늘 삼겹살 먹냐?"
"어."
"삼겹살이 최고지."

'아니, 뭔... 그렇게 말하면 재준이가 뭐라고 대답하는데?!'

안유리는 말을 뱉어놓고선 후회했다.

실제로도 신재준은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에 관심을 잃은 듯, 신재희에게 턱짓했다. 가자고.

'아, 안 돼...'


그때였다.


"저 오빠. 오빠네도 삼겹살 먹어요?"


안유은이 나선 것이었다.


'잘 했어!'

"응, 너희도 삼겹살 먹니?"
"네!"
"집에 돌아가서 맛있게 먹어."
"네!"

신재준은 안유은이 귀여웠는지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부럽네...'


동생에게 시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야."
"어, 어?"

갑자기 신재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불렀다. 안유리는 걱정했다.  또 저러지?


"동생이 어린데 장바구니 들게 시키냐?"


신재준의 말에 안유리는 등에 식은 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좋은 점수를 따도 모자랄 판인데, 점수가 깍일 판이었다.

점수 깍이는 걸 방어하기 위해 무슨 수를 써야할 텐데... 머리가 새하얘져서 아무런 생각도 못했다.


그때 안유은이 말했다.

"언니가 저 삼겹살 사는 법 알려준다고 했어요."
"그래? 착하네."
"헤헿..."


'나이스...  했다. 나중에 혼낼 일 생겨도 한 번은 봐줄게. 근데...'

신재준은 귀엽다는 듯 안유리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아씨, 부럽네... 잠깐. 나나 유은이나 닮았잖아? 내 얼굴도 신재준 보기엔 귀여워보이려나?'


그렇게 정신 승리하노라니 기분이 좋아졌다.


"오빠랑 같이 고기사러 갈까?"
"네, 오빠!"


신재준이 손을 내밀자, 안유은이 신재준의 손을 덥썩 잡았다.

'아씨. 쟤는 맨날 집에서 컴퓨터하길래 아싸인 줄 알았더니. 처음  남자도 아무렇지 않게 대하냐.'

안유은과 신재준의 맞잡은 손을 부럽게 쳐다봤다.


그러다가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신재희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안유리는 자신의 감정이 신재희에게 고스란히 보여지고 있는 것 같아서 창피해졌다.

"뭘 보냐."
"그냥요."
"가자."


안유리와 신재희는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앞에서는 신재준과 안유은이 손잡고 뭐라고 떠들며 걸어가는데, 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난  보니까 둘의 케미가 나쁜 것 같지 않았다.


'마치 나랑 신재준이랑 결혼하고. 각자의 동생 불러다가 장보는 느낌인데?'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따스해지고, 발걸음이 저절로 가벼워졌다.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랬다가 옆에 있는 신재희에게 '착한 언니' 행세나 하고자 했다. 신재준에게 점수를 따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써.


"요즘 뭐 전직 조폭이랑 같이 다닌다며?"
"저번주에는 그랬죠. 그런데 이번주는 그냥 혼자 학교 다녀요."
"웬만하면 같이 다니지. 그 전직 조폭이 성연고 일진 출신이래. 그래서 일진회에서 너 못 건드리는 거고."
"예, 들었어요."
"응? 그 조폭 본인한테?"
"아뇨, 우리 오빠한테요."
"어? 너도 몰랐던 걸, 재준이가 그건 어떻게 알아?"
"슬기 언니가 알려줬다는데요?"
"하. 그래?"


'박슬기 이 년... 역시 재준이 좋아하는 거 맞잖아. 재준이한테 점수 따려고 정보 몰래 알려주고 있었네? 시발. 내가 먼저 알려줄 걸.'

'일진 학년장'으로서 일진회 내부 정보를 타인에게 알려준 것은 파면 및 보복을 당할 만한 일이었다.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고 알려준 걸, 박슬기도 신재준을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박슬기는 신재준처럼 공부를 잘 한다는 공통분모가 있지... 나는? 없잖아. 봊 같네.'

하지만 벌써부터 포기하기엔 일렀다. 마침 신재준이 안유은을 귀여워했다.

'동생 이용해먹는 짓 같지만... 유은이를 이용하면 어떻게 재준이랑 엮일  있을 것 같은데...'


* * *


신재희는 생각했다.


'안유리, 시발년. 역시 오빠 좋아하는 거 맞았네.'

안유리는 중학교 때부터 유독 자신을 편애했다.

처음에는 신재준에게 접근하고 싶어서 그러나 의심했다. 안유리 말고도, 신재준에게 접근할 목적으로 편의를 봐준 일진 선배가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유리가  년 동안이나 신재준의 '준'도 꺼낸 적 없기에, 그냥 자신이 인간적으로 마음에 들어서 챙겨주나 보나 싶었다.


하지만 지금 마트에서 보여주고 있는 안유리의 모습을 보자니 확신하게 됐다.

'신재준을 보는 눈에서 아주 꿀 떨어진다, 꿀 떨어져. 신재준은 나랑 언니 껀데. 어딜 넘 봐?'


신재희는 불쾌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신재준과 데이트 같은 장보기를 하는 것에 신나있었는데, 남의 남자를 넘보는 년과 만나게 됐으니.

신재희는 시선을 돌려 안유리를 꼭 닮은 초딩을 쳐다봤다.


'저 새끼는 볼라 순진한 척하네? 알 거 다 알 걸면서.'

순진한 척하면서 신재준에게 귀여움을 받는 안유리의 어린 동생에게 짜증이 났다.

"오빠하는  보고 따라해봐. 냉동 삼겹살 3인분 주세요."


신재준이 먼저 정육코너에서 삽겹살을 받아내자, 안유은도 그것을 따라해 삼겹살을 받아냈다.


"잘 했어."
"헤헿..."


신재준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하자, 안유은이 순진한 척 웃음을 흘렸다.

'아, 씨. 꼴보기 싫은 새끼.'

이후 음료수나 채소를 산 뒤, 카운터로 가지고 가서 각자 계산을 했다.

이제 꼴 보기 싫은 안유리네 자매와 헤어질 시간이었다.

"저기, 오빠."
"응?"
"저희랑 같이 고기 먹어요!"

'지랄하네,  새끼가.'

신재희는 곧 바로 신재준이 거부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신재준은 고민하듯 대답을 망설였다.


'아씨. 고민할  뭐 있어. 나랑 언니랑 같이 먹어야지. 아란이 언니까지는 인정이고.'

신재희가 최아란에게 갖고 있는 심정은 복합적이었다.


최아란이 신재준과 섹스는 하지 말았으면 했다. 신재준이 자신과 신재연을 제외한  여자와 섹스하는  상상만 하면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그래도 최아란과 신재준이 제법 어울리는 한쌍이라고 생각했다. 최아란은 매너도 좋고, 돈도 많아 보였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기는 했다. 언젠가 신재준과 최아란이 섹스하는 사이 임을 알게 돼도 충격 먹지 않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유은아, 가족끼리 먹는 게 좋을 거야. 오빠도 오빠의 누나랑 먹어야 돼."
"아, 그래요...?"

신재희는 신재준이 거절하자 안도했다.

'거절할 생각이었는데, 그냥 저 꼬마한테 어떻게 말해야 상처  받을까 고민하던 거였나보네. 안유리, 암만 신재준 꼬시려고 해봐라. 아란이 언니 때문에  될 걸?'


최아란이 마음에 드는 게, 그녀가 막강한 골키퍼가 되어준다는 것이었다.


신재희나 신재연이나. 두 여자는 신재준의 애인임을 떠벌릴  없었다. 그러자니 신재준에게 잡것들이 자꾸 꼬여도 골키퍼가 되어줄 수 없었다.

하지만 최아란은 달랐다. CY전자에 다니는 능력자인데다가 외모도 빼어났으니.


신재희는 나중에 안유리에게 몰래 말해줄 생각을 했다. 신재준한테 이미 여친이 있으니까 알아서 마음 접으라고.


'아, 맞다. 아씨... 신재준이 말하지 말랬지.'

신재준이 자기가 성인이랑 사귀는 거, 학교에 알려지는 게 싫으니까 알리고 다니지 말라고 했었다.

'그럼 안유리, 저년, 저걸 어떻게 막지? 아, 어차피 고민할 필요없겠네. 오빠가 알아서 철벽치겠지.'

최아란이랑 사귀고 있는데, 신재준이 바람을  리는 없었다. 신재준은 그런 남자가 아니니까. 알아서  처신하겠지.


'이런 식으로도 아란이 언니가 쓸모가 있네.'


"오빠, 나중에 저랑 놀 수 있어요?"

안유리의 동생이 신재준에게 물었다. 신재희는 인상을 찌푸렸다.

자꾸 신재준에게 치근덕거리는 안유리의 동생이 짜증났다.


'오빠는 나랑 놀거야,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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